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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긴 터널과 희미한 빛의 외교 上
전쟁의 긴 터널과 희미한 빛의 외교 上
  • 강태호 l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편집위원장, 전 한겨레 평화연구소장
  • 승인 2022.06.30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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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는 돈바스 전투에서, 미국·유럽 등 서방은 대러시아 제재인 ‘경제전쟁’에서 고전 중이다. 미국과 유럽의 대러 에너지 전쟁에서, 적어도 올해 안에 러시아가 손해를 볼 가능성은 거의 없다. 5월말 유럽의 석유금수 조처는 자기 발등을 찍은 격이 됐다. 식량과 비료는 어떤가. 데이비드 비즐리 유엔 세계식량계획(WFP) 사무총장은 “우크라이나 곡물 수확기인 7・8월을 앞두고 러시아가 항구를 폐쇄한 것은 세계를 향한 식량전쟁 선언”이라고 주장했다. 에너지 금수가 자기 발등을 찍은 것이라면 경제봉쇄의 대러제재는 세계적인 식량위기 앞에 러시아가 식량을 무기로 삼게 한 것이다. 

제재는 러시아 경제의 미래를 위협할 수는 있어도, 푸틴을 굴복시키거나 전쟁을 멈추지는 못한다. 제재는 국가 전체에 대한 징벌이자 무차별적인 공격이며, 오히려 러시아인들의 반발을 불러일으켜 푸틴에 대한 반대를 무력화시킨다. 일방적 제재란 없다. 제재는 부메랑처럼 돌아온다. 경제전쟁은 점점 자기 파괴적이 되면서 전 세계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또한 미국 주도의 대러제재가 전쟁 반대의 명분 하에 고통 분담을 요구하는 징벌적 조처로 반발을 초래하는 반면, 러시아의 맞대응은 ‘채찍과 당근’ 정책으로 나타나고 있다. 제재에 가담한 비우호적 48개국에 대해서는 고통스러운 보복조처를 취하고, 중립적이거나 우호적인 국가들에는 에너지 식량 등의 보상적 조처와 새로운 새로운 경제협력의 이익을 제시하고 있다. 일방적 대러 제재는 세계적인 경제의 상호의존 체제라는 현실과 러시아의 힘을 무시한 무모함의 발로다. 

 

제재를 무력화하는 에너지 가격의 급등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 후 100일 동안 화석연료 수출로 올린 수익은 약 126조 원으로 파악됐다. 이는 제재의 무력화를 보여준다. <워싱턴 포스트>(6월 14일자)가 핀란드 ‘에너지 및 청정 공기연구센터’의 보고서에 근거해 전한 바에 따르면, 2월 24일 우크라이나 개전 이후 5월까지 러시아 화석연료(원유 천연가스 석탄) 수입은 930억 유로(약 125조 7,800억 원)로 치솟았다. 최대 수입국은 중국으로, 이 기간 130억 달러(약 16조 7,830억 원)가 넘는 화석연료를 사들였다. 독일이 약 126억 달러(약 16조 2,670억 원)로 그 뒤를 이었다. LNG 최대 수입국은 프랑스였으며, 독일은 러시아 파이프라인 가스를 가장 많이 수입했다. 중국은 최대 석유 수입국, 일본은 최대 석탄 수입국이었다.  

특히 영국 경제전문지 <파이낸셜 타임스>(6월 16일자)는 유럽연합이 올해 말까지 러시아 원유 수입 90% 중단을 결의하는 동안, 인도는 러시아 원유 수입의 큰손으로 떠올랐다고 전했다. 아제이 샤하이(Ajay Sahai) 인도 수출기구연맹(FIEO) 최고경영자는 이 신문에서 “인도에서 경유 수입 문의가 쏟아지는데, 그 중 유럽 국가들도 있다”고 말했다. “인도 정유회사들이 러시아 원유를 구입할 때 배럴당 25달러 이상 대폭 할인을 받고, 해외 시장에서 러시아를 대신해 정제유 제품 대체 공급처 역할을 하면서 ‘하늘을 찌를 듯한’ 마진을 얻고 있다”라는 게 이 신문의 주장이다. 실제로 유조선 운송 정보 데이타 분석기관인 케플러(Kpler)는 인도가 5월 러시아에서 구입한 원유는 1일 84만 배럴로, 4월의 39만 배럴 대비 2배 이상으로 늘었다. 6월에는 1일 100만 배럴로 더 늘 것으로 이 신문은 전망했다. 2021년 5월 기준 인도의 원유 수입량 중 러시아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2%에 불과했으나, 1년 뒤에는 무려 25%에 달한 것으로 파악됐다. 

게다가 인도는 자체 정유시설에서 원유를 휘발유, 디젤 등으로 가공 수출해 이익을 올리고 있다. 인도 경제전문지 <비즈니스 스탠더드>에 따르면, 인도의 대규모 정유회사 릴라이언스 인더스트리는 5월 시카항을 통해 러시아산 원유를 총 1,081만 배럴 수입하고, 유럽과 호주로 각각 경유 256만 배럴과 200만 배럴을 수출했다. 4월에는 미국에 휘발유 89만 배럴을 팔기도 했다. <월스트리트 저널>(6월 1일자)에서는 릴라이언스 전세 유조선이 4월 21일 휘발유 성분인 알킬레이트를 싣고 예정 목적지 없이 시카 항에서 출발해, 5월 22일 화물을 뉴욕에 하역했다고 확인했다. 또 다른 인도 대형 정유회사인 나야라(Nayara) 에너지도 호주행 유조선에 경유 34만 배럴을 선적했는데 러시아 국영 석유회사인 로즈네프트가 이 회사 지분을 소유하고 있다. 즉, 이 인도 회사와의 거래는 곧 러시아와의 거래인 셈이다.

에너지 가격은 제재가 강한 만큼 오른다. 러시아를 대체할 에너지 공급은 단기간 확보될 수 없다. 유럽이 러시아산 에너지 수입을 줄여도 러시아의 수익은 줄지 않는다. 서방이 러시아 제재와 에너지 의존도를 줄이면서 5월의 러시아 에너지 수출은 침공 전의 지난해 5월 대비 15% 감소했다. 그러나 에너지 가격 급등으로 수출가격은 평균 60% 증가했다. 또한, 러시아는 감소한 수출량 이상을 중국, 인도에서 보충할 수 있다. 그 결과 러시아 중앙은행은 러시아의 경상수지 흑자가 올해 첫 4개월 동안 958억 달러(약 120조원)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2021년 같은 기간(275억 달러) 대비 3배 이상으로, 1914년 이후 최고 수준이었다고 한다. 이에 대해 400여 개 민간 국제 금융회사 연합체인 국제금융연구소(IIF)는 4월 보고서에서 러시아의 경상수지 흑자가 올해 연말까지 최대 2,400억 달러(약 296조 4,200억원)에 달할 것이라고 추정했다. 

이후 <월스트리트저널>(6월 16일자)에 따르면, 이 연구소의 6월 보고서는 국제 원자재 가격 고공행진과 러시아산 원유 및 천연가스 수출이 계속될 경우, 올해 러시아의 경상수지 흑자는 3,000억 달러 이상이 될 것으로 추정했다. 이는 서방의 제재 조치로 동결된 러시아 외환 보유고에 맞먹는 수준이며, 이처럼 “러시아의 현 경상수지 흑자 구조가 유지된다면 제재는 역효과가 날 것”으로 보고서는 전망했다.(1) 또한 영국 시사 주간지 <이코노미스트>(5월 13일자)가 러시아의 주요 교역대상 8개국 통계를 분석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 후 전체 수출액이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8% 증가한 반면, 수입액은 44% 감소했다. 러시아로서는 ‘기록적인 무역 흑자’를 달성한 셈이다. 

한편, 전문가들은 러시아가 올해 말부터 경기가 침체되며 제재와 전쟁으로 인한 악영향이 가시화할 것으로 보고 있다. 블룸버그 산하 경제연구소 블룸버그 이코노믹스는 “현재 기록적 흑자는 경기 불황기에 수출보다 수입이 급격히 감소하며 나타나는 불황형 흑자”라며 “곧 고통스러운 조정이 뒤따를 것”이라고 분석했다. <블룸버그 통신>이 5월 31일 경제전문가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러시아 GDP는 올해 10% 감소하고 내년에도 1.5% 줄어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제로 6월 1일 러시아 경제부는 4월의 국내총생산이 -3%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5월의 1.3%에 비해 급락한 것이다. 6월 16일 개막한 상트페테르부르크 국제경제포럼(SPIEF)에 참석한 러시아 고위 경제 관료들도 경제가 어려운 상황으로 가고 있음을 인정했다. 6월 16일, 엘비라 나비울리나(Elvira Nabiullina) 러시아 중앙은행 총재는 “상황이 매우 복잡하고 도전적이며 계속 변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나비울리나 등 러시아 정책 담당자들은 금융기관들에 대한 제재 보다는 수입과 러시아산 제품의 수출에 대한 제한을 더 우려했다.

그러나 독일 국제안보문제연구소(German Institute for International and Security Affairs)의 러시아 경제 전문가인 야니스 클루게(Janis Kluge)는 <월스트리트저널>(6월 16일자)에 “크렘린은 몇 년의 불경기를 견디며 더 나은 날을 기다릴 수 있다고 확신하며, 러시아는 서방의 제재를 성공적으로 이겨냈다며 한층 대담해졌다”고 지적했다. 푸틴 대통령은 6월 9일 SPIEF에 앞서 젊은 기업인들과 만나 “서방은 러시아산 원유와 가스를 수년간 끊지 못할 것”이라면서. 서방은 러시아를 봉쇄하려다 스스로를 봉쇄해버렸다고 주장했다. 무엇보다도 나비울리나 총재가 이끄는 중앙은행은 전쟁 발발 직후 기준 금리를 9.5%에서 20%로 높이는 긴급조처를 단행했지만 이후 6월 10일까지 4차례 금리를 인하해 전쟁 전의 9.5%로 되돌려 놓음으로써 서방을 놀라게 했다. 

2017년 영국의 금융지 <더 뱅커>는 나비울리나를 유럽 최고의 중앙은행장으로 뽑았다. 그런 만큼 푸틴의 절대적 신임을 받는 나비울리나와 안톤 실루아노프 러시아 재무장관은 달러 유출 통제와 가스가격의 루블화 결제 요구 등 적절한 통화금융정책 수단을 동원해 살인적인 인플레와 국가 채무 불이행(디폴트)의 우려를 불식시켰다. 그 결과 전쟁 직후 1달러 당 140루블대까지 가치가 급락했던 루블은 전쟁 전의 70루블 수준을 회복한 뒤 더 가치가 상승해 6월엔 50루블대를 기록했다. 이처럼 달러 대비 25% 가치가 상승한 루블은 2022년 세계 최고의 강세 통화가 됐다. 사상 최대의 물가상승에 대응해 금리 인상과 통화긴축에 나설 수밖에 없는 미국 유럽과는 달리 9,000억 달러 이상을 내다보는 외환보유고와 강한 루블은 러시아가 강력한 재정확대 정책을 통해 경기부양에 나설 수 있는 토대가 될 수 있다. 

지금 흔들리는 것은 러시아가 아니다. 미국 유럽 등 서방 진영이다. 

 

구멍 뚫린 제재와 흔들리는 전선

아모스 호흐슈타인(Amos Hochstein) 미국 국무부 에너지안보 특사는 6월 9일 상원 청문회에 출석해 “유가 급등이 서방 제재 효과를 상쇄했으며, 중국과 인도가 대량 구매에 나서면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 이전보다 더 많은 에너지 수출 수익을 거둘 수 있다”고 시인했다. 그럼에도 바이든 행정부는 침공 초기 중국 인도에 대해 러시아와의 경제협력은 러시아의 침공을 지원하는 것이라며 위협하던 때와 달리 이를 묵인하는 태도다. 세계 최대의 에너지 수입국들인 중국 인도마저 러시아 에너지를 수입하지 않을 경우, 120달러 선에서 유지되고 있는 유가는 150달러를 넘어 어디까지 갈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이들 국가에 러시아가 할인가로 에너지를 공급하는 것이, 가격 안정에 기여하는 측면이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유럽연합과 영국이 러시아 원유를 실어나르는 유조선들의 보험가입 차단조처를 이행하려 하자, 미국 정부가 유럽 동맹국들에 우려를 표명했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파이낸셜타임스>(6월 16일자)는 소식통을 인용해 영국등 보험산업에 지배적인 지위에 있는 유럽국가들은 러시아 원유 운반 유조선의 보험가입을 원천차단하면 상당한 효과가 있을 것이나 유가는 더 급등할 것이며, 미국은 이를 더 심각한 문제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제재의 본질이 그렇듯, 이는 대규모 해운회사를 운영하는 그리스 등에 큰 타격을 가할 것이다. 이미 원유를 비롯한 원자재 가격 급등과 공급망 붕괴 등의 전방위적인 타격을 입은 해운 물류업계는 러시아 노선 운항 중단에다 우크라이나 물류의 70%를 차지하는 오데사 항구가 폐쇄되면서 생긴 항만 적체까지 포함해 이중삼중의 피해를 입을 것이 뻔하다. 게다가 이 제재가 시행되더라도 러시아가 중국, 인도 등에 수출하는 원유공급을 차단할 수 있을지는 분명치 않다. 이들 지역에는 러시아가 이런 추가 리스크를 감안해 보다 할인된 가격으로 공급하거나 러시아 정부나 공적 기관이 보험보증을 대리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대러 제재의 에너지 전쟁에서 최대이익을 보는 것은 인도, 중국 등 러시아에 우호적(중립적)인 국가들이다. 그러나 공급 측면에서 보면 세계 최대 에너지 생산국들 중 하나인 미국도 엄청난 이익을 보고 있다. 게다가 미국은 세계최대 식량 수출국이다. 결국, 가장 큰 피해를 보고 있는 것은 유럽국가들이다. <월스트리트저널>(6월 13일자)에 따르면, 6월 중순의 유럽 천연가스 가격은 미국보다 3배 높았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3월 8일 행정명령으로 러시아 원유 및 일부 석유 제품과 LNG 그리고 석탄의 수입금지(러시아 에너지 분야에 대한 미국의 투자 금지 포함)를 발표했다. 그리고 “유럽의 동참을 요구하지 않겠다”라며 그 이유를 밝혔다. “우리는 모든 유럽 국가를 합친 것보다 더 많은 원유를 국내에서 생산한다. 사실 우리는 에너지 순수출 국가다. 따라서 우리는 남들이 할 수 없는 이(금수) 조처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샤를 미셸 유럽연합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5월말 유럽의 러시아산 석유금수 조처에 합의한 뒤 이렇게 장담했다. “이번 합의는 러시아산 석유 수입 2/3 이상을 아우를 것이며, 러시아 ‘전쟁 기계’에 대한 거대 자금원을 차단할 것이다.” 사실 미국과 유럽은 그동안 제재가 양날의 칼이라는 걸 모른다는 듯 ‘러시아 죽이기’에 열중했다. 따라서 지금의 현실은 테드 카펜터(Ted Carpenter) 카토 연구소(Cato Institute)국방 및 외교 정책 선임 연구위원이 이미 지적했듯이 미국이 모든 나라에 러시아에 대한 경제전쟁에 협력하도록 압력을 가하면서 “자신들의 징벌적 조치가 러시아 국민이나 세계 경제에 얼마나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완전히 무관심한 태도를 보인” 결과다.(2)

미셸 상임의장의 기대와는 달리, 현재 의문이 제기되는 건 러시아가 아니라 유럽의 ‘전쟁 수행 의지’다. 싱크탱크인 유럽외교협의회(ECFR European Council on Foreign Relations)가 6월 초 유럽 10개국 시민 8,000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했다. 6월 15일 발표한 결과, 러시아를 패배시켜야 한다는 응답은 22%, 우크라이나가 영토를 러시아에 양보해 전쟁을 끝내야 한다는 응답이 35%였다. 또 전체 응답자의 42%가 자국이 우크라이나를 위해 너무 많은 일을 하고 있다고 답했다. 국가별로는 이탈리아(52%), 독일(49%), 프랑스(41%)에서 '전쟁 종식'(평화)에 대한 지지가 높았다. 유럽외교협의회는 유럽인들이 전쟁 여파로 에너지, 식량 등 물가가 치솟자 생계 고통을 체감하기 시작했다고 지적했다. 유럽만이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미국의 <CNN> 방송은 6월 15일 “미국, 유럽의 일반시민이 전쟁 비용에 직접 영향을 받고 언론의 관심이 멀어지기 시작하면 서방의 지원은 약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미국 내 여론의 변화는 5월 중순부터 나타났다. <AP통신>이 5월 12일부터 16일까지 1,172명의 미국 성인을 대상으로 시카고대학 여론조사센터(NORC)와 진행한 조사 결과, 응답자의 51%가 경제적 피해를 줄여야 한다고 답한 반면, 러시아에 대한 제재를 우선해야 한다는 응답은 45%에 그쳤다. 지난 3월 같은 여론조사에서는 응답자의 55%가 러시아에 대한 효과적인 제재를 최우선해야 한다고 응답했으며, 미국 경제의 타격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응답은 42%였다. 두 달 만에 반대로 뒤집힌 것이다. 또한 식량 위기가 현실화되자, 대러 제재도 바뀌었다.

3월 하순까지 미국은 남미국가들에 러시아산 비료 수입에 대해 자제를 요청했다. 테레자 크리스티나(Tereza Cristina) 브라질 농업부 장관은 3월 16일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지금의 국제 제재처럼) 비료 소비를 억제하는 방식은 인플레이션을 심화하고 식량안보를 위협할 수 있다”며 “세계 식량 상황을 악화시키는 방식은 더 큰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톰 빌색 미 농무부 장관은 유엔식량농업기구(FAO)가 주최한 행사에서 “러시아가 시작한 부당한 전쟁을 해결하기 위해 희생이 필요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민주주의가 위협받고 있는 상황이니 불가피하게 조처를 취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는 브라질을 비롯한 남미국가들에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다. 브라질을 포함한 남미 국가들은 비료 수요의 85%를 해외에서 수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버드 케네디스쿨의 벨퍼센터가 운영하는 러시아 매터스(Russia Matters)에 따르면 러시아는 2021~2022년 세계 최고 밀 수출국(16%, 2위인 우크라이나가 10%)이자, 비료에 들어가는 3가지 재료(질소, 칼륨, 인산)의 주요 생산국(1~3위)이다. 또 해바라기 및 홍화씨 오일 등 식물성 기름의 세계 2위의 수출국(23%)이다. 우크라이나는 이들 식물성 기름의 최대 수출국으로 46%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브라질 경제부에 따르면, 브라질 질소 수입량의 20%, 인산염 수입량의 15%, 칼륨 수입량의 95%가 러시아 벨라루스 산이었다. 질산암모늄은 100%를 러시아로부터 수입했다.(3) 다른 남미국가들도 비슷하다. 

이런 상황이니, <블룸버그 통신>(6월 13일자)은 소식통들을 인용해 미국 정부가 세계 식량위기 완화를 위해 러시아산 비료 구매를 ‘몰래 장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러시아산 비료 구입은 대러 제재 위반은 아니다. 하지만 이는 대러 제재가 얼마나 무차별적으로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미국과 유럽연합은 러시아산 비료를 직접적으로 제재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러시아 비료 회사들은 금융제재를 받았고, MSC, 머스크 등 주요 선사들은 러시아나 우크라이나 항만으로부터의 선적을 중단했다. 또 내륙국가인 벨라루스는 리투아니아 항을 통해 비료를 수출했으나 러시아에 적대적인 발트 3국은 국경을 봉쇄했다. <인테르팍스 통신>(5월 20일자)은 서방의 제재로 러시아의 4월 비료 수출이 190만 톤으로 11% 감소했다고 보도했다. 러시아의 비료 생산업체 중 우랄칼리는 3월 대비 77%, 우랄켐은 48% 줄었다. 그 뒤 무역 통계사이트 ‘월즈 톱 익스포츠’는 <블룸버그 통신>(6월 13일자)에 러시아가 2021년 수출액 기준으로 세계에서 비료를 가장 많이 수출했으나, 2022년 24% 감소했다고 보도한 것을 볼 때, 감소폭은 계속 확대돼 온 것으로 보인다. 

비료 공급문제는 유럽에도 타격을 주고 있다. 천연가스는 암모니아의 유기합성 원료이고, 비료 생산에는 암모니아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네덜란드의 비료 생산업체인 OCI(Orascom Contruction Industries) NV의 아메드 호시(Ahmed El-Hoshy) 최고경영자(CEO)는 <월스트리트 저널>(6월 13일자)에 “네덜란드 내에서 암모니아 생산을 줄이는 대신 미국, 이집트, 알제리 소재 공장에서 암모니아를 수입하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이 신문은 6월초, 영국 최대 비료 생산업체 CF 인더스트리스가 지난해부터 암모니아를 생산하지 못하는 공장들을 영구폐쇄 중이라고 전했다. 비료 외에도 다른 러시아 에너지에 의존해 온 유럽의 화학, 철강, 기타 에너지 집약 제품 제조업체들은 공장 폐쇄로 내몰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러시아에 대한 제재가 특정분야에 한정되지 않고 연관 산업들의 체인을 통해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있으며, 제재에 비례해 피해도 커지고, 피해를 줄이려니 제재가 약해지는 미국 유럽 등 서방의 딜레마를 보여준다. 

 

‘슈퍼 스파이크’ 인플레와 ‘퍼펙트 스톰’의 소용돌이

이제 대러시아 제재의 경제전쟁에서 부메랑의 역풍을 맞은 미국 유럽 등 서방은 거대한 경제위기가 몰려오면서 과연 밑빠진 독에 물붇기처럼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우크라이나 전쟁 비용을 부담할 수 있는가라는 또 다른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영국매체 <가디언>(6월 13일자)은 미하일로 포돌랴크(Mykhaylo Podolyak) 우크라이나 대통령실 고문이 트위터에서 “러시아를 격퇴하고 전쟁을 끝내기 위해서는 (러시아와) 동등한 (수준의) 중무기가 필요하다”라고 요청했다고 전했다. 요청목록은 나토 표준을 따르는 155mm 장사정 곡사포 1000문, 탱크 500대, 장갑차 2,000대, 다연장로켓(MLRS) 300기, 드론 1,000기 등이다. 이는 현실과 동떨어진다. 견인 곡사포의 경우 미군이 보유한 전체 규모에 육박하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에 따르면 미국은 M777 견인 곡사포를 999문(육군 518, 해병대 481) 보유하고 있다. 미국은 이 중 100여 문을 5월까지 우크라이나에 지원했다. MLRS의 경우에도 미국이 보유한 전체 규모는 645기로, 포돌랴크 고문이 요구한 수치는 절반에 이르는 것이었다.(4) 

우크라이나 전쟁은 팬데믹으로 타격을 입은 세계경제에 또 다시 타격을 입혔다. 게다가 장기전이 예상되고 있으며, 우크라이나의 승리는 점점 멀어지고 있다. 로렌스 서머스 전 미 재무장관 등 대부분의 경제전문가들은 이제 ‘불타는 인플레’를 진정시킬 수 있는 것은 경기 침체(실업률 증가) 뿐이라고 말한다. 또 다른 효과적인 처방은 전쟁의 종결일 것이다. 그럼에도 미국의 바이든 대통령은 6월 15일 또 다시 10억달러 상당의 대규모 무기 지원을 발표하면서 장기전에 대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세계은행은 6월 14일 세계 성장률 전망치를 1월의 4.1%에서 2.9%(2021년은 5.7%)로 크게 낮췄다. 대부분의 국가들이 몇십 년만의 물가상승이라는 초인플레이션을 기록하고 이와 결합해 경제침체가 뒤따르는 이중 타격을 입었기 때문이다. 전쟁은 팬데믹의 혼란을 끝내려는 기대 속에 터졌다. 탄소중립을 위한 신재생 에너지로의 전환, 미중 패권대결에 의한 공급망 혼란은 계속되고 있었다. 여기에 전쟁 및 제재로 촉발된 에너지 식량 원자재 등의 가격이 폭등하기 시작한 것이다. 게다가 세계은행은 이런 ‘저성장’이 10년 내내 계속될 것이며 1970년대 스타일의 스태그플레이션을 일으킬 수 있다는 우울한 전망까지 덧붙였다.

경제전문가들의 전망은 더욱 암담하다. 이들은 70년대 중동전쟁과 이란 혁명 등으로 촉발된 1, 2차 오일쇼크에 의한 인플레와 경기침체가 동반되는 스태그플레이션을 능가하는 경제위기를 경고하고 있다. 지금의 경제위기는 수십년래의 물가상승이라는 수퍼 스파이크(Super Spike)의 초인플레가 특징이다. 그 파괴력에서 ‘퍼펙트 스톰(Perfect Storm)’의 초대형 경제위기가 될 것이라는 우려다. 수퍼 스파이크는 ‘대폭등’이란 뜻으로 원자재 가격이 몇 년 동안 급등하는 현상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미 투자은행 골드만삭스가 2005년 보고서에 3년 사이 배럴당 55~105달러의 국제 유가 인상을 예측하면서 이 표현을 사용했다. 

퍼펙트 스톰은 원래 둘 이상의 태풍이 충돌해 그 영향력이 폭발적으로 커지는 현상을 의미하는 기상 용어다. 경제에서는 여러 악재가 한꺼번에 터져 폭발력이 커진 초대형 경제위기를 일컫는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지속되는 한 이 거대한 경제위기를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코로나 19의 팬데믹을 능가하는 재앙이 되리라는 전망은 현실이 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6월18일)은 미 연준이 기준금리를 0.75% 올리면서(자이언트 스텝) 달러가치 급등에 “신흥국 채권수익률은 치솟고 자본유출은 심화하고 있다” 며 신흥국의 ‘디폴트 도미노’(연쇄 국가부도)를 경고했다. 

물론 세계는 평평하지 않다. 모두가 고통을 겪는 건 아니다. 사우디 등 중동산유국은 지금 폭풍 성장을 기록 중이다. 6월 1일, 사우디 통계청은 2022년 1분기 국내총생산(GDP)이 전년 동기 대비 9.6%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블룸버그 통신>은 IMF의 4월 보고서를 인용해 중동 원유 수출국의 올해 GDP 증가율 예상치는 이라크가 9.5%로 가장 높았고 다음은 쿠웨이트(8.2%), 사우디(7.6%) 오만(5.6%), 아랍에미리트(4.2%) 등의 순이라고 전했다. 게다가 서방의 거대 에너지기업들은 러시아 사업 철수에 따른 손실을 감안해도 돈방석에 앉았다. <파이낸셜 타임스>(4월 22일자)는 영국에 본사를 둔 세계적 에너지 기업 로열 더치 쉘(Royal Dutch Shell)이 러시아 최대 규모의 에너지 프로젝트에서 벗어나는 ‘악몽’의 거래를 시작했다면서, 사할린-2 LNG 프로젝트에 대한 지분 27.5%를 매각하기로 했다고 전한 바 있다. 

쉘은 중국의 3대 에너지 기업인 중국석유천연가스그룹(CNPC), 시노펙(Sinopec),중국해양석유그룹(CNOOC) 등과 매각 협상을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중국 기업 외에는 매입 의사를 가진 곳이 없으니, '울며 겨자먹기'로 중국측과 거래를 하는 상황이었다. 쉘은 최대 손실 추정액 50억 달러를 최소한으로 줄이는 걸 목표로 했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투자은행 제프리스(Jefferies)에 따르면 전쟁 전 러시아에서 2022년 쉘의 총 석유 및 가스 생산량은 5%로 추정돼 유럽 라이벌인 영국의 브리티시 페트롤리움(BP, 28%)와 프랑스의 토탈(Total, 16%)보다 러시아에 덜 노출돼 있었다. 그럼에도 가즈프롬(Gazprom)과의 사할린-2 액화천연가스 프로젝트 지분 27.5%, 국영기업과의 다른 2개 합작 투자(윤활유 사업과 중단된 노르드 스트림 2 프로젝트의 지분), 소매 네트워크 등 러시아로부터의 철수로 인한 피해는 39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다. 

러시아 <타스통신>에 따르면 쉘은 러시아 사업 철수와 관련해 “2022년 1분기 연결 손익계산서에 42억 3,500만 달러의 세전 비용을 감가상각으로 계상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파이낸셜 타임스>(5월 5일자)는 쉘이 글로벌 에너지 가격의 급등으로 인해 올린 수익이 2022년 1~3월 91억 달러에 이른 것으로 전했다. 사상 최대의 분기별 이익이다. 1년 전 같은 기간 32억 달러의 약 3배를 기록한 것인데 이는 애널리스트 평균 추정치 87억 달러를 웃돌며, 2021년 4/4 분기의 64억 달러를 크게 넘어선 것이다. 이들 에너지 기업들은 각국이 초과이익 중과세(Windfall)법을 추진하자 반발하고 있다. 따라서, 러시아 철수에 따른 손실을 부풀리면서 순익이 줄어든 것처럼 보이려 할 것이다. 

전쟁이 살찌우는 것은, 미국의 록히드 마틴 같은 무기상만이 아니다. 지금과 같은 식량 에너지 등 원자재 가격의 대폭등(슈퍼 스파이크)의 원인이 전쟁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팬데믹으로 엄청나게 풀려 ‘머니게임’을 펼치는 투기자본도 한몫하고 있다. 

 

 

글·강태호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편집위원장, 전 한겨레 평화연구소장


(1) ‘Sanctions So Far Fail to Dent Russia’s War Effort 지금까지 제재는 러시아의 전쟁을 약화하는 데 실패하고 있다’, <The Wall Street Journal>, 2022년 6월 16일자.
(2) ‘Washington Can’t Treat Russia as It Does North Korea 워싱턴은 러시아를 북한처럼 대할 수 없다’, <National Interest>, 2022년 3월 25일자.
(3) 브라질의 비료수급 위기와 자급화 노력, <코트라 해외시장 뉴스> 2022년 5월 18일자.
(4) ‘Ukraine asks the west for huge rise in heavy artillery supply 우크라이나 서방에 엄청난 규모의 중화기 공급 요청’ <Guardian>, 2022년 6월 1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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