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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켠 촛불] 22. 정의(正義)
[바람이 켠 촛불] 22. 정의(正義)
  • 이산후
  • 승인 2016.12.19 0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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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부터 나는 '정의로움'을 추구했다. 정의로운 것이야말로 가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정의가 실현되는 사회를 만들고 싶었다.

그런데 요즘 나는, 잘 모르겠다. 대학 진학 후 내 상식으로 이해되지 않는 많은 현실들을 보며 공허했다. 요즘의 나를 들여다보니 어느새 회의주의자, 냉소주의자가 되어있는 것만 같았다. 나조차 스스로가 낯설 정도로. 머리는 여전히 뜨거운데 마음이 식고 있는 건지, 머리는 차가운데 마음만 뜨거운 건지조차도 모르겠다. 조금은 눈을 감고 못 본 체 해도 되는데 세상을 피곤하게 살아가기를 자처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고민이 끊이질 않았다.

올해 10월, 곪고 곪아 결국 터져버린 사회를 보며 고민은 더 깊어졌다. 내가 세상을 너무 순진하게 바라본 것일까. 생각했던 것 보다 뿌리 깊은 곳부터 부패한, 천박한 모습의 사회를 직면하는 일은 자괴감이 들 정도로 힘들었다. 분노한다고 해서 변하는 게 있긴 할까. 정의와 희망 모두 부질없이 느껴졌다.

이런 상황 속, 분노한 사람들이 하나 둘 광장에 모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수는 점점 많아졌다. 일말의 희망이라도 찾기 위해 사람들은 촛불을 들었다.

내가 처음 촛불을 들었던 때가 떠올랐다.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반대 시위 때였다. 당시 11살이었던 나는 아무것도 모른 채 엄마 손을 잡고 광화문으로 갔다. 그 날의 기억은 희미하지만 옆에 있던 엄마와, 서로 촛불을 나누고, 줄 지어 앉아 구호를 외치고 노래를 불렀던 사람들의 모습만은 아직까지도 선명하다.

이후 촛불은 든 적은 없었다. 집회에 참여한다는 것이 낯설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그때의 기억을 안고 환멸감에 젖은 나를 위해 12년 만에 촛불을 들었다. 그때처럼 사람들은 서로 촛불을 나눴고 줄 지어 앉아 구호를 외치고 노래를 불렀다. 광장 안 사람들과 묘한 동질감을 느꼈다. 이후 12월,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어둡기만 했던 사회 속 희미한 빛을 발견한 기분이었다.

광장에서 사람들과 함께하는 경험은 내 자신을 다시 돌아보게 했다. 냉소적이었던 나에게 촛불은 다시 희망의 불씨를 지폈다. 그 날 생각했다. 어찌 됐든 나는 세상을 피곤하게 살아가야 할 사람이니 피곤하게 살아가되 그 안에서 내가 좀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을 바라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그리고 그것이 내가 바라는 정의로운 사회에 조금이라도 기여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이 기사는 지속가능 바람 대학생 기자단이 11월 27일부터 매일 연재하는 [바람이 켠 촛불] 기획기사입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저항 중인 촛불에 동참합니다.  

이산후 / 바람저널리스트 (http://baram.news / baramyes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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