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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한기의 시네마 크리티크]어느 이름 없는 자의 고백 - <메리 셸리>론
[조한기의 시네마 크리티크]어느 이름 없는 자의 고백 - <메리 셸리>론
  • 조한기(영화평론가)
  • 승인 2019.01.07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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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8년 근대의 여명기, 18세 약관의 소녀가 한 이름 없는 괴물을 창조한다. 이후 괴물은 인간의 오만을 경고하는 불가해한 존재로 끊임없이 소환되어 왔다. 영화 <메리 셸리>는 『프랑켄슈타인 Frankenstein: The Modern Prometheus』의 집필 과정을 중심으로 작가 메리 셸리의 삶을 재구성한다. 이때의 재구성은 두 가지 방향성을 가진다. 첫째, 십대 소녀의 참혹한 경험과 내적 갈등을 핍진하게 재현한다. 둘째, 『프랑켄슈타인』 출간 당시 만연했던 근대 유럽 사회의 부조리한 민낯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 출중한 작품은 메리가 18세 소녀라는 이유만으로 출처를 의심 받는다. 메리가 부딪히는 내외적 갈등은 영화를 연출한 사우디아라비아 출신 여성 감독 하이파 알 만수르의 입장을 환기시킨다. 그처럼 영화 안에 묘사된 메리의 일생은 영화 안팎을 둘러싼 의미망을 두텁게 하며 모종의 알레고리적 해석을 견인한다.

 

 이름 없는 존재에 대해

본격적인 논의에 앞서 널리 공유되고 있는 프랑켄슈타인에 대한 오해를 짚고 넘어가야 할 필요가 있다. 사실 다른 콘텐츠에서 등장하는 프랑켄슈타인과 원전의 프랑켄슈타인은 매우 다른 성격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혹자들은 프랑켄슈타인이 창조한 이름 없는 존재를 프랑켄슈타인으로 오인하기도 한다. 프랑켄슈타인이 창조한 이야기 속 괴물 이미지는 고전 호러 영화 <프랑켄슈타인 Frankenstein>(1931)의 영향 하에 관습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머리에 금속 볼트가 박힌 아둔한 괴물의 이미지와 달리 소설 속 이름 없는 존재는 논변을 통해 프랑켄슈타인을 압도하는 지성적인 존재로 등장한다. 완벽에 대한 이상이 낳은 괴물은 인간의 독선에 대한 첨예한 질문, 그 자체이기도 하다.

 

메리 셸리의 성장과정은 비범하다. 메리는 급진적인 정치 사상가 윌리엄 고드윈과 최초의 페미니즘 이론서 『여성의 권위 옹호』의 저자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의 딸로 태어났다. 메리의 어머니는 그녀를 출산하고 얼마 후 사망한다. 메리는 친모의 부재와 계모의 질투 속에서 성장한다. 계모에 의해 정규교육으로부터 멀어진 메리는 아버지의 서가를 배움터 삼아 독학으로 지식을 쌓는다. 어머니의 부재로 인한 메리의 결핍과 지식에 대한 갈망은 프랑켄슈타인이 만든 창조물의 성장과정과 매우 유사한 일면을 보인다. 이처럼 메리와 『프랑켄슈타인』의 상호침투는 간혹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교란하며 특별한 영화체험을 안긴다.

스코틀랜드의 벡스터 가문에서 처음으로 맛본 따스한 유대감, 갤버니즘 쇼를 관람하고 느낀 근대 과학기술에 대한 충격, 남편과의 결혼생활을 통해 체험한 낙관적 이상주의의 훼절, 로드 바이런의 방탕한 생활을 통해 엿본 특권층의 허식과 타락, 혈육과 사별하며 경험한 삶과 죽음에 대한 성찰 등이 그렇다. 영화에서 메리 셸리의 인생을 추적하는 과정은 근대적 이상향을 좇던 주체의 혼란에 다가서는 작업이기도 하다. 메리 셸리는 때론 사회적 희생자로, 시대의 낯선 이로 타자화 된다. 『프랑켄슈타인』에서 나타난 이름 없는 존재의 형상은 메리 셸리의 삶에 유의미하게 중첩된다. 따라서 특정한 이념에 전도된 환원론적인 접근은 영화에 떠오른 풍부한 질문들을 축소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그녀의 정체성을 구축하는 체험들을 가늠해야 하는 것이다.

 

메리의 일생에서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은 남편인 퍼시 셸리이다. 퍼시는 평생에 걸쳐 메리에게 지독한 애증의 대상이 된다. 메리는 스코틀랜드의 사교 모임에서 사회 혁명을 꿈꾸는 시인 퍼시와 만난다. 두 사람은 첫 만남부터 서로에게 이끌리지만, 메리는 부모의 부름으로 영국에 돌아가게 된다. 퍼시는 그런 메리를 쫓아 고드윈의 제자가 되길 자청한다. 두 사람의 관계는 깊어지지만, 퍼시가 유부남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위기를 맞는다. 갈등 끝에 메리는 의붓동생인 클레어를 데리고 퍼시와 사랑의 도피를 감행한다. 그녀는 이 사건을 계기로 가족과 절연한다. 그러나 고드윈의 예상대로 두 사람은 온전한 행복을 손에 넣지 못한다. 메리는 가장 행복한 순간에 퍼시의 전부인과 그의 아이를 마주하면서 생각지도 못한 가해의 고통에 시달린다. 메리의 죄책감은 퍼시의 전부인이 자살하면서 더욱 심화된다.

낭만적인 사랑은 달콤하지만 짧다. 퍼시의 아버지가 경제적 지원을 끊으면서 두 사람은 생활고에 시달리게 된다. 퍼시의 사랑 또한 길지 않다. 그는 자유연예 사상을 앞세우며 바람을 핀다. 사랑의 결실로 태어난 아이는 빚쟁이를 피해 도망가는 과정에서 사망한다. 메리가 가정을 통해 얻고자 했던 소박한 행복의 좌절은, 평생을 함께할 반려자를 요구했던 소설 속 괴물의 근원적 결핍과 맞닿는다.

 

 『프랑켄슈타인』의 탄생

어린 시절부터 메리의 숙원은 자신만의 글을 완성하는 것이다. 문학은 그녀의 삶을 지탱하는 버팀목이며, 목적이다. 영화 <메리 셸리>에서 언어는 관계를 잇는 매듭으로, 미몽을 깨우는 힘으로, 치명적인 달콤함으로 나타난다. 메리는 어머니의 무덤을 ‘안식처(sanctuary)’ 삼아 책을 읽는다. 어머니가 남긴 저서는 그녀와 어머니의 관계를 매개한다. 메리에게 아버지의 장서들은 지식의 원천이다. 그녀는 시를 통해 퍼시에게 매료되고, 절망을 맛보기도 한다.

메리 일가는 빚쟁이들을 피해 클레어의 연인인 로드 바이런의 저택에 머물게 된다. 바이런은 모든 사회적 관습을 거부한 쾌락주의적 삶을 추구하는 자이다. 바이런의 주치의인 폴리도리와 메리는 바이런의 저택에서 인간의 일그러진 욕망을 목격한다. 제노바의 우울한 장마에 지친 어느 날, 바이런은 괴담을 주제로 한 경연을 제안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경연을 통해 소설을 완성한 것은 명성 높은 시인인 바이런과 퍼시가 아닌, 폴리도리와 메리이다. 메리는 『프랑켄슈타인』에서 근대적 이상주의자의 오만과 실패를 기록한다. 폴리도리는 바이런의 방탕한 생활을 풍자한 최초의 흡혈귀 소설 『뱀파이어』를 쓴다. 그렇게 보면 소설 속 뱀파이어와 프랑켄슈타인의 교만은 여러모로 권력과 사상을 무기로 삼은 당대 귀족과 지식인들에 대한 야유처럼 느껴진다.

메리는 『프랑켄슈타인』을 완성하는 과정에서 절망을 딛고선 예술적 승화를 보여준다. 혈육과의 사별은 메리의 인생에서 가장 큰 슬픔이다. 어머니와 아이의 죽음은 메리의 가슴 속에 대체 불가능한 부재로 자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리는 누군가 그들을 언급할 때 기뻐하며 말한다. “나의 어머니(아이)에 대해 이야기 해줘서 고마워요.” 그녀의 아픔을 치유하는 것은 망각이 아닌, 상실에 대한 재인과 애도이다. 절대적인 부재에 대한 포용은 필생의 작품인 『프랑켄슈타인』의 탄생으로 이어진다. 고드윈의 조언처럼 내면에서 다른 누군가의 목소리를 지우고 자신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때, 짧지만 치열한 삶의 고백은 소설 속에 진실 되게 기입된다.

퍼시는 완성된 『프랑켄슈타인』을 읽고 인간의 완전성을 옹호하는 아름다운 이야기로 개작할 것을 제안한다. 메리는 단호하게 거절하며 자신의 비극적 체험을 바탕으로, 현실과 괴리된 허위를 수용하지 않으리라 선포한다. 바이런에게 버림받고 좌절한 클레어는 그녀의 소설을 읽고 감동하며 말한다. 모든 버림받은 자들을 위한 이야기를 세상에 알려달라고.

그러나 『프랑켄슈타인』의 탄생을 바라보는 세간의 시선은 미적지근하다. 작품의 파격성에 대한 놀라움은 18세 소녀 메리에 대한 의심으로 이어진다. 메리가 퍼시의 연인이라는 사실은 대필 의혹까지 불러일으킨다. 메리는 자신의 글임을 강변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출판 불가라는 메시지이다. 현시점에서 『프랑켄슈타인』이 가진 문학사적인 의미를 생각한다면 메리에게 던져진 질문은 소박하기까지 하다.

메리의 저작은 퍼시의 이름을 앞세워 간신히 출간된다. 『프랑켄슈타인』은 유명해지지만, 메리 셸리의 이름은 알려지지 않는다. 명성은 남편 퍼시의 몫이 되고 두 사람의 관계는 완전히 틀어지게 된다. 폴리도리도 메리와 동일한 경험을 한다. 『뱀파이어』가 혐오하는 바이런의 이름으로 출간된 것이다. 폴리도리는 이에 대한 우울증을 견디지 못하고 끝내 자살하고 만다. 작가에게 작품을 탈취하는 일은 삶을 통째로 빼앗긴 듯한 절망으로 기억된다.

메리는 종국에 고드윈과 퍼시의 도움으로 작품에 대한 권리를 되찾는다. 퍼시와 고드윈은 『프랑켄슈타인』의 저자가 메리임을 밝히고 메리와의 관계를 회복한다. 어떤 이는 아버지와 남편의 개입을 통한 메리의 지위 찾기가 작품의 특정한 이념적 가치를 훼손시킨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영화 속에서 재구되는 메리는 운명에 굴하지 않는 능동적인 선택으로 스스로를 노정한다. 사회의 폐쇄성을 찢는 그녀에 대한 지지가 단지 연민에 의한 것인지는 질문을 던져볼 만하다.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글: 조한기

2018 영평상 신인평론상을 수상하였다. 현재 문화와 스토리텔링 연구에 주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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