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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성의 시네마 크리티크] 당나귀가 이끄는 곳 <EO>
[정우성의 시네마 크리티크] 당나귀가 이끄는 곳 <EO>
  • 정우성(영화평론가)
  • 승인 2023.02.13 09: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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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종반부, 당나귀 EO를 부르는 카산드라(산드라 지말스카)의 모습이 붉은 빛 아래 잔상처럼 스쳐 지나가고 그녀의 목소리에 응답하듯 어디론가 달려가는 EO의 모습이 보인다. EO는 수직으로 난 정원의 길을 따라 달려가다 멈춰서 앞을 바라본다. 그때 EO의 시점처럼 보이는 역 숏에 저택의 외부로 나가는 대문이 보이고 문은 EO에게 길을 열어주듯 어떠한 외력 없이 스스로 열린다. 마치 신처럼, 알 수 없는 현실 외부의 존재가 EO를 돕듯 연출되어 있다.

이런 상황은 영화의 중반부 시골에서 카산드라와 재회 후 농장에서 탈출하여 숲으로 향한 EO의 모습에서도 이미 본 적이 있다. 여기서 EO는 숲 한가운데를 서성거리고 있다. 이때 EO가 분명 위협에 놓여있음을 나타내는 늑대의 모습과 울음소리가 나오고, 마치 전쟁 영화 혹은 액션 영화의 총격 씬처럼 녹색 조준 레이저가 사방에서 쏟아져 나와 무언가를 조준한다. 총으로 조준하고 있는 인물은 묘사되지 않고 명확히 늑대를 사살하는 장면마저 묘사되지 않지만, 총격 음과 함께 사망한 늑대를 보여줌으로써 역시 불가해한 존재가 EO를 보호하고 있음을 또는 지켜보고 있음을 드러내고 있다. 이는 정말로 EO의 여정을 컨트롤하는 외부의 존재를 드러내는 연출인 것일까 아니면 그저 표현적이고 비현실적인 연출에 걸맞게 EO의 환상인 것일까?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 <EO> 자체가 명확히 의도를 파악하기 어려운 영화라는 점을 먼저 집고 넘어가야 한다. <EO>는 영화의 모티브가 된 로베르 브레송의 <당나귀 발타자르>(1966)처럼 부조리한 세계와 그 안에서 고통받는 인간의 드라마를 순수한 대상인 당나귀와 구조적으로 분리하여 동물을 의인화하거나 당나귀의 시점에서 무언가를 바라보는 장면을 최소화하고 결말에 이르러서야 당나귀의 죽음을 통해 더럽고 지저분하며 고통스러운 인간의 드라마와 투명한 동물의 모습을 합일시키는 방식의 영화가 아니다.

<EO>는 어느 정도는 <당나귀 발타자르>처럼 인간의 폭력과 부도덕을 비추는 거울이 되기도 하지만 많은 부분에서 의인화되어 카산드라를 그리워하는 회상 장면과 감정연출을 하고 있거나 동물을 학대하는 인물을 뒷발로 응징하는 장면묘사를 하고 있어 당나귀 EO는 인간과 대비되는 투명한 대상인 동시에 드라마적 캐릭터로 모호하게 그려지고 있다. 그 때문에 관객은 어느 정도 카산드라와의 드라마틱한 재회 혹은 재회하지 못하는 비극을 상상할 수도 있겠지만 <EO>의 기묘한 장면 연출, 특히 당나귀의 시선도 인간의 시선도 아니면서 영화 내적 논리와 관계없는 드론 촬영 장면들, 로봇 촬영 장면들 또는 붉은 필터가 씌워진 표현적인 장면 연출의 기이한 감각 때문에 <EO>가 드라마틱한 전개가 이루어지지 않을 것임을 쉽게 예상 가능하다.

이러한 모호한 감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에 앞서 모호함의 원인에 대해 영화 외적인 경로를 통해 예지 스콜리모프스키 감독의 전작인 <달빛 아래서>(1982)와 <이센셜 킬링>(2010)의 이야기 구조를 통해 추측해볼 수 있다. 두 편의 영화 속 주인공 모두 EO가 인간세계의 이방인인 것처럼 모국이 아닌 장소에 떨어진 외부인이다. 또한 굉장히 정치적인 상황 안에 놓여 있지만 그러한 정치적인 상황 밖 생존의 문제에 몰두해 있어, 영화를 이끌어가는 것은 어떻게 제한된 예산안에서 목적을 성취할 것인지(달빛 아래서), 극한의 환경에서 살아남을 것인지(이센셜 킬링)에서 오는 긴장감이다. 정치적인 알레고리는 그러한 드라마, 장르 외부에 서성거리고 있으며 그 인물들이 생존 이외에 궁극적으로 바라는 것은 만날 수 없는 아내와의 재회이다. 즉 <달빛 아래서>의 노박(제레미 아이언스>이 TV 브라운관에서 아내의 환영 보거나 <이센셜 킬링>의 모하메드(비센트 갈로)가 숲에서 아내의 환영을 보듯 <EO>의 당나귀도 인간에게 길러지는 동물이라는 시스템의 조건 안에서 카산드라의 환영을 보는 것이다.

 

<달빛 아래서>와 <이센셜 킬링>의 강력한 정치성이 단지 장르적 투명함의 배경으로만 존재함으로써 도식적이거나 직접적으로 정치적 알레고리를 불러들이는 것이 아니라 일상과 생존이라는 현실에 자연스럽게 스며들되 모호하지만, 맹렬히 생각하게 만드는 것처럼 <EO> 또한 의인화한 드라마와 동물 사육 시스템에 대한 정치적, 윤리적 고민 사이에서 모호하게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앞선 영화들과 <EO>가 구조적으로 유사하지만, 근본적으로 다른 것은 대상이 인간과 인간을 둘러싼 시스템이 아닌 인간 바깥의 존재를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EO>가 인간의 시선에서 인간 바깥의 존재를 묘사하고 인간 바깥의 존재를 컨트롤하는 인간의 시스템에 대해 말하기 위해 한 선택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다.

글의 처음에 <EO>의 초현실적인 장면 연출이 EO를 컨트롤하는 외부의 시선을 드러내는 것인가 EO의 환영인가에 대한 질문으로 시작했다. 이 영화가 동물을 도구화하는 지점에 대해 비판하기 위한 영화로 본다면 <EO> 또한 비판을 위해 영화 촬영의 도구로 활용한 영화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말장난처럼 느껴지거나 과도한 지적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EO>의 문제의식은 바로 이러한 지점까지도 포괄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EO는 영화 속에서 늘 수직의 긴 길과 복도 위에 서 있다. 길 끝에는 문 혹은 터널의 입구가 있고 EO는 그곳을 향해 달려가는 장면은 있지만, 그 문을 나가는 장면은 없다. EO가 각각 다른 상황으로 넘겨질 때 영화 내적 논리를 벗어난 힘의 도움을 받거나 영화 내의 인간에 의해 옮겨 다닐 뿐이다. 그 때문에 EO는 농장에 있는 순간에도 그리움을 느끼고 숲에 있을 때도 위협을 느끼며, 마지막 종착지인 공장식 농장에서도 소 떼들 사이의 외부인처럼 보인다. 마치 있어야 할 자리가 아닌 것처럼 있다. 인간도 동물도 아닌 기계적 시선의 장면들처럼 현실도 비현실도 아닌 초현실적 이미지가 EO의 환영이면서 EO를 도구화하는 것을 가시화하는 장치기도 하듯, 의인화한 대상이면서 알레고리의 도구이기도 한 모호함 속에 EO가 있다. 노박처럼 고국으로 돌아가지도 모하메드처럼 죽음으로 끝을 맺지도 못하는 꿈, 영화라는 이미지 안을 헤매는 외부인으로 존재한다.

 

그렇기에 <EO>는 갇혀있고 학대당하는 동물들에 대해 말하는 영화처럼 보이기도 하면서 투명한 동물에 비춰보았을 때 불투명한 인간에 관한 영화처럼 보이면서 더 나아가 그저 기이한 이미지의 감각을 전시하는 과시적 영화처럼 보이기도 한다. 또는 탈주, 파괴와 살인, 근친상간의 일탈적 감각을 당나귀라는 카메라에 실어 보여주는 영화인 것도 같다. 다쳐서 쓰러진 EO를 보고 “왜 고통받아야 하나 안락사시키라”고 한 직원이 말하자 다른 직원이 여기는 동물을 치료하는 곳이라고 말한 것처럼, 이것은 영화이고 의미를 확정 짓는 죽음이 아닌 끊임없이 이미지 안을 헤맬 수 있도록 보여주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 헤맴의 종착지가 대형 축산의 모습이라는 점에서 <EO>가 비판하고 있는 방향성이 분명하다는 것은 확실하다. 하지만 우리 안을 빙글빙글 도는 말의 모습을 빛과 어둠의 안에서 관능적으로 묘사하는 장면 속 원형의 움직임과 빛의 점멸은 <놉>(2022)에서도 등장했던 에드워드 마이브리지의 <The Horse in Motion>(1878)을 떠올리기에는 충분하며, 영화의 종착지와 의미적으로 불화하는 초현실적인 이미지들의 감각이 <EO>를 불투명한 감각으로 이끈다는 것 또한 명확하다. 그러므로 악몽과도 같은 EO의 붉은 빛의 여정이 <달빛 아래서>와 <이센셜 킬링>이 그랬던 것과 비슷하지만 반대로, 단단한 발굽으로 여러 장소를 헤매며 디뎠던 정치적, 사회적 의미를 불러들인 불투명한 알레고리 안에서 결국 우리를 투명한 영화적 감각으로 이끄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사진출처: 다음 영화

 


글·정우성
2021년 영평상 신인평론상을 받았다. 현재 예술강사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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