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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성의 시네마 크리티크] 두려움에 대하여 <탑>
[정우성의 시네마 크리티크] 두려움에 대하여 <탑>
  • 정우성(영화평론가)
  • 승인 2022.12.19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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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겁나세요?” 병수(권해효)는 별안간 선희(송선미)에게 묻는다. 선희는 그 말을 되묻고 병수는 괜한 질문을 던진 것으로 생각하여 사과한다. 그러자 선희가 답한다. “나는 내가 하는 생각들이 다 무서워요. 내가 하는 생각, 내가 하기 좋아하는 생각들, 다 무서워요. 그 밑에 뭔가 읽고 싶지 않아서 버둥거리고 있는 발들이 보이는 것 같아요” 그녀는 병수의 주어와 목적어가 없는 질문을 이해한다는 것처럼, 질문에 대한 정확한 답은 아니지만, 그 질문의 의도에 공감하며 자신의 생각들이 무섭다고 여러 번 강조한다.

무엇이 겁나고 무서운 걸까? 당연히 우리는 알 수 없다. 명확히 무엇이 무서운지 두 인물이 말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병수가 질문을 던지는 바로 직전의 상황이 두 남녀가 오랫동안 침묵으로 서로의 눈을 바라보다 선희가 눈을 거뒀기 때문에 아마도 별거 중인 병수와 이혼한 선희가 서로 사랑에 빠지는 것이 두려우냐고 묻는 것이라 짐작할 수 있다. 그 두려움은 단순히 사랑에 빠지는 것 자체이기보다 이미 구축해놓은 일상의 견고함을 무너뜨리는 변화 때문일지도 모른다. 사랑과 분노와 같은 일반적인 감정이든 하나의 망상이나 비윤리적인 생각이든 우리가 가진 생각들은 그 자체로도 무섭지만, 그것이 불러일으킬 변화가 우리에게 두려움을 안기기도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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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은 겉으로 보기에 병수라는 인물이 다른 시간대의 겪는 별 것 아닌 일상들의 나열처럼 보인다. 그 나열의 시간 또한 아마 영화의 진행 순서와 같이 선행으로 흐르는 것 같다. 이 선행의 시간 안에 없는 것은 층과 층을 이동하는 계단 오르내림과 같은 변화의 과정이다. 첫 번째 에피소드(편의상 4가지의 다른 시간대를 에피소드로 나누겠다)에서 병수와 그의 딸인 정수(박미소)가 어떻게 되었는지 두 번째 에피소드에서 그 결과만을 들을 수 있다. 또한, 두 번째 에피소드에서 병수와 선희의 눈 마주침은 그 과정의 복잡함은 생략된 채 세 번째 에피소드에서 이미 연인이 되어 동거하는 결과로만 비춰진다. 영화는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들, 언젠가 끝이 오게 될 사랑의 행복, 괴로움, 슬픔과 같은 감정의 복잡다단함을 생략하고 그 결과만을 보여준다.

과정 없이 나열된 결과들의 흥미로운 점은 시간대별로 달라지는 사람들의 말과 행동에 있다. 어떤 과정에 의해 생각과 행동이 변화되었는지 생략되어 있기에 우리는 우리가 본 것과 앞에 봤던 것 사이의 차이만을 바라보게 된다. 예컨대 세 번째 에피소드의 병수가 건강을 위해 채소만 먹는다고 말하고 행동한 것이 네 번째 에피소드에서 고기를 먹는 행위를 통해 그 생각이 변화했음을 알게 되는 것이나, 두 번째 에피소드에서 병수가 종교는 인간이 만든 것이라고 했지만 네 번째 에피소드의 병수는 제주도에 내려가 열두 편의 영화를 만들라는 하나님의 계시를 들었다고 간증한다. 병수 외에도 정수 또한 첫 에피소드에서 해옥(이혜영)에게 인테리어를 배우는 마음가짐에 대한 다짐이 바로 두 번째 에피소드에서 한 달도 안 되어 무너졌음이 드러난다.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린 인간의 모습을 우리는 홍상수의 전작들에서 수없이 봐왔다. 그것이 지식인만의 위선이 아니라 인간의 본질에 가깝다는 것을 변화해가는 27편의 홍상수 영화를 보며 직접적으로 체험했던 바이다.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 유명인인 병수의 진짜 모습을 사람들은 모를 것이라고 언급하는 정수에게 해옥(이혜영)이 밖에서 보이는 병수의 모습 또한 병수라고 지적하며 집 안과 밖의 모습 모두 진짜라고 말하 듯, 인간의 안과 밖의 모습, 과거와 현재가 다른 인간의 모호한 정체성을, 홍상수가 늘 말하는 것처럼 어느 한쪽 면이 아닌 있는 그대로 보려고 하는 것 말이다.

세 번째 에피소드에서 홍상수 영화에서 전에 없던 보이스오버가 등장하는 장면은 그러한 인간의 여러 면, 양면적 욕망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장면이다. 병수는 친구를 만나러 나간 선희를 기다리다 지쳐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하려 한다. 그때 그가 잠이 오지 않아 누워있는 모습에서 보이스오버로 기묘한 소리가 들려온다. 선희가 집으로 들어오는 듯한 도어락 소리가 들리고 선희와 병수의 대화가 재생된다. 이것을 재생된다고 표현한 것은 청각적 이미지의 주체인 병수와 시각적 이미지의 주체인 병수가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미지와 사운드가 어긋나 있는 것뿐만 아니라, 청각적 이미지의 주체인 병수는 선희와 “너만 있으면 돼”라고 서로를 신뢰하는 대화를 나누지만, 시각적 이미지의 주체인 병수는 “근데 나는 혼자 사는 게 맞는 사람이야, 혼자가 편해, 혼자 있으면 속 편해, 미안해 너를 너무 사랑하는데”라고 청각적 이미지의 주체와 어긋난 발언을 한다. 이 어긋난 대화는 마치 보이스 오버가 병수의 꿈, 상상, 생각처럼 느껴지게 한다. 그는 그녀와 같이 있는 것을 너무나 원하면서 동시에 그렇지 않은 것, 혼자 있는 것을 꿈꾼다. 인간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그러하듯 모순적인 욕망 안에서 그렇게 인간 주체의 어긋난 정체성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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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어긋남은, <탑>의 마지막 에피소드의 결말에서 구조적으로 가시화된다. 네 번째 에피소드에서 지영(조윤희)과 드라이브를 하러 가기 위해 건물 밖으로 나온 병수가 마치 첫 에피소드의 마지막 부분과 뫼비우스의 띠처럼 이어지듯 조우하게 되는 부분이 바로 그것이다. 병수가 홀로 남아 쥴(신석호)과 차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 후 첫 에피소드에서 와인을 사러 나갔던 정수와 만나면서 네 번째 에피소드는 첫 번째 에피소드와 탑을 아래에서 위로 바라보는 앙각 쇼트를 경계로 절묘하게 이어진다. 그러면 우리는 마치 네 번째 에피소드에서 병수가 들었다던 찬송가가 흘러나오는 듯한 공간에서 담배를 피우는 그를 바라보며 세 번째 에피소드에서 잠을 청하던 병수의 이미지 위로 떠올랐던 보이스오버를 겹쳐서 읽게 된다. 이 모든 것은 병수의 꿈 혹은 상상일까?

그 결말을 기점으로 다시 영화를 복기하여 생각해보면 선형적으로 느껴졌던 네 에피소드의 흐름이 어딘가 어긋나 있음을 감지하게 된다. 세 번째 에피소드에서 해옥이 병수에게 4층 세입자들이 문을 잘 열어주지 않는다고 했을 때 네 번째 에피소드에서 문을 잘 열어주지 않는 세입자가 병수로 밝혀지는 순간 3층과 4층에 동시에 존재하는 병수를 상상하게 된다. 또는 세 번째 에피소드에서 네 번째 에피소드로 넘어갈 때 병수와 선희와의 관계가 설명되지 않고 병수와 지영이 연인관계처럼 보일 때 이상함을 느끼게 된다. 선형적 이야기로도 충분히 설명할 수 있지만, 영화의 결말을 확인하고 다시 <탑>의 전체 이야기 구조를 떠올리면 네 에피소드가 온전히 선형적이지 않을 수 있다는 불확실함 안에 놓이게 된다. 선형적으로 보았던 현실이 선형적이지 않을 수 있다는 것, 현실처럼 보이던 이야기가 꿈이나 상상과 같은 비현실일 수 있다는 불확실성이자 더 나아가 일종의 두려움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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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다시 처음으로 돌아온 것처럼 우리도 다시 글의 첫 화두였던 두려움으로 돌아와 보자. 인간의 삶은 <탑>의 인물들이 그러한 것처럼 두려움의 연속이다. 인간관계의 두려움, 사랑의 두려움, 일의 두려움, 건강(죽음)의 두려움, 욕망의 두려움, 변화의 두려움 그 모든 두려움이 안과 밖의 나를 만든다. 그리고 두려움은 병수의 말대로 인간이 만들어낸 신을 믿는 것처럼 꿈을, 이야기를, 영화를 만들어 그 두려움을 투사한다. <탑>은 그 두려움 이후의 결과를 과정 없이 쌓아 올리고, 그 결과 간의 유사성과 차이를 교란하여 인간의 안과 밖의 모습과 현실과 상상의 아래와 위를 교묘히 겹쳐놓는다. 그러면 우리는 멀리서 들리는 듯한 찬송가 위로 하나님의 이미지가 아닌 제목과 같은 탑의 물질적 형상을 바라보는 것처럼 환영적 사운드와 현실적 시각-이미지의 모순 사이에서 영화가 주는 기이한 감흥을 마주하게 된다.

홍상수는 자신을 둘러싼 소문들, 말들, 우리는 알 길이 없지만, 영화를 통해 짐작하게 하는 사적인 고민과 두려움들을 영화에 투사하며 여전히, 하지만 새롭게 자신과 영화에 관한 이미지를 헤쳐나가 또다시 자신의 영화적 비전을 증명해낸다. 뫼비우스의 띠와 같은 이야기 구조, 여러 에피소드를 하나의 건물 안에 층으로 배치하는 아이디어는 그 자체로 누구나 생각할 수 있지만, 이 미니멀한 형식을 인간과 삶, 꿈과 영화에 관해 비슷하면서 다르게, 말하는 듯하면서 하지 않는 방식으로 풀어내 여러 층의 탑과 같은 다층적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역시 홍상수만이 가능하다. 그리고 그 창조의 동력이 “겁나세요?”라고 묻는 병수의 말에 “나는 내가 하는 생각들이 다 무서워요. 내가 하는 생각, 내가 하기 좋아하는 생각들, 다 무서워요. 그 밑에 뭔가 읽고 싶지 않아서 버둥거리고 있는 발들이 보이는 것 같아요”라고 답하는 선희의 두려움과 있는 그대로 보려 노력하는 솔직함에 있음을 <탑>을 통해 엿볼 수 있는 것만 같다. 그것이 홍상수의 안과 밖의 어느 한 면일지라도 말이다.

 

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글·정우성
2021년 영평상 신인평론상을 받았다. 현재 예술강사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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