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4월호 구매하기
[김 경의 시네마 크리티크] 영화<암스테르담 AMSTERDAM(2022)> : 암스테르담의 ‘쥴엔짐’이 소환하는 ‘비즈니스 플롯’
[김 경의 시네마 크리티크] 영화<암스테르담 AMSTERDAM(2022)> : 암스테르담의 ‘쥴엔짐’이 소환하는 ‘비즈니스 플롯’
  • 김 경(영화평론가)
  • 승인 2023.01.09 10:0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데이비드 러셀( David O. Russell ) 감독의 영화 <암스테르담>은 그의 전작 <아메리칸 허슬(2013)>처럼 역사적 실재 사건에 연루된 개성 강한 캐릭터들이 주인공이다. <암스테르담>에서는 1930년대에 벌어진 무자비한 정치·경제적 음모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는 세 명의 친구가 의문의 살인사건을 해결해 나가면서 역사적 거대 정쟁도 함께 해결해 나간다. 의사인 버트 베렌슨(크리스찬 베일 Christian Bale) , 그의 변호사 친구 해럴드 우드먼(존 데이비드 워싱턴, John David Washington), 그리고 이들의 전우이자 친구인 신비하고 매력적인 간호사 발레리 보즈(마고 로비. Margot Robbie)가 헤쳐 나가는 거대 음모는 미국 근대사에서 비즈니스 플롯 ‘The Business Plot’이라고 알려진 유명한 사건으로 1977년 TV 영화인 <노벰버 플랜 The November Plan>으로도 만들어진 바 있을 정도로 그 사건 자체가 워낙 드라마틱하다. 로버트 드 니로가 연기한 길 딜렌벡(Dillenbeck)은 군사 역사의 아이콘이며 해병대 장군이고, 스메들리 버틀러( (Smedly Burtler)라는 실존 인물이다. 이 사건의 핵심은 미국 억만장자들이 파시스트 쿠데타를 계획했으며, 스메들리는 이 계획을 폭로했다는 것이다. 이 역사적 사건이 영화 <암스테르담>을 통해 소환되었다.

 

영화 <암스테르담> 포스터

역사라는 거울을 통해서 보는 역사와 개인의 동기화 : 1930년대 미국의 역사가 소환된 이유

영화는 “실화“라는 자막에서 시작한다. ‘뉴욕 1933년’이라는 자막과 병원 간판이 트랙인으로 촬영된다. 감독은 시작 부분에서 바로 그 시절로 몰입시키기로 작정한 듯 보인다. 가볍고 경쾌한 교향곡 배경의 첫 장면은 허름한 병원. 귀와 성형 보형물들이 클로즈업으로 보인다. “환자들은 나 같은 1차세계대전 부상 장병이었다.”는 버트의 내레이션이 거울을 들어 환자의 봉합된 얼굴을 보여주는 버트의 얼굴 위로 함께 흐른다. 이 장면에서 ‘환자와 나(버트)‘는 사실상 아주 흡사해서 두 참전용사가 서로의 거울이기도 하다. 버트가 들고 있는 거울, 두 인물이 서로 마주 보고 있는 거울(같은 존재), 그 거울을 보고 있는 관객의 스크린 거울까지 함께 의미를 만드는 다층적 거울은 1차 세계대전과 30년대 뉴욕의 허름한 병원 의사를 주인공으로 하는 이 영화가 그것을 바라보고 있는 관객의 거울이라는 것에 대한 상징이기도 하다. 미장센으로 내레이션을 앞서가는 이런 영화는 영화언어를 구사하고 있는 것에 대한 반증이기도 하다. 나아가 완성도 높은 조명은 얼굴만 비추고 주변을 어둡게 해서 이 실화의 이야기 속에 온전히 몰입하게 한다.

그렇다면, 이렇게 몰입시키고자 한 1930년대는 어떤 이유로 지금 소환되었을까.

감독과 영화제작자들은 왜 그 시대, 그 이야기와 그 인물이 관객에게 소구될 것이라고 상상했을까. 미국의 30년대는 미국 프랭클린 루스벨트 행정부 경제정책을 상징하는 ‘뉴딜(New Deal)’ 신화가 장착되고 있었고, 대통령직 4선에 성공한 영웅이 대공황을 이겨낸 진보적 진영의 대장정이 시작된 시기였다. 20년대 대공황이 할퀴고 간 자리에 서서 1차세계대전의 영웅들과 승리의 영광을 그리워했고, 뉴딜의 실무자들은 전쟁영웅들이었다. 그만큼 정치적 반대 세력은 위기의식으로 인해 집결할 수밖에 없던 시기이기도 했다. 1930년대와 2020년대는 그런 면에서 닮은 꼴이다. 코로나 팬데믹이 수년간 지속되면서 전쟁만큼 빠른 속도로 전 세계의 경제를 흔들었으며, 실제로 러시아는 전쟁을 일으켰고, 증시는 하염없이 폭락하여 대공황의 공포가 지속되고 있다. 전쟁이나 팬데믹이라는 글로벌 위기, 국가 위기는 개인의 위기와 빠른 속도로 동기화된다. 이런 드라마틱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움직이는 캐릭터는 흥미진진할 수밖에 없다. 뉴딜정책으로 심기가 불편해진 보수 반대파들이 루스벨트로부터 권력을 빼앗고 그의 "사회주의적" 뉴딜을 중단시키려는 술책은 개성 넘치는 세 명의 친구에게 직격탄을 날리게 된다.

 

암스테르담의 ‘쥴 엔 짐’: 버트와 해롤드 그리고 발레리

버트와 해럴드는 명망 있는 사령관이 독살당하자 그 시신의 부검을 의뢰받는다. 이 의문의 독살사건을 버트와 해럴드에게 의뢰했던, 사령관의 딸마저 이들과 대화 도중 맨해튼 거리에서 차 밑으로 떠밀려 사망하자 버트와 해럴드는 살인 용의자가 된다. 이들은 살인 혐의를 벗기 위해 진범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루스벨트 정권에 반대하는 음모 뒤에 있는 사람들, 돈, 탐욕 그리고 정치적 무자비함의 진실을 마주치게 된다. 그러나 이들이 휘말리는 방식은 좀 유별나다.

 

암스테르담의 쥴엔짐

그들은 자신만만하고 경쾌하며 감각적이다. 용감하지만 영리하고 냉소적이지만 순수하다. 이들의 <쥴 엔 짐 Jules and Jim(1961)> 식 우정과 사랑은 이 영화의 또 다른 매력적인 플롯이다. 이들의 좌충우돌은 이들이 맞닥뜨리는 암울한 정치적 상황과 대조적이다. 이들이 암스테르담에서 보내는 시간은 너무도 꿈결 같아서 대공황 시대의 뉴욕과 뚜렷하게 대조를 보인다. 수로 위에 빛나는 자유로운 도시 암스테르담은 1차 세계대전 중에도 중립국이 누리는 혼재와 자유가 보장되는 해방구였다. 이들은 이 해방구에서는 동등하고 자유롭게 우정과 사랑을 보장받지만, 뉴욕이라는 현실로 돌아오면 각자의 방식으로 이 녹록지 않은 현실을 살아내야 하는 생활인이다.

버트는 1차세계대전 부상 장병 환자를 돌보는 의사이자 본인도 부상 장병이다. 눈 한쪽을 프랑스 전투에서 잃었고 새로운 제약 실험으로 의사협회 감시 대상이며 고통을 극복하기 위해 진통제 등을 스스로 처방하고 실험하면서 약물 중독자가 되 버렸다. 첫번째 병원 시퀀스는 어수선하지만, 여전히 빛바랜 벽지같이 따뜻하고 노르스름한 필터링 조명 색감과 철저한 미장센 덕분에 관객은 매력적이지도 않고 약물에 찌든 외눈 의사를 응원하게 된다. 그의 전우이자 친구인 헤럴드는 ‘흑인’이기 때문에 바로 살인자로 기소되고, 간호사로 종군했던 매력적인 예술가 발레리는 거대 음모집단에 속해 있는 부유한 오빠에 의해 신경쇠약과 약물 중독자가 된다. 그녀는 “유럽을 돌아다니며 흑인과 교제한 여성”이라는 이유로 오빠가 상징하는 파시스트 옹호 집단에서 제외된다. 파시스트들의 아웃사이더인 이들은 지그재그로 사건 중심부로 들어가서 루스벨트 정보를 전복하고자 하는 쿠데타와 정면 승부하고 이 음모가 현실이 되는 것을 막는 데 성공한다. 결국 미 해병대 스메들리 버틀러(로버트 드 니로)는 파시스트 성향의 "비즈니스 음모"의 존재에 대해 증언했고, 사건은 물 밑으로 다시 가라앉아 버렸다. 이제 미국에서는 과연 이 사건이 존재하기는 했었나를 의심한다. 음모론이 겹치면 처음부터 모두 가상 시나리였다고 무효화시키기 일쑤다.

 

발레리를 통해 전쟁의 상흔이 예술이 된다

발레리가 부상 병사의 몸에서 빼낸 탄알로 예술작품을 만들었듯이, 역사 속에서 사라진 음모론은 러셀 감독에 의해 ‘영화 작품’으로 소환되었다. 러셀 감독이 영화 서두에서 자막을 통해 도장 찍었듯이 이는 ‘실화’다. 그리고, 그 역사 속에 이름 없는 ‘쥴 엔 짐’이 있었다.

 

 

글·김 경
영화평론가.

  • 정기구독을 하시면 온라인에서 서비스하는 기사를 모두 보실 수 있습니다.
이 기사를 후원 합니다.
※ 후원 전 필독사항

비공개기사에 대해 후원(결제)하시더라도 기사 전체를 읽으실 수 없다는 점 양해 바랍니다.
구독 신청을 하시면 기사를 열람하실 수 있습니다.^^

* 5000원 이상 기사 후원 후 1:1 문의하기를 작성해주시면 1회에 한해 과월호를 발송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