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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경제의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
사회적 경제의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
  • 김신양 한국사회적경제연구회 부회장
  • 승인 2018.02.19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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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의 사회적경제가 봉착한 문제는 실천의 부재가 아닌 과잉실천과 사상의 결핍이라는 불균형에 있다. 지금 한국사회가 요구하고 있는 것은 부지런한 현장이 아니라 방향을 가진 활동이며, 파편화된 조직의 강화가 아니라 통합적 전망을 가진 네트워크간의 협동의 강화이다. 이와 동시에 이론진영에서는 저항을 자처하면서도 숙명론에 젖어 있는 모순을 극복하기 위한 사상적 토대를 구축해야 할 것이다.”

 

1. 사회적경제의 어제와 오늘

1) 뜻과 방향이 뚜렷하지 않은 운동

‘부지런한 현장’이란 '뜻을 세운 주체의 실천'이 아니라, '제도가 마련한 장에서 프로그램을 열심히 운영하는 현장'을 의미한다. 담론은 많지만 그 담론은 여러 학자와 연구자의 자의적인 해석과 판단에 기초한 활용론일 뿐이며, 사회적 경제의 주체가 고민하고 토론하여 만들어낸 실천 전략이 아니기에, 나는 ‘사상적 토대를 구축’해야 한다고 제안하는 것이다.

내가 윗 글로 이 글을 시작하는 이유는 당시(2009년 5월)의 문제의식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약 4년이 지난 2013년 지금, 지난 시기 사회적 경제를 돌아보며 새로운 출발을 하려는 이 때, 위의 기본적인 문제의식은 동일하나 부지런한 현장과 급속한 제도의 진전은 새로운 평가를 요구한다. 물론 사회경제적인 조건 및 정치지형의 변화는 그리 크지 않으나 새로운 인물과 집단이 등장하고 새로운 제도가 만들어낸 환경의 변화 요인이 있으므로 새로운 방향을 수립할 필요가 있으리라. 그러나 이러한 작업 또한 한국사회에서 사회적경제가 발전되어 온 과정상의 특징을 짚어보는 것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 제도에 기대어 발전한 사회적경제 : 한국의 사회적경제가 보이는 특징은 그것이 시작된 맥락과 관계있다. 사회적경제는 자활지원사업, 사회적 일자리 창출사업, 사회적 기업 육성법, 협동조합기본법 제정 등 제도와 동시에 발전해왔기에, 독자적인 경로에 대한 고민과 성찰이 부족했다는 점이다.

■ 사회의 관점이 아닌 사회적경제 : 사회적기업이나 사회적경제에서 ‘사회적’의 의미에 대한 추상적인 접근으로 ‘사회적 목적 = 복지’의 도식화로 이해되는 측면이 크다. 그리하여 일자리창출이나 서비스 제공 등의 기능론적으로 접근하며 사업에 집중했다. 이는 정작 어떤 사회를 만들 것인가에 대한 종합적이고 거시적인 사고가 부재하여 사업으로만 접근했기 때문이다.

■ 제도와 시장 사이에서 그네 타는 사회적경제 : 그러다보니 제도에 휘둘리고 시장 생존 전략에 발목 잡히는 딜레마에 빠지는 결과를 낳았다. 이러한 것은 내가 앞에서 주장하듯이 사회적경제를 조직과 그 역할로만 사고하고 철학과 사상의 부재가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판단된다.

이 모든 특성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사회적경제는 시장 사회에 대항한 대안경제 운동으로서의 정체성을 갖지 못하고 제도에 기대어 시장으로 들어감으로써 국가에 포섭되고 시장에 목숨을 맡긴 복잡한 운명의 배를 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이제 그 배는 어디로 갈 것인가? 여전히 사공을 국가와 시장에 맡길 것인가? 아니면 사회적경제의 주체인 사회, 즉 주민, 시민사회조직, 협동조합이 키를 틀어쥐고 갈 것인가? 또 키를 틀어쥐고서는 어디로 향할 것인가?

 

2) 시민사회에 공통분모와 합집합을 만들어 준 사회적경제

언제부터인가 사회적경제가 진영에 들어왔다. 모든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 뿐 아니라 사회의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다 사회적경제에 관심을 갖고 지켜보거나 공부하려 한다. 진영에 들어왔다는 것은 크게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첫째는 그동안 여성, 노동, 빈민, 인권, 환경 등 부문별, 영역별로 분산되고 고립되어 진행되어 오던 시민사회조직이 사회적경제라는 우산개념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제3섹터라는 국가도 시장도 아닌 모호한 위치를 설명하는 개념이나 NGO(비정부조직)나 비영리라는 국가와 시장에 기준을 둔 상대적인 개념으로 스스로의 정체성을 찾았던 시민사회조직이 대안의 이념을 가진 개념으로 접근하게 된 것이다.

다음은 사회적경제라는 정체성을 가지면서 주민이나 시민과 함께하는 시민사회조직이 시장과 국가의 틈바구니에서 권리나 옹호운동의 주체, 혹은 저항집단으로만 여겨지던 존재에서 경제의 일주체로 인식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경제의 일주체가 됨으로써 국민의 살림에 관여하고, 조직할 뿐 아니라 경제정책에 개입하여 개혁할 수 있는 기반이 형성되었다. 그리되면 시민사회조직은 민의 살림과 무관한, 시간이 있거나 신념이 있는 사람만이 하는 비생산적인 활동영역이 아니라 사람과 사회의 살림을 돌보는 주체로서 더욱 더 지역과 사회에 근접하는 활동을 하는 대안적 삶을 조직하는 주체로 자리매김할 수 있게 된다.

 

3) 담론만 있고 구체적인 대안은 없는 실천

그러나 한편에서는 늘상 담론만 이야기하지 구체적 실천전략이 부재하고 다들 고공만 날아다니려고 하면서 현장에서 대안을 만들고 실천하려 하지 않는다는 비판이 있다. 동네를 돌아다니면서 영세 자영업자와 상인들을 보면서 지역경제 어쩌고 해도 그들의 문제를 현실적으로 풀어갈 작전이 있는가? 하는 자조적인 평가도 있다.

어쩌면 부지런한 현장의 많은 활동은 ‘중간지원조직을 어떻게 만드나’, 혹은 ‘지원제도는 뭐가 돼야 하나’ 등과 같이 실질적인 살림의 문제를 건드리고 대안을 만들어가는 실천과는 다소 유리된 논의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 물론 자원을 연계하고 매개하는 지원조직의 역할이 중요하고 제도적 환경을 조성하는 것 또한 아주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그러한 활동이 현장의 구체적인 필요성에 근거하기보다는 조직논리가 우선하고, 지역경제 전반을 고민하기 보다는 지엽적인 부분에 매달려 섬을 만드는 일이 허다한 것이 현실이다. 사회적기업을 존속시키거나 인증받기 위한 노력도 좋지만, 제도와 정책의 틀에 갇히지 않고 주민을 만나고 그들의 삶 속에서 해답을 찾는 것이 진정한 대안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망해가는 재래시장, 무너져 가는 지역 상권, 기준에 따라 서비스를 제공하여 사각지대를 만들어내는 복지제도 등의 문제에 직면하여 그러면 환자의 권리를 보장하는 대안적 의료복지는 어떻게 조직되어야 하는지, 그것이 그냥 의료생협을 만든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고 상인을 엮어 협동조합을 만들면 되는 것이 아니기에 ‘사회적 목적’이라는 의도만 부각해서는 무능한 비판세력이나 이상주의자로만 인식될 것이다. 조직만들기와 조직유지의 관행을 벗어날 때이다.

 

4) 연대하기 어려운 연대체

이런 맥락에서 보면 시민사회가 ‘사회적기업 발전을 위한 연대회의’에서 ‘사회적경제 연대회의’ 라는 새로운 연대의 틀을 구상한 것은 충분히 이해된다. 그런데 실상은 그 새로운 연대의 틀 이라는 것이 새로운 내용을 담고 있지 않고 비영리민간단체 + 생활협동조합 이라는 확대된 틀로서만 인식된다면 과장일까? 어쩌면 한국의 사회적경제 연대회의는 좁은 의미의 사회적경제 - 운영원리 및 법적지위에 의한 정의(Defourny, 1999) - 의 의미로서 존재하지만 넓은 의미의 사회적경제 - 새로이 등장한 연대경제(Economie solidaire, Solidarity-based economy) 및 민중경제(Economia popular, Popular economy) 등 새로운 사회적 경제 개념과 공존하는 개념으로 인식되거나 이를 포괄하는 개념 - 로서 존재하기 위한 내용을 담고 있지 않은 것은 아닐까?

 

2. 사회적경제의 내일

1) 뜻을 세워 시작하는 운동

(1) 사회의 관점으로 사고하고 행동하자.

사회적경제는 나와 너의 삶의 터전인 사회를 지키고 살리고자 탄생한 학문이자, 철학과 사상이자 실천운동이다. 이것은 사회적경제가 산업혁명 후 시작된 야만적 자본주의에 대항하여 시작된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사회의 관점으로 사고하고 행동한다는 의미는

■ 사회의 주체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 사회는 자연 속에, 자연과의 관계 속에서 존재한다. 따라서 사람과 자연을 살리는 생명운동의 지향점을 가져야한다. 이를 위하여 모든 사람의 기본적인 생존권을 보장하고 그들이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의식주를 보장해야 한다. 또한 생명의 유지에 필요한 먹거리와 농민, 농업을 지키고 삶의 터전인 자연을 생산의 수단으로 이용하며 자원을 고갈시키는 무분별한 개발정책을 저지하고, 생명을 위협하는 핵개발을 막고 대안에너지 개발을 촉구하고 활성화해야 한다.

■ 사회는 사람과 사람간의 만남과 관계로 이루어진다. 사회를 지키고 살리는 길은 끊어지고 단절된 관계를 이어주고 맺어주어 관계를 강화하는 것이다. 또한 사람을 버리는 사회적 배제에 맞서 어느 한 사람도 버리지 않는 포용과 통합의 운동으로서의 지향점을 가지는 것이다. 이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지역사회주민이 서로 돌보는 주민주체 건강마을을 만들고, 서로의 자원을 내어 상호부조 하는 자조체계를 만들어야 하며, 제도적으로는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최저생계를 조건 없이 보장하여 모든 개인이 사회에 건강한 시민으로 사회에 참여하고 기여할 수 있는 기회를 보장해야 한다.

■ 사회는 역사이다. 이 사회는 5천년 역사를 이어왔으며 앞으로도 이어지는 시간의 역사이자 공간이다. 이 사회는 우리만 살고 말 것이 아니라 다음 세대가 살아야 할 곳이기에 살 수 있는 곳, 살만한 곳으로 물려주어야 하는 의무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의 자원을 무한정 사용하지 않고 남겨야 하며, 후세대를 키울 수 있는 보육과 교육의 시장화를 막고 공공성을 유지 강화해야 한다. 이 지점에서 사회적경제는 지속가능한 개발의 개념과 만나기에 그 원칙을 도입해야 한다. 또한 공유의 경제와도 만나기에 사람의 양성에 협동과 상생의 원칙을 도입하도록 하며, 돌봄과 교육이 공유지로 남을 수 있도록 시민이 참여하여 사회적으로 운영되는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시민의 평생교육을 확대하고 거기에 시민이 참여하여 운영할 수 있도록 해야 하며, 학교의 운영을 학부모와 교사, 학생 세 주체가 참여하는 협동교육제도를 만들어 민주시민을 양성하는 기관으로 변하게 해야 한다.

■ 사회는 마을이자 세계이다.
사회는 일상을 살아가는 동네이며 마을이기도 하지만 과학화, 세계화로 인하여 지구촌이기도 하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마을을 지킴과 동시에 지구촌 사람들이 공존하고 상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한 지역의 불평등을 없애는 일과 더불어 나라간의 불평등과 종속관계를 단절시키기 위한 평화공존의 대책도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지역의 시장을 호혜적이고 연대적인 시장으로 바꾸어야 하며, 자본과 국가가 주도하는 무역의 공간을 호혜적인 교역으로 바꾸는 민중과 민중간의 교역인 공정무역을 확대하고 발전시켜 남부국가의 지역개발과 경제적 독립을 지원해야 한다.

(2) 기업체가 아닌 결사체로서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자.

사회적경제는 시장경제의 한 부분이라거나 없는 사람들의 게토경제로 호도하고 폄하하는 이론이나 주장이 많은데, 이는 다 사회적경제를 잘못 이해하거나 고의적으로 왜곡하는 처사이다. 이러한 관점은 사회적경제가 이 사회의 대안이기보다는 보완이기를 바라는 의도이며, 현 상태를 유지하는 파수꾼으로서 역할 하도록 유인하려는 술책이다. 사회적경제는 결사체의 이념과 조직이다. 선구자들의 실험은 공동체를 통해 상호 협동하고 돕는 사회를 조직하고자 한 것이다. 그들의 이상은 노동자결사체를 통하여 임금노동사회를 극복하여 모든 이들이 노동의 주체가 되고, 능력과 필요에 따라 나누어가질 수 있는 사회를 만들고자 한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초기 사회적경제의 이상을 계승하여 결사체의 이념을 견지해야 한다.

■ 협동조합, 사회적기업, 마을기업 등이 사업체가 아닌 결사체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 사회적경제조직은 나의 이기심과 너의 이기심이 만난 이익공동체가 아니라 나와 너의 필요와 열망이 만나 공동의 뜻을 세운 사람들의 결사체이다. 따라서 그 목적은 사람을 중시하며 사람의 실현과 발전을 도모한다. 그렇기에 사회적경제조직은 기업으로서만 부각되어서는 안되며 화폐적, 정량적 수치만으로 그 성과가 평가되어서도 안된다.

■ 사람의 결사체로서 사회적경제조직은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므로 시장의 법칙을 무작정 따르거나 무한경쟁의 논리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되며, 더 나아가 경제법칙과 논리의 다양. 그러므로 개인의 이기적 목적을 극대화하고 경쟁을 원칙으로 배제를 낳는 시장에 진입하여 생존하는 것을 그 절대 목적으로 두지 않고, 호혜적이고 연대적인 시장 건설을 목적으로 해야 한다.

 

2) 서로 살리는 살림의 경제와 주체를 세우는 운동

(1) 서로 살리는 살림의 경제로서의 사회적경제

■ 사회적경제는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따라 경쟁하는 시장이 아닌 사람이 생계에 필요한 물질적 욕구를 총족시키기 위하여 사람과 사람이 서로 의존하고 자연에도 의존하는 살림의 의미로서의 경제를 의미한다. 따라서 살림으로서의 경제는 경쟁이 아닌 협동을 가치로 삼고, 사람을 배제하고 자연을 파괴하는 야만적이고 약탈자의 논리가 아닌 사람과 자연을 살리는 생명사상을 철학으로 삼는다. 그러므로 사회적경제의 목적은 모든 생명이 서로 살리는 협동의 관계로 살 수 있도록 경제를 ‘ᄒᆞᆫ살림(큰살림)’으로 만드는 것이다.

■ ᄒᆞᆫ살림은 생존권이 보장되고 기본적인 생계가 보장될 때 가능하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생존의 위협을 받으며 굶주리고 있다. 이것은 지금의 살림이 내살림 네살림으로 찢어져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서로의 살림을 지키고 윤택하게 만들려면 각자의 살림을 합쳐야 한다. 협동조합은 그래서 필요하다. 그러나 결사를 하기에는 생존이 너무나 힘든 이들이 많다. 그러니 그들이 협동조합을 할 수 있는 기본적인 생계를 보장하는 것도 사회적경제의 사명이 되어야 한다. 자활사업참여자가 생계를 위하여 억지로 자활사업에 참여하도록 하는 제도를 바꾸어야 하고, 사회적기업을 유지하기 위해 사회적일자리를 유지하기를 원하는 관점을 버려야 한다. 제도를 위해서가 아닌 생존권과 생계를 보장하고 보호하기 위하여 최저소득을 무조건적으로 보장해야 하며, 그들의 자유의지에 입각하여 자활사업과 사회적기업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민을 주체로 세우는 사회적경제운동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가능한 사회조건을 만들기 위해 임노동 관계를 중심으로 구축된 사회보장을 넘어서서 모두에게 기본소득을 보장하는 사회시스템으로의 전환에 대한 전망도 모색할 필요가 있다.

(2) 민이 주체가 되는 정치공동체

■ ᄒᆞᆫ살림이 되려면 민이 정치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지금의 경제는 시장과 국가가 주인 노릇을 하며 사회의 통제를 벗어나 위기를 맞이했다. 시장경제유일주의는 자유주의 사상에서 비롯되었는데 자유주의는 사람의 자유가 아닌 기업의 자유를 의미하며, 생산주의를 통해 자유에서 평등에 이르려했으나 불평등한 자본주의에 이르렀다. 사회주의는 사회를 내세우나 사람을 주체로 세우지 못하고 전체주의로 흘렀고, 평등에서 자유(인간해방)에 이르려했으나 공산당독재로 막을 내렸다. 이제 우리는 시장중심, 국가중심의 사고를 넘어서 사람중심, 사회중심의 정치공동체를 구상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민이 정치의 주체가 되는 정치공동체를 지향해야 한다. 그러한 정치공동체가 되어야 민이 살림의 주체가 될 수 있다.

■ 민이 살림의 주체가 되기 위해서는 그들을 비정규직, 빈곤층, 취약계층 등 결핍과 부정의 언어로 호명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필요와 생계에만 매달리는 동물이 아니라 열망과 뜻을 가진 사람이다. 그러므로 그들을 총체적인 사람으로서 호명하며 그들이 자신의 삶의 주체로 나설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들에게 단지 노동력을 제공하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아닌 직접 살림을 운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스스로 살림을 책임지는 지위를 부여해야 한다. 따라서 일부 산업의 영역에서만이 아니라 전사회적인 차원에서 광범위하게 협동조합과 공제조합을 설립하여 최대한 많은 주민과 시민이 협동의 관계로 묶일 수 있도록 하여 ‘협동조합공화국’이라는 이상을 오늘날에 맞게 다시 환기할 필요가 있다.

■ 사회적경제가 참다운 정치공동체 형성에 기여하듯 역으로 참다운 민주주의 사회가 구현될 때 사회적경제가 제대로 꽃피울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사회적경제는 정치와 무관하지 않다. 사회적경제가 가지는 민주적인 운영원리는 내부 조직의 운영원리로만 구현되어야 할 것이 아니라 전 사회적인 운영원리가 되어야 하고 협동조합의 운영원칙이 모든 기업의 운영원칙이 될 때 사회적경제의 이상이 실현될 것이다. 그러므로 사회적경제는 정치의 주체이며 협동조합은 시민의 민주주의의 학교이다. 이러한 관점을 가지고 사회적경제는 그 이상과 가치와 원칙을 사회화하기 위한 홍보와 교육을 기획하고 실천해야 할 것이다.

 

3. 연대체가 가야할 길

■ 협동조합기본법을 통해 드러난 시민의 열망을 살려야 한다.
교육을 다녀 본 사람들이라면 알 것이다. 요즘의 협동조합교육은 관에서 하건 민에서 하건 과거 사회적기업 아카데미와는 분위기가 다르다. 일부 기관들이 지원을 바라고 오는 경우도 있고, 일자리나 창업의 소스를 얻으러 오는 이들도 있지만 그들이라 할지라도 새로운 열망이 전혀 없다고 할 수 없다. 또한 이미 자신의 사업체를 가졌거나 사회활동을 하는 이들도 다른 삶을 모색하기 위한 열망으로 온다. 5~60대가 다수 있는데 그들조차도 교육에 열심이고 진지하다. 그들의 표정을 보면 무언가 뜨거운 것이 올라오고 허투루 하면 안 되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살기가 어려워서이건 다른 삶을 살고자 하는 것이든, 지금의 협동조합 붐은 기본법이 촉발한 것이지만 어쩌면 아주 오래되고 잠재되어 있던 필요와 열망이 드러난 것일지 모른다.

열망은 운명공동체 의식으로 모아져야 하고, 그래야 결사가 가능하다. 그들의 삶을 더 깊숙이 들여다보고 더 자세히 물어야 한다. 그들의 욕구를 단지 경제적인 것으로 한정하지 않고 총체적인 삶의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어떻게 지원을 해줄 것인가 고민도 필요하지만 교육받으러 온 이들을 엮어주고, 고민을 깊고 진지하게 하여 분명한 뜻을 세우도록 이끌어주어야 한다. 그들을 서비스 대상이나 고객으로 여기지 말고 지역의 새로운 흐름을 만드는 동지로 여겨 함께 고민하고 서로 배우는 자세로 만나야 한다.

■ 넒은 연대, 낮은 결사, 높은 통일성
연대는 공통의 뜻을 세워야 가능하며, 그를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전략이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철학과 사상이 가까워지도록 부단히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작업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기에 처음부터 과도하게 높은 결사를 요구하는 실천전략을 세워서는 깨지기 쉽다. 그러하기에 넓은 연대를 유지하기 위해 다수가 함께 갈 수 있도록 낮은 결사로 시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하지만 낮은 결사는 무책임과 무임탑승을 의미하지 않는다. 공통분모를 만들고 합의를 했으면 그것은 높은 통일성으로 추진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며 점차 더 넓은 연대의 틀을 만들어 나감과 동시에 함께하는 결사정신을 높여야 할 것이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연대의 원칙, 즉 민주적 운영원리의 실현이다. 민주적 운영원리는 다수결의 논리만이 아니라 참여의 원칙과 토론과 합의의 정신이다. 참여는 중앙의 논의구조에만 결합하는 것이 아니라 각 참여조직간의 횡적인 관계를 강화하는 모임구조를 만들고 활성화해야 한다. 이러한 토대에 기초하여 토론과 합의를 만들어야 중앙의 의사결정이 원활하고 집행력을 담보할 수 있을 것이다.

■ 사회적경제를 꽃피우기 위한 정치기반 만들기
경제가 원래 의미인 살림이 되기 위해서는 시민이 경제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 연대회의는 사회적경제 아젠다를 만들어 시민과 함께하는 운동을 만들고 시민을 경제의 주체로 세우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또한 이를 통해 조직된 힘으로 지방선거에 대비하며 민주적 정권을 만들기 위한 정치적 목표를 가져야 할 것이다. 이러한 지향을 가진다면 연대회의는 먹거리, 보건의료, 환경, 에너지, 주거, 교육 등 사회 각 분야의 의제를 만드는 작업을 지속적으로 펼쳐나가야 할 것이다. 로컬푸드를 중심으로 한 먹거리 운동, 친환경먹거리의 민주화와 생협조직, 적정기술 및 대안에너지 개발, 지역사회 돌봄체계 구성과 건강마을을 위한 사회적협동조합, 교육연구의 사회화를 위한 교육공동체의 조직, 주거복지 실현, 언론독립과 대안언론 개발, 예속되지 않고 창조적인 노동관계를 만드는 노동자협동조합의 조직과 기업지배구조 개선, 경제활동권 보장 및 대안기업 육성을 위한 연대금융의 개발 등 각각의 주제를 토론하여 의제를 만들고 정책에 개입하고 제도를 만드는 일을 추진해야 한다.

 

 

*이 기사는 2016년 2월 23일 '사회적경제란 무엇인가' 기획강연에서 사용된 교안을 토대로 작성되었습니다. (관련기사 링크 → 기획강연: 사회적경제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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