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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성의 시네마 크리티크] 잠을 깨운다는 것 <크라이 마초>
[정우성의 시네마 크리티크] 잠을 깨운다는 것 <크라이 마초>
  • 정우성(영화평론가)
  • 승인 2022.03.14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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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이 마초>가 시작되고 얼마 되지 않아 자연스럽게 “역시”라는 말을 중얼거리게 된다. 오프닝의 몇 장면을 보고 영화의 탁월함을 감식했다거나 하는 헛소리와 같은 감탄사가 아니라, 역시, 이번에도, 조쉬 웰즈(무법자 조쉬 웰즈)나 프랭키(밀리언 달러 베이비), 월트(그랜 토리노), 얼(라스트 미션)처럼 가족을 잃고 다시 (대안)가족을 찾는 이야기라는 것을 대번에 알아차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화가 조금 더 진행되면 <크라이 마초>가 이전에 영화들과 같지만은 않다는 것 또한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추격과 도주라는 장르의 틀을 지녔으면서도 장르적 연출은 너무 느슨하거나, 심지어 엉성하여 이러한 장르가 목적으로 하는 긴장감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자동차가 고장 나고 추격자에게 위협을 당하는 위기의 순간들은 황당할 정도로 손쉽게 해결되고 그 지속시간마저 짧아 영화의 목적이 추격과 도주가 아닌 추격과 도주 사이 휴식의 순간들에 놓인 드라마적 장면들 자체를 향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게 한다. 그렇다면 이것은 장르적 쾌감과 드라마 사이에서 균형을 이루다가 실패한 결과인가? 당연히 그렇지 않다고 단언할 수 있다. <크라이 마초>는 의도적으로 추격과 도주로 이루어진 이야기의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는 것을 끊임없이 지연시켜 어떻게든 휴식과 같은 틈새의 순간에 머무르고자 하는 영화이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시선

역시, 라고 중얼거렸던 것처럼 이스트우드의 탁월한 영화들에서 이야기는 특정한 구조를 반복한다. 이스트우드가 직접 연기하는 주인공이 과오 혹은 외적 사건으로 인해 아내, 딸, 가족과 결별했던 인물의 전사(前史)는 이야기의 장르적 사건에 투사되어 장르적으로는 해결되지만, 개인의 사적 전사는 완벽히 해결되지 않는다. 예컨대 그의 최고작인 <용서받지 못한 자>는 복수라는 장르적 목적은 이루어지지만, 윌리엄 머니의 폭력의 과오는 결국 반복된다. 때문에 영화 속 폭력에 대한 반성과 서부극이라는 장르의 반추로 주로 해석되는 <용서받지 못한 자>는 오히려 영화란 결국 폭력적 복수라는 비윤리적 쾌감이 서부극과 영화의 클라이막스이자 핵심임을 체험하게 하는 모순적이고 복합적인 형태의 작품이 된다.

이것은 <밀리언 달러 베이비>에서 멜로드라마적 감정은 성공적으로 이루어지지만, 프랭키가 친딸과 의절한 과거가, 매기(힐러리 스웽크)와의 유사-부녀 관계를 안락사를 통해 스스로 끊어버리게 되는 실패로 변주된다. 마찬가지로 근작인 <라스트 미션>에서 또한 가족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마약을 운반하고 그 과정에서 성접대를 받고 성매매를 하며 결국 감옥에 들어가게 되는 결말은, 가족과 화해하는 이야기의 결과는 반대로, 과연 이 영화가 가족주의를 온전히 긍정하고 있는지 의문을 갖게 한다. 즉 이스트우드의 영화는 장르적인 틀을 통해 이야기 속 갈등은 고전적으로 해소되지만, 그 이면에는 양가적으로 뒤섞인 알레고리의 갈등은 그대로 남아있다.

직접 시나리오를 쓰지 않는 이스트우드가 이렇게 주인공의 사적 갈등이 영화의 메인 플롯의 공적 갈등을 통해 해소되는 가장 보편적이고 고전적인 이야기 구조를 반복적으로 선택하면서, 이야기 이면에 이항대립으로 거울처럼 마주한 두 세계가 완벽히 봉합되지도 실패하지도 않는 기묘한 상태의 결말을 고집하는 것은, 그가 ‘현실’과 ‘영화’라는 예술을 바라보는 관점을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그는 영화란 일종의 꿈과 같은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므로 영화는 현실에서 이루지 못하는, 할 수 없는 것들을 가능케 하여 즐거움 또는 억눌린 욕망의 해소를 이루지만 결국 하나의 꿈이기에 깨어나야만 한다. 그리고 그 깨어난 현실은 모순적이고 양가적인 세계이다. 다만 깨어나지 않으면서 온전히 봉합되는 결말을 이룰 수 있는 것은 <그랜토리노>처럼 죽음으로만이 가능한 것이다.

 

마초의 울음

역시, <크라이 마초>에서도 이스트우드는 잠에서 깬다. 이전의 영화들을 거시적인 관점에서 해석한 은유적 표현이 아니라 마초라는 수탉의 우렁찬 울음소리로 휴식과 같은 단잠에서 깨어난다. 그 단잠이 품고 있는 꿈은 마르타(나탈리아 트라벤)와 그녀의 마을 그 자체이다. 그곳은 낙마 사고로 로데오라는 정체성을 상실하고 교통사고로 가족을 모두 잃은 마이크의 결핍을 채워주는 장소이다. 마르타가 마이크와 라파엘(에두아르도 미넷)에게 베푸는 친절과 마이크를 향한 그녀의 애정에는 특별한 이유가 없으며, 오로지 마이크가 동물들을 돌보며 로데오 시절의 정체성을 되찾고 마르타와 그녀의 손녀들을 통해 가족을 되찾는 꿈의 장소, 영화적 장소로 그 당위성을 획득하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했듯 이스트우드의 세계에서 장르의 목적은 늘 이루어져야 하며 그 목적지에는 영화의 꿈과 같은 순간에서 깨어난 모순적인 현실이 기다린다. 라파엘은 자식을 소유물이자 짐처럼 생각할 뿐인 어머니 레타(페르난다 우레졸라)로부터 도망쳤지만, 목적지에 기다리는 것은 자신을 재산 다툼의 도구로 사용할 생각인 아버지 하워드(드와이트 요아캄)뿐이다. 그러므로 마이크와 라파엘에게 도주의 도착점이란 유토피아가 아닌 그들이 도망쳤던 출발지와 크게 다르지 않은 곳이다. 때문에 <크라이 마초>는 도주와 추격이라는 장르의 틀을 빌려 장르의 틈새에서 휴식을 취하며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을 지연시키는 기이한 방식을 택한 것이다. 마이크는 자신에게 사진으로만 남은 로데오 시절처럼, 사진 속 어린 시절의 순수함을 잃고 진정한 가족을 갈구하며 마초라는 이름의 남자다움을 동경하는 라파엘을 어른의, 자신의 분신을 바라보는 마음으로 현실이라는 목적지로 향하는 것을 유예하며 꿈 안에 남으려고 애쓴다.

하지만 꿈은 깨기 마련이고 라파엘은 결국 목적지로, 현실로 돌아간다. 그는 마이크라는 픽션적 아버지에게 마초를 건네고 핏줄인 현실의 아버지에게로 향한다. 강인함, 남자다움, 용기 있음을 뜻하는 마초라는 이름의 수탉은 그에게 고통스러운 삶을 견디게 해주는 존재이자 자신에게 없는 것을 투여하는 대상이었지만, 마이크와의 여정을 통해 라파엘은 강인함, 남자다움이 아닌 타인과 더불어 건강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얻었고 더는 마초가 필요하지 않다. 이제 마초가 필요한 것은 마이크이다. 강인함과 남자다움을 동경하는 아이와 그것이 무의미해진 노인의 삶은 다르므로 그에게 마초란 라파엘과는 정반대의 의미로 읽힌다. 90세라는 너무 긴 세월 동안 현실과 마주했기에 이제 꿈으로 죽음으로 빠져드는 노인을 깨우기 위해 마초는 운다. 그러므로 라파엘과의 모험과 모든 픽션이 끝난 자리, 마이크와 마르타의 춤의 순간 혹은 꿈과 같은 이미지가 지나간 뒤에 남은 어두컴컴함 위로 수탉의 울음소리가 울려퍼진다. 이 마지막 울음소리는 영화의 끝이 죽음이나 픽션이 소멸하는 작별인사가 아니라 언젠가 다시 시작 될, 휴식의 암지일 뿐이라 말하는 것 같다.

 

영리하고 기묘한

<그랜토리노>부터 관객들은 이스트우드의 영화 인생이 끝난 것처럼 '서부사나이의 작별인사', '유언'과 같은 말들을 쉽게 이야기했지만 정작 이스트우드는 현실과 영화와 작별을 할 생각이 없다. 그저 꾸준하고 묵묵히 <J 에드가>, <아메리칸 스나이퍼>와 같은 문제작들을 만들고 <설리>, <라스트 미션>과 같은 훌륭한 작품을 여전히 만들고 있다. 그는 단지 휴식을 취할 뿐이다. 마초의 울음 소리를 들으며 수십번 다시 깨어나 우리에게 비슷하지만 다른 이야기를 들려줄 것이다. <크라이 마초>는 장르와 드라마를 절묘하게 결합시키며 이야기의 구조적 쾌감과 삶의 양가성에 대해 밀도 있게 밀어붙였던 그의 탁월한 작품들에 비견할 것은 아니지만, 스스로 쌓아온 필모그래피의 반복적 구조를 뒤트는 기발함 그리고 ‘마초’라는 과거 배우로서 자신의 이미지를 동물에 부여하여 복합적으로 읽히는 장치로 변용한 것은 일면 단순하게 느껴질 수 있는 영화에 풍부한 생명력과 감흥을 불어넣는다. "역시 클린트 이스트우드"라고 감탄할 수밖에 없는, 거장이 말년에 만들 수 있는 느슨하지만 영리하고 기묘한 작품이다.

 

사진 출처 : 네이버 영화



 
글·정우성
2021년 영평상 신인평론상을 받았다. 현재 예술강사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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