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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경의 시네마 크리티크] <황혼의 검객>(1967) 한국 사극 웨스턴의 미학
[김 경의 시네마 크리티크] <황혼의 검객>(1967) 한국 사극 웨스턴의 미학
  • 김 경(영화평론가)
  • 승인 2023.08.14 10: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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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인>에서 <황야의 무법자>까지

 

황혼의 검객 포스터
황혼의 검객 포스터

제목에서 이미 ‘검객 ’영화’와 ‘스파게티 웨스턴’이 만난 변형 웨스턴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는 <황혼의 검객>은 1967년 정창화 감독의 한국형 사극 웨스턴이다. <황혼의 검객>이 제작되었던 1967년은 미국에서 ‘변형’이 ‘새로운 경향’이던 시대였다. 마이크 니콜스(Mike Nichols) 감독의 <졸업>이 오스카상을 받은 해였고, 아서 펜(Arthur Penn)의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Bonnie and Clyde>등 뉴 할리우드가 시작된 해였다. 50년대 정통 서부극도 이미 변형된다. 예컨대, 미국 사회의 변화에 상응하는 태도와 주제의 변화가 반영되었다. 존 포드나 그의 추종자들의 영웅적이고 이상화된 개척자들의 서부는 점차 수정주의 서부극으로 변모한다. 60년대 각국의 뉴 웨이브가 영향을 미친 이후 등장한 영화들은 기본 영화언어를 반성하고 비판하고 새로운 언어를  ‘겹쳐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세르지오 레오네(Sergio Leone)의 일련의 작품들, 즉 〈황야의 무법자〉(A Fistful of Dollars, 1964), 〈석양의 무법자〉(For a Few Dollars More, 1965), 〈속 석양의 무법자〉(The Good, the Bad and the Ugly, 1966) 등 스파게티 웨스턴이 새로운 서부극을 보여주었으며, 이 중 <황야의 무법자>는 1964년에 제작되어 한국에서는 1966년 명보극장에서 57일간 상영돼 서울 관객 29만 명을 기록했다.  당시의 분위기를 보면, 스파게티 웨스턴의 파급효과를 짐작해 볼 수 있다.  한국 개봉 당시 <황야의 무법자> 포스터에는 구로사와 아키라의 <요짐보>(1961)를 서부극화 했다고 설명한다. 사실 <요짐보>는 이미 사무라이 웨스턴이다. 구로사와 아끼라는 서구화된 영화미학을 보여주는 감독이었다.  <황혼의 검객>에도  이러한 당대의 문화와 역사가 잘 반영되었다.  서부극이 세르지오 레오네를 통해 스파게티 웨스턴으로 변형되었다면, 구로사와 아키라를 통해 사무라이 웨스턴이 되었고, 정창화를 통해 한국 사극 웨스턴 미학을 보여주었다. 

정창화 감독은 “'셰인'으로 발상의 전환을 하게 된 뒤 본격적으로 액션을 영화에 도입한 작품이 '햇빛 쏟아지는 벌판'(1960)이다.”라며,  <셰인>의 편집과 리듬을 교과서로 삼아 공부했다고 그의 자서전, ‘더 맨 오브 액션’에서 밝힌 바 있다. 장르영화와 서부극, 액션 영화에 대한 탐구는 이미 <노다지>(1961)나<지평선>(1961)을 통해 흥행과 평단에서 성공적으로 평가받고 있었으며, 1967년<황혼의 검객>에 이르러서는 정창화의 미학으로 정체성이 뚜렷해진다. 스토리는 간단한 서부극의 클리셰다. 검술이 뛰어난 나그네(남궁원)가 마을로 들어오고, 그는 악(허장강)을 제압하며, 다시 마을을 떠난다. 그리고 제압하는 과정의 대치 장면 역시 서부극 결투 장면의 클리셰다. 남북과 동서로 배치된 두 인물은 총 대신 검으로 결투할 뿐이다.  그런데, 이 영화의 독특한 아름다움은 이 클리셰 위에서 화룡점정의 아름다움을 드러낸다.

 

영웅담이 아니라 인간적인 이야기

나그네 검객 김태원(남궁원)은 오기룡(허장강)과 대결하지만 오기룡이 나오는 장면은 많지 않다. 이야기 속 이야기가 액자 구조로 겹쳐있다. 숙종과 장희빈, 민비와 장희재 등 궁중 권력 암투가 비중 있는 드라마인가 하면 어느새 이야기는 나그네의 아내, 향녀(윤정희)가 그 권력 암투에 희생이 되는 과정, 그리고, 섬뜩한 오기룡의 음모로 아내와 아이를 자기 손으로 죽여야 했던 참혹한 개인사가 씨줄과 날줄처럼 얽혀서 직조하듯 이야기에 몰입시킨다.

 

나그네 검객, 김태원
"나그네 검객, 김태원"

 마치 천일야화처럼 관객은 중간중간 끊어질 때마다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고 결론은 자꾸 미뤄지며, 이 결투가 어서 정의롭게 끝나기를 응원하게 된다. 그리고 이 관객의 역할을 ‘사또(김성옥)’가 톡톡히 해내고 있다. 관객과 함께 사또도 이 이야기에 몰입하게 되고, 관직을 걸고 김태원을 돕는다. 그리고 사또의 인상적인 마지막 대사 “동정한 건 아니다. 난 올바른 길을 찾은 것뿐이다. … (관직을 버린 이유도) 귀공 때문이 아니고, 어디로 가느냐 하는 걸 깨달았기 때문에 버리는 것뿐이다.”  진실된 이야기로 감동을 준 것이 검을 사용한 장면보다 더 많았다. 대의와 가족 앞에서 갈등하는 남편이자 아버지, 가문과 소신 중 지켜야 할 것들이 충돌했을 때 일어날 수 있을 나약한 소신과 배신 등 결코 영웅담일 수 없는 이야기들이 사또와 관객에게 공감을 일으킨 것이다. 전통적인 서부극이나 액션, 무협 검술을 기대했던 관객이라면 다소 의아할 수 있는 느슨한 리듬은 이 영화의 화면구성만큼이나 ‘여백의 미’로 다가온다. 마치 <셰인>이나 스파게티 웨스턴의 리듬처럼 느슨하다가 폭발적으로 휘몰아치는 결투 장면처럼 이야기와 플롯은 이미 리듬을 타고 있다.

 

 한국 사극 웨스턴 최고의 스펙타클 : ‘정악’에서 ‘휘몰이’까지

 정창화 감독은 앞의 자서전에서 “정작 하고 싶었던 영화는 '아라비아의 로렌스'와 '닥터 지바고' 같은 스펙터클한 작품이었지만, 우리나라 제작 여건상 그런 초대형 대작은 도저히 불가능한, 꿈 같은 일일 뿐이었” 기 때문에 실현할 수 있는 저예산 사극 웨스턴으로 검술을 통해 스펙터클을 만들고자 했다. 정창화 감독은  “한 폭의 동양화같이 아름다운 우리 고성의 ‘한국적인 선’을 활용해 궁의 지붕만 보이는 능선을 설정해 놓고, 그 화면구성을 통해 압축적이고 효율적으로 주제를 표현”하려고 했다. 그는 간결한 편집으로 긴박감을 높이는 한편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액션 장면에서 대담하게 트램펄린을 사용하기도 했다.

 

하얀 도포 자락이 학의 춤처럼 흐르는 미장센
"하얀 도포 자락이 학의 춤처럼 흐르는 미장센"

남궁원과 허장강의 결투 장면은 압도적으로 특별하다. 그들의 첫 결투 장면은 흑백 시네마스코프 2.39:1의 와이드 스크린에 어울리는 석조상이 즐비한 능에서 펼쳐진다. 배경 음악 없이 풀벌레와 새소리만 가득한 적막한 공간에서 정중동, 동중정의 고요한 움직임은 ‘정악’에서 ‘휘모리장단’를 넘나든다. 그리고 안무같이 우아한 검술을 낮은 트래블링 쇼트로 쫓는 카메라 움직임은 유려하다. 낮은 앵글로 보이는 웅장한 석조상은 화면을 세로로 분할하고, 하얀 학의 움직임처럼 우아한 하얀 도포 자락과 은빛의 검만 빛나는 숨 막히는 검술 액션은 가로로 흐른다.  이처럼, 여백의 화면구성과 학의 춤과 같은 검술, 풀벌레 소리와 새소리, 그리고 물소리만 들리는 결투 장면에 펼쳐지는 편집의 리듬은 한국 사극 웨스턴의 역사가 되었다.

 

 

글·김 경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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