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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성희의 시네마 크리티크] 어버이날 부모님과 함께 보면 좋을 영화 <말임씨를 부탁해>
[서성희의 시네마 크리티크] 어버이날 부모님과 함께 보면 좋을 영화 <말임씨를 부탁해>
  • 서성희(영화평론가)
  • 승인 2022.04.29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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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옥 배우가 연기 인생 65년 만에 첫 주연을 맡아 화제가 된 영화 <말임씨를 부탁해>는 고령화 시대에 누구나 겪을법한 이야기를 현실감 있고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

대구에 사는 85세 정말임 여사는 자식 도움은 1도 필요 없다며 나홀로 라이프를 즐기며 살고 싶어 한다. 근데 아들이 내려오기로 한 날, 계단에서 발을 헛디뎌 팔이 부러지고 만다. 혼자 독립적인 삶을 살고 싶은 꼬장꼬장한 할매의 굳은 의지와는 달리, 내 몸이 내 맘 같지 않다. 서울 사는 외동아들은 어머니가 혼자 사는 게 걱정돼 집에 CCTV도 설치하고 요양보호사도 들이지만, 어머니는 영 탐탁지 않다.

 

<말임씨를 부탁해>로 첫 장편 데뷔를 한 박경목 감독은 여러 단편영화를 통해 벤쿠버국제영화제, 로테르담국제영화제, 시체스국제판타스틱영화제 등 해외 영화제의 관심을 받으며 장편 영화를 준비해왔다. 감독은 연로한 부모님이 혼자되어 자식과 떨어져 멀리 사는 경우 공감할 수 있는 여러 상황들을 생활 연기에 뛰어난 배우들과 맛깔나게 버물렸다. 그래서 이 영화에서 빛나는 세 배우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나 혼자 잘 할 수 있어”

먼저 주인공 정말임 여사를 맡은 김영옥 배우는 아들에게 부담 주기 싫어하는 속마음과 달리 무뚝뚝한 경상도 할머니다운 모진 말들을 내뱉는다. 영화에 나오는 경상도 할매가 참 무뚝뚝하긴 하다. 경상도 사람이라고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자기 할 말만 하고 듣기 싫은 말은 듣지도 않고 전화를 툭 끊어버린다. 서울서 아들이 온다고 하니까 “와 자꾸 내려온다 캐산노.”라고 버럭 소리를 지르지만 바로 시장에 가서 고기반찬 사다가 음식도 차려 놓고 힘들게 대청소까지 하는데 입가에는 어느새 미소가 번져있다. 할머니가 살아온 모진 세월의 굴곡만큼 모진 말을 내뱉지만, 속내는 자식 걱정을 한시도 놓지 않는 우리네 어머니의 모습이다.

 

김영옥 배우는 그동안 수많은 작품에서 맛깔난 조연으로 만났지만, 주연은 65년 연기 인생에서 처음이다. 요즘 윤여정 배우, 영화 <69세>의 예수정 배우 등 연륜 있는 여성 연기자들이 점차 늘어가고 있다. 이런 배우들이 많아지는 건 관객 입장에서 대환영이다. 늘 젊은 배우가 주인공인 영화가 아니라 다양한 연령층의 뛰어난 연기자가 많이 나와야 더 다양한 이야기를 담을 수 있고 영화의 폭도 더 넓어진다.

 

말임씨의 아들 종욱 역의 김영민 배우 역시 좋은 연기를 선보인다. 서울에 살고 있지만 어머니에게 갑작스러운 사고나 자질구레한 일이 생기면 바로 내려와야 하는 외동아들이다. 하지만 녹록치 않은 서울살이에 일이 생길 때마다 신경 쓰며 내려오는 일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거기다 외동아들이라 서로 사정 봐주며 대신해줄 형제도 없다. 부모와 자식이 사는 물리적 거리는 효자이고 싶은 마음과 잦은 마찰을 야기한다. 그렇다고 어머니 입장에서 평생 살던 곳을 떠나 자식 집에 들어가 산다는 것도 쉬운 결정은 아니다.

 

극 중 말임을 돌보는 요양보호사 미선 역을 맡은 박성연 배우의 존재감도 좋다. 미선에게는 24시간 돌봐야 하는 엄마가 있는데 자신의 부모를 병원에 모시기 위해 남의 집 요양보호사로 들어가야 하는 아이러니를 지닌 인물을 천연덕스럽게 연기한다.

 

효자가 되고 싶지만 멀리 사는 아들 vs 요양보호사

영화 메인 카피가 “가족 같은 남, 남 같은 가족”이다. 영화는 고령화 사회 속 노인 부양 문제의 핵심을 보여준다. 부양은 자신의 힘만으로는 생활을 유지할 수 없는 사람에 대한 생활상의 원조를 의미한다. 85세가 된 노모는 아직도 자기 혼자 다 할 수 있다고 고집을 피우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정말임 할머니의 입장에서 보면, 평생 자기를 돌본다는 게 뭔지도 모르고 억척같이 살아왔는데 자기를 돌보는 사람, 그것도 아무 하는 일 없이 놀다 가는 것 같은데 거금 백오십만원을 받아 가는 감정 노동자를 받아들이는 건 어려운 일이다.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노인네 혼자 사는 집에 통장이 없어지는 것 같고, 냉장고의 음식도 자꾸 없어지는 것 같다는 핑계를 대며 불편한 마음을 드러낸다.

 

자식이 독립해 부모 가까이 살면서 서로 도움을 줄 수 있으면 좋지만, 아들 종욱의 상황은 여의찮다. 영화에서는 멀리 사는 아들 종욱과 달리 생판 남이지만 가까이 사는 요양보호사 미선과는 미운 정 고운 정이 들면서 새로운 유사 가족관계를 형성한다. 이 지점에서 영화는 우리에게 “가족이란 무엇일까?” “가족을 위한다는 것이 무엇일까?”라는 속 깊은 질문을 던진다.

 

혈연을 매개로 한 부양 너머

사람은 나고 자라면서 두 번의 가족을 경험한다. 출생해서 부모 밑에서 자라온 가족과 성인이 되어 결혼과 함께 새롭게 형성하는 가족으로 전자를 원가족, 후자를 형성가족이라고 한다. 자식이 결혼을 하게 되면 원가족으로부터의 독립이 중요하다. 종욱은 결혼했고, 아이도 낳아 기르며 새로운 가족과 살고 있다. 독립된 삶이란 남편이나 아내의 원가족에 배려하면서 원가족과는 자연스럽게 분리되고, 자신이 형성한 현재 가족을 우선순위에 두어야 한다. 하지만 종욱은 당장 아픈 노모에게 마음이 쓰인다. 하지만 멀리 떨어져 사는 어머니에게 실제 큰 도움도 되지 못하고, 현재 가족에게는 경제적으로나 현실적으로 마찰을 야기한다.

 

영화는 아들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은 어머니, 그런 어머니에게 효자가 되고 싶지만 현실적인 벽을 넘지 못하는 아들, 남이지만 가족보다 더 가까이에 있는 요양보호사, 이들의 관계 속에서 우리의 노후를 그려보게 한다. 영화는 우리에게 혈육으로 규정된 가족을 너머 사회적 돌봄에 관한 곧 다가올 미래를 생각하게 한다.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이지만 멀리 떨어져 있으면 한번 만나러 오는 것도 쉽지 않다. 특히 멀리 떨어져 혼자 사는 노인을 돌본다는 건 말처럼 쉽지 않다. 하지만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 관계가 아니더라도, 가까이 있는 사람은 자주 찾아가는 돌봄이 용이하다. 그렇다면 누가 돌봄의 주체가 되어야 할까? 영화는 피가 섞인 부모 자식 관계인지를 따지는 것보다 ‘할 수 있는 사람이 하면 된다.’라고 말한다. 지금은 가까운 직계혈족이나 배우자에게 상호 간의 부양의무를 지우고 있지만, 앞으로는 넓은 의미로 국가의 사회보장제도에 의한 부양이 더 강화되고 거기서 건강한 관계가 생겨나기를 응원한다. 말임씨와 미선씨처럼.

 

글·서성희

영화평론가 · 영화학박사. 대구경북영화영상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으로 독립영화전용관 오오극장 대표, 대구영상미디어센터 센터장으로 영화·영상 생태계를 살리는 일에 동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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