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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진수의 시네마 크리티크] 그 때 그 시절 버스 안내양의 고단한 현실, <도시로 간 처녀>
[성진수의 시네마 크리티크] 그 때 그 시절 버스 안내양의 고단한 현실, <도시로 간 처녀>
  • 성진수(영화평론가)
  • 승인 2020.03.02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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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로서 여성은 직업 선택에 있어서 남성보다는 많은 제한을 받아왔다. 제도적인 평등이 이루어졌다고 하지만, 점수를 조정해 여성지원자를 탈락시킨 최근의 여러 사례가 보여주듯이 취업 현장에서 여성들 앞에 놓인 실질적인 장벽은 여전하다. 21세기인 현재의 상황이 이러한데, 40~50여 년 전 생존을 위해 돈을 벌어야 했던 여성들이 처했던 현실의 가혹함은 더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도시로 간 처녀>는 바로 그 40~50년 전인 1970, 80년대 여성들에게 중요한 일자리 중 하나였던 버스 안내양을 주인공으로 하는 영화다.

 

영화의 주인공은 문희(유지인), 영옥(이영옥), 승희(금보라) 세 여성이다. 문희는 안내양을 ‘떳떳한 직장 여성’으로 생각하는 심지가 굳은 인물이다. 낮은 임금과 강도 높은 노동에 시달리는 안내양의 대부분이 ‘삥땅’ 치는 것을 알지만 문희는 그것이 정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삥땅을 하지 않은 덕분에 입금 실적이 높은 모범 안내양으로 회사로부터 상금을 받은 문희에게 동료 영옥은 상금보다 ‘삥땅’으로 버는 돈이 더 많다고 충고한다. 하지만 문희는 맘 편한 게 더 좋다면서 기숙사의 빨래 아르바이트까지 하며 돈을 벌기 위해 일한다. 정직하게 회사에 내고 그 대신 월급을 올려 달라고 하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문희와 달리 일찍부터 안내양 일을 해 온 영옥은 회사가 월급을 올려줄 리가 없다면서 자기 실속은 스스로 챙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돈을 모아 언젠가 택시를 운행하겠다는 꿈을 가진 영옥은 실리에 밝은 인물이다. 우연히 같은 회사의 김 기사와 연애를 시작한 영옥은 김 기사가 동거하는 여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지만 ‘하루를 살다 죽어도 좋아하는 사람끼리 살아야 한다’며 남자를 쟁취할 만큼 당차고 자기주장이 확실한 인물이기도 하다. 문희와 함께 안내양 일을 하기 시작한 승희는 자신이 하루라도 돈을 벌지 않으면 식구가 굶어야 한다면서 수습 기간이 3일이나 되는 것을 걱정한다. 그녀는 기사에게 들킬까봐 조마조마해 하면서도 가족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삥땅을 해야만 하는 처지다. 하지만 버스에서 만나는 남학생에게 가슴 설레며 아기들의 공갈 젖꼭지를 물어야 잠이 드는 어린 소녀이기도 하다.

이 세 인물을 주인공으로 하는 <도시로 간 처녀>는 1981년 개봉 사흘 만에 상영 중지가 된 후, 재편집과 수정을 거쳐서 다시 개봉하는 논란의 과정을 거쳤다. 그 이유는 한국노동연합총연맹에서 운전기사와 안내양의 명예를 손상시켰다는 이유로 이 영화의 상영 금지를 문화공보부에 요청했기 때문이었다. 당시의 서류를 보면 현재 영상자료원에서 서비스되는 VOD 버전은 엔딩을 제외하고는 수정 전 버전인 것으로 보인다. 안내양이 겪어야만 하는 부당한 현실을 안내양의 관점에서 고발하고 있는 이 영화에 대해 왜 당사자들이 반대했는지 현재의 관점에서 생각하면 의아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당시의 사회적 관념과 시대적인 조건 등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인물의 측면에서 볼 때 이 영화가 질서정연하고 통합된 균질적인 텍스트로 보이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이 그와 같은 반응에 일정 부분 영향을 끼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이 영화의 주인공인 문희, 영옥, 승희는 버스 안내양의 고난을 공유하지만 서로 다른 가치관과 이상을 가진 개별적인 인물들로 그려지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삥땅을 적극적으로 하는 인물과 그것이 도둑질로 생각하는 인물, 이성 관계에서 개방적인 인물과 전통적 가치관을 고수하는 인물, 그리고 부당한 시스템을 이용하는 인물과 부당함에 맞서 과격한 실천을 하는 인물들을 안내양이라는 하나의 집단으로 묶어놓지만, 그들을 희생자와 가해자 혹은 도덕과 비도덕의 이분법으로는 나누지 않는다. 한 집단 내에 존재하는 개개인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이러한 특징은 당대 이익 단체의 저항을 불러내는 요인이 되었을 것이란 얘기다. 하지만 다른 관점에서 이는 여성 인물들에게 입체성을 불어넣는 요인으로도 작용한다. 게다가 이 세 인물이 서로 다른 가치관을 따라 써가는 서사는 노동 문제, 가려진 도시 빈민과 계급 문제를 종합적으로 다루려는 이 영화의 야심찬 기획을 가능하게 해 준다.

<도시로 간 처녀>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버스 안내양의 현실을 안내양의 관점에서 보여주는 것이다. 영화 초반 문희의 이력서를 받아 든 관리자가 문희가 같은 고향 출신이라는 것을 알고 다른 직업을 구해볼 것을 권유하는데, 문희는 열심히 하겠다면서 안내양은 ‘떳떳한 직장 여성’이라고 강조한다. 이 말을 하는 문희의 얼굴에는 도시에서 목표했던 일자리를 얻는 사람이 가지는 각오와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번듯한 직장인 된 여성으로서의 자부심이 가득 차 있다. 이후 문희는 끝까지 자신의 다짐을 지키고자 노력하지만 그녀가 마주하는 현실을 그렇게 녹녹하지 않다. 식사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짧은 휴식시간, 버스 기사의 갑질, 승객과 동료기사가 가하는 성희롱과 성폭력, 회사로부터의 몸수색 까지, 영화는 문희의 시선을 통해 안내양이 처한 현실을 꼼꼼하게 그려낸다. 문희는 자신만 성실하고 정직하게 지내면 문제없을 것이라고, 회사도 자신을 믿어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기숙사 강제 수색과 빨래 아르바이트까지 해서 열심히 모은 저축을 의심하는 관리자들, 점점 강도를 더해가는 몸수색을 경험하면서 문희는 그것이 개인의 차원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님을 깨닫는다. 회사가 안내양의 알몸수색까지 하자 결국 문희는 회사 옥상에 올라가 안내양의 인권을 짓밟는 몸수색을 멈출 것을 호소하며 투신한다.

 

영화는 개인적인 노력으로 문제를 극복하려고 했던 문희가 결국에는 집단을 향해 강력한 호소 행위를 하게 만듦으로써, 안내양의 현실을 공론화하고자 하는 의지를 드러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문희를 옥상에 올라서게 만든 근본적인 원인을 비껴감으로써 아쉬움을 남긴다. 문희가 투신을 결심하게 된 이유는 알몸 수색을 받아서이고 그 알몸 수색은 안내양들의 ‘삥땅’을 막겠다는 명분에서 이루어진다. 그런데 삥땅의 근본적인 원인은 바로 월급이 충분하지 않아서이다. 문희는 사적인 대화 속에서 몇 차례나 삥땅할 필요 없도록 회사가 월급을 제대로 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녀가 삥땅을 하지 않았던 이유는 월급이 충분해서가 아니라 떳떳하고 싶어서였다. 바로 이러한 문제를 영화는 비껴간다. 문희는 옥상에서 삥땅을 하지 않아도 되도록 월급을 제대로 달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회사가 몸수색을 멈춰줄 것과 동료 안내양들이 삥땅을 멈춰 줄 것을 요구한다. 즉 삥당의 문제를 개인의 도덕적 차원의 사안으로 축소시켜버리는 것이다. 이러한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문희의 서사가 버스 안내양을 향해 행사하는 부당하고 폭력적인 행위가 멈춰져야 함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는 것은 명백하다. 영옥의 서사는 문희는 서사와는 조금 다른 각독에서 진행되는데, 그것은 자본주의적 이상만으로 영원히 해결할 수 없는 자본주의의 어두운 면을 상기시킨다.

영옥은 가장 세상물정에 밝은 현실적인 인물이다. 삥땅을 감시해야 하는 사람과 결탁된 은밀한 삥땅 시스템을 누구보다 잘 활용하는 것은 물론, 도시에서 안정적으로 자리 잡기 위한 계획이나 그것을 실행에 옮기는 실천력도 탁월하다. 김 기사와의 연애 사건 때문에 회사를 그만 둔 영옥은 그 동안 삥땅으로 모은 돈으로 꿈꾸던 택시를 장만한다. 택시 영업 중 거리를 방황하는 김 기사를 보고 이상한 낌새를 느낀 영옥은 택시를 타고 달아나는 그를 뒤쫓다가 그에게 부인과 두 딸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개발된 아파트 단지 외곽의 빈민촌에 살면서 행상을 하는 김 기사의 부인을 본 영옥은 그녀에게 김 기사를 돌려보낸다. 영옥이 김 기사 부인과 헤어져서 택시를 몰고 도심으로 돌아오는 장면에서 영화 내내 쾌활함을 잃지 않던 영옥은 처음으로 무엇엔가 정신을 빼앗긴 것 같은 표정을 보여준다. 영옥이 제 실속은 자기가 챙겨야 한다고 했던, 동거녀에게 찾아가 이 남자는 나랑 함께 갈 거라고 당차게 말하던 인물이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그녀의 표정을 이별한 여자의 상실감으로 설명하기에는 부족해 보인다. 스스로를 자본주의적 인간으로 생각하고, 성공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영옥이 김 기사의 부인에게서 자신이 믿었던 것에 대한 균열을 마주했던 것은 아닐까? 벗어났다고, 그래서 자신의 삶에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영옥이 생각했던 세상이 사실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으며 언제든 되돌아가게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은 아닐까? 영옥의 내면에 대해 영화는 명백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하지만 영화는 확실하고 현실적인 목표를 이룬 영옥에게 그 동안 잊고 있었던 현실을 마주하게 했고 그녀의 견고한 세계에 균열이 났다는 것은 확실하게 보여 준다.

 

마지막으로 승희의 서사는 가족을 부양하는 어린 안내양과 부잣집 대학생을 통해 계급의 존재를 상기시킨다. 버스에서 우연히 마주친 남학생에게 반한 승희는 그 학생이 대학생이 되자 만나자는 편지를 건네고, 남학생을 만나기 위해 미싱자수 면허까지 딴다. 남학생은 미싱자수 자격증을 따면 만나주겠다고 하면서 누나 학원에서 공짜로 수강할 수 있는 기회까지 마련해주지만, 그것은 핑계, 혹은 가진 사람으로서 어려운 처지의 승희에게 베푼 지원 정도였을 뿐이다. 남녀의 만남을 이성 간의 낭만적인 만남으로만 생각했었던 승희는 그 사이에 계급의 벽이 존재할 수 있음을 깨닫게 되고, 승희의 자각을 통해 영화는 한국 사회에 견고하게 자리 잡은 자본주의적 계급 관계를 보여주는 것이다.

여성들을 위한 직업이 지금보다 더 제한적이었던 시대에 시내 버스 안내양은 버스 회사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는 직종이었다. 승객이 요금을 직접 지불하는 시스템이 갖춰지기 전에 시내버스 안내양은 회사의 수입을 결정짓는 시작점이었다. 이는 안내양이 버스 요금을 받기 때문만이 아니다. 얼마나 많은 승객을 버스에 태우는가도 안내양의 일이었다. 많은 승객을 태우기 위해서는 가능한 짧은 시간 안에 승객을 하차시키고 또 승차시켜서 버스가 정해진 시간 안에 빨리 이동할 수 있도록 해야 했다. 또 한정된 공간 안에 더 많은 사람이 탈 수 있도록 물리적인 힘을 써야 했다. 그렇기 때문에 코미디언 이영자가 버스 안내양 캐릭터로 유행시켰던 ‘빨리 빨리 오라이~’라는 외침이나 넘치는 승객을 온 몸으로 버티며 출입문 손잡이에 매달려 버스를 출발시키는 안내양의 모습이 담긴 영상을 그 때 그 시절 추억으로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버스 안내양의 노동에 대한 기억, 혹은 기록이다. 오늘날 짧은 기록들을 통해 단편적으로만 만날 수 있는 버스 안내양의 삶을 보다 입체적으로 보여주는 영화가 바로 <도시로 간 처녀>인 것이다. 또한 이 영화는, 분명하게 존재하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여성의 노동에 오롯이 집중하면서 임금 노동자이자, 경제 활동의 주체이며, 자신의 계급성을 자각해가는 주체적 여성을 그리는 영화로서도 기억될 필요가 있다.

 

글·성진수

영화학을 전공하고 영화에 대한 글쓰기와 연구를 하고 있으며, 영화와 대중문화에 대한 강의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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