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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곡숙의 시네마 크리티크] <카시오페아> ― 초로기치매(初老期痴呆), 끔찍한 현실과 애틋한 동행
[서곡숙의 시네마 크리티크] <카시오페아> ― 초로기치매(初老期痴呆), 끔찍한 현실과 애틋한 동행
  • 서곡숙(영화평론가)
  • 승인 2023.02.06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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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억의 망각과 <카시오페아>

<카시오페아>(신연식 2021)는 변호사 엄마에서 알츠하이머 환자가 되는 수진(서현진)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수진은 이혼 후 능력 있는 변호사이자 엄마로 완벽한 삶을 살아가며, 딸 지나(주예림)의 미국 유학을 준비한다. 그녀는 교통사고를 당하고 병원에서 알츠하이머 판정을 받게 되면서 자신이 기억을 잊을까봐, 특히 딸에 대한 기억을 잊을까봐 두려워한다. 아버지 인우(안성기)가 수진의 곁에 남아 그녀의 힘든 여정을 함께 한다.

 

2. 완벽한 변호사에서 초로기치매(初老期痴呆) 환자로

 

<카시오페아>는 완벽한 변호사에서 초로기치매(初老期痴呆) 환자로의 변화를 보여준다. <카시오페아>의 전반부 내러티브는 아버지/수진/딸의 배려심/완벽주의/감성을 대비적으로 그리며, 공적으로 완벽하지만 사적으로 갈등을 빚는 수진이 초로기치매(初老期痴呆)에 걸리게 되면서 불안한 미래를 암시한다. 아버지 인우는 낙천적이고 느긋하고 배려심 있는 성격이며, 수진은 매사에 정확하고 철저하고 이성적인 성격이며, 딸 지나는 감성적이고 섬세한 성격이다. 전반부에는 주로 이성적인 수진과 감성적인 지나가 갈등을 보여주며, 아버지 인우의 중재로 갈등을 풀어나간다. 지나는 미국 유학 전에 친구와 시간을 보내고자 하지만, 수진은 유학 준비를 완벽하게 하기 위해서 친구를 만나지 못하게 한다. 하지만, 수진은 30대 젊은 나이에 초로기치매(初老期痴呆)에 걸리게 되면서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던 자신에게 주어진 가혹한 운명에 분노한다.

 

<카시오페아>의 전반부 스타일은 수진의 무너지는 정신세계를 이상한 사운드와 전화 비명소리로 표현함으로써 갑작스러운 기억 단절로 인한 미래의 불안을 암시한다. 수진이 주차장에서 자동차를 찾는 장면에서, 걷다가 잠시 멈추고 웃으면서 다시 걷기 시작하며, 갑자기 불길한 사운드가 흘러나오면서 다시 걸음을 멈추고, 딸 지나가 없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고 비명을 지른다. 걸음의 중지, 사운드 효과, 망연자실한 표정이 기억을 잃어가는 알츠하이머 환자 수진의 상태를 표현한다.

 

 

3. 공적 영역에서의 퇴출과 무너지는 정신세계

 

<카시오페아>는 공적 영역에서의 퇴출과 무너지는 정신세계를 보여준다. <카시오페아>의 중반부 내러티브에서 수진은 공적 영역에서 자신의 알츠하이머 병을 이용해서 승소하고자 하는 로펌의 도구로 전락하고, 사적 영역에서 일상의 반복으로 자신을 지키라는 아버지의 충고를 듣고, 알츠하이머에 걸린 다른 환자들을 조롱하고 자신의 처지에 좌절한다. 수진은 공적으로 완벽한 커리어우먼으로서의 위상이 무너지고, 사적으로 딸 지나의 기억을 잃어가며, 내적으로 현실에 대한 부정과 분노로 자살을 시도하게 된다.

 

<카시오페아>의 중반부 스타일은 카메라의 움직임, 표정 변화, 클로즈업을 통해 사실의 발견, 충격, 절망을 표현한다. 수진이 로펌 사무실로 출근하는 장면에서, 수진을 보고 당황하는 비서의 표정, 놀라는 동료 변호사들의 표정을 보여준 후, 카메라가 수진의 상반신에서 하반신으로 내려오면 수진이 속바지만 입고 있는 모습이 드러나게 된다. 수진이 로펌 사무실에서 예전에 담당했던 사건과 관련해 질문을 받는 장면에서, 기억이 나지 않아 망연자실한 수진의 얼굴을 클로즈업을 보여준 후 카메라가 뒤로 물러서면서 “제가 알츠하이머입니다.”라고 고백하는 수진과 놀라는 동료 변호사들, 검찰 측 관계자들을 차례대로 보여준다. 수진이 욕실에서 자살을 시도하는 장면은 눈물을 흘리는 수진, 서서히 물에서 퍼지는 피, 수건으로 감싸는 아버지를 보여주면서 수진의 좌절과 아버지의 충격을 표현한다.

 

 

4. 일상 지키기와 사적 영역의 중심 잡기

 

<카시오페아>는 일상 지키기와 사적 영역의 중심 잡기를 보여준다. <카시오페아>의 전반부 내러티브는 수진이 이해력과 인간성을 상실한 후 정신적 착란 증세로 아버지와 서로 몸싸움을 하게 되고, 성추행을 하려는 남자에 대해서 거부 의사를 표시하고 일상생활의 중심을 지키고자 한다. 수진은 소변으로 젖은 옷을 갈아입히려는 아버지에게 “더러운 새끼”라며 폭언하고 폭행하며, 종이를 계속 입에 넣으며 미국에 유학 간 지나를 찾으며, 낯선 사람들을 따라가 길을 잃어버린다. 하지만, 수진은 아버지의 조언대로 기저귀를 갈고 이를 닦고 분리수거를 하는 일상생활을 지키고, 딸 지나의 조언대로 카시오페아를 보며 걸음으로써 자신의 집으로 무사히 귀가한다. 딸 지나가 수진의 알츠하이머 병을 알게 된 후 자신의 아버지와 함께 귀국하고, 완벽한 엄마에서 돌봄이 필요한 환자로 변모한 수진을 위로하면서 관계의 전환을 보여준다.

 

<카시오페아>의 후반부 스타일은 멀어지는 카메라를 통해 냉철한 시선, 객관적인 상황 제시를 보여주는 반면, 다가가는 카메라는 통해 인물에 대한 감정이입을 보여준다. 자신의 치매 어머니의 죽음 이후 불안정한 정신상태를 보이는 남자가 수진을 성폭행을 하려는 장면에서, 수진이 아버지가 가르쳐준 대로 “아빠가 싫어해요. 내 딸이 싫어해요.”라는 말을 반복하자, 남자는 수진을 성폭행하려고 한 사실을 후회하며 자신의 얼굴을 스스로 때린다. 이때 카메라가 점점 멀어지면서 알츠하이머 병으로 인해 인생이 피폐해진 인물의 상태를 냉철한 시선으로 보여준다. 수진이 길을 잃고 산을 헤매는 장면에서, 수진이 점점 산 속으로 들어갈 때는 카메라가 멀어지면서 위기를 표현하고, 집으로 귀가할 때는 카메라가 다가가면서 안도감을 표현한다. 딸 지나가 수진을 만나는 장면에서, “엄마가 힘들 때 내 앞에서 울었으면 좋겠어. 엄마 딸이니까 내 마음이 아픈 건 괜찮아. 우리 엄마 이렇게 보니까 진짜 이쁘다.”라며 수진의 머리카락을 만지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때 카메라가 바스트숏, 미디엄숏, 롱숏의 순서로 점점 멀어지면서, 모녀의 소통과 교류에서 모녀가 처한 상황으로 확대하면서 현실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5. 비참한 현실과 애틋한 동행

 

<카시오페아>는 비참한 현실과 애틋한 동행을 보여준다. 이 영화는 비, 카시오페아, 일상을 반복한다. 우선, 비는 노래, 눈물, 감정의 표현을 의미한다. 전반부에서 수진은 딸 지나에게 자신이 울고 싶을 때 참고 있다가 비가 오면 운다고 말하고, 후반부에서 지나는 엄마 수진에게 비가 오니까 실컷 울고 힘을 내라고 속삭인다. 다음으로, 카시오페아는 길을 의미한다. 전반부에 지나는 수진에게 카시오페아를 따라 엄마를 찾을 것이라고 말하고, 후반부에 수진은 산 속에서 길을 잃었을 때 지나의 말을 떠올리고 카시오페아를 바라보며 집으로 돌아온다. 마지막으로, 일상의 반복은 자신을 잃지 않기, 중심 잡기를 의미한다. 아버지 인우는 수진에게 지인이 양말을 왼쪽부터 신고 11시에 양치를 하고 정해진 시간에 체조를 한다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수진은 인우와 함께 규칙적인 일상의 반복으로 자신의 중심을 찾고자 한다. 마지막 부분에 길을 잃은 수진이 집으로 무사히 돌아와 교통사고를 당한 아버지를 면회하는 장면에서, 아버지는 “아침에 7시에 일어났니? 기저귀도 갈아입었어? 분리수거도? 기분 나쁘게 한 사람한테 싫다고 말도 했고? 내가 누구인지 아니?”라는 질문을 차례대로 던지자, 수진은 조용하고 평온한 목소리로 계속 “예.”라고 대답해 나간다. 그러자 아버지 인우가 수진의 손을 잡는다.

 

이 영화는 초로기치매(初老期痴呆)와 관련하여 비참한 현실을 여과 없이 그리지만, 자상하고 인자한 아버지와 어린 나이에도 엄마의 치매를 받아들이고 위로하는 딸의 모습이 다소 비현실적으로 그려진다. 이러한 비현실적 설정은 가족의 치매로 무너지는 상황에서도 자신을 지키고 현실을 살아갈 수 있다는 낙관적 희망을 전하고 싶은 것이 아닐까? 이 영화의 제작노트는 ‘부녀만의 애틋한 동행’이라고 소개한다. 아버지 인우는 어린 시절 옆에 있어주지 못했던 딸, 성년이 되어서는 완벽한 변호사 엄마이기 때문에 자신을 별로 필요로 하지 않았던 딸이었지만, 알츠하이머 환자가 되어서 기억도 기본적인 생활 감각도 잃어버린 딸이 되어서 비로소 애틋한 동행이 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부녀만의 애틋한 동행’의 의미는 현실은 비참하지만 생활의 중심으로 지켜나가려는 눈물겨운 노력 때문에 ‘애틋한’이라는 말을 붙일 수 있는 게 아닐까?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글·서곡숙
영화평론가, 영화학박사. 현재 청주대학교 영화영상학과 교수로 있으면서, 한국영화평론가협회 사무총장, 한국영화교육학회 부회장, 한국영화학회 대외협력상임이사, 계간지 『크리티크 M』 편집위원장, 전주국제영화제 심사위원, 대종상 심사위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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