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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승학의 시네마 크리티크] 주어진 극락을 깨달아라, 아주 즐겁게!
[지승학의 시네마 크리티크] 주어진 극락을 깨달아라, 아주 즐겁게!
  • 지승학 (영화평론가)
  • 승인 2023.10.23 09: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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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호빈, 나바루 감독 <수카바티>(2023)

다큐멘터리 <B급 며느리>로 한국사회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공적 단면을 자기의 사적 영역을 통해 재발굴해냈던 감독 선호빈(나바루 감독과의 공동작업)이 이번에는 <수카바티>를 통해 FC안양 서포터즈 ‘RED’를 다룬다. 이 영화는 제목 그대로 수카바티의 세계, 즉 극락의 세계란 무엇인지 그 한 단면을 지역 축구 서포터즈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제목만 보았을 때 이 영화는 종교적인 영화로 보이긴 하지만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종교 얘기가 아니라 사실 우리의 이야기, 우리의 즐거움에 대한 이야기다.

 

출처 다음: <수카바티>

잠수부 손에 들려 있던 수중 연막탄 홍염을 보고 한 가지 아이디어를 떠올린 한 명의 안양시민. 평범한 소시민이었던 그가 시의회까지 난입하게 된 배경에는 무엇이 있을까? <수카바티>의 매력은 여기 ‘무엇이'란 자리에 ‘누가’라는 말을 넣을 수 없게 한다는 점에 있다. '~배경에는 누가 있을까?'라고 한다면 그들은 절대로 주체적으로 보일 수 없다. 오히려 거기에는 자립적 신념 또는 주도적 참여라는 말들이 들어갈 때 훨씬 자연스러워진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런 태도들이 그들의 삶 속에 이미 충만해 있었다는 것이다.

사실 이런 것들이 삶에 충만해 있으면 그것은 곧 즐거움으로 변한다. 즐거움은 일상의 무게에 억눌려 있는 것이 아니라 폭발 직전까지 가 있는 어떤 힘이라는 것이다. 응원용 연막탄인 홍염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데, 여기서 정말로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홍염의 위험성보다 오히려 그들의 충만한 즐거움이 하나의 강렬한 힘으로써 제대로 전달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수카바티>에 등장하는, 이른바 FC안양을 진심으로 지지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분출되는 즐거움을 증명하기 위해 연막탄을 피워올린다. 홍염을 피울 때마다 부과되는 500만원의 벌금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런 서포터즈들의 행동을 ‘난동’이라고 낙인찍어 유별난 사람들이라고 매도하는 것은 그래서 탐탁치 않다. 그들의 행동이 과하다고 느껴진다면 그들의 행동이 과해서가 아니라 삶에 충만한 즐거움의 분출 정도가 매우 강하기 때문이다.

 

출처 다음_<수카바티>

요컨대 <수카바티>는 비어있는 줄 알았던 삶 속에 사실 어떤 힘이 가득 담겨있었는데 알고보니 그것이 '즐거움'이었다고 말하는 영화다. ‘삶을 가득 채우고 있는 즐거움을 강하게 느끼는 시민’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시민의 모습을 선호빈 감독과 나바루 감독은 FC안양 서포터즈의 모습으로 바꿔서 보여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데 마침 그들의 응원구호가 ‘수카바티’(सुखावती sukhāvatī)이다. <수카바티>의 감독이 주목한 것은 이 구호였다. 산스크리트어로 극락정토(極樂淨土)를 뜻하는 이 말은 안양(安養)이라는 이름에 포함되어있는 안양정토(安養淨土)라는 말과 같은 뜻을 갖는다. 모두 지극히 즐겁고(극락) 자유로운 세상을 의미한다. 하지만 애초에 이 정토에는 스스로 깨달음을 얻지 못하는 존재를 위한 아미타불이 있다. 사실을 알고보면 극락에 주안점을 둔 것이 아니라 깨달음을 강조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그러면 <수카바티>의 주제가 더 복합적으로 검토될 수 있다. 이 다큐멘터리는 단지 서포터즈 활동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즐거움만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삶에 충만하게 가득 차 있는 즐거움을 깨닫게 해주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출처 위키페디아_수카바티, Sukhavati
출처 위키페디아_수카바티, Sukhavati

<수카바티>의 노련함은 ‘극락’이니 ‘정토’니 하는 말들을 빗대어 FC안양 서포터즈를 대변해주는 방식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삶에 스며있는 그 즐거움을 유머러스하게 폭로하는 방식에서 발견할 수 있다. 어쩌면 즐거움에 이르려는, 아니 오히려 깨달으려는 노력을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수카바티’라는 말에는 스스로 깨달음을 얻지 못하는 존재라는 자기고백이 들어있다. 앞에서 극락정토에 아미타불이 있는 이유가 바로 깨닫지 못하는 자들을 깨닫게 해주기 위해서라고 하지 않았나.

하지만 깨닫는다고 말할 때마다 우리는 결단의 위치에 서 있는 ‘자기’의 자립성을 인정받고 싶어 한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투쟁 관계에 주목한다. 이것이 서구 사회가 이해해왔던 자립적인 자기의식의 존재 방식이다. 여기에는 생사를 건 투쟁을 통해 자기의 존재를 실증하려는 모든 노력이 들어있다. 잔인하고 살벌한 갈등구조는 이런 투쟁 노력을 더욱 극적으로 만든다.

 

출처_경인일보
출처_경인일보

그런데 <수카바티>는 이런 갈등구조를 통해 오히려 진정으로 변화된 삶을 보여준다. 안양 시의회 난입 사건으로 오르내리는 이른바 FC안양 존폐위기에서 보여준 서포터즈들의 투쟁은 겉보기에 이른바 ‘인정투쟁’의 모습으로 비칠지언정, 서포터즈 활동이 자신의 삶을 어떻게 다르게 만들어 주었는지를 절절하게 보여주기도 한다.

그런 이유 때문에 서포터즈가 된 그들을 보는 시선은 난동을 부리는 유별난 사람들에서 자연스럽게 극락을 깨닫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으로 뒤바뀌게 된다. 적어도 <수카바티>에서 보여주는 그들은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지 확실히 깨닫고 있는 모습이다. 그들에게는 적어도 '즐거움이란 곧 일상'이라는 믿음이 깨끗하게 드러나 있다. (서포터즈의 결혼식 장면과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응원하는 모습 등은 이를 잘 보여준다) 정토(淨土)는 깨끗한 땅이라는 뜻으로서 거기에서 오는 즐거움은 깨끗한 즐거움이라는 의미도 함께 갖는다. 안양정토에서의 깨끗한 즐거움은 그들의 삶을 가득 채운다.

 

<수카바티>의 한 장면

극락의 뜻은 즐거움의 극치이지만 그 즐거움은 깨달음을 얻었을 때의 즐거움을 의미하기도 한다. 깨끗한 땅에서는 이 모든 즐거움이 이미 주어져있다. 그러니 이렇게 정리할 수도 있겠다. 이미 '주어진 즐거움을 깨달아라 아주 즐겁게.' 그래야 즐거움은 삶을 채울 수 있고 충만해진 삶은 또다시 즐거움으로 연결될 수 있다. FC안양을 통해 그들은 그렇게 수카바티를 깨닫는다. 그들이 누리는 삶의 즐거움 곧 주어진 극락을 조망한 다큐멘터리영화 <수카바티>는 그래서 즐거운 삶에 대해 생각해보기를 권하는 영화라고도 할 수 있다. 이 영화를 보는 내내 그들이 부러웠던 이유는, 그들은 이미 그 즐거움을 찾은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부언: 한국축구의 정토에는 이런 서사, 우리가 알지 못하는 누군가의 삶의 서사가 이렇게 켜켜이 쌓여 있다. 한국축구의 위상을 지탱해주는 힘의 한 축은 바로 이런 것들이아닐까. 그러면 한국축구도 ‘수카바티’임에 틀림없다. 

 

 

글·지승학
영화평론가. 문학박사.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홍보이사, 201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영화평론 부문으로 등단. 현재 고려대 응용문화연구소 연구교수로 재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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