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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성희의 시네마 크리티크] <더 레슬러> 50대를 위한 진혼곡
[서성희의 시네마 크리티크] <더 레슬러> 50대를 위한 진혼곡
  • 서성희(영화평론가)
  • 승인 2024.03.11 09: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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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잘 나가던 프로레슬러의 인생을 담은 영화

랜디(미키 루크)는 현란한 기술과 쇼맨십으로 80년대를 빛낸 최고의 프로레슬러였다. 그러나 지금은 주름진 인생의 그늘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옛 영광은 희미해지고 변두리에서 시합을 벌이며, 주말에는 프로레슬러로 활약하고 주중에는 마트에서 일하는 평범한 삶을 살아간다. 유일한 말동무는 술집에서 일하는 스트리퍼 케시디(마리사 토메이)뿐이다. 케시디의 권유로 랜디는 가족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딸 스테파니(에반 레이첼 우드)를 찾아가지만, 그간의 간극을 메우는 것은 쉽지 않다. 랜디는 심장 문제로 죽을 수도 있다는 의사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20년 전 최대 라이벌이었던 아야돌라와의 시합을 위해 링에 오른다.

 

 

삶의 전성기가 저물고

프로 레슬러로서의 전성기를 누렸던 랜디는 이제 옛 영광은 사라졌다. 20년이 넘는 선수 생활로 인해 그의 몸은 다양한 상처와 통증으로 가득 차 있으며, 하루하루를 다량의 진통제와 보청기, 돋보기에 의지해 버틴다. 주중에는 마트에서 아르바이트를 하지만 집세를 제대로 낼 수 없는 어려운 처지에 처해 있다. 하지만 여전히 변두리 무대에서의 시합을 위해 염색, 의상 구매, 태닝 등 준비를 게을리하지 않는 프로이다.

 

인생은 그에게 잔인하게도 변모했다. 화려한 전성기는 뒤로하고 이제는 이동식 주택에 살면서 주말에는 링 위에서 격투를 벌이며 살아간다. 뼈마디가 쑤시고 근육통이 나도록 아픈 나이에도 링 위에서의 고통은 그의 영혼을 살아있게 한다. 빠듯한 처지지만 태닝을 하고 스테로이드를 먹으며 변두리 링에 서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심장 문제로 인해 선수 생활을 마무리해야 한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듣는다. 그리고 이제는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하는 중요한 결정의 순간이 왔다. 랜디는 레슬링을 떠나 은퇴 후의 새로운 삶을 살기로 결심한다. 그는 이제 마트에서의 일을 주업으로 삼고 딸과의 관계 회복하고 케시디와 함께하는 일을 통해 제2의 삶을 찾아가기로 한다.

 

제2의 삶

랜디는 전성기 동안 프로 레슬링으로 모든 삶을 채웠던 인물이다. 그러나 어느 날, 선수 생활은 갑작스럽게 끝이 났다. 은퇴는 갑작스럽게 찾아왔다. 랜디가 좋아하고 잘했던 일을 떠나, 새로운 삶에 대한 준비도 없이 제2의 삶에 갑자기 뛰어들어 잘 해내기는 쉽지 않다.

 

랜디는 자신이 좋아했던 링 위에서 누구보다 잘했고 존경도 받았다. 하지만 링 밖에서의 삶은 잘살아 본 적이 없다. 갑작스러운 은퇴로 준비되지 않은 일을 의지만으로 갑자기 해 나가는 것은 절대 쉽지 않다. 랜디는 좋아하는 일을 잘했고 그곳에 열정을 모두 쏟아 붓는 삶을 살아왔기 때문에 제2의 삶을 준비하지 않았고 전성기 이후 은퇴 생활을 성공적으로 살아가기 어렵다.

 

랜디는 프로레슬링으로 인생의 전성기를 모두 보냈다. 전성기 시절 링 위에서의 격렬한 흥분상태와 과다 약물 복용은 은퇴 후에도 그를 괴롭힌다. 자신을 향해 열광적인 환호성을 질러주던 관객과 승리의 쾌감을 맞본 사람이 그 맛을 잊고 평범한 일상의 비루함을 견디며 살아가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그래서 이 영화는 폭죽 같은 과거의 전성기를 잊지 못해 자신을 한순간에 불사 지르는 프로레슬러 랜디를 위한, 그리고 준비 없는 은퇴를 맞이하는 50대를 위한 진혼곡이다.

 

삶에서 좋아하는 일과 해야 하는 일의 균형 잡기

영화 속에 등장하는 랜디와 케시디는 모두 육체적인 일을 통해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이다. 이러한 공통점은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 그러나 그들의 가치관은 해야 할 일과 좋아하는 일에 대해 극명한 차이를 보인다.

 

랜디는 프로레슬링을 통해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한다. 반면 케시디는 스트리퍼로서 잘하는 일을 하지만, 그 일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케시디는 단순히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일을 하는 반면, 랜디는 그 일이 자신을 만족시키고 더 나은 삶을 추구하는 목적이었다. 이 두 사람의 차이는 중요한 선택을 하게 만든다. 랜디는 잘하고 즐겨하는 일을 포기하면서 목적을 잃고 상실감을 경험한다. 반면 케시디는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를 알고 새로운 삶을 찾아가는 가능성을 열어둔다. 이렇게 삶은 해야 할 일과 좋아하는 일 사이에서 균형을 찾고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기술이 필요하다.

 

랜디는 결국 불꽃처럼 빛나는 한순간을 선택한다. 그가 링 위에서 손을 번쩍 들 때 멋있게 보일 수 있지만, 이는 영화적인 선택이다. 실제 삶은 불꽃처럼 화려하지 않고, 지루하고 귀찮은 일들이 모여 이루어진다. 하지만 이런 일상적인 여정에서도 고통과 기쁨을 이겨내며 삶을 즐기고자 하는 우리의 노력은 멋진 것이다.

어른이 되면서 우리는 자기 결정에 책임지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것은 때로는 버거울 수 있고, 다른 사람과 비교했을 때 부족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의 삶은 우리가 만든 선택의 결과이며, 우리의 행복은 우리 스스로가 책임져야 한다. 그래도 우리는 희망을 품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우리의 삶은 아직 끝나지 않았으며, 끝나기 전까지는 계속해서 노력하고 변화할 수 있는 기회가 있기 때문이다.

 

사진 출처 : 네이버

 

 

글·서성희
영화평론가, 영화학박사. 전 대구경북영화영상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전 독립영화전용관 오오극장 대표, 전 대구영상미디어센터 센터장으로 영화에 대한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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