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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형의 시네마 크리티크] 소비의 시대가 낳은 비극- <엘리펀트맨 Elephant Man>(1980)
[정재형의 시네마 크리티크] 소비의 시대가 낳은 비극- <엘리펀트맨 Elephant Man>(1980)
  • 정재형(영화평론가)
  • 승인 2020.11.16 09: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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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빗 린치 감독의 <엘리펀트맨 Elephant Man>(1980)은 인간의 존엄성을 주제로 한 감동적인 실화다. 인간의 본성에 대한 탐구이기도 하지만 사회와 역사앞에서 인간의 이성이 반성하고 성찰해야 하는 메시지를 던져 준다. 선천적 기형을 갖고 태어난 존 메릭이란 인물이 단지 외모적 차이 때문에 동물과 같은 취급을 당하고 사회속에서 버려지는 과정을 잘 그리고 있다.

영화 <엘리펀트맨>은 1979년, 즉 이 영화를 만들기 1년 전에 나온 버나드 포메란스의 희곡 [엘리펀트맨]을 저본으로 하였다. 희곡은 영국인 조셉 메릭의 실화를 근거로 한 것이다. 조셉 메릭은 존 메릭으로 잘못 불리기도 했다. 1862년 영국에서 태어난 메릭은 27살인 1890년 사망했다. 그의 신체는 영화에 나온 그대로인데 다른 사람처럼 똑 바로 누워서 잘 수 없을 정도로 앞 머리가 돌출했고 입술 및 왼손과 몸 일부가 비대한 기형인간이다. 그는 평소 앉아서 수면을 취했으며 나중에 다른 사람처럼 똑 바로 누워서 자다가 목이 꺽여 죽었다는 설도 있다. 트리브스박사가 치료를 했으나 치유되지 않았고 둘은 친구로 발전했다.

 

인간에 대한 연민

의사 트리브스박사는 전갈을 받고 엘리펀트맨을 보게 된다. 서커스단주가 보여준 엘리펀트맨의 모습은 흉측함 이상의 경이에 가까운 것이었다. 얼굴 뿐 아니라 온 몸이 인간의 몸이기 보다는 흉악한 짐승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의사는 너무 놀란 나머지 눈물을 흘리고 만다. 그 눈물의 의미는 무엇인가. 순수한 박애일 것이다. 인간으로서 그 자존심의 최하를 보았을 때 눈물이 나는 것은 아닌지. 연민의 눈물이다.

트리브스 박사는 메릭을 집에 초대한다. 메릭은 아내가 자신을 보고 놀라기는커녕 따뜻한 환대의 말을 하자 그만 울어버린다. “이렇게 아름다운 여인에게 환대의 말을 받기는 처음이예요.” 그럴 것이다. 이어 아내와 트리브스 박사는 거실에 같이 앉아서 사진들을 보여준다. 메릭도 자신의 어머니 사진을 보여준다. 그는 어머니가 자신 때문에 속상하셨을 거라고 말하고 어머니를 찿으면 효도하겠다고 말한다. 이 말이 너무 기특하고 불쌍해서 아내는 울음을 터뜨린다. 처음에는 메릭이, 이번에는 아내가 번갈아 가며 울면서 영화는 인간을 인간답게 대하는 가운데 연민의 감정이 흐르는 것을 확인하게 한다.

연극배우 켄들 부인이 찿아온다. 그녀는 [로미오와 쥴리엣]을 선물한다. 메릭은 로미오의 대사를 읽는다. 켄들 부인은 상대 역을 한다. 켄들 부인은 대본을 읽는 메릭의 모습을 보며 감동에 북받쳐 키스를 한다. “당신은 결코 엘리펀트 맨이 아녜요. 당신은 로미오예요. ” 이 말에 메릭은 눈물을 흘린다.

 

공포의 기원

데이빗 린치의 영화는 기괴함을 추구한다. 인간의 공포의 기원은 무엇일까. 린치에 의하면 어쩌면 기괴함에서 시작되었는지 모른다. 그는 첫 영화 <이레이져 헤드>에서 이미 기형의 세계를 그렸다. 젊은 부부에게 아이가 있는데 그 아이는 가슴이 절개되어 있고 얼굴은 인간의 얼굴이 아니다. 린치는 비구상 초현실주의 화가다. 초현실에서 본다면 인간은 기형이고 세상은 왜곡되어 있을 것이다. 인간은 현실적이지 않은 모든 것에 대해 두려움을 갖는다. 자신과 다르거나 주변인과 다른 것은 다 두렵다.

죽을 배달하는 간호사의 표정과 그 분위기는 공포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시킨다. 나선형 계단을 오르는 간호사는 부감앵글에 의해 뭔가가 억누르는 느낌을 주고 음산한 음향이 뒤따른다. 평지에 올라섰을때 로우키 라이팅은 그림자를 만들어내 공포분위기를 조성한다. 문을 열어 메릭을 확인한 그녀는 비명을 지르고 카메라는 그녀의 모습을 클로즈업 될 때까지 진입한다. 관객은 격한 감정에 동화되고 이어 어둠속에 앉아있는 메릭은 그 자체 형상으로 괴물을 연상시킨다.

 

기형쇼(freak show)

이 영화의 배경이 되는 19세기는 자본주의 산업화로 인한 쇼문화가 시작되던 시점이었다. 동물뿐 아니라 기형인간들을 소재로 하는 기형쇼까지 등장하게 되었다. 난쟁이, 거인, 수염난 여인, 등 기형들을 볼거리로 등장시켜 돈을 벌었다. 그것은 인간의 존엄을 훼손하는 상업주의의 극단이다. 인간을 상품화한 기원이 된다. 현대에 와서 기형쇼는 없어졌으나 여전히 동물을 학대하는 동물쇼는 그대로 남아있다. 돌고래쇼, 곰, 호랑이, 표범, 사자, 코끼리, 침팬지 등을 활용한 써커스가 대표적이다. 이들에 대한 학대나 전시도 없어져야 한다. 이 영화는 서커스단장과 박사와의 대결구도로 설명하고 있다.

트리브스박사는 자신의 행동에 대해 회의를 느끼게 된다. 서커스단장 바이츠는 메릭을 돈벌이로 이용한다. 트리브스도 자신의 연구와 대중들의 관심을 위해 메릭을 이용하기는 매 한가지. 이런 생각을 하게 되자 그는 자신이 좋은 의도로 시작했던 행동들이 후회스럽게 생각되었다. 대체 왜 그런 결과가 나오게 된 걸까. 그는 분명 선의의 의도였고 사람들을 만나게 된 이후로 메릭은 더 행복해 진 것인데. 문제는 사회에 있었다. 그는 과학과 이성의 시대에 살고 있었고, 그것들, 근대의 무기들은 또한 산업을 발전시켰다. 산업은 소비를, 소비는 광고욕망을, 광고 욕망은 인간조차도 전시하고 홍보하고 호기심거리로 전락시켰다. 사회의 욕망에서 개인은 무력하며 포섭된다. 트리브스박사의 좋은 의도는 그대로 사회의 방향이 되어 서커스단장의 상업적 욕망이든, 과학을 신봉하는 의사이든 같은 지점에서 만나게 된다. 이 모두 소비의 시대가 낳은 결과다.

 

 

 

글·정재형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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