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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켠 촛불] 38. 이해관계를 넘어선 촛불
[바람이 켠 촛불] 38. 이해관계를 넘어선 촛불
  • 지속가능 바람 기자
  • 승인 2017.01.05 12: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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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언니가 대학시절에 교지에서 글을 쓰는 것을 보고 자라서 그런지 대학 입학 후 아무 망설임 없이 학보사에 들어갔다. 학보사에 들어간 것만으로도 깨어있는 시민이자 지식인이 된 것 같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런 기분은 사그라지고, 스스로가 빈껍데기 같이 느껴졌다. 학보사에서 선배가 기사의 주제를 정해주면 그 주제에 대해서만 맹목적으로 찾아 쓸 뿐, 세상에 대한 ‘자발적인’ 관심을 가지고 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학보사의 수습기자로서 사회부 기사를 써봤음에도 불구하고 가족들이 나누는 정치·사회 분야의 대화를 알아듣기 힘들었다. 이 문제로 고민하다 무작정 집에 굴러다니는 신문을 집어 읽기 시작했다. 기사들이 너무 방대해보였다. 그래도 최근 이슈를 알아야 한다는 의무감에 사로잡혀 편의점에서 주간지를 사서 읽어보았다. 그리 재밌지가 않았다. 글에서 언급하는 낯선 국회의원들의 이름을 핸드폰으로 일일이 검색을 해봐야 했고, 그렇게 검색을 하다가 SNS로 빠져버리기 일쑤였다.


2학기에 접어들면서부터 억지로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지려고하던 내 모습이 조금씩 달라졌다. 9월호 신문을 낼 때 사회면에 실을 이슈들을 찾다가 처음 ‘최순실 게이트’라는 단어를 접하게 되면서부터다. 이 사태와 관련해 처음 본 기사는 대통령이 정윤회의 딸에게 전국 승마대회에서 1위를 주지 않았다고 문체부에게 승마협회를 감사하라고 지시했고, 감사 결과가 원하는 대로 나오지 않자 문체부 국장과 과장을 ‘나쁜 사람’이라고 칭했다는 기사였다. 놀랍게도 2014년 12월 기사였다. 그 전부터 이미 최순실의 국정개입에 대한 정황이 드러나고 있었고, 2년이 지나서야 의혹이 더욱 불거지고 있는 상태였다. 그렇게 시간이 지날수록 최순실-박근혜 게이트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은 커졌다. 동기들과 기숙사 방에 모여 대화를 할 때도 최순실-박근혜 게이트 이야기는 빠지지 않았다. 각자의 정치적 성향에 관계없이 모두 한 목소리로 이 문제에 대해 비판하는 상황이 신기했다. 촛불 시위의 자유발언대에 오른 많은 사람들이 말했듯이 그야말로 ‘국민 대통합’이 실현된 것 같았다. 국민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대규모 촛불시위가 진행되면서 여론의 힘이 세졌고, 대통령 탄핵 절차까지 진행되었다.


한창 여러 정황들이 드러날 무렵, 학교에도 학생들의 대자보가 여기저기 붙었다. 그중에서 아는 사람의 대자보가 눈에 띄었다. 항상 장난스러운 말을 해서 대자보를 게시했다는 것이 의외였던 같은 학과 선배의 것이었다. 그 대자보를 보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특히 인상 깊었던 부분을 적어보면 이렇다.(재학 중인 학교는 교육대학교다.)


"임용감축을 반대하는 시위에서는 대의를 위해 앞장서는 투쟁가가 되면서, 왜 국민의 주권을 부르짖으며 당장에라도 달려 나가야 할 때에는 눈멀고 귀 먹은 소시민이 되는 것인지요. 지금 이 순간, 저는 아무런 목소리를 내지 않는 교육 대학교의 일원인 것이 부끄럽습니다. 아니, 제가 감히 지성을 갈고 닦는 ‘대학생’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조차 의문이 듭니다. 부조리하고 불평등한 현실 속에서 자유의지로 선택하고 저항하라고 했던 사르트르의 말을 임용 정원 감축 반대를 울부짖을 때 인용하고, 정작 시대정신을 가지고 저항을 해야 할 순간에는 침묵하는 우리가, 진정 이 시대의 ‘대학생’이라고 할 수 있을 런지요. 혹시 자기와 상관없는 일이라고 자위하고 있지는 않은지요. 만약 자신의 침묵에 대해 낯 뜨거운 수치심을 느끼지 않고 있다면, 불의를 보고 일말의 들끓는 분노를 느끼지 못한다면, 앞으로의 대한민국의 교육은 죽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글을 읽고 국민들의 촛불시위가 이해관계에 따른 게 아닌 사회 정의를 위한 시위라는 것을 깨달았다. 촛불시위에 참여하는 국민들은 자신의 사사로운 이익을 챙기려는 것이 아니다. 무엇보다 무너진 ‘정의’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 집에서 편안히 보낼 수 있었던 시간을 포기하고 매주 또는 매일, 거리로 나서고 있는 것이다. 처음 광화문 광장으로 나가 많은 사람들 속에서 촛불을 들었을 때, 과연 이렇게 해서 상황이 달라질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광장에서의 외침에는 아랑곳 하지 않은 채 청와대 안에서 차분히 차를 마시고 있을 대통령을 상상하니 손에 든 촛불이 무력하고 초라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어둠은 빛을 이기지 못한다는 말이 맞았나 보다. 대통령 탄핵의 절차가 빠르게 진행되는 동시에 세월호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목소리들이 다시 커지고 있다. 국민들의 관심과 목소리가 커질수록 사회의 정의는 바로 설 수 있다는 것을 느끼는 요즘이다. 좀 더 일찍 더 많은 사람들이 사회와 정치에 관심을 가졌다면, 그래서 대통령이 국민의 저력을 두려워하며 각성하고 있었더라면, 상황이 악화되는 것을 좀 더 일찍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든다. 이번 새해의 다짐은 대통령이 물러나고 잘못된 것들이 바로잡힐 때까지 매주 시위에 나가는 것, 그리고 이 일들이 마무리 되고난 후에도 정치·사회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는 것이다. 사회에 대한 대국민적 관심이 가진 힘을 보았기 때문이다. 국민이 주어진 주권에 책임감을 가지고 사회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놓지 않을 때, 정의로운 사회에 한 발 더 가까워질 것이라 믿는다.
 

*이 기사는 지속가능 바람 대학생 기자단이 11월 27일부터 매일 연재하는 [바람이 켠 촛불] 기획기사입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저항 중인 촛불에 동참합니다.

 

김채원 / (객원)바람저널리스트 (http://baram.news / baramyes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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