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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애의 시네마 크리티크] <시간을 꿈꾸는 소녀>가 담아낸 시간들
[송영애의 시네마 크리티크] <시간을 꿈꾸는 소녀>가 담아낸 시간들
  • 송영애(영화평론가)
  • 승인 2023.02.20 09: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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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꿈꾸는 소녀> 포스터

지난 1월 11일에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시간을 꿈꾸는 소녀>(박혁지, 2022)에는 한 소녀와 그녀의 할머니의 7년이라는 시간이 담겼다. 두 시간이 채 안 되는 영화 속에 담긴 7년이라는 시간은 꽤 여러 생각을 하게 한다.

이 영화가 담아내고 있는 여러 측면의 시간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다. 소녀가 꿈꾸는 시간은 무엇이고, 그 시간이 영화 속에 어떤 방식으로 담겼는지 등에 대해서 말이다.

 

- 소녀가 꿈꾸는 시간들

이 영화에서 소녀 수진은 누군가의 미래를 꿈으로 꾼다. 할머니 경원은 손녀 수진이 4살부터 예지몽을 꾸자, 사람들이 어린 수진에게 여러 질문을 하는 걸 막았다고 한다. 경원도 수진도 처음부터 사람들의 미래를 꿈꾸는 무속인이라는 미래를 받아들인 건 아니었다.

 

<시간을 꿈꾸는 소녀> 스틸

수진은 광고인이라는 자신의 미래를 꿈꿨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 과감하게 서울로 대학을 간다. 영화에서 보게 되는 수능을 치르러 가는 모습, 대학 생활 모습은 여느 또래와 다를 바 없다. 다만 대학 생활 내내 주말마다 집에 내려와 무속인의 삶도 살아내는 수진이 매우 힘들어 보인다. 수진은 자신의 미래를 위해 선택을 해야한다. 

누군가가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우여곡절을 겪는 모습은 영화를 통해 참 많이 보아왔다. 보통 관객은 주인공에게 감정이입이 되어, 그들의 꿈을 응원한다. 그런데 <시간을 꿈꾸는 소녀>를 보며, 관객은 수진처럼 고민에 빠지게 된다.

물론 미래의 꿈이라는 것을 반드시 직업으로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수진은 직업뿐만 아니라, 삶에 대한 태도, 생각 등에 대해서도 자신의 목소리를 내며 선택해 나간다. 관객은 7년 동안 남의 미래를 꿈꾸며, 자신의 꿈을 선택해가는 수진을 지켜보며, 미처 몰랐던 무속인의 일상을 목격하게 된다.

 

<시간을 꿈꾸는 소녀> 스틸

외출 전후 늘 신에게 인사하고, 누군가의 의뢰를 받은 제사나 굿을 늘 준비한다. 그리고, 또래 친구들과 밥도 먹고, 술도 마시고, 여행도 한다. 조금 특이한 직업을 가진 할머니와 손녀의 일상을 엿보는 기분도 든다.

그래서 관객은 수진이 자신의 미래를 선택하는데 이렇다 저렇다 훈수를 두지 않게 된다. 그 누가 수진에게 특정 선택을 강요할 수 있을까?

 

- 영화가 담아낸 소녀의 시간

이 영화가 담아낸 소녀의 시간은 과거다. 110분이라는 영화 상영 시간 동안 담긴 수진의 7년이라는 시간은 그동안 다큐멘터리 영화를 통해 보아온 무속인의 모습과는 차이가 있다. <시간을 꿈꾸는 소녀>가 담아내고 있는 무속인의 모습은 매우 밋밋하기까지 하다.

예를 들어 <영매-산 자와 죽은 자의 화해>(박기복, 2002), <사이에서>(이창재, 2006), <비단꽃길>(김정욱, 2011), <만신>(박찬경, 2013) 등처럼 무속인의 삶을 들여다보는 것은 아니다. 단순하게 일반화할 수는 없으나, <시간을 꿈꾸는 소녀>에는 현대사 속 파란만장했던 무속인의 삶, 신비로운 공연에 가까운 굿판 등이 나오지 않는다. <시간을 꿈꾸는 소녀>에는 고등학생에서 대학생이 되고, 대학원생이 되는 수진의 일상에서 늘 신에게 보고하고, 제사를 준비하는 모습이 덤덤하게 담겼다.

 

<시간을 꿈꾸는 소녀> 스틸
<시간을 꿈꾸는 소녀> 스틸

카메라는 종종 수진의 뒤를 따르고, 편집 없이 긴 시간 그들의 대화를 담아낸다. 빠른 편집이 등장한다 해도, 긴장감을 주기보다는 수진과 경원의 삶과 다른 이들의 삶을 교대로 나열하는 식이다. 그렇게 수진과 경원의 삶을 수많은 서로 다른 삶 중 하나로 펼쳐낸다.

다큐멘터리 영화에서 흔히 만나게 되는 자막이나 해설도 없다. 영화가 담아낸 7년이라는 시간이 모두 시간 순서대로인 것도 아닌데, 감독은 과감하게 추가 설명을 뺐다. 인터뷰 모습도 최소화했다. 그나마 질문을 던지는 감독의 목소리나 모습은 아예 등장하지도 않는다.

89회차 촬영분이 뒤섞였지만 이해하기 어려운 건 아니다. 누군가의 일상을 꼭 시간 순서대로, 추가 설명과 함께 봐야 이해할 수 있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더불어 무속인에 대한 편견을 깨고 싶었다는 감독의 의도에 꽤 설득된다.

2월 19일까지 누적 관객 10,600여 명을 만난 <시간을 꿈꾸는 소녀>에는 누군가의 과거와 현재, 미래가 모두 담겼다. 그 시간을 통해 무속인 더 나아가 인간에 대한 시선을 넓힐 수 있다. 또한 110분이라는 상영 시간 속에 과거 7년이라는 시간을 담아낸 영화의 매력도 느낄 수 있다.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글·송영애

영화평론가. 서일대학교 영화방송공연예술학과 교수. 한국영화 역사와 문화, 교육 관련 연구를 지속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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