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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민의 시네마 크리티크] <수라> 와의 교신
[이승민의 시네마 크리티크] <수라> 와의 교신
  • 이승민(영화평론가)
  • 승인 2023.06.19 09: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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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은 서울에서 군산으로 이사를 왔다. 아들 도영과 함께 해찬 갯벌을 방문했고, 그 곳에서 장승을 세우는 사람들을 만나 오래 전 지워버리려 애쓴 기억이 떠올랐다. 그렇게 영화는 모두가 끝났다고 종결한 새만금 갯벌을 30년 째 방문하며 그곳을 기록하고 함께하는 시민들, 자칭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에 대한 궁금함에서 출발해 7년의 세월을 함께 한다. 사랑의 시작이 관심과 호기심이라면, <수라>는 새만금 갯벌에 살고 있는 생명들에 대한 연서이자 증언이고, 죽음과 종결로 각인된 새만금이 생명 가득한 삶들이 존재함을 알아가는 ‘현장’ 체험이다. 영화는 마치 순환하는 자연의 리듬처럼, 긴 시간의 축적 속에서 “나”의 현재와 과거가 만나고, 기억과 체험이 이어지고, 세대와 세대가 연결되면서 처음과 끝이 서로 마주본다.

 

사실 <수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체험이 중요하다. <수라>는 이름 없는 갯벌에 “비단에 새긴 수”라는 이름을 붙여준 것처럼, 끝났다고 잊혀진 새만금 갯벌에 수놓듯 존재하는 생명을 담는다. 짝짓기 때가 되면 검은색을 띄는 검은머리갈매기, 새끼를 찾아 헤매는 흰물떼새, 갓 태어난 쇠제비갈매기, 작은 붉은어깨도요새들의 군무, 마른 갯벌을 10년을 버텨낸 흰발 논개를 시민조사단의 시선을 경유해, 이들 하나하나를 영화에 담긴다. 30년차 시민조사단 동필은 갯벌의 새를 색깔이 아니라 행동으로 찾아낸다며 먹이를 찾는 각 새들의 움직임을 환하게 웃으며 설명한다. 그의 표정을 따라 새들의 움직임을 바라보다보면 나도 모르게 웃음에 공명하며 개별 존재로 이들을 마주하게 된다. 그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본 죄”로, 갯벌에게 갯벌이라는 이름을 놓지 않는다. 갯벌이었기 때문에 갯벌이라 불러줘야 갯벌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영화는 파괴된 자연의 모습과 그 속에서도 존재하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다채로운 감정으로 담는다. 궁금함을 시발로 기억 속 분노, 슬픔, 절망에 이어 현재 다시 생명을 마주한 놀라움과 우려, 감사함 그리고 안타까움, 황홀, 기대가 담겨있고, 이 모든 것 저변에는 자연에 대한 사랑과 염려가 녹아있다. 한 영화에 담을 수 있는 감정이 이토록 다양하다는 것은, 갯벌에 얼마나 다양한 종이 살고 있는 지만큼이나 놀랍다. 이처럼 영화는 인간이 주도한 생태적 재앙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인간이 발견하고 보호하고 지키고자 하는 생태의 아름다움에 주목하면서 이를 함께 나누고자 한다. “너무 아름다움을 본 것에 대한 죄라면 죄인이 되는” 선의지를 시민조사단 만이 아니라 관객에게도 체험하게 한다. <수라>를 보면, 황홀감이라 밖에 감히 표현하지 못할 아름다움을 경험하게 된다. 이제 새만금이 매립되었다고 쉽게 말하는 대신 갯벌 수라의 현장을 직접 방문해 보고 싶어진다. 우리는 자연과 별개가 아니라 자연의 일부이고, 무엇보다 삶의 근원인 자연의 순환과 균형을 강제로 멈추어서, 우리가 우리 스스로의 적이 되지 말아야 않아야 하게 때문이다.

 

영화는 그런 의미에서 세 군단의 주인공이 있다. 동필씨를 비롯한 새만금시민조사단, 관찰자로 시작했지만 시민조사단이 된 감독 나, (이 속에는 다음 세대인 동필의 아들 승준과 감독의 아들 도형이 감사히 존재한다) 그리고 새만금의 수많은 생명들이 주인공이다. 엔딩 크레딧은 이들 존재를 모두 기입하고 있다. 검은머리물떼새, 쇠제비갈매기, 저어새, 좀도요, 민물도요, 뒷부리도요, 큰뒷부리도요, 흑꼬리도요, 알락꼬리마도요, 붉은어깨도요, 희물떼새, 고라니, 개개비, 잿빛개구리매, 민물가마우지, 흰발농게, 농게, 도둑개, 말똥게, 칠게, 생합, 서해비단고둥, 큰구슬우렁이, 칠면초, 해홍나물 까지. 그리고 영화 마지막은 말한다. 수라는 미군의 땅이 아니라 고라니의 영토. 칠년초의 영토, 개개비의 영토, 잿빛 개구리매의 영토, 쇠제비갈매기의 영토, 가마우지의 영토라고. 영화는 생명의 아름다움으로, 환경은 경제의 부분 집합도 아니고, 정치의 부분 집합도 아니라고 조용히 강변한다.

 

 

 

사진: 네이버

 

글·이승민

영화 연구자, 평론가, 기획자, 강연자로 활동, 독립영화와 다큐멘터리영화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저서로 <한국다큐멘터리의 오늘>(공저), <아시아 다큐멘터리의 오늘>(공저), <영화와 공간> 등의 저서와 다수의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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