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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켠 촛불] 20.타오르기, 참아냈던 만큼
[바람이 켠 촛불] 20.타오르기, 참아냈던 만큼
  • 지속가능 바람
  • 승인 2016.12.16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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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우리는 모두 무언가를 참아내고 있는 사람들인지도 모른다. 지금 참아내고 있는 그 무엇으로 우리는 우리의 존재를 증명할 수도 있을 것이다. 고독을 참아내는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 죄의식을 참아내는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 거절을 참아내는 사람들과 망상을 참아내는 사람들. 당연한 말이지만 그 사람들 모두가 같을 수는 없다. 거기에 더해,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참아내기도 한다. 누가 어떤 괴물 같은 짓을 하더라도, 그것을 누가 참아내고 있는가, 누가 그것을 견뎌내지 못하는가. 그것이 우리의 현재를 말해주는, 숨겨진, 또 하나의 눈금일 것이다.

-(이기호, 「화라지송침」, 『김 박사는 누구인가?』, 문학과 지성사, 322쪽.)


촛불을 들지 않는 날이면 마음이 불편했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녹초가 된 토요일. 광화문으로 가는 지하철 앞에서 한참을 고민하다 반대편 지하철을 택했다. 따뜻한 이불 속에서 영상으로 첫 집회현장을 보는데 눈물이 났다. 많은 사람들이 그동안 참아오던 것들에 대해 분노하고 있었다. 부끄러웠다. 나도 “무언가를 참아내고 있는 사람”이었음에도 오늘마저 똑같이 참아냈다는 게.

사람들과 뒤섞여 촛불을 든 날이면 쌓였던 죄책감을 모두 게워낸 듯 했다. 그러나 촛불이 다 녹아 꺼지고 나면 그렇게 겨우 비워낸 자리를 다시 답답한 생활들이 채웠다.

바쁘게 사는 만큼 가족들과 함께 먹는 식사는 손에 꼽을 만큼 줄어들었다. 오랜만에 마주앉으면 그동안 놓치고 있었던 부모님의 흘러간 세월에 흠칫 놀라기도 했고 밖에서 억눌린 짜증을 쏟아내곤 후회했다. 어른이 되는 것은 어쩌면 별 기대 없는 단조로운 생활에 무뎌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심심한 깨달음과, 이미 끌려가는 삶에 발을 들여놓은 게 아닐까 하는 막막한 한숨들로 밤을 보냈다.

“원래 다 그러면서 사는 거야. 조금만 버티면 적응돼서 살 만해져. 다른 데 가도 결국 똑같아.” 하는 지하철에서 본 어느 중년 아주머니들의 대화처럼 그동안 나도, 너도, 그들도, 우리도 당연하게 참아내고 있었다. 일을 참고, 사람을 참고, 버텨낼 길을 찾다보니 어느새 나도 그저 그런-특별하게 살고 싶던 어린 나의 열망들이 무색하게-어른이 되고 있는 것 같았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무언가를 참아내고 있는 사람들인지도 모른다.”

 

이 문장을 읽고 마음이 아팠다. 무엇을 그렇게 참아왔니, 하고 물었다가 이내 다시 고쳐 물었다. 왜 참고 살아야만 했나. 수많은 사람들이 삶에 끌려가야만 했다면 그 이유는 납득할 만한 것이어야 했다. 그러나 어떤 것도 삶 자체보다 중요할 수는 없다. 일곱 시간 동안 무얼 했든 스러진 삶 앞에서는 고개 숙이고 묵념해야 하듯.

어느 누가 했던 “괴물 같은 짓”들이 밝혀지기 시작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기에 아픔이 당연했던 나날들을 깨부수며 광화문에 모였다. 이제 막 달아오른 촛불이 되어.

그러니, 각자 ‘참아내던’ 정도만큼 분노하고 더 이상 견디고 싶지 않은 만큼 타오르기.

 

*이 기사는 지속가능 바람 대학생 기자단이 11월 27일부터 매일 연재하는 [바람이 켠 촛불] 기획기사입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저항 중인 촛불에 동참합니다.

 

구예원 / 바람저널리스트 (http://baram.news / baramyes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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