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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치용의 프롬나드]원단에 개똥 치우기
[안치용의 프롬나드]원단에 개똥 치우기
  • 안치용
  • 승인 2017.01.01 15: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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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라고 원단이라고 다를 게 없다. 여느 날처럼 아침에 일어나 강아지 두 마리를 데리고 길을 나선다. 아직 잠에서 깨지 않은 상태로 집을 나섰다가 어느 정도 잠이 깨어 돌아온다. 

개들에게 새해의 의미는 물어보나 마나이다. 어제와 같은 하루이고, 별 일 없다면 내일도 반복될 하루. 주인을 따라서, 더러 나가기 싫어하는 걸 종용해서 집을 나서고 생리욕구를 실현하고 코에 아침 공기를 넣고 돌아온다. 

새해 첫날이란 게 사실 인간에게도 큰 의미는 없다. 계절의 변화는 몸으로도 느끼지만 해의 변화는 그저 마음속의 일이다. 그래도 어린 날엔 설렘이 있었다. 새해가 되면 뭔가 기대를 품고, 소망을 세우고, 그 실현을 짐짓 믿기도 한다. 그날들에서 실현은 중요하지 않다. 소망과 기대가 핵심이다. 기대하고 소망하며, 소망하고 기대하는 자신을 믿는다는 게 중요하다. 

사랑이 그렇다. “영원히 사랑해”나 “죽도록 사랑해”란 말은 실현과 무관하게 그 자체로 진실이다. “영원히 사랑해”나 “죽도록 사랑해”란 말을 하는 자신과 그 말을 믿는다는 게 사랑의 본질이다. 사랑의 시작은 어린 날 새 해 첫 날의 시작과 닮았을지도 모르겠다. 

많지도 적지도 않는 내 나이에 인식하는 사랑은 원단의 도시공원에서 마주한 이즈음의 벚꽃나무처럼 을씨년스럽다. “영원토록” 혹은 “죽도록” 따위는 그날들의 벚꽃처럼 기억조차 흔적이 없다. 새해맞이는 어제 같은 오늘을 벚꽃나무 주변에 남겨진 개똥을 치우며 버텨내는 것이다.

 그러나 버텨냄이야말로 희망의 진지이다. “영원토록” 혹은 “죽도록”이 소거된 “사랑해” 또한 사랑이며, 실현과 무관한 믿음이 젊음에게 사랑의 정언명법이라면 믿음이 부재한 실현의 축적 또한 사랑의 가능성이라는 개똥철학 비슷한 걸 그 진지에서 발견할 수 있다. 살아있는 나무는 꽃을 피울 숙명을 거부할 수 없다.

 

글ㆍ안치용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성과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관심이 많다. 지속가능청년협동조합 바람 이사장과 한국사회책임네트워크 집행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대학생/청소년과 지속가능 웹진 ‘지속가능 바람(www.baram.news)’을 함께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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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치용 carmine.draco@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