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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식의 시네마 크리티크] 봉준호 영화의 희생양⑤-희생양 메커니즘의 표본, <기생충>
[임정식의 시네마 크리티크] 봉준호 영화의 희생양⑤-희생양 메커니즘의 표본, <기생충>
  • 임정식(영화평론가)
  • 승인 2022.04.04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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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은 희생양 모티브와 관련된 봉준호 영화의 특징이 집약되어있는 영화이다. 우선 <기생충>에는 ‘재난(위기)-범죄-징후-처벌(폭력)’로 구성되는 희생양 메커니즘이 잘 드러나 있다. 박 사장 저택에서 발생한 다송의 생일파티 장면이 핵심이다. 또 살인을 비롯해 문서 위조나 경력 부풀리기와 같은 범죄, 죽음과 추방(고립), 신성화의 부재와 불안의 잠복 등이 복합적으로 나타난다. 희생양 징후의 측면에서 최상류층 인물과 하층 계급 인물이 동시에 희생양이 되는 점도 눈에 띈다. 무엇보다 <설국열차>와 <옥자>의 근간이 되는 자본주의 시스템이 권력과 계층의 문제로 확장되어 나타난다. 순환의 플롯 역시 인류 역사의 과거, 현재, 미래를 압축해서 보여준다.

<기생충>에서 희생양 메커니즘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공간은 박 사장의 정원이다. 그릇 안에서 뽀글뽀글 끓는 수준이던 사건들이 다송의 생일파티가 열린 정원에서 활화산처럼 터진다. 살인사건이 돌발적으로 발생하면서 정원은 아수라장이 되고, 계급 사다리가 일시에 무너진다. 이 시퀀스에서 박 사장 가족, 기택 가족, ‘지하 생활자’ 근세가 처음으로 한 공간에 모인다. 그 이전까지 <기생충>의 주요 서사는 박 사장 가족-기택 가족, 기택 가족-문광 부부, 박 사장 가족-문광 사이에서 진행됐다. 그러다가 마지막 장면에서 세 그룹의 모든 가족이 한 공간에 모인다(지하실에서 숨을 거둔 문광은 제외된다). <기생충>의 서사는 클라이막스인 이 생일파티 시퀀스를 향해 세 방향에서 숨 가쁘게 달려온 셈이다.

박 사장의 정원은 봄날 오후의 청량한 햇살과 사랑이 넘치는 공간에서 카오스의 세계로 돌변한다. 박 사장이 강조하는 ‘선’이 지워졌기 때문이다. 예기치 못한 재난으로 인한 혼돈과 무질서는 다양한 희생양을 만들어낸다. 이 재난에서 박 사장, 기택의 딸 기정, 박 사장의 가사도우미인 문광의 남편 근세가 죽음을 맞이한다. 그들은 희생양 징후가 농후한 인물이다. 우리 사회의 최상류층, 반 지하방에 사는 소시민의 딸, 박 사장 집의 지하에 숨어 사는 사업 실패자이다. 집주인 몰래 지하실에 거주하면서 밤이면 음식을 훔쳐먹고, 경력을 속인 채 과외교사로 일한 행위는 범죄에 해당한다.

 

 

<기생충>에서는 세 인물군에서 모두 희생양이 발생한다. 그러한 점에서 <기생충>은 봉준호의 다른 영화들보다 더 현실적이다. 르네 지라르는 한 사회의 중간 계층에서 멀어질수록 희생양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한다. 박 사장은 IT 기업 CEO로서 우리 사회의 최상류층에 해당한다. 그는 고급 주택가의 화려한 저택에서 풍족하고 행복한 삶을 누린다. 박 사장이 희생양이 되는 이유는 그가 행사하던 힘과 권력 때문이다. 그는 말 한마디로 운전기사와 가사도우미를 해고하는 권력자이다. 계급의식도 철저해서 하층 계급의 인물이 ‘선’을 넘는 것을 용인하지 못한다. 그러한 점에서 박 사장은 <오이디푸스 왕>의 오이디푸스, 프랑스 대혁명 당시의 마리 앙투아네트 왕비를 연상시킨다. 그들은 자신이 가진 권력 때문에 죽음을 맞이하거나 추방당한다.

기택 가족과 문광 부부는 박 사장에게 ‘기생하는 인물’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전원 백수이던 기택 일가족은 홍수가 지면 빗물이 목까지 차오르는 반 지하방에서 피자 박스를 만드는 일을 하며 살다가 박 사장 집에 과외교사, 운전기사, 가사도우미로 취업한다. 특히 기정은 미국 유학파로 가장해 박 사장의 아들 다송의 그림 치료를 담당하면서 각별한 신임을 얻는다. 박 사장과의 관계에서 보면, 기정은 기택의 가족 중에서도 가장 돋보이는 인물이다. 근세는 사업에 실패한 후 박 사장네 저택의 지하실에 거주하면서 아내의 도움으로 생활한다. 말하자면 ‘바퀴벌레에 기생하는’ 인물이다. 그러한 점에서 근세가 박 사장이 아니라 기정을 죽인 행위는 상징적이다. 

기택의 아내 충숙은 자신들을 바퀴벌레에 비유한다. 박 사장 가족이 캠핑을 떠난 빈집에서 온 가족이 파티하는 장면에서다. 갑자기 박 사장이 돌아온다면 자신들은 바퀴벌레들이 순식간에 흩어지는 것처럼 행동할 것이라고 말한다. 이 대사 직후에 실제로 초인종이 울린다. 쫓겨난 문광이 돌아온 이유는 지하 생활자인 남편 때문이다. 곧이어 주인이 없는 저택에 ‘기생하는 인물’들이 모두 모이고, 서로 싸우다가 살인까지 저지르는 비극이 발생한다. <기생충>에서 가장 서늘한 장면이다. 이 싸움에서는 두 명의 희생양이 발생한다. 문광은 기택 가족과 몸싸움을 하다가 죽음을 맞이하고, 영어 과외교사 기우는 뇌수술을 받은 끝에 정신이상자가 된다. 기우는 정신적인 측면에서 사회에서 추방된 셈이다.

 

<기생충>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모든 인물이 희생양이 된다는 것이다. 박 사장의 아내 연교와 두 자녀도 예외가 아니다. 특히 다송은 이중의 처벌을 받는다. 그는 밤에 우연히 음식을 훔치러 지하에서 올라오던 근세를 본 이후 정신적인 충격을 받아 심리 치료를 받는다. 생일파티에서는 피와 죽음의 카니발을 겪으며 혼절한다. 다송의 인디언 텐트는 자연/문명의 대립을 상징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연교는 남의 말을 잘 믿고 그래서 잘 속는 ‘착한 부자’이다. 충숙의 해석에 따르면, 연교가 착한 이유는 돈이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돈의 출처는 박 사장이다. 따라서 박 사장의 죽음과 함께 연교, 다송, 다혜의 부와 사회적 지위는 신기루처럼 사라질 것이다.

그런데 봉준호의 다른 영화와 마찬가지로 <기생충>에서도 희생양에 대한 신성화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지라르에 의하면, 재난은 희생양에 대한 신성화를 통해 마무리된다. 재난에 휩싸였던 사회는 희생양의 신성화 이후에 비로소 질서를 되찾는다. 대중은 재난의 책임을 희생양에게 전가하지만 동시에 희생양 덕분에 재난이 종식되었다고 믿는다. <기생충>에서도 표면적으로는 재난이 종식된다. 박 사장의 저택에는 새로운 인물이 입주하고, 기택은 스스로 ‘지하 생활자’가 된다. 그럼 이 세계는 질서를 회복한 것일까? 아니다. <기생충>에서는 희생양을 신성화하기는커녕 희생양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은폐된다.

이 지점에서 <기생충>은 냉혹할 정도로 현실적이다. 그 현실성은 순환 구조를 통해 나타난다. 박 사장-기택 가족-문광 부부의 관계가 독일인 입주자-(새 가사도우미)-기택의 관계로 새롭게 형성된다. 박 사장이 독일인으로, 근세가 기택으로 대체된다. 이때 인물만 바뀌었을 뿐 계급 구조는 그대로 유지된다. 그렇다면 다송의 생일파티에서 발생한 재난은 언제라도 반복될 수 있다. 희생양에 대한 추모나 신성화도 이루어지지 않았으니 재난 발생의 가능성은 언제나 열려 있는 것이다. <기생충>은 순환과 반복을 거듭하는 인류 역사를 압축해서 보여주는 셈이다. 희생양이 세 인물 그룹에서 동시에 발생한 점도 마찬가지다. 실제로 희생양은 모든 시대, 모든 계층에서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점에서 <기생충>은 희생양 메커니즘의 표본이자 봉준호 영화의 특징이 응축되어 있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글·임정식
영화평론가. 영화를 신화의 관점에서 분석하는 작업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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