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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식의 시네마 크리티크] <드라이브 마이 카>-주제와 형식의 아름다운 조화
[임정식의 시네마 크리티크] <드라이브 마이 카>-주제와 형식의 아름다운 조화
  • 임정식(영화평론가)
  • 승인 2022.07.04 09: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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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이브 마이 카' 스틸 이미지.
'드라이브 마이 카' 스틸 이미지.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드라이브 마이 카>(2021)의 키워드는 상처, 소통, 교감, 치유과 같은 단어로 정리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정리는 사실 무의미하다. 모래처럼 건조하기도 하다. <드라이브 마이 카>의 매력은 주제나 키워드가 아니라 형식, 구체적으로는 스토리텔링이나 연출 방식에 있다. 게다가 주제와 형식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드라이브 마이 카>의 기본 구조는 하마구치 류스케의 전작들과 유사하다. <해피 아워>의 인물들은 겉으로는 밝은 표정으로 소풍을 떠나지만, 동시에 절친에게도 털어놓지 못한 아픔을 지닌 채 살아간다. <아사코>의 아사코는 똑같은 외모를 지닌 두 남자를 사랑하는데, 자신의 뜻과 무관하게 첫사랑이 갑자기 깨진 상처가 있다. 두 영화에서 인물의 상처와 비밀은 갈등의 원인으로 작용한다. <드라이브 마이 카>의 인물들도 가족의 죽음과 관련된 비밀스러운 상처를 지니고 있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인물의 상처는 갈등이 아니라 교감과 치유의 원천이 된다. 특히 인물이 상처를 회복하는 과정과 그 방법이 영화의 형식과 일치한다. 즉 <드라이브 마이 카>는 주제와 형식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룬 영화이다. 

 

▲운전과 대본 읽기

하마구치 류스케의 영화에서 인물들은 이중적이다. 겉으로는 평온해 보이지만, 그들의 내면에는 깊은 상처가 자리 잡고 있다. <드라이브 마이 카>의 인물들은 죽음과 관련된 상처를 지니고 있다. 배우 겸 연출자인 가후쿠는 아내 오토의 외도로 상처를 받는다. 어느 날, 오토는 남편에게 하려던 말을 끝내 전하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이한다. 오토가 가후쿠에게 하려던 말은 무엇이었을까. 고백? 참회? 이별 통보? 가후쿠는 끝내 대답을 얻지 못한다. 가후쿠와 아내 사이에는 투명막이 가로놓여 있었다. 그 투명막은 가후쿠가 아내의 외도 장면을 목격한 이후에 생긴 것이다. 아니다. 네 살배기 딸을 폐렴으로 잃은 후부터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겉으로는 사랑하는 부부인데, 그들 사이에는 작은 구멍이 뚫려 있어서 그 구멍 속으로 서늘한 안개가 스며든다. 2년 후, 가후쿠는 히로시마 연극제에서 운전기사 미사키를 만난다. 가후쿠는 15년이나 소중하게 몰아온 차의 운전을 미사키에게 선뜻 맡기려고 하지 않는다. 하지만 미사키가 운전하는 차를 탄 이후부터 가후쿠의 내면에 변화가 일어난다. 가후쿠가 뒷좌석에서 조수석으로 옮겨 앉는 작은 차이가 이 변화를 알려준다. 미사키는 가후쿠에게 엄마의 죽음과 관련된 자신의 상처를 드러내 보인다.

이 영화에서 가후쿠의 차를 운전하는 인물은 가후쿠, 오토, 미사키 세 명이다. 초반에는 가후쿠가 운전석에 앉는다. 교통사고가 난 직후에는 오토가 운전한다. 그런데 가후쿠는 오토가 운전하는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반면 미사키의 운전에 대해서는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중력이 느껴지지 않는다. 이렇게 편안한 것은 처음이다.”라고 말한다. 아내의 운전은 불편하고, 미사키의 운전은 편안하다. 이 불편함과 편안함의 차이는 왜 생기는 것일까? 당연한 말이지만, 그것은 운전 기술의 문제가 아니다. <드라이브 마이 카>에서 가후쿠보다 더 자주 차를 운전하는 인물은 미사키이다. 그리고 미사키의 운전 장면은 반복해서 등장한다. 미사키가 운전하는 차 안에서 가후쿠는 아내가 녹음한 체호프의 희곡 ‘바냐 아저씨’의 대사를 듣는다. 매일 되풀이되는 행동을 통해서 가후쿠와 미사키 사이에 미묘한 변화가 발생한다. 가후쿠와 불화 아닌 불화를 겪던 오토가 가후쿠와 미사키를 연결하는 매개체가 된다.

 

'드라이브 마이 카' 스틸 이미지.
'드라이브 마이 카' 스틸 이미지.

연극 ‘바냐 아저씨’의 연습 장면도 운전과 거의 비슷한 역할을 한다. 가후쿠는 오디션을 거쳐 배우들을 선발하는데, 그 인물과 연습 방식이 독특하다. 일본, 한국, 중국의 배우가 일본어, 한국어, 중국어, 영어, 수어로 대화하고 연기한다. 다국적 배우들이 자신의 모국어와 수어로 러시아 작가의 희곡을 공연하기 위해 연습하는 것이다. 그래서 연습 과정은 낯설고 혼란스럽고 덜컹거린다. 가후쿠는 대본 읽기를 강조한다. 배우들이 무엇을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불평할 정도로 지루하게 대본 읽기를 반복한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한국인인 유나가 수어로 “(수어를 하면서)때로는 말보다 더 많은 걸 이해할 수 있다”라고 말하는 장면에 그 비밀이 있다. 중요한 것은 언어가 아니라 교감이다. 언어의 차이를 극복할 수 있어야 진정한 공연이 이루어지고, 그래야 관객과도 교감할 수 있다. 배우들도 “상대방의 감정도 포함해서 대사를 외운다면 상대 감정을 더 잘 이해한다.”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결국 배우들은 각자의 언어로 연기하지만, 공연을 하는 데에는 전혀 어려움이 없다. 상대의 언어와 행동이 아니라 마음과 감정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드라이브 마이 카>에는 운전 장면과 연극 연습 장면이 반복해서 등장한다. 그 운전과 연습 장면은 영화의 주제와 자연스럽게 연결되며, 서로 같은 의미를 지닌다. 차를 운전하는 인물이 가후쿠에서 미사키로 변한 점도 의미가 크다. 가후쿠의 입장에서 보면, ‘나’를 버리고 타인을 수용한 것이다. 미사키 역시 “그 차가 좋다.”라고 말한다. 그들은 ‘나’가 아니라 ‘너’의 상처와 감정을 이해한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배우들의 연습 및 공연과 일치한다. 배우들은 다른 언어로 이야기한다. 수어까지 포함되어 있다. 진정한 대화가 불가능하다. 가후쿠와 오토의 관계가 그러했다. 결말에서는 배우들이 언어의 차이와 불협화음을 극복하고 성공적으로 공연을 한다. 가후쿠와 미사키의 관계가 그러하다. 미사키는 가후쿠에게 “오토의 모든 것을 진짜로 받아들이는 것이 어려운가요?”라고 묻는다. 오토는 가후쿠를 사랑하는 동시에 또 다른 남자를 갈망했다. 가후쿠는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반면 배우들은 서로 다른 언어로 대사를 말해도 상대방의 감정까지 이해한다.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의 내밀한 감정까지 이해하는 것이 나의 상처를 치유하는 첫걸음이다. 그래서 <드라이브 마이 카>에서 운전과 대본 읽기는 같은 의미를 지닌다.

 

'드라이브 마이 카' 스틸 이미지.
'드라이브 마이 카' 스틸 이미지.

▲오토의 이야기와 미사키의 이야기

가후쿠와 오토는 섹스를 한 이후에 긴 이야기를 한다. 여고생이 짝사랑하는 남학생의 빈집에 몰래 들어간다는 내용이다. 드라마작가인 오토는 자신이 지어낸 이야기를 들려주고, 가후쿠가 그 이야기를 기억했다가 다음 날 오토에게 전해준다. 그런데 그 여고생의 이야기를 가후쿠보다 더 자세하게 아는 인물이 있다. 오토가 외도를 한 바람둥이 배우 다마츠키이다. 그렇다면 다마츠키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아는 인물이 존재할 수도 있다. 미사키도 가후쿠에게 이야기를 한다. 술집을 운영하던 엄마를 마중하고 배웅하기 위해 운전을 시작하고, 엄마가 산사태로 인해 죽는 순간 구조하지 않은 사연 등을 털어놓는다. 그리고 가후쿠도 오토와 관련된 상처를 미사키에게 이야기한다. 오토와 미사키의 이야기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 오토는 가후쿠에게 드라마작가로서 만들어낸 이야기를 들려준다. 따라서 이야기의 수신자는 꼭 가후쿠가 아니어도 상관없다. 게다가 이야기의 내용은 짝사랑이다. 일방적인 사랑 이야기를 일방적으로 들려주고 듣는 방식이다. 반면 미사키는 가후쿠에게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가후쿠도 마찬가지이다. 가후쿠와 오토의 관계가 파국으로 끝나고, 가후쿠와 미사키가 허물어진 집터에서 서로 껴안고 눈물을 흘리는 이유이다.

<드라이브 마이 카>에서 인물들은 짝패를 이루고 있다. 가후쿠와 오토, 가후쿠와 미사키, 다마츠키와 오토, 한국인 코디네이터와 배우인 윤수와 유미, 다마츠키와 재니스 등이다. 이 인물들은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은 누군가와 짝이 되어 등장하고, 그들의 관계는 영화의 주제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미사키의 엄마에게 사치라는 제2의 인격체가 있었던 것도 비슷하다. 영화의 인물들은 두 부류로 나뉜다. 가후쿠와 오토, 다마츠키와 오토, 다마츠키와 재니스의 관계는 형식적이다. 가후쿠와 미사키, 윤수와 유미는 내밀한 상처와 감정을 공유한다. 소냐 역의 유미가 수어로 말하면서도 강렬한 메신저 역할을 하는 것도 의미가 크다. <드라이브 마이 카>는 가후쿠의 이야기인 동시에 미사키의 이야기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미사키가 한국에서 가후쿠의 차를 운전하는 것은 상징적이다. 연극 ‘바냐 아저씨’에서 소냐가 바냐 아저씨에게 “우리 살아가도록 해요.”라고 말한 장면이 현실화된 것이다. 가후쿠는 바냐 아저씨, 미사키는 소냐의 역할을 한 셈이다. 이야기 속의 이야기가 영화의 인물, 사건, 주제와 한 치의 오차 없이 맞물려 있는 것이다. 이처럼 <드라이브 마이 카>는 영화의 주제와 그 주제를 표현하는 형식이 안성맞춤으로 조화를 이룬 놀라운 작품이다.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글·임정식
영화평론가. 영화를 신화의 관점에서 분석하는 작업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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