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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진수의 시네마 크리티크] ‘나:여자’가 말하는 결혼 이야기 - <안개기둥>
[성진수의 시네마 크리티크] ‘나:여자’가 말하는 결혼 이야기 - <안개기둥>
  • 성진수(영화평론가)
  • 승인 2020.01.06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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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적 테마로서 ‘여성’과 ‘페미니즘’이 반드시 동일한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페미니즘 테마의 영화가 여성에 대한 영화일 것이라고 확신하는 만큼, 여성 테마의 영화가 페미니즘 영화일 것이라고 확신할 수는 없다. 영화 <마더>(봉준호, 2009)가 여성을 테마로 한 영화라고 말할 수 있는 만큼, 페미니즘 영화라고 확언할 수는 없다는 사실처럼 말이다. 한편, 만약 누군가 모성이 곧 여성인 것은 아니기 때문에 <마더>는 여성을 테마로 한 영화가 아니라고 주장한다면, 나는 그 주장이 틀렸다고 말할 수도 없다. 영화에서 재현되는 여성의 다양한 양상을 페미니즘 관점에서 분석하고 해석하는 것과 어떤 영화가 페미니즘 테마의 영화라고 말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1987년 개봉한 박철수 감독의 <안개기둥>은 논란의 여지없는 페미니즘 테마의 영화라 말할 수 있다.

 

“가정은, 가족구성원 모두가 서로를 존중하고 사랑하며 살아가는 민주적 공동체이다. 부부관계와 부모 자녀 관계는 권위주의적인 상하관계나 어느 한쪽의 희생을 정당화하는 관계가 되어서는 안된다.”

1986년 10월 5일 한국가정법률상담소가 선포한 「가정헌장」 중 일부를 스크린 한 가운데 띄운 채 시작하는 <안개기둥>은 페미니즘 선전영화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선전영화’라는 표현이 부정적으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그만큼 이 영화는 페미니즘 이슈를 전면적이고 직설적으로 다루는 영화다. 동시에 <안개기둥>은 형식적 실험도 소홀히 하지 않은 영화다. 1982년 영화 <들개>에서 인물의 정서와 내면을 표현주의적인 비주얼과 사운드를 통해 외연화시켰던 박철수 감독은, <안개기둥>에서는 감정의 과잉을 허락하지 않는 편집과 내적 사운드를 통해 새로운 멜로드라마 미학을 선보였다.

<안개기둥>은 ‘나’와 ‘그’의 6년간의 결혼생활을 다룬다. 결혼 후 육아 때문에 일을 그만 두고 전업주부를 선택한 능력 있고 야망 있는 여자가 가부장 질서에 순응하지 못한 채 괴로워하다가, 점점 권위적이고 폭력적이 되어가는 남편을 견디다 못해 이혼하고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 <안개기둥>의 줄거리이다. 현재의 관점에서 볼 때 새로운 이야기라고 할 수는 없다. 여성에게 고분고분함을 강요하다가 자신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 폭력적으로 돌변하는 사회적으로 성공한 남자, 나쁜 엄마가 되기 싫어서, 또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사니까 자신의 욕망을 외면하며 살아보려는 여자, 가부장적 사회 질서 안에 머무르기를 거부하고 자신의 욕망을 말하는 여성들을 향한 남성 집단의 반발과 멸시의 시선(영화는 남자 엑스트라를 통해 이러한 시선이 반복적으로 보여준다), 남편의 인감도장 없이는 신용카드 한 장도 만들 수 없는 남성중심 사회 등, 영화를 빽빽하게 채우고 있는 여성이 처한 현실은 마치 클리셰처럼 보일 정도이다. 2020년 현재의 시선에서 상투적으로 보이는 이야기에도 불구하고 <안개기둥>은 페미니즘 운동과 그 결과로 인한 변화들이 막 사회적 관심을 끌기 시작하던 1980년대 페미니즘 이슈와 여성문제를 본격적으로 제기한 한국영화로서 독보적인 영화였다. 1980년대에 여성의 삶과 현실에 주목했던 영화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중산층 여성을 주인공으로 동시대의 페미니즘 이슈를 이처럼 망설임 없고 직설적인 방식으로 전면화 시킨 채, 여성의 목소리에 오롯이 집중한 영화는 없었기 때문이다.

 

<안개기둥>의 주인공들은 특별한 이름이 없이 ‘나’, ‘그’ 라는 인칭대명사로 불린다. <82년생 김지영>이 주인공에게 당시의 가장 보편적인 이름을 부여함으로써 여성 보편의 이야기가 되기를 의도했던 것과 같은 이유에서일 것이다. 더 주목할 만한 것은 <안개기둥>이 ‘그녀’와 ‘그’가 아니라 ‘나’와 ‘그’를 사용한다는 점이다. <안개기둥>은 여자 주인공에게 ‘나’라는 1인칭 화자의 위치를 부여하고 남자 주인공을 제3자인 ‘그’라고 호명함으로써, 여성 화자의 목소리에 온전히 의지하는 영화다. 덕분에 영화가 보여주는 ‘나’와 ‘그’의 결혼생활은 곧 여성 화자 ‘나’의 경험이 된다. 가부장적 질서의 위세가 지금보다 컸던 30년 전 한국사회에서, <안개기둥>은 가부장적 결혼제도 중심 사회를 여성의 관점에서 일방적으로 재현하겠다고 선포한 영화였던 것이다. 영화의 이러한 의지는 ‘나’와 ‘그’라는 주인공의 호칭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안개기둥>은 화자인 여자 주인공 ‘나’가 영화의 서사를 실질적으로 이끌게 만든다. 그 첫 번째 장치는 서사의 주요 계기를 설명하는 ‘나’의 내레이션이다. 많은 영화에서 내레이션의 주체가 되어 서사를 지배했던 남성의 목소리가 <안개기둥>에서는 여성의 목소리로 대체된 것이다. 서사의 주체로서 여성과 남성 간 위계의 역전은 내레이션의 내용에서 더 잘 드러난다. “그는 하루하루 자기 일에만 열중하는 자기중심적 사람이 되가며 지나친 경쟁욕과 현실 욕망은 스스로 그를 지치게 했고, 나에겐 점점 남자의 권위를 주장하고 강요했다.”는 내용에서 보듯이, ‘나’의 내레이션은 서사 주체로서 대상 ‘그’를 규정 짓는 역할을 한다. 많은 영화에서 반복되어 왔던 남성 주체와 여성 대상의 구도가 <안개기둥>에서는 뒤집힌 거울상마냥 역전되어 있는 것이다.

<안개기둥>이 ‘나’ 중심의 서사에 기대고 있음을 보여주는 또 다른 장치는 사운드다. 이 영화에는 사운드가 이미지의 주석 역할을 하는 순간들이 존재한다. 대부분의 경우 사운드가 이미지의 보조 역할을 하는 것과 달리, 해당 장면에서는 사운드를 통해서 이미지가 보여주는 사건의 의미를 해석해야만 하는 것이다. 영화는 직장을 그만 둔 후 전업주부로 살아가는 ‘나’의 일상을 보여주는 사이사이 ‘그’가 회사에서 일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그 중에는 ‘그’가 회의에서 중요한 발표를 진행하는 장면이 포함되어 있다. 그 장면의 사운드는 발표하는 ‘그’와 회의에 참석한 인물들의 대사와 효과음과 같은 일반적인 방식으로 시작해서, 배경음악이 덧붙여지고, 마지막에는 인물의 목소리가 제거된 채 배경음악으로만 채워진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시각적 요소와 청각적 요소 간의 불협화음적인 매칭이다. 영화는 열정과 활기 넘치는 직장 속 ‘그’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공포영화에 어울릴 법한 불길한 분위기의 음악을 들려준다. 이미지의 보조적 기능 안에서 사운드를 사용해 오던 영화가 관객에게 새로운 영화읽기를 제안하는 순간인데, 그 순간에 이르기까지 ‘나’의 관점에 동일시된 채 이야기를 따라온 관객이 그 음악이 주조하는 정서에 ‘나’의 주관성이 내포되어 있음을 감지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의 성공과 비례해서 깊어지는 ‘나’의 불행을 배경음악이 예견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지와 배경음악 간의 상호작용에 의해 창조되는 영화적 의미라는 점에서 앞서 설명한 <안개기둥>의 장면은 1920년대 러시아 영화의 충돌 몽타주를 상기시키는데, 이 몽타주는 <안개기둥>의 스타일을 결정짓는 지배적 장치로도 볼 수 있다. 자세한 설명과 정서의 과잉, 신파적 성격이 강한 한국의 여타 멜로드라마와 달리, <안개기둥>은 대사 없는 인물의 클로즈업과 반응 숏의 병치, 한두 쇼트로 간략하게 대체되는 상황 설명과 불연속적인 시간성을 가진 숏의 잦은 연결 등, 몽타주라는 영화적 장치에 기댄 한 차가운 절제의 미학을 선보이고 있는 것이다.

<안개기둥> 이후, 페미니즘 이슈는 <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김유진, 1990), <그대안의 블루>(이현승, 1992), <개 같은 날의 오후>(이민용, 1995)와 같은 영화로 이어졌고, 1990년대 로맨틱코미디와 멜로드라마 장르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수용되고 확장되었다. 페미니즘 이슈를 한국영화에 본격적으로 등장시켰다는 점 외에도 <안개기둥>은 영화 형식의 차원에서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1970년대 젊은 감독들의 영화에서 시작되어 1980년대 까지 이어진 형식적 실험과 그 결과로 탄생한 한국영화의 형식적 변화를 엿볼 수 있는 멜로드라마이기 때문이다. 내용과 형식 모두를 통해 여성의 목소리와 관점에 귀 기울였던 영화 <안개기둥>. 페미니즘 리부트가 한창 진행되는 현재, 다시 꺼내볼 만한 한국영화로 이보다 적합한 영화는 없을 것이다.

 

‘시네마 크리티크’의 첫 글을 <안개기둥>에 대해 쓰게 된 것은 가장 최근에 본 영화이기 때문이었다. 우연한 기회에 다시 보게 된 <안개기둥>에서 <82년생 김지영>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고, 30년의 간격을 두고 만들어진 두 영화 속 여성의 현실이 유사하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최신 영화가 아닌 <안개기둥>을 굳이 선택한 데에 최근 한국영화에서 다시금 주목받기 시작한 페미니즘을 응원하는 마음이 작용했다는 점을 부인하지 못하겠다. 우연에서 출발한 것이지만 이왕 이렇게 시작했으니, 2020년 ‘시네마 크리티크’의 테마를 1980년대 여성 주인공의 영화로 해보고자 한다. 페미니즘적 한국영화사의 부재를 아쉬워해온 내게는 의미 있고 작업이 될 것 같다. 아무쪼록 독자 분들도 흥미롭게 받아들여주시기를 바랄 뿐이다.

 

 

글·성진수

영화학을 전공하고 영화에 대한 글과 논문을 쓰고 있으며, 영화와 대중문화에 대한 강의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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