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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 주도권 빼앗긴 KB국민은행 신입사원…그 연수에선 무슨 일이 있었나
몸 주도권 빼앗긴 KB국민은행 신입사원…그 연수에선 무슨 일이 있었나
  • 최주연 기자
  • 승인 2018.01.12 13: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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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B국민은행이 신입사원 연수 기간에 100km 행군을 앞두고 여성 사원들에게 피임약을 지급해 비난여론이 빗발치고 있다.(사진=영화 <보이체크> 포스터)
 
 
KB국민은행, 신입사원 연수서 100km 행군으로 비난여론 거세
 
여성 사원에게 피임약 지급…여성 몸 통제‧성희롱적 요소 다분
입사 직후 주입된 군사문화, 단합심의 다른 말은 ‘복종’

 

KB국민은행, “피임약은 상비약” “개개인 시각 차이일 뿐”

 

가난한 군인인 보이체크는 자기 의견을 내세울 수도, 분노할 수도 없는 남자였다. 군 대위의 면도를 전담하고 의사에게 실험체로서 세 달 동안 완두콩만 먹으며, 돈을 벌어 살아갔다. 자신의 몸과 정신의 주도권을 철저히 빼앗긴 보이체크는 통제된 삶 속에서 비극적으로 삶을 마친다. 이것은 독일 작가 게오르크 뷔히너가 쓴 <보이체크>라는 희곡의 줄거리다. 이 작품에서는 19세기 독일 사회의 단편을 잔인하게 그린다. 전체를 위한 사회구성원에 대한 통제와 협동심‧단합심 기르기를 빙자한 군대문화 차용은 개인의 인권을 돌보지 않고 짓밟는다. 그리고 이것은 21세기 대한민국에서도 현재진행중이다. 최근 KB국민은행이 신입사원 연수 기간에 100km 행군을 앞두고 여성 사원들에게 피임약을 지급해 비난여론이 빗발치고 있다.


KB국민은행(허인 은행장)이 지난 3~4일 신입사원 연수기간에 100km 행군으로 군대식 프로그램을 진행시킨 것도 모자라 여성 사원들에게는 피임약을 지급하면서까지 강행했음이 드러나면서 며칠째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신입사원 연수에 10년 넘게 지속돼 온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은행 측은 단합심과 협동심을 기르기 위한 목적으로 진행된 프로그램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동안 일부 신입직원들이 행군 중 쓰러지는 등 안전사고도 있었다는 것이 드러났지만 국민은행측은 부인하고 있다. 또한 피임약을 상비약 중 하나로 치부하며 이번 일에 대해 안일한 인식을 드러냈다.
 
 
여성들 당혹‧분노, “성범죄 수준” “갈아타야겠다”
 
KB국민은행이 여성 신입사원들에게 행군 중 생리기간 유예를 위해 피임약을 지급했다는 소식이 퍼지면서 비난여론이 잦아들지 않고 있다. 특히 여성들은 연령대와 관계없이 당혹감과 분노를 표출했다.
 
이 일에 대해 누리꾼들은 다양한 의견으로 논의하고 있었다.
 
“피임약을 물로 보나”, “이건 뭐 성범죄 수준이네요”, “윗사람들이 여직원들을 어떤 식으로 대할지 다 알 것 같다”며 국민은행의 피임약에 대한 안일한 인식과 더불어 성희롱적 요소가 다분하다며 분노하는 부류가 가장 많았고, “10년 넘게 주거래 은행인데 갈아타야겠다”, “애초에 국민은행 거래 안 해서 다행이다”라며 국민은행 거래 금지 혹은 거래하지 않음을 안도하는 부류가 있었다.
 
또한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저런 군사정권 시절 같은 마인드로 (회사를 경영하는지), 열심히 취업 준비한 여직원들을 뭘로 본건지", "직장 갑질은 없어져야 한다”라며 기업의 강압적인 문화에 경각심을 갖는 부류도 있었다.
 
이와 같은 누리꾼 의견과 피임약을 상비약 중 하나로 보는 기업 인식의 간극은 매우 컸다. 직접적으로 용도가 이름에 드러나 있는 약품임에도, 그것을 지급받고 복용할 때의 사원 개인의 성적수치심은 고려되지 않았다. ‘피임약’ 지급과 복용으로 인해 어떤 희롱의 언어들이 오갈지는 전혀 숙고되지 않았다.
 
이러한 논란은 최근 들어 잦아지고 있는 성희롱 단톡방을 비롯해 일상적인 성범죄에 노출된 여성들이 이에 대한 위험을 인지한 이후로 이슈화될 수 있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국민은행 관계자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10년 넘게 아무 일도 없었는데 (이번에 문제가 불거졌다)”라고 답변했다.
 
 
▲ 국민은행은 이 행군 프로그램을 신입사원 연수에 10년 넘게 지속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은행 측은 단합심과 협동심을 기르기 위한 목적으로 진행됐다고 설명했다.
 
 
기업 갑질 어디까지 가나…신진대사까지 좌지우지

국민은행은 행군이 강압적인 분위기에서 진행되지 않았다고 해명한다. 군대처럼 보행만 하는 것이 아니라 미션 수행이나 게임이 포함돼 있었다는 것이다. 이 연수가 KB금융지주 회장과 임원으로 구성된 연수였다면 강압적이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신입사원 연수 프로그램에서 본인이 선택해서 열외될 수 있었던 신입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또한 KB국민은행 구성원으로서는 처음 접한, 군사적 색깔이 다분한 이 프로그램에서 신입사원은 무의식적으로 군대 문화를 체득하게 될 것이다. 국민은행은 “이렇게 힘든 것도 이겨내면 회사 생활 못 이겨낼 것이 없다”는 점을 깨우치기 위한 좋은 의도에서 진행했다고 하며 “단합심과 협동심 신장”을 내세우고 있다.

‘진짜’ KB국민은행 직원이 되기 위해 400여명이 자기 몸의 생체 상태, 신진대사까지 약으로 조정하며 ‘전체’를 따라야만 했다. 내부적으로는 어떤 문제의식도 없었던 것일까?
 
 
뿌리 깊은 전체주의 문화, 내부적 문제제기 없었나
 
신입사원 프로그램으로 100km 행군이 시작된 이래로 KB국민은행에 입사한 모든 사람들은 그것을 거쳐 왔다. 2000년 이후로 시작된 행군에 대한 개선과 이의제기는 없었을까.
 
KB국민은행 관계자는 11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강압적이지 않고 무조건적인 분위기로 진행되지 않는다”며 “구간이 나뉘어져 있기 때문에 힘든 상황이면 뒤따르는 버스나 구급차에서 쉬었다가 다시 걸으면 된다”고 해명했다.
 
또한 그동안 내부적 이의제기는 없었느냐는 질문에 “개개인 시각마다 의견이 다를 수 있는, 시각의 차이”라며 피임약 지급 논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상비약을 구비하는데 그중 하나”라고 답변했다.
 
프로그램 개선 움직임에 대해서는 “개선될 필요가 있다면 내부적 논의를 통해 결정될 것이다”라고 답변했다.
 
 
깊숙한 군사문화 팽배…대한민국은 또 하나의 군부대?
 
군대는 대표적인 수직 사회다. 계급에 따라 명령에 복종하기도 순종하기 하는 상명하달식 명령체계를 따른다. 전쟁 시 상급자는 하급자의 모든 행동을 통제할 권한을 부여 받으며 그렇게 무리를 이끌어간다. 그런데 이는 대한민국 사회의 일상적인 모습과 유사하다. 학교‧회사‧종교부터 부부‧형제‧친척‧연인‧친구 사이에도 파워게임이 이뤄지고 그에 따라 복종과 순종이 행해진다. 우리가 자랑스럽게 말하는 ‘동방예의지국’은 현대 대한민국에서 다르게 풀이하자면, 하급자가 ‘기어오르지 않는’ 상명하달식 군사문화가 일상에도 팽배한 나라임을 선포하는 셈이다.

작은 세포가 모여 유기체를 만든다. 비단 국민은행 뿐 아니라 우리 사회 곳곳에 ‘갑질’은 행해지고 있다. 이번 일은 대한민국의 마초적‧군사적 사회를 보여주는 단편이었다. 공적‧사적 관계에서 길들여지는 마초적 개인은 결국 마초적 대한민국을 만든다. 평생 모두가 군복무 스트레스에 고통 받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가난한 군인인 보이체크처럼.
 
 
▲ 공적‧사적 관계에서 길들여지는 마초적 개인은 결국 마초적 대한민국을 만든다.(사진=영화 <보이체크>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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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주연 기자 dodu103@ilemond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