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08월호 구매하기
[서곡숙의 시네마 크리티크] <러브 앳> - 평행세계에서의 딜레마 그리고 주체의 의지와 반성
[서곡숙의 시네마 크리티크] <러브 앳> - 평행세계에서의 딜레마 그리고 주체의 의지와 반성
  • 서곡숙(영화평론가)
  • 승인 2019.12.02 09:5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항공 우주여행에서 시간여행으로

20세기가 항공 우주여행의 세기였다면, 21세기는 시간여행의 세기이다. 시간여행 영화는 세 가지 유형, 즉 운명론적 세계관, 순리론적 세계관, 두 개의 세계가 있다. 첫째, <동감>(2000), <시월애>(2000), <지금 만나러 갑니다>(いま、会いにゆきます, Be With You, 2004) 등은 운명론적 세계관과 순환론적 구성을 통해 삶이 뫼비우스띠처럼 연결되거나 순환되는 시간 구성을 보여준다. 둘째, <나비효과>(The Butterfly Effect, 2004), <시간을 달리는 소녀>(時をかける少女, The Girl Who Leapt Through Time, 2006) 등은 순리론적 세계관과 평행세계를 통해 삶이 계속 반복되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타심과 순리가 필요함을 역설한다. 셋째, <이프 온리>(If Only, 2004), <말할 수 없는 비밀>(不能說的秘密, Secret, 2007) 등은 두 세계 중에서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서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막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주체의 선택과 의지를 보여준다.[1]

 

시간여행은 과거로 돌아갈 경우 그 과거에서 일어난 사건의 변화 때문에 역사의 변화가 발생하여 시간여행자의 존재가 불가능해지는 ‘시간여행의 패러독스’가 생긴다. 이에 반해 평행세계는 시간여행의 패러독스가 발생하지 않기 때문에 많은 문화 창작자의 소재로 채택된다.[2] 평행세계는 어떤 세계에서 분기하여 그에 병행해 존재하는 또 다른 세계를 의미한다.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가 아닌 평행선상에 위치상 다른 세계이다. 다중우주가 여러 개의 우주가 있다는 이론이지만, 평행우주는 동일한 차원의 우주만을 의미한다.[3] 그래서 동시에 존재하는 두 개의 동일한 우주인 평행세계는 문화적으로 시간여행에 이은 새로운 상상력을 제공하는 프레임으로 각광받고 있다.

최근 개봉한 위고 젤랭 감독의 <러브 앳>(Mon inconnue, Love at Second Sight, 2019)은 이런 평행세계에서의 운명적 사랑이야기이다. 라파엘(프랑수아 시빌)은 올리비아(조세핀 자피)와 만나 결혼을 하고, 소설 『졸탄』의 성공으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고, 소설의 영화화로 더 큰 부를 약속받는 시점에서 평행세계로 이동한다. 평행세계에서 라파엘은 미혼의 평범한 고등학교 교사이며, 소설 『졸탄』은 미완성 습작으로 남아 있다. 올리비아는 이전 세계에는 피아노 강사로 일하지만, 평행세계에서는 세계적인 피아니스트가 되어 있다. 주인공은 1차 세계와 2차 평행세계 사이에서 1차 세계로 되돌아가고자 애쓰지만, 성공/사랑, 삶/죽음, 이기주의/이타주의라는 세 가지 딜레마에 처하게 되면서, 주체의 해방과 반성능력을 보여준다.

 

1차 세계와 2차 평행세계 사이에서

<러브 앳>의 전반부에서는 라파엘과 올리비아의 운명적 만남과 10년 동안의 결혼생활이 그려진다. 소설 『졸탄』을 쓰고 있는 라파엘은 어느 날 피아노 소리에 이끌려 간 창고에서 올리비아와 만나 사랑하게 된다. 라파엘은 올리비아를 보고 영감을 받아 『졸탄』의 여주인공 섀도우를 창조한다. 두 사람은 결혼하고 집을 사고, 옆집을 사서 확장한다. 올리비아는 라파엘로부터 피아노를 선물 받고 음악상을 받고, 라파엘의 소설 『졸탄』 원고를 투고해 준다. 라파엘은 『졸탄』의 성공으로 유명한 소설가가 되고, 주변에 미녀들이 넘쳐나고, TV에 출연하고, 소설의 영화화가 확정된다. 반면에, 올리비아는 라파엘의 무관심과 외면 속에 혼자 음악경연대회 등을 준비하지만 실패하고, 피아노 강사일을 하며 외로운 시간을 보낸다. 라파엘은 『졸탄』 시리즈 마지막 결말에서 졸탄과 섀도우 중에서 한 명이 죽어야 하는 상황에서 섀도우를 죽이게 된다. 올리비아는 자신의 잃어버린 꿈과 자신을 형상화한 섀도우가 죽는 소설의 원고에 절망한다.

이때 사운드가 이끄는 영상, 영화/소설의 교차편집, 편집을 통한 시간의 축약, 조명의 명암 대비 등은 운명적인 사랑과 미래의 변화에 대한 암시를 보여준다. 라파엘이 음악 소리에 이끌려 올리비아를 만나는 장면에서, 동일한 사운드와 인물을 따라 움직이는 카메라를 통해 사운드가 영상을 이끌며 운명적 만남을 표현한다. 라파엘이 올리비아에게 영감을 얻어 소설 속 섀도우를 창조하는 장면에서, 현실 속의 라파엘/올리비아의 모습과 소설 속의 졸탄/섀도우의 교차편집과 주변의 풍경이 밝아졌다 어두워졌다하는 변화를 통해 두 세계의 연관성과 운명적 사랑을 보여준다. 라파엘과 올리비아의 10년 동안의 결혼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장면에서, 편집을 통한 시간의 축약은 라파엘의 상승, 올리비아의 하락, 두 사람의 거리감을 확연하게 보여준다. 이 파노라마 장면은 나중에 2차 평행세계와의 차이를 보여주는 표준으로 작용한다. 올리비아가 소설을 읽고 섀도우의 죽음에 절망하는 모습과 라파엘이 술을 마시는 장면에서, 두 사람의 교차편집을 통해 엇갈리는 사랑을 보여주는 한편, 눈이 내리면서 점점 주변이 어두워져가는 배경을 통해 두 사람의 불확실한 미래를 암시한다.

 

 <러브 앳>의 중반부에서는 2차 평행세계로 떨어진 주인공이 1차 세계로 되돌아가기 위해서 여주인공의 사랑을 얻고자 노력한다. 부부싸움을 한 다음 날 아침 일어난 라파엘은 자신이 평행세계로 떨어진 것에 경악한다. 라파엘은 평범한 문학교사이고, 탁구를 좋아하고, 여교사 여자친구가 있다. 올리비아는 세계적인 피아니스트이며, 요가와 암벽등반을 즐기며, 매니저 겸 회계사인 남자친구가 있다. 다른 평행세계로 이동한 사실을 알게 된 라파엘은 올리비아를 찾아가지만, 올리비아는 그를 알아보지 못한다. 라파엘은 1차 세계에서 올리비아의 사랑을 잃었기 때문에 2차 평행세계로 떨어졌다고 생각하여, 2차 평행세계에서 올리비아의 사랑을 얻어 1차 세계로 돌아가고자 한다. 라파엘은 올리비아의 취향을 모두 알기 때문에 사랑을 쉽게 얻을 수 있다고 장담하며 자서전 집필을 핑계로 그녀에 대해 탐색하지만, 이전의 올리비아와는 차이가 있어서 당황한다. 라파엘은 올리비아의 사랑을 얻지만 1차 세계로 되돌아가는 것에 실패한다.

이때 정보전략에서의 인지 차이, 평행세계를 의미하는 상징, 더블링을 통한 유사성과 차이, 숏크기와 편집 등을 통해 1차 세계와 2차 평행세계의 차이와 대조, 인물의 위기를 표현한다. 라파엘이 펠릭스에게 올리비아의 취향에 대해 자신 있게 말하는 장면과 이후에 알게 되는 올리비아의 상이한 취향에 놀라는 장면 사이의 간극으로 인해 불확실성으로 관객을 영화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만든다. 라파엘이 자신의 ‘ping’ 문신을 확인하는 장면에서, 2차 평행세계에만 있는 문신으로 인해 자신이 어느 세계에 있는지를 확인하는 상징이 된다. 라파엘과 함께 탁구를 사랑하는 펠릭스는 ‘pong’ 문신을 하고 있다. 라파엘이 올리비아와 함께 학교에서 도망치는 장면과 올리비아의 피아노 연주를 듣는 장면에서, 교차편집과 더블링을 통해 1차 세계의 라파엘/올리비아와 2차 평행세계의 라파엘/올리비아가 운명적 사랑에 빠져드는 매혹적 순간을 표현한다. 바다에서 라파엘과 올리비아가 포옹하고 키스하는 장면에서, 두 사람의 클로즈업에서 미디엄숏으로 카메라가 차츰 멀어지면서 바다와 현실 장면을 교차편집으로 보여줌으로써 두 사람의 사랑과 장애물을 상기시킨다.

 

<러브 앳>의 후반부에서는 라파엘이 1차 세계로 돌아가기 위해 소설의 내용을 바꾸지만, 올리비아의 연주를 듣고 소설을 버리게 된다. 라파엘은 소설가로서 성공하지 못한 2차 평행세계를 실패한 인생이며 자신에게 존재하지 않는 세상이라며 절망한다. 이에 펠릭스는 운명의 여자가 다시 날 사랑하는 꿈을 꾸며 3년간 쓴 편지를 안 부치고 있다며, 올리비아가 옆에 있는 라파엘에게 운이 좋다고 충고한다. 한편 올리비아는 자신의 할머니 반지를 들고 청혼하는 마크를 받아들인다. 라파엘은 소설에서 아내(섀도우)를 죽인 것이 평행세계로 온 계기가 되었다며, 소설의 마지막 장면에서 섀도우 대신 졸탄을 죽이는 것으로 수정한다. 라파엘은 올리비아에게 그 소설을 건네지만, 올리비아의 아름다운 연주를 듣고는 소설을 버린다.

이때 정보전략, 교차편집, 오버랩, 더블링을 통해 1차 세계와 2차 평행세계의 유사성과 차이, 인물들의 어긋나는 운명, 운명적 사랑의 예고 등을 보여준다. 올리비아 할머니의 반지가 마크에게 건네지는 장면에서, 같은 반지가 1차 세계에서는 라파엘의 청혼에 쓰인 반면 2차 평행세계에서는 마크의 청혼에 쓰여 유사성과 차이를 보여준다. 라파엘이 그 반지가 마크에게 건네진 것은 아는 장면과 마크가 올리비아에게 청혼하는 장면이 교차편집되면서 두 사람의 엇갈리는 운명을 강조한다. 라파엘이 소설을 고쳐 쓰는 장면에서, 창문 밖의 풍경의 변화, 화면에 떠오르는 활자 글씨, 소설을 쓰는 라파엘, 소설 속의 변화된 재현 등을 교차편집으로 보여줌으로써 시간의 경과와 현실/소설의 연관성을 표현한다. 이때 관객은 교차편집을 통해 1차 세계, 2차 평행세계, 소설 속의 세계 등 다중세계를 접하면서 비교와 대조를 통해 적극적인 독해에 참여하게 된다. 라파엘이 올리비아의 연주회에서 피아노 연주를 듣는 장면에서, 올리비아 롱숏, 올리비아 클로즈업, 라파엘 롱숏, 라파엘 클로즈업 등 크레인숏을 통해 올리비아의 피아노 연주에서 라파엘의 감명 받는 모습으로 넘어간다. 라파엘이 올리비아의 피아노 연주를 들을 때마다 사랑에 빠짐으로써, 영화 전체에 걸쳐 반복되는 더블링을 통해 운명적 사랑과 피아노 소리의 결합을 보여준다.

 

세 가지 딜레마에 빠져

주인공은 세 가지 딜레마에 빠진다. 우선, 주인공은 성공과 사랑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진다. 첫째, 주인공은 자신의 성공과 여주인공의 성공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진다. 1차 세계에서는 라파엘이 소설가로 성공한 반면, 라파엘을 내조한 올리비아는 피아니스트의 꿈을 이루지 못한다. 2차 평행세계에서는 올리비아를 만나지 못한 라파엘이 소설가를 포기하고, 올리비아는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라는 자신의 꿈을 이룬다. 두 개의 평행세계에서 주인공과 여주인공이 모두 성공하는 삶은 불가능하다. 둘째, 주인공은 자신의 성공과 사랑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진다. 1차 세계에서는 라파엘이 성공하지만 올리비아와의 사랑이 깨어진다. 2차 평행세계에서는 라파엘이 성공하지 못하지만 올리비아와의 사랑이 이어진다. 두 개의 평행세계에서 성공과 사랑을 모두 얻는 것은 불가능하다. 셋째, 주인공은 1차 세계 여주인공의 사랑과 2차 평행세계 여주인공의 사랑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진다. 라파엘은 1차 세계 올리비아의 사랑을 잃게 되면서 2차 평행세계로 이동하게 되고, 1차 세계로 되돌아가기 위해서 2차 평행세계 올리비아의 사랑을 얻어야 하며, 2차 평행세계 올리비아의 사랑을 얻으면 1차 세계로 돌아가야 한다.

 

다음으로, 주인공은 자신이 창작한 소설 『졸탄』의 졸탄과 섀도우 중에서 한 명을 죽여야 하는 딜레마에 봉착한다. 영화는 네 가지 종류의 삶을 그리고 있다. 1차 세계에서의 삶, 1차 소설에서의 삶, 2차 평행세계에서의 삶, 2차 소설에서의 삶이다. 1차 평행세계에서는 라파엘이 졸탄을 살리고 섀도우를 죽이면서 올리비아를 절망시킨다. 2차 평행세계로 이동한 라파엘은 올리비아의 사랑이 1차 평행세계로 되돌아가기 위한 열쇠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는 올리비아의 사랑을 얻기 위해서 섀도우를 살리고 졸탄을 죽이는 것으로 결말을 바꾼다. 소설의 졸탄과 섀도우가 현실의 라파엘과 올리비아를 모델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현실에서의 삶과 소설에서의 삶은 긴밀하게 연관된다. 그래서 졸탄과 섀도우 중에서 누구를 죽이는가는 라파엘의 사랑을 확인하는 잣대가 된다. 처음에는 라파엘이 『졸탄』의 결말과 올리비아의 사랑이 평행세계 이동의 열쇠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인위적으로 노력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2차 평행세계의 올리비아와 다시 사랑에 빠지면서 문제에 봉착한다. 이때 2차 평행세계에서 라파엘의 여자친구 멜라니는 처음에는 라파엘과 올리비아의 사랑에서 장애물로 등장하지만, 나중에는 두 사이를 이어주는 조력자 역할을 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주인공은 이기주의와 이타주의, 1차 세계와 2차 평행세계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진다. 라파엘은 자신이 성공한 1차 세계로 돌아가기 위해서, 올리비아의 사랑을 얻고자 노력하고, 소설 『졸탄』의 마지막 장면에서 졸탄이 아니라 섀도우를 죽이고, 수정한 소설을 올리비아에게 읽게 한다. 하지만 그는 올리비아의 아름다운 연주를 듣고는, 자신이 꿈을 이룬 1차 세계를 포기하고 올리비아가 꿈을 이룬 2차 평행세계를 선택한다. 1차 삶에서는 성공은 확실하지만 사랑이 가변적이다. 반면에 2차 삶에서는 성공은 불가능하고 사랑은 가변적이다. 1차 세계와 2차 평행세계에서 라파엘과 올리비아의 성공은 반비례 관계로 설정되었다는 점에서 두 사람의 꿈 중 하나만을 이룰 수 있다. 결국 라파엘은 자신을 위한 사랑이 아니라 연인 올리비아를 위한 사랑을 선택하게 된다. 이때 조력자는 자신의 이혼한 아내를 못 잊어 3년간 편지를 쓰는 로맨티스트 친구 펠릭스이다. 라파엘은 “운명적인 사랑은 인생에서 단 한 번이다”라고 말하는 펠릭스에게 영향을 받게 되면서 사랑에 대해서 진지한 태도를 취하게 된다.

 

주체의 해방에서 반성능력으로

<러브 앳>의 내러티브에서 드러나는 세계관은 두 세계 중에서 자신/연인, 이기주의/이타주의의 딜레마에 빠지며, 주체의 의지와 이타적인 선택이 강조된다. 시간여행 영화의 세 가지 유형은 운명론적 세계관, 순리론적 세계관, 주체의 의지이다. <러브 앳>은 운명적 사랑을 보여주고 있지만 인과율의 원리는 적용되지 않으며, 다세계 평행우주를 보여주지만 계속된 반복과 순리론적 원리도 없다. 이 영화는 1차 세계와 평행세계 중에서 주인공이 갈등한다는 점에서 주체의 선택과 의지가 강조된다. 이런 점에서 <이프 온리>와 비슷하다. <이프 온리>에서 이안은 자신이 사랑하는 사만다가 교통사고로 죽게 되는 사고를 겪게 된다. 다음 날 이안만이 그 기억을 간직한 채 과거로 돌아가 죽음의 하루를 계속 반복하며, 연인의 죽음을 막아보려고 노력하지만 계속 실패한다. 결국 이안은 두 가지 갈림길만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하나는 연인이 죽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이 죽는 길이다. 그래서 이안은 자신을 희생해서 연인을 살린다. 이런 내러티브는 <러브 앳>에서 주인공/여주인공의 성공, 『졸탄』의 졸탄/섀도우의 목숨, 이기주의/이타주의 중의 선택이라는 딜레마와 유사하다. 주인공도 자신의 주체적인 의지에 의해 여주인공의 성공, 섀도우의 목숨, 이타주의를 선택하게 된다. <러브 앳>도 두 개의 세계 중에서 주체가 자신의 의지로 이타적 결론을 선택함으로써 자신의 삶을 결정하는 것을 보여준다.

보통 시간여행 영화에서 시간여행은 현실로부터의 세 가지 제한, 즉 시간, 죽음, 두려움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것이다. 마이클 하임에 의하면, 가상현실은 현실로부터의 도피가 아니라 보다 새로운 세계를 탐색하기 위한 것이며, 가상세계의 최종 목표는 현실세계의 세 가지 제한, 즉 죽음, 시간, 불안감에서 해방시키는 데 있다.[4] 시간여행의 쾌락은 가상세계의 목표와 묘하게도 부합된다. 가상세계, 가상현실, 사이버문화에 익숙한 관객은 인터넷을 통한 공간적 확장과 시간여행 영화를 통한 시간적 확장으로 시간, 죽음, 두려움으로부터의 해방이라는 쾌락을 얻고자 한다.[5]

<러브 앳>에서는 시간, 죽음, 두려움으로부터의 해방이라는 기존의 시간여행 영화를 뒤틀어 관객에게 쾌락을 선사한다. 우선, 주인공이 2차 평행세계에서 1차 세계로 되돌아가고자 하는 집착에서 벗어나는 것은 시간으로부터의 해방이 아니라 시간여행으로부터의 해방이다. 다른 시간여행 영화에서 주인공은 1차 세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2차 평행세계, 3차 평행세계 등 시간여행을 계속하며 끊임없이 노력한다는 점에서 시간으로부터의 해방을 보여준다. 하지만 <러브 앳>에서 주인공은 단 한 번 동일한 차원으로 이동을 하기 때문에 1차 세계와 2차 평행세계라는 두 가지 갈림길만 있으며, 자신이 성공한 1차 세계로 되돌아가고자 끊임없이 노력한다. 사실상 평행세계로의 이동이 주인공에게는 시간으로부터의 해방보다는 저주가 되는 셈이다. 결국 나중에 주인공이 자신이 내던져진 2차 평행세계에 대해 애착을 갖게 되면서, 시간으로부터의 해방이 아니라 시간여행으로부터의 해방을 맛보게 된다.

다음으로, 주인공은 소설에서 연인 섀도우를 죽임으로써 평행세계로 이동하게 되고, 결국 죽음으로부터의 해방보다는 1차 세계로 되돌아가고자 하는 욕망으로부터 해방된다. 다른 시간여행 영화에서 주인공은 1차 세계에서 연인의 죽음을 겪고 크나큰 슬픔과 아픔으로 시간여행을 통해 연인을 되살리고자 한다. 하지만 <러브 앳>에서 죽음을 겪는 것은 주인공이 창조한 소설 『졸탄』에서 졸탄의 연인 섀도우이다. 그리고 이 죽음에 대해서 크나큰 슬픔과 아픔을 겪는 것은 주인공이 아니라 연인/아내인 올리비아이다. 올리비아는 자신을 모델로 해서 만들어진 섀도우를 작가인 남편이 죽였다는 점에서, 남편의 사랑이 떠나갔다는 것에 슬퍼한다. 그래서 주인공의 사랑을 잃은 연인/아내의 절망과 염원의 영향인지 주인공은 2차 평행세계로 떨어지게 되며, 주인공은 1차 세계로 되돌아가기 위해서 2차 평행세계에서 인위적으로 섀도우를 살리고 졸탄을 죽이는 것으로 결말을 바꾼다. 사실상 주인공은 소설/현실에서의 연인의 죽음으로부터의 해방이 아니라 소설 속 연인의 죽음이 가져온 원하지 않는 시간여행으로부터의 해방을 꿈꾼다.

마지막으로, 주인공은 사랑하는 연인의 죽음으로 인한 두려움이 아니라 자신이 성공한 1차 삶의 상실에 대한 두려움을 보여주며, 나중에 자신이 망쳐버린 연인의 성공을 보며 1차 삶에 대한 자아의 반성능력을 보여준다. 다른 시간여행 영화에서는 연인의 불행이나 죽음이 주는 고통이 너무 끔찍해서, 주인공은 시간여행을 통해 자신의 삶이나 세계를 포기하고 연인의 삶이나 세계를 선택한다. 하지만, <러브 앳>에서는 주인공이 연인을 형상화한 섀도우의 죽음으로 인한 두려움이 아니라 자신이 성공한 1차 삶이 사라진 것에 대해 크나큰 두려움을 보여준다. 영화 내내 2차 평행세계에서의 자신의 삶을 혐오하며, 1차 세계로 돌아가기 위해 인위적으로 연인의 사랑을 얻고자 하며, 인위적으로 소설의 결말을 바꾸는 등 노력을 한다. 마침내 연인의 피아노 연주를 듣고는 자신이 망쳐버린 연인의 성공과 꿈을 깨닫게 되면서 1차 세계에서의 자신을 반성하게 되고 2차 평행세계에 머물게 된다.

현재 시점으로의 시간여행인 <러브 앳>은 자신의 삶에 대한 반성이 없지만, 나중에 1차 세계의 삶을 뉘우친다는 점에서 자아의 반성능력을 보여준다. 다른 시간여행 영화에서는 보통 자신의 삶에 대한 깊은 뉘우침으로 인해서, 과거로 시간여행을 해서 현재의 이별과 죽음을 바꾸고자 한다. 하지만, <러브 앳>에서는 과거가 아니라 현재 시점으로 시간여행을 하며, 초반부에 자신의 삶에 대한 반성이 전혀 없다. 하지만 2차 평행세계에 살면서 연인이 자신의 성공과 꿈을 이루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자신이 망쳐버린 연인/아내의 삶을 떠올리며 1차 세계의 삶을 뉘우치게 된다. 이 영화에서는 과거로 시간여행을 하지는 않지만, 편집기법을 통해서 끊임없이 1차 세계에서의 과거의 삶을 소환하며 보여줌으로써 1차 세계에서의 현재의 삶 혹은 2차 평행세계에서의 현재의 삶과 대비시킨다. 이런 점에서 사실상 과거의 사건을 바로잡고 싶은 인간의 욕망과 연결되며, 주인공의 선택과 의지는 결국 자아의 반성능력과 연관된다. 개인은 탈중심화, 다중심화를 통해 타자와의 세계를 인정하고 자아성과 타자성을 순환시키는 유연성을 발휘하게 된다. 이렇듯 이 영화의 특이한 설정으로 인해 관객은 이전의 다른 평행세계 영화와는 차별적인 이야기 전개에 흥미를 느끼게 된다.

 

평행세계의 의문은 관객에게

<러브 앳>은 소설/인생의 상관관계와 주체/텍스트의 전도, 세 가지 딜레마의 상관관계, 여러 차원의 삶의 교차편집, 시간여행 순간의 유연성 등을 보여준다. 첫째, 소설가가 소설의 세계를 구성하고 전지전능한 신이 되는 것인데, 이 영화에서는 소설로 인해 소설가의 인생이 뒤바뀌게 된다는 점에서 주체와 텍스트의 관계에서 전도가 일어난다. 둘째, 주인공에게 던져진 세 가지 딜레마에서 하나를 선택하고 다른 하나를 포기해야 하거나 혹은 하나의 선택이 다른 하나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주체의 의지와 선택이 강조된다. 셋째, 두 개의 평행세계만을 다루지만, 세계/평행세계, 과거/현재, 현실/소설 등의 다중세계를 동시에 속도감 있게 그리고 있다. 실제 현실에서의 1차 삶과 2차 삶, 과거에서의 1차 삶과 2차 삶, 소설의 현실에서의 1차 삶과 2차 삶이라는 6가지 차원의 삶이 교차편집을 통해 보여준다. 넷째, 시간여행 순간에 특별한 스타일적 연출이 없으며 자연스럽게 평행우주로 넘어간다는 점에서 시간여행에 대한 유연한 사고를 보여준다. 이는 시간여행 영화에 익숙한 관객에게 특별히 시간여행의 순간을 강조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시간여행에 대한 사고의 유연성을 보여준다.

라파엘은 2차 평행세계에서 자신의 꿈을 마음껏 펼친 올리비아를 보면서 1차 세계에서 올리비아가 보여준 희생과 헌신을 깨닫게 된다. 하지만, 라파엘이 올리비아가 성공하는 2차 평행세계를 선택한다는 것은 사실상 1차 세계의 삶과 올리비아를 내던지는 행동은 아닌가? 이 영화에서 라파엘은 1차 세계에서의 라파엘이 2차 세계로 건너온 것이기 때문에, 그의 시간여행으로 1차 세계에서의 라파엘은 실종상태가 되어버린다. 그래서 평행세계에서의 2차 삶은 사실상 사랑으로 인한 갈등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망, 자신의 1차 삶에 대한 죄책감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망이 아닌가? 그리고 왜 항상 자아실현이나 성공보다 사랑을 선택해야 하는가? 로맨스영화의 주관객층이 여성관객이라는 점에서 여성에게 항상 자아실현보다 사랑을 강요하는 느낌이 든다. 영화가 주인공 중심으로 펼쳐지는 서사이지만, 서사의 중심인 주인공과 여주인공에게 모두 감정이입이 된다. 그렇다면 관객의 입장에서는 1차 삶에서는 여주인공의 희생과 헌신을 강요당하고, 2차 삶에서도 연인을 위한 주인공의 희생과 헌신을 강요당한다는 점에서 이중의 희생과 헌신의 플롯에 계속 매여 있는 것은 아닐까? <러브 앳>의 해피엔딩을 보며 행복해 하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이런 의문에 빠지게 되지만, 이런 의문은 관객의 몫으로 남겨두기로 한다.

 

 

참고자료

[1] 서곡숙, 『영화와 N세대: 19990년대와 2000년대 한국영화에서 드러나는 N세대 실천 양상』, 홍경, 2017, 185쪽.

[2] 다음백과-평행세계

[3] 위키백과-평행세계

[4] 마이클 하임, 「가상현실의 형이상학」, 김종회(편), 『사이버 문화, 하이퍼텍스트 문학: 이론편』, 국학자료원, 2005, 36~38쪽.

[5] 서곡숙, 『영화와 N세대: 19990년대와 2000년대 한국영화에서 드러나는 N세대 실천 양상』, 홍경, 2017, 174쪽.

사진 출처: 네이버영화

 

글: 서곡숙

영화평론가. 비채 문화산업연구소 대표로 있으면서, 세종대학교 겸임교수, 한국영화평론가협회 기획이사, 서울시 영상진흥위원회 위원장, 한국영화100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 학술출판분과 위원장, 르몽드 아카데미 원장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 정기구독을 하시면 온라인에서 서비스하는 기사를 모두 보실 수 있습니다.
이 기사를 후원 합니다.
※ 후원 전 필독사항

비공개기사에 대해 후원(결제)하시더라도 기사 전체를 읽으실 수 없다는 점 양해 바랍니다.
구독 신청을 하시면 기사를 열람하실 수 있습니다.^^

* 5000원 이상 기사 후원 시 종이신문 과월호를 발송 드립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