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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산업화시대의 미 대선
포스트 산업화시대의 미 대선
  • 세르주 알리미
  • 승인 2016.09.30 09: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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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리 클린턴과 같이 경험이 많고 유능한 전문 인력을 거느린 후보도 과연 도널드 트럼프처럼 자기 진영 내에서조차 논란이 무성한 과격 인사에게 패배를 당할 수 있는 것일까? 가능성이 그리 높아 보이지는 않지만, 미국의 소외계층이 던진 표에 의해 충분히 그런 상황이 연출될 수도 있다.

“시스템이 조작됐다.” 

우리도 익히 잘 아는 사실이다. 미국에서는 전국적으로 최다득표를 한 후보가 반드시 대통령에 당선되는 것은 아니다. 또한 일찌감치 표심의 향방이 정해진 3/4의 주는 대권경쟁에서 별 관심을 받지 못한다. 그리고 사법기관으로부터 형을 언도 받은 6백만여 명의 시민은 투표권을 누리지 못한다. 신분증이 없어 투표장에 갈 수 없는 잠재적 유권자도 11%에 달한다. 한편 현 미국의 선거방식은 두 주요정당에게만 유독 유리하게 기능한다. 물론 돈, 미디어, 로비, 선거구의 획정방식 역시 미국의 민주주의 대표성을 침해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 만한 사람은 알고 있다.(1)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것은 그런 종류의 조작이 아니다. 정파를 초월한 어떤 감정에 관한 이야기다. 그러니까 버니 샌더스 민주당 상원의원을 뽑았던 1,202만 4천 명의 유권자와 공화당의 억만장자 도널드 트럼프를 지지한 1,330만의 공화당원들이 예비경선 중에 표출했던 바로 그 분노 말이다. 그들에 따르면 “시스템은 조작됐다.” 
왜냐하면 위정자들이 중동에서 전쟁을 벌이는 바람에 미국에 승리를 안겨주기는커녕 오히려 미국의 빈곤만 가중했기 때문이다. 시스템은 조작됐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국민이 경제위기로 인해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 있는 와중에 정작 위기의 주범들은 나 몰라라 하는 형국이기 때문이다. 시스템은 조작됐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2008년 대선전에서 일깨워줬던 변화에 대한 희망을 완전히 물거품으로 만들어버렸다. 시스템은 조작됐다. 공화당 유권자들은 2010년과 2014년 공화당이 상하원을 장악할 수 있도록 대대적으로 결집했음에도, 그 이후 상황은 전혀 나아진 것이 없다. 시스템은 조작됐다. 워싱턴에서는 아무런 변화도 실현되지 않았다. 미국의 국민들은 본인들을 그토록 경멸하는 소수 특권층에게 조국을 빼앗겼다고 느끼고 있으며 양극화는 점점 더 심화되고, 중산층의 근심은 날로 깊어만 간다. 
사실 첫 출발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민주당이 가벼운 산보 정도로 여겼던 힐러리 클린턴의 대선후보 지명,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든든한 지원 아래 이뤄질 왕좌 계승은 별안간 70세 노인 저격수와의 악전고투로 변하고 말았다. 상대는 놀랍게도 반자본주의를 기치로 내걸어 수백만 명의 젊은이 유권자와 농민, 노동자를 결집하는 데 성공했다. 샌더스 의원에게 돈은 장애가 아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소액기부를 해준 덕분에 그는 거액의 선거자금을 모집할 수 있었다. 미 정치의 주된 ‘속임수’이자, 많은 이들로부터 격렬한 혐오의 대상이 돼온 금권정치가 이번에는 보기 좋게 좌절된 것이다.(2) 그것은 밝은 미래를 약속하는 매우 놀라운 성과라고 할 수 있다. 말이 나온 김에, 트럼프도 이번 경선 과정에서 다른 경쟁의원들보다 돈을 덜 쓰고도 승리를 거뒀다지 않는가.
역대 대선전은 언제나 ‘국가 타도’의 장이 돼왔다. 그러나 이번 대권경쟁에서는 심지어 보수주의 유권자들마저도 정부가 좀 더 깊숙이 경제 문제에 개입해주기를 요구하고 있다. 그동안 귀가 따갑게 들어온 사회복지 지출의 축소니, 연금 ‘개혁’이니, 실업급여 삭감이니 하는 훈계들은 이번 트럼프의 공약에서는 전혀 찾아볼 수가 없다. 트럼프는 핵심 공약인 자유무역과 관련해 공화당·민주당을 막론한 역대 정부가 체결한 자유무역협정을 모두 파기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고, 해외로 이전한 미국 기업에게도 관세를 매기겠다고 주장한다. 더욱이 그는 많은 비용이 소요되는 미국의 교통인프라 재건에 국가가 재정을 지원해야 한다는 점에 있어 상대 후보와 뜻을 같이 하기도 했다.(3) 즉, 이제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에 대한 기존의 초당파적 합의가 산산조각 난 것이다. 미국의 거대기업들은 너무나 냉소적이고 탐욕스러운 모습을 보여준 나머지, 결국 ‘기업의 번영이 곧 국가의 번영’이라는 국민들의 환상을 여지없이 박살내고 말았다.(4)  
 
▲ <오래된 사건>, 1981 - 로버트 라우션버그
 
클린턴 후보는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25여 년 전 민주당의 우경화를 직접 진두지휘한 장본인인 남편에게 중대한 임무들을 맡기겠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오늘날의 민주당은, 결코 클린턴 부부가 함께 백악관에 살던 시절에 그들이 이뤘던 과거의 그 민주당이 아니다. 민주당 유권자는 오늘날 조금 더 왼쪽으로 기울었다. 그런가 하면 공화당과의 타협도 별로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더욱이 그들은 이제 더 이상 ‘사회주의’란 말에 과민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힐러리 클린턴 후보는 1990년대 ‘민주당 신진세력들’의 주도하에 이뤄진 보수주의 전향의 네 가지 상징적 정책 즉 자유무역협정, 대량투옥정책, 금융규제완화, 임금삭감 등에 대해 샌더스 지지자들 앞에서 진실성을 증명하느라 진땀을 빼기도 했다.
트럼프는 멕시코 이민자와 이슬람에 대한 독설, 성차별, 인종차별 행태 등으로 격심한 혐오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러다보니 오히려 때로는 그 외의 것들이 아예 다 뒤로 싹 묻혀버릴 정도다. 그러나 그는 사회복지지출·무역정책·동성애자의 권익·대외관계·해외군사개입 등의 문제에 대해 너무나도 고집스럽게 공화당의 율법서를 거부하고 있다. 아마도 향후 공화당 지도부가 이 문제들과 관련해 노선 변경에 나서는 일은 상상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적어도 그들이 ‘자신들의’ 지지기반세력을 완전히 잃고 싶은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이미 공화당 지지자들은 경선 과정에서 공화당의 주류 세력을 포함해 그 누구 앞에서도 거침없는 태도를 보이는 이 후보자를 선택하는 것으로 그들의 분노를 표현했다.
당시 트럼프는 이렇게 말했다. “그동안 우리 정치인들은 세계화 정책을 아주 맹렬하게 추진해왔다. 그러나 세계화 정책은 정치인들에게 기부금을 내는 금융엘리트의 배만 불려줬을 뿐이다. 반면 수백만 명의 미국 노동자들은 세계화로 인해 가난과 고통에 시름하고 있다.” 대부분의 시간을 맨해튼의 펜트하우스와 전용비행기에서 보내는 억만장자의 입에서 나온 말이니, 우스갯소리로 넘길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만큼 요점정리가 잘 된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그러니까 이제 이런 생각이 들 수도 있다. 시스템은 조작되지 않았다. 최근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미국 격월간 외교전문지 <포린어페어스>에 기고한 글에서도 밝혔듯, 미국의 민주주의는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 대중의 분노에 부응하고 있고, 클린턴 왕조에게 어퍼컷을 날렸으며, 공화당 귀족들에게 치욕을 안겨줬고, 양극화·보호주의·탈산업화를 선거의 핵심 의제로 만들었다.(5) 그리고 어쩌면 이중적인 기존의 정치사기행각에도 이제 종언을 고하게 만들 수 있을지 모른다.

비전을 잃어버린 정당들

수년 동안 민주당은 고학력 중산층이나 상류층의 도구로 기능해왔다. 민주당은 자기 당의 ‘다양성’을 내세워, 흑인과 히스패닉 유권자로부터 압도적인 지지를 받아왔다. 그런가 하면 노동단체를 지원함으로써 노동자 표를 휩쓸었다. 그러나 오늘날 민주당의 진보관은 ‘평등’이라는 개념과는 매우 거리가 멀어 보인다. 민주당의 진보관은 때로는 개인주의를 설파하는 훈계조에 물들어 있으며(더 많이 노력하라는 권유), 또 때로는 능력 만능주의(더 많이 공부하라는 권유)에 함몰돼 있다. 요컨대 미국의 주변부 계층에게 그 어떤 비전도 제시하지 못하는 것이다. 부유한 연안지대에서 멀찍이 떨어져 사는 이 소외된 미국인들은 여전히 글로벌 대도시의 번영이나 월스트리트·실리콘밸리의 은혜로운 낙수효과 따위는 꿈도 꿀 수 없는 처지다. 게다가 오랫동안 저학력 중산층에게 든든한 버팀목이었던, 그나마 낙관적인 미래를 꿈꾸게 했던 산업일자리도 점차 사라지고 있는 현실이다.
이들에게, 그리고 가난한 ‘최하층 백인’에게, 트럼프 이전의 공화당은 민주당과 마찬가지로 아무런 비전을 제시해주지 못했다. 공화당의 최우선 과제는 그저 재계를 위해 세금을 감면해주거나, 그들이 수출을 증진하고 해외 투자를 활성화할 수 있도록 곁에서 지원하는 일뿐이었다. 그럼에도 보수주의자들은 오랫동안, 백인 노동자와 프롤레타리아들에게 조국·종교·도덕에 대해 이야기하거나, 잘난 척이 심한 지식인이나 나랏돈을 축내는 소수인종으로 인한 미국민의 고통을 과대포장함으로써, 자신들의 경제 및 무역 정책의 주요 희생자인 그들이 언제까지고 기꺼이 그들 선거전의 총알받이 역할을 해줄 것이라 확신해왔다.(6)
한편 그들에게 트럼프의 지지도가 높은 것은, 또 다른 데서 기인하기도 한다. 뉴욕 부동산개발업자 출신인 그는 단지 성경과 무기소지에 대해서만 이야기하지 않는다. 자국 산업 보호와 자유무역협정의 문제점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다. 반면 클린턴 여사는 분노한 유권자들로부터 사랑을 되찾는 데 완전히 실패했다. 클린턴은 그들 대부분이 “인종차별주의자·성차별주의자·동성애혐오자·외국인혐오자·이슬람혐오자” 등으로 구성된 “개탄할 만한 부류”에 속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런 심리적 진단은 클린턴의 자금모집 현장에서 나왔다. 자신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기꺼이 지갑을 연, 존경할 만한 부류의 사람들 앞에서 말이다.
이번 대선의 유권자들은 이념적 혼란을 겪고 있으며, 테이블을 뒤엎고 싶은 강렬한 욕망에 사로잡혀 있다. 과연 이런 상황에서 현상유지를 고집하는 정당의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을까? 물론이다. 왜냐하면 힐러리 클린턴은 현재 자신보다 훨씬 더 심하게 미움을 받는 한 ‘아웃사이더’를 상대로 경쟁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정말로 핵심적인 ‘사기조작’은 바로 거기에 있는지 모른다. 이런 상황은 미국이 아닌 다른 나라들도 마찬가지다. 프랑스도 내년이면 비슷한 상황에 처할지 모른다. 세계화·사회계층의 분리와 고립·엘리트층’의 공모에 반기를 든 대중의 분노에 직면하게 되는 것이다. 어떤 경우든 여지없이 정치적 계략은 민중에게 재수 없는 불똥을 튀게 할 것이고, 민중의 분노는 곧 엉뚱한 곳을 향할 것이다.
사실 클린턴 후보에게는 어떤 뜻밖의 정책을 기대하기가 힘들다. 그는 언제나 전문가·여론조사가·홍보담당자 등으로 둘러싸여, 모든 것을 밀리미터 단위로 주도면밀하게 계산한다. 그런 클린턴과 달리, 트럼프는 완전히 판을 뒤엎어버렸다. 공화당의 전략을 완전히 휴지조각 취급한 것이다.
2012년 현 오바마 대통령이 연임에 성공하자, 많은 공화당 중진의원들은 크게 당황했다. 그들은 다음 대선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흑인(클린턴이 오바마만큼 흑인표를 모으지는 못할 테니), 그리고 특히 점점 더 인구 비중이 높아지는 히스패닉 내의 민주당 표를 가져오지 않으면 안 된다고 결론지었다. 히스패닉 유권자는 대체로  공화당의 이민제한정책에 반대한다. 따라서 이 문제를 좀 더 전향적인 자세로 다루면서 일부 불법체류자를 합법화해준다면, 충분히 승산 있는 싸움이 될 것이라고 그들은 생각했다. 사실 표심이란 유전자에 의해 뼛속 깊이 새겨진 것은 아니지 않은가. 설령 낙태에 반대하고 세금 납부를 거부하는 히스패닉 유권자라 할지라도 우파에게 표를 던질 수 있는 것이다. 가령 과거 민주당을 지지했던 폴란드·이탈리아·리투아니아 출신의 이민자들은 훗날 로널드 레이건을 선택했다. 그런가 하면 2000년 무슬림 인구의 70%가 조지 W. 부시를 뽑았고, 8년 뒤에는 무려 90%가 오바마를 선택했던 것이다.(7)

최하층 백인들이 중요 집단으로 부상

트럼프는 공화당에 반감이 심한 라틴계나 흑인 유권자의 표를 힘들게 구걸하는 대신, 완전히 정반대의 모험을 감행하기로 했다. 차라리 비히스패닉 백인들의 표를 싹쓸이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물론 백인의 유권자 비율이 점차 줄어들고 있다고는 하지만, 2012년에도 여전히 백인은 전체 유권자의 74%를 차지했다. 백인, 그 중에서도 특히 블루칼라 노동자나 저학력의 화이트칼라 노동자를 결집하기 위해, 트럼프는 이민물결이 국가 안보를 위협하고, 미국의 정체성을 뒤흔든다며 공포를 조장하는 한편, 미국 산업의 부흥(다시 위대한 미국을 만들자!)을 약속했다. 이런 식의 담론은 민주당의 기득세력으로부터 큰 관심을 받지 못하는 사회계층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 성공했다. 사실상 민주당에게 이 계층은 디지털 현대화 시대에도 부응하지 못하고, 인구 다양성 제고에도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했다. 말하자면 이미 한물 간, 쇠퇴 중인, “개탄할 만한” 세계와 문화권에나 속하는 자들로 취급받아온 셈이다.
사실 국가의 번영을 담보하는 것은 미국의 대도시인지 몰라도, 정작 선거의 승패를 좌우하는 것은 주변부의 소외된 주들이다. 이미 수개월째 일찌감치 민주당 표밭으로 판명난 캘리포니아주나 뉴욕주는 저렴한 몸값을 감수해야만 했다. 반면 오하이오주, 펜실바니아주, 미시건주, 위스콘신주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선거 결과를 예측하기 힘든 이들 경합주에 후보들은 연일 러브콜을 보냈고, 유세를 열었고, 유권자의 머리맡을 지켰다. 그래서 그들이 대체 어떤 것을 발견했을까? 그것은 바로 중장년층 이상의 저학력 백인이 주류를 이루는 이 주들이 해외이전과 중국 및 멕시코의 경쟁으로 인해 수십만 개의 일자리를 잃어버렸고, 버려진 폐공장이 즐비해 있으며, 다른 지역과 달리 미국 경기회복의 수혜를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니 이곳에서는 이토록 트럼프의 근심이 가득 베인 보호주의 담론이 환영을 받는 것이리라. 반면 클린턴 후보는 이 지역에서 오바마 대통령의 ‘우수한 국정성적표’를 세일즈 하느라 고전 중이다.
조만간 글로벌 도시들이 더욱 확대되고, 이민자들이 쇄도해서 미국 사회가 ‘소수인종’이 주류가 되는 사회로 변신한다면, 그 때는 민주당이 블루칼라가 다수를 이루는 미국의 중서부 지역을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아도 될지 모른다. 과거 민주당이 남부 ‘최하층 백인들’을 포기했듯이 말이다. 그러나 올해는 아니다. 2016년은 너무 이르다. 스스로 자초한 문제에 (부정적으로) 반응하는 모든 이들을 그저 응석받이 아이처럼 다그치기에 아직은 너무 위험 부담이 크다. 그들에게 직업교육을 다시 받고 직업을 바꾸거나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너무나 시기상조인 것이다.
왜냐하면 트럼프가 원형경기장 안에 떡하니 버티고 있는 상황에서, 그나마 얼마 남지 않은 민주당을 지지하는 노동자들이 언제든 그들 말고 다른 구원자를 찾아 나서지 말라는 법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클린턴 후보는 25년 전부터 서민층을 재앙으로 내몬 정치 ‘엘리트’의 화신으로 간주되고 있다. 그런 만큼 경제적 위협에 시달리며, 사회적 지위를 잃을까 전전긍긍하는 이들을 더욱 따뜻하게 보듬어야 한다. 물론 힐러리의 정치 이력은 매우 눈부시다. 그러나 2016년 대선에서는 많은 미국인들이 어떻게든 퇴물들을 퇴출시키고 싶어 한다. 그리고 때마침 그렇게 할 수 있는 도널드 트럼프란 이름의 다이너마이트 막대를 손에 넣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별안간 최하층 백인들은 25년 전 흑인 룸펜프롤레타리아의 경우처럼, 매우 중요한 집단으로 부상하는 한편 세밀한 진단의 대상이 되고 있다. 느닷없이 애팔래치아 탄관총의 광부들과 버지니아 주의 담배재배 노동자, 직업이 바뀐 이들, 월마트 경비가 돼 소득이 2/3나 줄어든 이들, 그들의 짧은 수명이 새삼 주목을 받고 있다. 저학력 백인들(67.5세)도 대학을 나온 백인들(80.4세)에 비해 13년이나 수명이 더 짧다고 한다. 여성의 경우도 약 10년 이상의 격차가 벌어진다고 한다(73.5세 vs 83.9세). 이제는 오로지 흑인 빈민가에서만, 전당포나, 사회복지지원금으로 연명하는 젊은 미혼모나, 비만 및 마약 중독 인구를 찾아볼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말이다. 그러니 이 최하층민들에게는, 클린턴 여사가 얼마나 정치경험이 많은지, 얼마나 워싱턴의 정치 규범을 잘 준수하는지 따위는 선거 승패를 좌우할 만큼 중요한 요소가 아니다.
과연 ‘포스트산업화시대’에 그들의 미래는 어떠한가? 그들을 고용한 탄광촌이 문을 닫는다면, 택시기사나 트럭기사들이 구글의 자율주행차로 대체된다면 그들은 대체 어떻게 되는 것일까? 슈퍼마켓의 점원 자리가 셀프계산대의 자동스캐너로, 공장 노동자의 자리가 로봇들로 대체된다면? 그럼 모두가 프로그래머가 되는 것일까? 아니면 식당에서 서빙을 해야 할까? 휴대폰앱 주문 요리 배달 사업체를 운영하는 자영업자가 돼야 할까? 관광객을 상대로 방을 빌려주는 것은 어떨까? 혹은 자연을 가꾸는 정원사? 가정일을 돕는 도우미? 이런 근심에 대해 클린턴 후보는 아무런 답도 내지 못한다. 오히려 그런 염려는 ‘진보를 거부하는 태도’라고 클린턴은 생각할지 모른다. 반면 트럼프는 이들의 근심을 오히려 더욱 크게 부풀린다. 그리고 자신의 과격한 성품과 정치 경험의 부재를 우려하는 이들에게 난데없이 이렇게 질문하는 것이다. “그래서 당신들이 더 잃을 게 뭔데?”
조작 여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우리는 조만간 미국의 시스템이 트럼프 같은 인물을 배출할 만큼 너무도 허약해졌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지 모른다. 만일 이번 대선에서 테러·TV 카메라 앞에서 범한 실수·논란의 이메일 발견 등의 요인만으로 클린턴 후보의 백악관행이 좌절된다면, 그것이야말로 이 신자유주의 현상유지 정권이 독재우파를 상대로 제대로 맞장을 뜨기는커녕, 오히려 그들의 핵심연료로 소비되고 말았다는 사실을 여지없이 입증해주는 증거가 될 것이다. 



글·세르주 알리미 Serge Halimi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발행인.

번역·허보미 jinougy@naver.com
서울대 불문학 석사 수료.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1) 이 문제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2000년 12월과 2012년 10월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에 실린, 세르주 알리미와 로익 바캉이 쓴 ‘미국식 민주주의’와 브누아 브레빌이 쓴 ‘두 개의 남부, 두 개의 미국’을 읽어볼 것. 또한 엘리자베스 드류가 쓴 ‘Big dangers for the next election’, <더 뉴욕 리뷰 오브 북스>, 2015년 5월 21일도 참조.
(2) 2015년 5월 말 실시된 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미국인의 84%는 자국의 정치에 있어 돈의 위력이 너무 강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또한 미국인의 85%는 선거자금지원시스템을 아예 새로 만들거나 근본적으로 개혁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미국인의 55%는 미국의 의원들이 대부분의 시간을 그의 자금줄인 기업의 이익을 위해 일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뉴욕타임스>, 2015년 6월 2일)
(3) 클린턴 후보는 5년 간 2,750억 달러의 예산을 편성하겠다고 약속했고, 트럼프는 그 두 배를 약속했다. 재닛 후크, ‘Trump Bucks his party on spending’, <월스트리트저널>, 2016년 9월 19일.
(4) 윌리엄 갤스턴, ‘The double political whammy for business’, <월스트리트저널>, 2016년 7월 20일.
(5) 프랜시스 후쿠야마, ‘American political decay or renewal’, <포린어페어스>, 뉴욕, 2016년 7~8월.
(6) 토마스 프랭크, <왜 빈곤층은 우파에 표를 던지나?>, 아곤출판사, 마르세유, 2013년. 한편 2006년 5월,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에 실린 기사 ‘미국 우파의 책략, 민중들 사이에 반지식인 정서를 일으키라’도 참조.
(7) <뉴욕타임스>, 2016년 1월 9~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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