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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곡숙의 시네마 크리티크] <해피 아워> ― 부부 관계의 네 가지 얼굴과 삶을 반추하는 느림의 미학
[서곡숙의 시네마 크리티크] <해피 아워> ― 부부 관계의 네 가지 얼굴과 삶을 반추하는 느림의 미학
  • 서곡숙(영화평론가)
  • 승인 2023.04.03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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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해피 아워>의 5시간 28분, 네 여성의 삶과 사랑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해피 아워>(ハッピーアワー, Happy Hour, 2015)는 3시간 28분 동안 네 친구의 삶과 사랑을 보여준다. 아카리는 남편의 불륜으로 인해 돌싱이 된 간호사이며, 사쿠라코는 시청 공무원 남편 요시히코, 아들 다이키와 살며 바쁜 일상을 보내는 전업주부이며, 후미는 편집자 남편 타쿠야와 사는 문화 기획자이며, 준은 남편 히고 교수와 이혼 재판 중인 여성이다. 네 친구는 세 가지 사건, 즉 워크숍, 재판, 낭독회를 통해 부부관계의 표면과 이면, 갈등과 상처를 드러낸다.

 

2. 워크숍: 네 친구들의 무너진 중심, 통합·교감에서 분열·갈등으로

 

 

<해피 아워>에서 워크숍은 아카리·사쿠라코·후미·준의 무너진 중심을 통해 통합·교감에서 분열·갈등으로의 변화를 보여준다. <해피 아워>의 전반부 내러티브는 당일치기 여행, 개인적 일상, 워크숍, 뒷풀이를 통해 표면적 배려, 일상적 갈등, 인간관계의 성찰, 상처와 갈등을 보여준다. 네 명의 37살 동갑내기 친구들은 당일치기 여행에서 즐거워하며 워크숍과 1박 2일 여행을 계획하며,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지만 다소 피상적 관계를 보여준다. 개인적 일상에서 아카리는 데이트와 고립감을 보여주며, 사쿠라코는 남편과의 불통과 바쁜 일상을 보여주며, 준은 이혼 재판으로 인한 상처를 보여주며, 후미는 남편과 공적/사적 영역에서의 갈등을 보여준다. 우카이의 워크숍은 ‘중심이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의자 세우기, 등 기대기, 원 안으로 들어가기, 배의 소리 듣기, 이마 맞대기를 통해서 무게의 중심, 믿고 의지하기, 서로의 중심 맞추기, 내면의 소리, 정신적 탐구를 보여준다. 워크숍 뒷풀이는 아내의 불륜과 상처에 대한 젊은 남자의 고백 후, 남편의 불륜으로 이혼한 아카리와 자신의 불륜으로 이혼 소송을 하는 준이 서로 갈등한다. 이 영화에서 네 친구는 표면적·피상적 배려에서 이면적·내면적 갈등으로의 변화를 드러낸다.

 

<해피 아워>의 전반부 스타일은 검은 화면, 비, 담배, 텅 빈 자리로 미래 암시, 고독, 배척과 배제를 표현한다. 당일치기 여행 장면은 기차 터널을 통과할 때 검은 화면과 밝은 길의 대비, 산 정상에서 앞이 보이지 않는 안개로 37살 네 명의 친구들 앞에 닥친 불길한 미래를 암시한다. 아카리의 일상생활 장면은 여행 후 베란다에서 담배를 피우는 모습, 출퇴근 길 전철에서 서 있는 모습, 전남편의 결혼 초대 거절 후 담배를 피우는 모습으로 고립감을 표현한다. 사쿠라코 남편 요시히코와 준의 대화 장면은 ‘사쿠라코를 사랑해?’라는 준의 질문, ‘앞으로 사쿠라코를 불러내지 말아줄래?’라는 요시히코의 반문, 준이 앉았던 텅 빈 자리를 보여주면서 준의 관심과 요시히코의 배척을 드러낸다.

 

3. 재판: 아카리와 준, 가해자와 피해자의 전도

 

<해피 아워>에서 재판은 아카리와 준의 가해자와 피해자의 전도를 보여준다. <해피 아워>의 중반부 내러티브는 준의 이혼 재판, 후미 남편과 소설가의 동행, 마작 게임, 준의 실종과 임신, 사쿠라코 아들 여친의 임신 사건으로 갈등/이해, 충고/간섭, 내면/외면, 거짓말/편견, 분열/교감의 대비를 보여준다. 준의 이혼 재판은 남편을 상처 입히기 위한 외도 거짓말, 대화가 없는 결혼 생활과 정신적 폭력, 소중한 부분에 대한 남편의 살해를 드러냄으로써 준의 상처와 친구들의 이해를 보여준다. 후미는 소설가 노세의 온천 소재 집필 기획을 지원해 달라는 남편의 요청으로 인해서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 사이에서 갈등한다. 온천 여행은 25살의 귀여운 여성 소설가 노세와 편집자 남편 타쿠야의 동행을 바라보는 후미의 불안을 보여준다. 마작 게임에서 아카리는 후미·타쿠야의 표면적 관계와 노세·타쿠야의 편안한 관계를 대비시키며 후미의 불안을 가중시킨다. 준의 실종·임신 사건에서 준이 재판 중에 남편과 동침한 사실이 밝혀지자, 아카리는 ‘소중한 친구가 거짓말했다’는 사실에 슬퍼하고, 사쿠라코는 아카리에게 ‘자신의 잣대로만 판단하기 때문에 중요한 이야기를 할 수 없다’고 비판한다. 사쿠라코 아들 다이키의 여자친구가 임신하는 사건으로 아들과 사쿠라코, 사쿠라코와 남편, 남편과 시어머니가 갈등하지만, 시어머니가 사쿠라코에게 ‘결혼은 앞으로 나아가도 지옥, 뒤로 물러나도 지옥이니까 앞으로 나아가는 게 좋을 듯하다’는 조언을 하면서 사쿠라코와 시어머니의 교감으로 이어진다.

 

<해피 아워>의 중반부 스타일은 얼굴의 전면/측면, 검은 실루엣, 슬로우 모션, 어두운 터널, 익스트림롱숏으로 불통/상처, 사랑/증오, 미래에 대한 불안, 자유/고립감을 표현한다. 준의 재판 장면은 준이 ‘한때 남편을 사랑해서 소중한 부분을 남편에게 바쳤지만 남편이 소중한 부분을 무시해 살해당했다’고 진술하는 모습에서 남편 얼굴의 전면(뒤)과 준 얼굴의 측면(앞)을 대비시키면서 남편의 불통과 준의 상처를 대비시킨다. 남편이 준의 집을 방문하는 장면에서, 준이 재결합을 호소하는 남편 머리에 물을 뿌리고, 뒤로 밀고, 목을 조르는 모습을 보여준 후, 남편은 준의 허리를 끌어안고 물을 마시고 떠나는 모습을 검은 실루엣으로 보여줌으로써 부부의 애증 관계를 드러낸다. 네 친구의 온천 여행 장면은 폭포의 슬로우 모션과 사운드의 강조를 통해 현재의 행복과 미래의 불안을 대비시킨다. 준이 떠나는 장면은 배 난간에 서서 하늘을 바라보는 준의 모습을 익스트림롱숏으로 보여줌으로써 자유와 고립감을 동시에 표현한다.

 

4. 낭독회: 사쿠라코와 후미, 표면적 평화와 이면적 상처

 

<해피 아워>에서 낭독회는 사쿠라코와 후미의 표면적 평화와 이면적 상처를 드러낸다. <해피 아워>의 후반부 내러티브는 낭독회와 대담, 뒷풀이, 노세의 고백, 후미의 이혼 요구, 타쿠야의 교통사고로 호감과 상처, 갈등, 부부의 위기, 내면적 이해를 드러낸다. 단편 소설 「수증기」 낭독회에서 소설가 노세 코즈에는 주인공 시마다에 대한 여주인공의 연심을 통해 타쿠야에 대한 연심을 간접적으로 표현하고, 후미는 행간의 의미를 눈치 채고 가슴의 통증을 느낀다. 뒷풀이에서 타쿠야는 먼저 일어서는 아내 후미를 따라가지 않고 소설가 노세를 데려다주겠다는 의지를 보이면서 편집자의 공적 배려인지 남성으로서의 사적 연심인지 불분명한 태도를 보여준다. 후미는 노세의 고백을 털어놓는 타쿠야에게 이혼을 요구하고, 타쿠야가 바로 집을 나가자 충격을 받고, 타쿠야의 교통사고 소식에 관계를 개선하고자 하면서, 표면적 관계에서 내면적 이해로 나아가고자 한다.

 

<해피 아워>의 후반부 스타일은 시선, 버즈아이뷰, 유리창과 미디엄숏, 익스트림롱숏, 클로즈업, 뒷모습과 미디엄숏으로 상처, 일탈, 고백과 성찰, 내면적 충격, 관계의 의미를 표현한다. 노세 코즈에의 낭독회 장면은 타쿠야와 노세의 마주보는 시선, 타쿠야를 바라보는 후미의 시선을 통해 후미의 상처를 표현한다. 우카이와 아카리의 클럽 장면은 사람들에 의해 위로 올려진 아카리를 버즈아이뷰숏으로 보여줌으로써 아카리의 놀람과 일탈을 표현한다. 후미와 사쿠라코의 전철 장면에서 타쿠야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는 사쿠라코, 부부 관계에 대해 의문을 느끼는 모습을 유리창의 미디엄숏으로 보여줌으로써 부부 관계에 대한 성찰과 회의를 표현한다. 타쿠야가 노세를 데려다주는 장면에서, 노세가 “저는 타쿠야씨가 좋아요. 너무 너무 좋아요.”라고 고백한 후 두 사람이 탄 차를 익스트림롱숏으로 보여줌으로써 거리두기를 표현한다. 후미가 혼자 집으로 돌아가는 장면에서, 카메라가 계속 걷는 후미의 모습을 롱숏에서 익스트림롱숏으로 멀어지면서 후미의 상처와 고립감을 표현한다. 타쿠야의 교통사고 장면은 찌그러진 타쿠야의 자동차, 부상당한 타쿠야를 롱숏으로 보여준 후 타쿠야의 결혼반지를 클로즈업으로 보여줌으로써 타쿠야의 표면적 무심함과 내면적 충격을 드러낸다. 타쿠야의 수술 장면은 타쿠야와의 관계를 다시 이어가려는 후미, 네 친구의 여행을 계획하는 사쿠라의 모습을 바다를 쳐다보는 뒷모습의 미디엄숏으로 표현하면서 관계의 의미를 보여준다.

 

5. <해피 아워>: 표면적 평화, 내면적 갈등, 심층적 사랑

 

<해피 아워>는 표면적 평화, 내면적 갈등, 심층적 사랑을 단계적으로 보여준다. 네 명의 여성은 표면적 배려와 평화를 보여주는 관계에서, 워크숍, 재판, 낭독회라는 세 사건을 통해 문제와 갈등을 드러내면서 친구의 관계와 부부의 의미를 깨닫게 된다. 우선, 우카이와 준은 맥거핀과 매혹적 대상의 역할을 수행한다. 우카이는 세 사건을 통해 후미의 워크숍 강사, 사쿠라코의 불륜 기회 제공, 준의 쉼터 도망, 아카리와의 하룻밤 관계 등 공통분모로 ‘맥거핀’의 역할을 수행한다. 준은 워크숍에서의 외도 고백, 재판의 상처, 낭독회에서의 실종/임신을 통해 아카리의 편견, 사쿠라코의 상실, 후미의 은폐를 드러낸다는 점에서 ‘매혹적 대상’의 역할을 수행한다. 다음으로, 네 여성은 두 쌍의 짝패적 관계를 보여준다. 아카리는 남편의 불륜으로 인한 상처를 이혼했다는 점에서 피해자이지만, 준은 자신의 불륜으로 이혼 재판을 한다는 점에서 가해자이다. 아카리는 자신의 상처로 인해서 준의 불륜을 공격한다는 점에서 가해자가 되고, 준은 재판 과정에서 남편의 무관심으로 인한 정신적 폭력을 드러내면서 피해자가 된다. 사쿠라코는 바쁜 남편과 무한 반복되는 가사·육아로 탈진하는 빡빡한 관계를 보여주지만, 후미는 남편과 서로의 일상과 작업을 간섭하지 않는 느슨한 관계를 보여준다. 사쿠라코는 20대 돌싱과의 충동적인 하룻밤 섹스로 일상에서의 일탈을 보여주고, 후미는 소설가의 연심과 남편의 챙기기로 인해 상처 받은 마음을 드러내면서 이면적 사랑을 드러낸다. <해피 아워>는 아카리의 모범/편견, 사쿠라코의 성실/일탈, 후미의 표면/이면, 준의 자유/상처로 사랑, 삶, 진실의 이중성을 드러내며, 5시간 28분이라는 시간 동안 천천히 삶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느림의 미학을 보여준다.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글·서곡숙
영화평론가, 영화학박사. 현재 청주대학교 연극영화학부 교수로 있으면서, 한국영화평론가협회 사무총장, 한국영화교육학회 부회장, 한국영화학회 대외협력상임이사, 계간지 『크리티크 M』 편집위원장, 전주국제영화제 심사위원, 대종상 심사위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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