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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왜 노동이사제를 두려워하는가?
그들은 왜 노동이사제를 두려워하는가?
  • 안치용 | 한국CSR연구소장
  • 승인 2017.12.29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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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 위의 노동자>, 1912 - 에드바르 뭉크

촛불혁명과 박근혜 탄핵, 그리고 새 정부 출범으로 이어진 일련의 과정에서 한국사회는 지난해 많은 변화를 겪었다. 숨 가쁘게 이어진 개혁과 변화가 올해도 지속되리라는 것에, 대체로 이견은 없다. 그러나 2018년 6월의 지방선거가 변화의 변곡점이 돼, 적폐청산 등 ‘뜨거운’ 개혁의제가 불가피하게 무대의 전면에서 사라질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한다. 

‘뜨거운’ 개혁의제와 별개로 ‘차가운’ 개혁의제의 실행이 목격되고 있는데, 그중 노동이사제는 ‘차가운’ 개혁의제의 핵심이라 할 만하다. 지난해 말 본격적인 의제화에 돌입한 노동이사제는 산업계에 격렬한 찬반논쟁을 불러오고 있다. 노동이사제의 도입은 한국 자본주의 역사에서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런 중대성 때문에 노동이사제 도입에 크나큰 기대가 모이고 있으며 상응해 반대세력의 거대한 저항 또한 결집하고 있다. 사실상의 이 계급투쟁이 올해 경제계를 뜨겁게 달굴 전망이다.

‘대주주 애완견’ 사외이사와 차별되는 노동이사   

노동이사제는 노동자 대표가 이사회 구성원이 돼, 발언권과 의결권을 가지고 기업 또는 기관의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하는 제도다. 자본이 노동자와 결정권을 공유하는 방식으로, 노동자를 기업 경영의 주체로 받아들인다는 데 의의가 있다. 이사회에 참여한 노동이사는 당연히 노동자의 이익을 대변해 발언권과 의결권을 행사한다. 독일을 비롯한 유럽 대부분의 나라에서 보편적으로 시행 중인 제도다. 

우리나라에서 노동이사제는 박원순 시장에 의해 국내 최초로 서울시에서 시작됐다. 비록 서울이 수도지만 지역이라는 점과 도입대상이 산하 공기업에 국한됐다는 한계로 많은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노동이사제가 사회적 의제로 공중의 논의 테이블에 오른 계기는 지난해 11월 20일 KB금융지주의 임시 주주총회였다. 주총에서 KB금융노조는 주주제안권을 활용해 하승수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를 사외이사로 추천했다. 사외이사 선임안이 상법상 주총의 보통결의 대상에 속하기에 선임안은 출석한 의결권의 과반수 및 발행주식 총수의 1/4 이상의 찬성을 받아내야 통과된다. 노조가 낸 선임안은 최대주주인 국민연금(지분 9.68%)을 포함해 출석주식 기준 17.73%의 찬성을 얻는 데 그쳐 부결됐다. 

‘부결’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은 여론의 주목을 받았다. 무엇보다 국민연금이 노조추천 사외이사 선임안, 즉 노동이사제 도입에 동의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국민연금은 세계적 권위의 의결권 자문사 ISS(Institutional Shareholder Services)의 반대표결 권고에도 불구하고 선임안에 찬성표를 던졌다. 노조추천 이사후보자에게 법령상 결격사유 및 기업가치 훼손 이력이 없다는 게 국민연금의 공식입장이지만, 국민연금이 새 정부 출범에 따라 노동이사제에 관한 정책을 변경했음을 누가 봐도 알 수 있었다. 김성주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은 KB금융지주 임시주총 이틀 뒤인 2017년 11월 22일 열린 취임 후 첫 기자간담회에서 “기업은 노동자를 식구라고 말하는데, (노동자가) 의사결정에는 왜 참여하지 못하는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말해 국민연금의 정책변화를 사실상 공식화했다.

대기업 등 국내 275개 기업에서 지분 5% 이상을 보유한 국민연금의 이런 노선변경은 향후 국민연금이 다른 기업들의 주주총회에 올라올 노동이사제 안건에도 찬성한다는 뜻으로, 여타 주주들에게도 상당한 영향력을 미칠 수밖에 없게 된다. 다만 국민연금이 보유한 의결권을 행사하는 방식만으로는 노동이사제 도입을 확산시키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에, 입법 등 시장 외의 제도화 기제 활용이 병행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정부가 직접 결정할 수 있는 공공기관에서는 올해 노동이사제의 도입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질 것으로 예측된다. ‘KB 사태’로 수면 위로 떠 오른 노동이사제는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공약 사항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에 ‘노동이 존중받는 사회’를 강조하며 노동자 추천 사외이사제를 공공부문부터 시작해 4대 재벌과 10대 재벌 순으로 점차 확대하겠다고 공약했다. 또한 대통령 당선 직후인 지난해 7월 발표된 국정운영 5개년 계획에도 실제로 “2018년부터 공공기관 감사 독립성 강화 및 노동이사제 도입을 통한 공공기관 지배구조 개선”이 명시됐다.

앞서 지적했듯 서울시는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선도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서울시는 2014년 도입계획을 밝힌 데 이어 지난해 조례를 제정해 현재 공공부문에서 노동이사제(서울시 공식명칭 근로자이사제)를 시행 중이다. 박원순 시장은 “상생협치의 노사문화를 조성하기 위해 참여형 노사관계 모델을 도입하고 구체적으로는 노동이사제도를 도입해 노동자의 이사회 참여를 보장하고 노사가 참여하는 경영협의회를 설치 및 운영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따라 노동자가 100명 이상인 서울시 산하 공공기관에서는 노동자 대표 1~2명이 이사회에 이사로 참여한다. 노동이사제를 도입해야 하는 서울시 산하 투자·출연 기관 16곳의 대다수에서 이사 선임을 마무리했고 일부 나머지 기관에서도 이사선임을 서두르고 있는 상태다.

‘노동이사’는 경영권을 침해하는가

노동이사제 도입 이유로 흔히 ‘갈등비용’ 저감을 든다. 2013년 삼성경제연구소 조사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사회 갈등수준은 경제협력기구(OECD) 27개국 중 2위로, 갈등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은 매년 최대 246조 원에 달한다. 갈등의 상당 부분을 노사분규가 차지하고 있어 노동이사제 도입을 통한 ‘사전 조정’이 갈등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는 게 대표적인 노동이사제 옹호 논리다. 노동자 책임의식이 높아지고, 이사회라는 공식적인 소통구조가 수립됨으로써 노사갈등이 완화된다는 설명이다. 서울시도 같은 논리를 내세운다. 

이런 배경에서 유럽에서는 이미 노동이사제가 널리 적용되고 있다. 독일, 스웨덴, 프랑스 등 유럽 19개국에서는 노동이사제를 시행 중이다. 독일은 1951년 종업원 1,000명 이상의 광산, 철강 분야 기업을 대상으로 노동이사제를 도입했으며, 1976년에 2,000명 이상 민간기업으로 도입대상을 확대했다. 현재는 종업원 500인 이상이 일하는 모든 공공·민간 사업장에 노동이사를 두게 했다. 스웨덴은 1972년에 100인 이상 기업에 노동이사제를 도입했으며, 76년에 적용대상 기업을 확대해 현재까지 25인 이상 모든 기업에서 노동이사를 선임케 했다. 프랑스는 1983년에 공공부문에서 먼저 도입한 후, 2013년에는 민간부문으로 확대해 시행하고 있다.

독일식 모델은 노동이사제 중에서 가장 선진적인 모델로 평가받는다. 독일에서 기업 이사회는 감사이사회와 이사회로 구성되는데, 이 중 감사이사회의 이사를 노측과 사측이 동수로 채운다. 독일에서는 공장 문 앞에서 멈춘 민주주의가 공장 안으로 진입하는 데 성공한 셈이다. 이같이 높은 수준의 작업장 민주주의로 갈등비용 저감과 함께, 경영 투명성과 민주적 의사 결정력의 제고를 이룰 수 있다고 노동이사제 옹호론자들은 주장한다.

노동이사제에 비판적인 진영에서는 독일 노동이사제와 관련해 그 역할이 과장됐다고 지적한다. 즉 감사이사회가 ‘감사’ 역할만을 수행하기에 실제로는 노동이사의 영향력이 크지 않다고 본다. 노동문제 전문가인 강충호 한국사회책임협동조합 이사장은 “사실과 다른 주장으로, 독일기업의 감사이사회는 기업 내 최고의사결정기구로 이사의 선임권, 주요경영전략의 결정권, 경영에 대한 조사 및 평가권을 가지고 이사회의 상위기관으로 기능한다”고 말했다.

독일식 노동이사제 모델을 둘러싸고 현재 국내에서 일어난 논란의 배경에는 자본이 일관되게 주장하는 경영권 침해 이슈와 구체적인 제도화 이슈라는 크게 두 가지 문제가 자리한다. 

친기업 성향인 한국경제신문이 발행한 <경제용어사전>에서는 노동이사제를 설명하는 첫 단락에서 “노동자이사제는 타 이사들과 달리 노동자 특유의 지식과 경험을 살려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하자마자 곧바로 “경영권 침해에 대한 우려도 있다”는 단서를 붙인다. 이어 독일식 모델을 설명하면서 이 모델이 엄격한 의미의 노동이사제가 아니라는 점을 시사한다.(1)

독일은 (…) 다만 기업의 지배구조가 실질적 집행기구인 경영이사회와 견제 위주의 감독이사회로 나뉘어 있다는 점에서 한국 등과 차이가 있다. 독일에서 노동자 이사는 감독이사회에만 참여한다.

한국경제신문 <경제용어사전>의 설명만으로는 노동이사의 역할이 간접적이며 제한적이란 인상을 받게 된다. 앞서 강충호 이사장의 설명과는 배치되는 대목이다. 이어 <사전>은 신문기사에서나 나올 법한 자세한 설명을 덧붙인다.

최근 독일에서는 노동자 이사가 기업의 효율성을 떨어뜨린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폐지 및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미하엘 로고프스키 전 독일산업협회 회장은 노동이사제 등 공동결정제도에 대해 “역사의 오류”라고 평가했다. 디터 훈트 전 독일경영자협회 회장은 “노동자 이사제가 글로벌화된 시장 상황에서 독일기업에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서울시 사례를 설명하면서는 “노조를 경영에 참여시키는 노동자이사제가 자유시장 경제체제를 명시한 헌법에 위배되고 기업 경쟁력을 떨어뜨릴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하기도 한다”는 전문가의 의견을 친절하게 달았다. 전 아무개 숭실대 법학과 교수를 인용, “서울시가 벤치마킹한 독일은 헌법에 사회적 경제 기본이념이 존재하지만, 우리나라는 헌법 119조 1항에 자유시장 경제체제임을 선언하고 있다”며, “노동이사제는 법률에 근거가 없는 것이어서 입법론적으로 논란이 많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이런 ‘경영권 침해’ 논쟁은 기업의 주인이 누구인가를 묻는 자본주의의 범지구적이고 근원적인 질문과 맞닿아 있으며, 한국에서는 우리 헌법정신과 부합하는가를 따지게 된다. 

기업은 누구의 것인가

기업은 자본주의의 핵심기능이자 대표조직이다. 자본주의에서는, 유럽에서 다소 예외적인 측면이 목격되지만 크게 보면 주주를 기업의 주인으로 간주한다. 미국과 한국에서 통용되는 이른바 ‘주주자본주의’다. 주주자본주의의 주인은 법과 실체에서 엇갈리기도 한다. 명실상부한 대주주는 법적으로나 실체로나 기업의 주인이지만, 재벌에서 흔히 목격되듯 적은 지분으로 실체적 주인 노릇을 하는 사례도 많다. 

주주와 관련해 법과 현실 사이에 이같이 ‘주인’이 엇갈리는 현상과 함께 가치창출 측면에서 또 다른 ‘주주의 역설’이 출현한다. 주주가 기업의 최초 설립단계에서 투자손실까지 감수하며 분명한 주인 역할을 수행한다는 데 특별한 이견은 없다. 그러나 사업연도가 쌓이면서 주주의 기여는 줄어든다. 자본주의 기업철학이 집대성된 ‘손익계산서(Income Statement)’를 살펴보자. 가치를 창출하는 과정을 도식화한 이 재무성과표에서 우리가 예상할 수 있는 경제의 다양한 이해관계자, 예컨대 노동자, 소비자, 납품업자 등은 한눈에 찾을 수 있는 반면, 주주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주주의 등장은 순이익이 실현된 다음이다. 즉 흐름상으로 순이익을 창출하는 어떤 과정에도 주주는 목격되지 않는다. 

주주는 손익계산서의 마지막 항목인 ‘순이익’ 다음에 등장해, ‘과정’상 이익창출에 기여하지 않았음에도 창출된 이익을 떼어내어 배당금(Dividend)이란 명목으로 자신의 이익으로 가져갈 뿐이다(배당은 기업이 사업활동한 최종결과인 이익을 나눠(divide) 가진 것이다). 기업의 이익 중 배당으로 떼어주고 남은 부분도, 아주 직접적인 방식으로 드러나진 않지만 재무상태표 상의 주식영역에 편입돼 주주가치를 신장하는 기능을 맡는다. 창업기의 주주와 사업연도가 축적된 이후의 주주의 역할 간에는 이처럼 크나큰 차이가 나타난다. 어쩌면 후자의 주주는 과도한 혜택을 누린다고 볼 수 있으며, 극단적으로 표현해 기업이익을 제도적으로 도둑질한다고 비난받을 수도 있다. 주주가 가치창출 ‘과정’에는 하는 일 없이 기업의 주인행세를 할 뿐이라는 설명이 아주 틀렸다고 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이때 경영의 역할은 주주의 역할과 구분된다. 주주의 대리인으로 선임된 경영진이 기업을 책임진다고 할 때 경영진과 주주 사이에 종종 등호를 넣을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더러 주주가 경영자가 되기도 하지만, 경영자와 주주는 완전 별개의 사안이다. 

경영자는 주주의 대리인으로서 생산과 이익의 극대화 혹은 효율화를 꾀하는 존재다. 자기자본과 타인자본으로 구성된 자본, 그리고 노동까지 여러 생산요소의 적정 투입 비율을 결정하고 기타 포괄적인 경영현안을 결정함으로써 대리인의 임무를 수행한다. 노동이사제가 경영권을 침해한다는 논리 중에 하나로, 경영진이 주주의 대리인으로서 주주의 이익을 대변해야 하는데, 경영진의 일원인 노동이사는 불가불 노동자의 이익을 대변할 수밖에 없어 주주이익을 침해한다는 ‘상충’이 제기된다. 그러나 앞서 살펴봤듯 ‘주주자본주의’의 관점에 의거해서도 노동이사제는 갈등비용을 줄여 주주이익을 더 신장시킬 수도 있다. 물론 (노동자 이익 확대에 따른) 주주이익 훼손의 가능성이 함께 존재하기에 단적으로 이익이다 손해다 하고 어느 한쪽이 맞는다고 말하기 힘들지만, 동시에 주주이익의 침해 또한 단정할 수 없다. 즉 “경영권 침해에 따른 주주이익의 침해”라는 논리는 성립하지 않는다. 노동이사의 포함 여부가 경영성과를 좌우한다기보다는 노동이사가 포함되든 포함되지 않든 전체로서 경영진의 역량과 수준, 방향이 경영성과를 결정짓는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노동이사제 시행에 따른 경영효율의 향상 여부는 별도로 따져볼 문제고, 노동이사제는 그 자체로 철학적 정당성을 갖는다는 사실이 더 중요하다. 흔히 사용되는 생산함수를 살펴보자. 

Y=AF(K,L)

여기서 Y는 생산량, A는 총요소생산성, K는 자본, L은 노동이다. 재무제표 중 앞서 살펴본 손익계산서를 축약시켜놓은 듯한 이 생산함수에서 노동이 자본과 함께 가치산출을 책임진다는 사실이 한눈에 들어온다. 마르크스식으로 말하면 자본조차도 “죽은 노동”이다. 부르주아가 지배하는 국가의 법과 제도에 따라 주주는 기업의 주인이 됐지만, 상식과 당위에 입각할 때 노동자 또한 기업의 주인이며, 그렇다면 자본과 함께 노동 또한 자신의 대변자를 경영진에 포함하는 것이 여러모로 합당하다. 독일이 기업의 이사회 중 감사이사회를 노사 동수로 구성케 한 데는 이런 연유가 있다고 보아야 한다. 

노동이사제는 반(反)헌법적 발상인가? 

대한민국 헌법 119조 1항은 “대한민국의 경제 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라고 적시한다. 일각에서는 이 헌법 조항을 들어 노동이사제가 대한민국 헌법과 배치된다는 주장을 편다.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라는 포괄적인 표현이 자유시장경제를 의미한다고 해도, 자유시장경제는 사적 소유와 시장기능을 근간으로 하는 경제체제로 이해되기에, 이사회의 구성방법까지 규제한다고 보기는 힘들다. 앞서 살펴보았듯, 노동이사제가 주주의 이익을 보호하고 신장하는 방향으로도 작동될 수 있기에 노동이사제와 관련해 헌법까지 거론하는 건 난센스다. 

오히려 경제민주화를 언급한 119조 2항은 노동이사제를 명시적으로 옹호한다. “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해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라는 문구에서 노동이사제의 구체적 정당성을 떠올릴 곳이 여럿이다. 노동이사제는 사회적 경제의 의제로 간주할 수 있지만, 경제민주화의 의제로도 볼 수 있다. 설령 만일 헌법 119조 1항이 노동이사제를 배척한다고 가정해도, 헌법 119조 2항은 그 문제를 깔끔하게 해결한다.  

여기서 이사회의 구성과 관련해 KB금융노조가 지난해 11월 임시 주총에서 주주제안권을 활용해 하승수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를 사외이사로 추천했음을 기억하자.(2) 상법에 의해 사외이사제는 상장사에게 의무사항이다. 상장회사는 이사총수의 4분의1이상을 사외이사로 선임해야 하는데, 자산총액 2조 원 이상이면 이사총수의 과반수(3명 이상)를 사외이사로 채워야 한다. 우리나라는 1998년 대주주나 경영진의 독단적 경영을 막고 경영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사외이사제를 도입했다. 노동이사제에 반대한 것과 같은 논리를 적용한다면 사외이사제도 반헌법적 제도일 수 있으므로 폐지를 주장해야 할까. 

경영진이나 대주주 입장에서는 자기 입맛대로 골라서 선임할 수 있는 (제도 마련 취지와 달라진) 현행 사외이사제와, 노동자 대표가 경영에 참여하는 노동이사 사이에는 천양지차가 있다. 노동이사제는 한국 기업의 경영 관행에 있어 실제로는 최초의 견제와 감시 기능을 도입하는 일대 사건이다. 

그렇기에 재계는 노동이사제를 어떻게든 좌초시키려 최선을 다할 게 뻔하다. 수구적인 움직임은 현 정부의 관료 사회 내에서도 발견된다. 김성주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의 전향적 발언과 달리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지난해 12월 21일 금융행정혁신위원회의 권고안 중 노동이사제에 사실상 반대 목소리를 냈다. 최 위원장은 이날 송년 기자간담회에서 “사실 혁신위 권고안이 이 정도까지 나올 줄은 몰랐다”며 “혁신위는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혁신에 방점을 두고 제시했지만 정부는 실현 가능성을 고려해 신중히 해나가겠다”라고 밝혔다. 

즉 최 위원장은 민간 금융회사에 노동이사제 도입을 검토하라는 혁신위 권고안에 ‘보류’ 입장을 명확히 했다. 최 위원장은 “취지엔 공감하지만 노동이사제를 도입한 유럽 국가와 비교하면 법체계나 노사문화가 분명히 다르다”며 “노사문제 전반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루려는 노력이 선행되고 나서, 그다음 (노동이사제) 도입 여부를 검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3)

정부 내에서도 엇박자를 내는 이 같은 상황에서 재계가 어떤 공세를 취할지는 명약관화하다. 노동이사제는 사실상 계급 투쟁적 성격을 지니고 있기에 자본은 노골적인 방식으로, 기득권 내 친 자본세력은 사보타지 형태로 유보 또는 지연 전술을 통해 결과적으로 노동이사제 도입을 무산시키려 들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촛불혁명을 통해 잡은 포괄적 적폐청산의 기회를 더 결연하고 더 효과적으로 사용해야 하지 않을까. 청산할 적폐를 정치영역을 넘어 사회·경제 영역에서도 찾아내어 과감하게 도려내어야 하며, 이때 사회·경제 영역의 적폐청산은 “촛불혁명의 계승”이란 관점에서 정교한 제도화란 실천적 성과를 얻어내지 않으면 안 된다. 

노동이사제는 전혀 새로운 싸움의 시작을 의미한다. 자본주의라는 전쟁터에서 진정한 싸움의 시작이라고도 할 수 있다. 노동이사제는 우리 사회의 성숙과 우리 경제의 발전을 위해 확보해야 할 중요한 교두보다. 더불어 노동이사제 자체로도 힘든 과업임이 분명하지만, 기업개혁과 관련해 우리는 전면적 기업 사회화의 전망을 함께 모색해야 한다. 사적 소유를 인정하고 시장기능을 활성화하는 가운데 대주주의 애완견으로 전락한 사외이사의 정상화, 명실상부한 노동이사제의 도입·정착·확대, 노동 이외의 다른 사회 이해관계자를 이사회에 포괄하는 사회책임이사제의 실현 등이 이사회 개혁에 국한한 기업 사회화와 방향이다. 

서울시 노동이사제를 설계한 박태주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상임위원은 최근 시사IN과의 인터뷰에서, “노동이사제는 노동자가 기업에서 지위를 찾는 과정”이라고 말했다.(4) 이 과정에서 더 나아가 우리가 기업의 사회적 지위를 올바로 세우는 더 전면적이고 더 야심 찬 목표를 품어서 안 될 이유는 없다.  


글·안치용
지속가능성과 CSR에 관심이 많다. 한국CSR연구소장이며, 지속가능청년협동조합 바람 이사장과 한국사회책임네트워크 집행위원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지속가능 웹진 ‘지속가능 바람(www.baram.news)’을 대학생/청소년들과 함께 만들고 있다. 

(1) ‘노동자이사제’, 한경경제용어사전
(2) 노동이사가 반드시 사외이사일 필요는 없다. 노동자 대표가 직접 이사회에 이사로 참여하면 일종의 사내이사가 된다. 그 이사가 상근이사가 돼야 하느냐는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노동이사가 직접 집행이사가 될 수 있느냐가 더 큰 논쟁거리다. 사회적 합의와 함께 관련된 법과 제도의 정비가 시급하다. 
(3) “최종구 ‘민간은행 노동이사제, 사회적 합의 선행돼야’ … 사실상 ‘보류’”, <중앙일보> 2017.12.21.
(4) “노동이사제는 노동자가 기업에서 지위 찾는 과정”, <시사IN>, 2017.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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