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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식의 시네마 크리티크] 축구황제와 교황의 삶을 돌아보다-<펠레>&<두 교황>
[임정식의 시네마 크리티크] 축구황제와 교황의 삶을 돌아보다-<펠레>&<두 교황>
  • 임정식(영화평론가)
  • 승인 2023.01.02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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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세밑. 세계는 하루 사이로 전해진 두 개의 뉴스로 슬픔에 잠겼다. 브라질의 ‘축구황제’ 펠레(12월 30일)와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12월 31일)의 부고였다. 두 인물의 죽음을 전하는 국내 언론의 제목은 조금 달랐다. 펠레에 대해서는 사망, 영면, 별세라고 표현했다. 베네딕토 16세에 대해서는 모두 선종이라고 표현했다. 제목의 차이는 있지만, 애도의 마음은 다르지 않을 것이다. 마침 넷플릭스에서 두 인물의 삶을 기록한 영화를 찾아볼 수 있다. 다큐멘터리 <펠레>(2021·감독 데이비드 트라이혼, 벤 니컬러스)와 <두 교황>(2019·감독 페르난도 메이렐레스)이다.

<펠레>는 펠레의 일대기라고 할 수 있다. 펠레의 어린 시절부터 브라질 프로팀 은퇴 시기까지를 다룬다. 펠레가 보행기에 의지해 등장하고, 의자에 앉아서 옛날을 회상하고, 특정 사건이나 상황에 관해 설명하는 형식이다. 그는 때로는 옛 동료들을 만나 웃고, 때로는 눈물을 흘린다. 변두리에서 성장한 가난한 소년의 프로팀 입단, 월드컵 출전과 우승, 결혼과 외도, 성공과 좌절, 정치적인 격변기의 행동 등을 다양하게 다룬다. 스포츠 다큐멘터리답게 펠레가 월드컵에 출전해 활약한 경기 장면도 자주 등장한다. 펠레의 가족, 동료 선수, 언론인 등 주변 인물들이 그의 성장 과정, 경기 내용, 정치적·사회적 상황에 관해 설명한다. 현재와 과거를 오가는 형식이지만, 전체적으로는 연대기적 서술이라고 할 수 있다.

 

'펠레'의 스틸컷.
'펠레'의 스틸컷.

<펠레>는 펠레의 생애를 축구의 관점에서만 다루지 않는다. 즉 펠레가 축구계에서 차지하는 위상과 역할을 정치, 경제, 인종 등 여러 관점에서 설명한다. 펠레의 조부가 말과 마차로 장작을 나르는 일을 하는 시기의 영상, 펠레가 1958년 스웨덴월드컵에 출전했을 당시 흑인을 처음 본 어린이들이 펠레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신기해하는 모습, 1950~60년대 브라질이 근대국가로 발전하던 시기의 사회상, 흑인도 백만장자가 될 수 있다는 사례를 보여준 점 등을 비중 있게 언급한다. 1964년 발생한 군사 쿠데타와 독재 정권하에서 집권 세력이 펠레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정권에 개방적인 태도”를 보인 펠레가 베트남전 반대 의사를 분명하게 밝힌 흑인 복서 무하마드 알리와 비교된 사실도 가감 없이 전달한다.

<펠레>에서 펠레는 열 살 때 아버지에게 한 가지 약속을 한다. 축구선수였던 그의 아버지는 1950년 월드컵 결승에서 브라질이 우루과이에 1대2로 패하자 눈물을 흘린다. 그러자 펠레는 “아버지를 위해 제가 월드컵에서 우승할게요.”라고 말한다. 그리고 세계축구 역사에서 전무후무한 월드컵 3회 우승의 주인공이 된다. 하지만 월드컵에서 우승했을 때 “안도감”이 든다는 펠레의 고백은 그가 ‘브라질 국민의 영혼’으로서 얼마나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있었는지를 짐작하게 해준다. 현재브라질 국가대표팀에서 등 번호 10번을 달고 있는 네이마르는 “펠레 이전에 ‘10번’은 하나의 번호에 불과했다. 그리고 나는 ‘펠레 이전에 축구는 단순히 스포츠에 불과했다’고 말하고 싶다.”라고 펠레를 추모했다. 펠레로 인해 축구는 스포츠를 뛰어넘어 예술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만한 추모사가 어디 있겠는가. 그리고 다큐멘터리 <펠레>는 ‘축구황제’ 펠레를 기억하는 이정표로 남게 됐다. 다만 말년의 펠레를 담아내지 못한 점은 아쉽다.

 

'두 교황'의 스틸컷.
'두 교황'의 스틸컷.

 

'두 교황'의 스틸컷.
'두 교황'의 스틸컷.

<두 교황>은 자진 사임한 베네딕토 16세(존 요제프 라칭거)와 그 뒤를 이은 프란치스코 교황(호르헤 마리오 베르고글리오)의 실화를 담은 작품이다. 이 영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약간의 배경 지식이 필요하다. 베네딕토 16세는 요한 바오로 2세의 뒤를 이어 2005년 교황에 즉위한다. 하지만 사제들의 성 추문을 비롯한 여러 스캔들에 휘말리면서 어려운 상황을 맞게 되고, 2012년에는 사임을 결심한다. 이때 추기경 사임 의사를 밝힌 베르고글리오 추기경을 만나는데, <두 교황>은 이 시기에 이뤄진 두 사람의 만남을 그린다.

<두 교황>은 베네딕토 16세와 베르고글리오 추기경의 만남을 사실과 허구를 적절히 교차시키면서 보여준다. 그런데 2005년 콘클라베에서 경쟁했던 두 인물은 가치관이 매우 다르다. 베네딕토 16세는 동성애, 피임, 낙태, 여성 서품에 반대하는 보수주의자이다. 베르고글리오 추기경은 세계의 변화를 수용하려는 개혁파이다. 그래서 베르고글리오는 “영업사원이 되기 싫다.”라는 이유로 추기경에서 사임하고자 하는데, 베네딕토 16세는 자신의 위상과 관련한 정치적인 이유로 이에 반대한다. 실제로 <두 교황>에서 베네딕토 16세와 베르고글리오 추기경의 만남은 갈등과 대립으로 시작된다. 하지만 영화 결말에서 베네딕토 16세와 베르고글리오 추기경은 상대를 존중하고 이해하면서 헤어진다. 그러니까 <두 교황>은 변화와 타협에 관한 영화이다.

 

'두 교황'의 스틸컷.
'두 교황'의 스틸컷.

<두 교황>의 미덕은 바티칸 이야기이면서도 종교영화가 아니라는 데 있다. 러닝타임의 대부분이 연로한 교황과 추기경의 대화로 채워지면서도 전혀 지루하지 않은 것도 장점이다. 안토니 홉킨스, 조나단 프라이스 두 배우의 완숙미 넘치는 연기와 정교한 연출도 덕분이다. 예를 들어 베르고글리오 추기경은 수시로 사직서를 내미는데, 베네딕토 16세가 리모컨을 찾거나 헤드셋을 벗어버리는 행위로 이를 거부하는 장면이 그러하다. 클래식과 대중음악, 탱고와 축구, 커피와 피자 등 친숙한 소재를 적절하게 활용한 점도 돋보인다. 무엇보다 완벽해 보이는 두 인물의 인간적인 면모, 불완전함, 과오 등을 가감 없이 보여줌으로써 공감을 자아낸다. 프란치스코 교황과 베네딕토 16세가 2014월드컵 결승전을 TV로 보면서 조국 아르헨티나와 독일을 응원하는 장면은 압권이다. 티격태격하는 모습에 미소가 절로 나온다.

<두 교황>의 서사구조는 새롭지 않다. 보수와 개혁을 상징하는 두 인물의 갈등과 대립으로 시작해 화해로 마무리된다. 사실과 허구를 적절히 섞어서 이야기를 전개하는 방식도 익숙하다. 하지만 2023년 한국사회의 현실을 고려하면, 영화의 메시지는 무겁게 다가온다. 상대방에 대한 이해와 존중, 타협과 변화에 대한 인식,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는 태도 등이 그러하다. 베네딕토 16세는 영화 후반부에 추기경에게 이렇게 말한다. “추기경의 스타일, 방법은 나와는 완전히 달라요. 말하는 것, 생각, 행동 대부분 동의하지 않소. 그런데 이상하게도, 왜 베르고글리오가 필요한지 알게 됐소.” 교황은 직접 만나서 대화를 함으로써 추기경을 진심으로 이해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프란치스코 교황은 즉위식에서 “베네딕토 16세를 위한 기도”를 한다.

<두 교황>과 <펠레>가 다루는 인물의 성격, 생애, 영화의 메시지 등은 사뭇 다르다. 하지만 각자의 분야에서 큰 족적을 남긴 인물의 생애를 동시에 되새겨본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을 수 있다. 김수환 추기경(<바보야>), 법정 스님(<법정 스님의 의자>), 이태석 신부(<울지마 톤즈>, <이태석>)의 생애를 담은 다큐멘터리와 함께 감상하는 것도 좋을 듯하다. 해외와 달리 국내에서는 스포츠영웅의 다큐멘터리가 희귀한 점은 아쉽다.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넷플릭스 캡처

 

 

글·임정식
영화평론가. 영화를 신화의 관점에서 분석하는 작업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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