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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곡숙의 시네마 크리티크] <죄 많은 소녀> ― 가해자/피해자의 끝없는 순환과 죽음의 길
[서곡숙의 시네마 크리티크] <죄 많은 소녀> ― 가해자/피해자의 끝없는 순환과 죽음의 길
  • 서곡숙(영화평론가)
  • 승인 2022.10.04 09: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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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자살한 소녀와 죄 많은 소녀

<죄 많은 소녀>(김의석, 2017)은 자살한 소녀와 죄 많은 소녀가 각각 희생자와 가해자로 낙인찍히는 이야기이다. 이 영화에서 영희(전여빈)는 마지막까지 함께 있었다는 이유로 실종된 친구 경민(전소니)의 가해자로 지목되고, 친한 친구 한솔(고원희)도 외면하는 상황에서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고자 위해 극단적 선택을 한다.

 

2. 실종 이유 찾기와 가해자/희생자의 양가적 존재

 

<죄 많은 소녀>의 전반부는 실종 이유 찾기와 책임 전가를 보여준다. 우등생 경민이 실종되자, 교사와 경찰은 영희를 심문하고, 경민모(서영화)는 가해자로 추정되는 영희를 폭행한다. 경민의 자살 이유와 영희의 가해자 여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면서 혼란스러운 진실 공방과 책임 전가의 상황이 벌어진다. 영희는 경민이 실종되기 직전 화장품 가게, 지하철, 클럽, 터널에서 함께 있었지만 당일 상황은 모순으로 가득하다.

 

화장품 가게에서 영희는 경민에게 도둑 누명을 씌우고는 어수선한 상황에서 화장품을 훔치고, 지하철역에서 영희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경민을 보고 당황한다는 점에서, 영희와 경민의 적대적 관계를 예상하게 된다. 하지만 영희, 경민, 한솔이 함께 클럽에 갔다는 증언, 이후 영희와 경민이 터널에서 키스하는 CCTV 영상이 공개되면서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그리고 ‘경민이 영희에게 좋아한다고 고백하고 영희가 죽음에 대해서 언급했다’고 한솔이 진술하면서 경민의 실종 혹은 죽음에 영희가 원인을 제공한 것은 아닐까라는 추측이 나온다. 게다가 경찰 앞에서 영희가 “(경민이) 한동안 말도 안 걸다가 갑자기 ‘좋아한다’고 말하기에 ‘싸 보인다’고 ‘목숨도 걸 수 있겠네’라고 말했다”라고 진술하자, 경민모가 분노하여 영희에게 덤벼든다. ‘내가 죽인 게 아니다. 나는 이미 죽으려고 결심했기 때문에 죽는 게 두렵지 않다. 다리 투신자살은 원래 나의 계획이다.’ 영희는 경찰과 담임에게 말하면 말할수록 의심을 받는다. 이후 영희가 ‘죽을 용기도 없는 년이 자신을 애먹이려고 일부러 이러는 것이고 어딘가에 살아있을 것이다.’라고 말하자, 경민모가 또 분노하여 영희의 뺨을 때린다.

 

전반부에서 경민의 실종 이유, 경민-영희의 관계, 영희의 가해자 여부에 대해서 혼란스러운 진실 공방이 펼쳐진다. 경민의 실종에 대해서 부모는 그 이유를 아예 알지 못하고, 교사들은 경민이 좋은 직장에 다니는 부모를 둔 우등생이라며 이해를 못 하지만, 학생들은 경민이 어울리지 못하고 특이한 것을 좋아하고 어두운 구석이 있으며 수업 시간에 계속 음악을 들었다고 말한다. 경민의 처한 상황과 자살 이유에 대해서 부모·교사의 무지와 학생들의 인지가 차이를 보여준다. 공통적으로 부모, 교사들, 학생들은 경민의 실종사건에 대해서 영희를 가해자로 만듦으로써 자신들의 책임에 대한 죄책감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결국 영희는 가해자이자 희생자라는 양가적 존재가 된다.

 

3. 집단주의의 광기와 죽음을 통한 저항

 

<죄 많은 소녀>의 중반부는 집단주의의 광기와 죽음을 통한 저항을 보여준다. 영희는 경민의 자살에 대한 책임 전가로 따돌림과 집단폭행을 당하고, 견디다 못해 자살을 시도하지만 뒤늦게 경민의 유서가 발견되면서 누명을 벗는다.

 

집단주의는 아직 밝혀지지 않은 경민의 자살에 대한 책임을 물어 영희를 폭행한다. 부모, 교사, 아이들 모두 영희에게 정신적, 육체적 폭력을 가한다. 학생들은 영희를 발로 짓밟고 칼로 긋고 카메라로 찍으면서 경민 대신 복수를 하며, 경민 부모, 교사, 경찰 모두 영희를 의심의 눈으로 바라본다. 장례식장에서 영희가 경민에게 죽을 확률이 낮은 수면제보다 확률이 높은 투신자살을 조언했을 뿐이라고 말하자, 경찰은 너 탓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위로하지만 담임은 이기적이라며 비난한다. 영희는 ‘내가 먼저 죽을 걸. 원래 제가 먼저 죽으려고 생각했어요. 다리 투신은 제 생각이었어요.’라고 말하자, 담임이 분노하며 영희를 때린다. 영희는 약물을 마시고 자살을 시도하고, 결국 생명은 건지지만 목소리를 잃게 된다. 경민의 유서가 발견되고 영희는 누명을 벗게 된다.

 

영희는 원래 자살할 계획이었고 경민에게 자살할 방법에 대해서 조언해준 자신을 가해자로 모는 현실에 대해서 분노하며 약물 자살을 시도한다. 학생들의 집단주의는 처음에 영희를, 그 다음에는 한솔을, 마지막에는 다른 여학생을 가해자로 몰면서 계속해서 경민의 죽음에 대해 책임을 전가한다. 영희는 경민이 자살하게 만든 가해자로 지목된 여학생의 뺨을 때리지만 뒤이어 따뜻하게 안아주면서 이러한 집단주의의 폭력으로 인한 상처와 공감을 보여준다. 결국 영희는 집단주의의 광기에 대해서 죽음으로 저항함으로써, 이기적인 가해자에서 집단주의의 억울한 피해자로 바뀐다.

 

4. 죽음에 대한 죄책감과 소통의 부재

 

<죄 많은 소녀>의 후반부는 망각/기억의 갈등과 소통의 부재를 보여준다. 영희는 자살 시도 후유증으로 목소리를 잃은 채 학교로 돌아오고, 학생들은 영희에게 죄책감을 느끼며 잘 대해주려고 노력하고, 경민모는 영희에게 끊임없이 부채의식을 일깨우다가 죄책감으로 자신을 자해한다.

영희의 자살 시도 후 한솔은 고백한다. 한솔은 그날 자살하겠다는 경민에게 ‘죽지도 못할 거면서’라고 조롱하고, 경민은 ‘진짜인지 가짜인지 보면 알지’라고 결의를 보였다는 점에서 자신 때문이라고 자책한다. 한솔이 영희와 경민의 사이를 질투했다고 말하자, 영희는 한솔의 손가락을 자신의 목에 뚫린 구멍으로 가져가면서 용서를 표현하고,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영희와 한솔은 열정적으로 키스한다. 다솜은 담임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 성추행의 누명을 씌우고, 담임은 그런 다솜에게 분노하여 폭행하고, 다솜은 담임에게 복수하기 위해 자신의 얼굴을 칼로 그어 담임을 체포되게 만든다. 영희는 이런 다솜을 보면서 학교에서 벌어지는 가해자/희생자 만들기가 계속해서 벌어지고 있음을 깨닫는다.

 

경민모는 영희의 병실을 방문하고, 학부모 회의에 참석하고, 경민 이름으로 장학금을 만들고자 하는 등 경민이 망각되지 않도록 안간힘을 쓴다. 경민모는 영희에게 ‘좋아 보인다’, ‘이뻐졌다’, ‘경민의 목숨값으로 너를 살렸다’는 등의 말로 죄책감과 부채 의식을 끊임없이 일깨운다. 이에 영희는 ‘경민이 죽기 전에 자살한 이유를 다 말해줬는데 이해가 돼서 (자살을) 말리지 못했다’고 말하고, 이에 충격을 받은 경민모는 식사 나이프로 자신의 가슴을 찌르며 자해한다. 이렇듯 대부분의 인물들은 죽은 경민에게 죄책감을 느끼고 희생물을 찾으면서, 자신의 죄책감과 책임을 전가할 가해자 혹은 희생자를 끊임없이 만들어내고자 한다.

여기에서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왜 영희가 자신을 가해자로 몰았던 인물들과 경민의 자살에 대한 가해자, 즉 한솔, 여학생에 대해서는 용서하지만, 자신에 대해서는 용서하지 않는가이다. 영희는 자살 시도와 경민의 유서로 가해자 누명을 벗었지만, 악몽에서 끊임없이 나타나는 경민에 대해 죄책감으로 고통 받는다. 사실상 영희가 고통을 받는 이유는 경민이 죽기 전 자신을 좋아한다는 고백을 하는 특별한 행동을 했고, 자신이 평소 죽고 싶었던 만큼 자살에 대해서 구체적인 조언을 했다는 점에서 스스로 자신을 가해자라고 생각하기 때문이 아닐까? 그리고 다른 인물들에게 계속해서 죄책감, 부채의식을 일깨우며 책임을 전가하는 경민모가 사실상 경민의 자살에서 가장 큰 원인이었기 때문에, 경민의 자살 이유를 암시하자 못 견디고 자신을 자해한 것은 아닐까?

 

5. 끝없는 고립의 길과 죽음의 길

김의석 감독의 데뷔작인 <죄 많은 소녀>는 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 뉴 커런츠상, 올해의 배우상을 수상하였고, 시체스영화제, 프리부르영화제, 뉴욕 아시안 영화제 등에서 인정 받은 작품이다. <죄 많은 소녀>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내러티브적 특성은 죽음 장면의 반복이고, 스타일적 특성은 터널 장면의 반복이다. 이 영화의 내러티브는 희생물 찾기, 죄의식과 용서, 자살 방법 등 끊임없이 희생제의적 죽음을 반복함으로써 ‘죽음의 길’을 보여준다. 이 영화의 스타일에서 구석으로 치우친 인물의 미장센은 주변화, 외면당한 진실, 소외를 보여주고, 어두운 뒷모습은 공동체로부터의 배척을 드러내며, 특히 어두운 터널은 일탈, 고립, 죽음의 길로 빨려 들어가는 이미지로 재현되면서 ‘고립의 길’을 표현한다.

 

<죄 많은 소녀>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자살을 시도한 후 목소리를 잃은 영희가 학교에 돌아와서 교단에 서서 수화로 친구들에게 인사를 하는 장면이다. 영화의 앞부분에서 병색이 가득한 창백하고 소심한 얼굴의 영희가 교단에서 어색하게 수화를 하자, 학생들은 수화의 내용을 이해 못하지만 ‘잘 지내보자’ 혹은 ‘그동안 고마웠다’라는 상식적인 인사라고 생각하고 박수를 친다. 영화의 뒷부분에서 이 장면은 다시 반복된다. 이때 화면은 영희의 수화를 다시 보여줌과 동시에 수화의 의미를 자막으로 함께 전달한다. 자살 시도 후 목소리를 잃은 영희는 천천히 움직이는 수화를 통해 “여러분이 그토록 원하던 나의 죽음을 완성하러 왔습니다. 여러분 앞에서 가장 멋지게 죽고 싶습니다.”라고 말하고, 수화를 모르는 학생들은 환영의 박수를 치는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두 번에 걸쳐 재현되는 같은 장면은 극과 극의 의미 변화를 보여줌으로써 반전을 선사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터널로 사라지는 영희의 모습은 자살의 계획, 죽음의 완성이 아직도 계속 진행 중임을 암시하며 깊은 여운을 남긴다.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글•서곡숙
영화평론가, 영화학박사. 현재 청주대학교 연극영화학부 교수로 있으면서, 서울영상진흥위원회 위원, 한국영화평론가협회 총무이사, 계간지 『크리티크 M』 편집위원장, 한국영화교육학회 부회장·편집위원장, 전주국제영화제 심사위원, 대종상 심사위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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