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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애의 시네마 크리티크] <서복>에서 발견한 가족과 인간에 대한 고민 *
[송영애의 시네마 크리티크] <서복>에서 발견한 가족과 인간에 대한 고민 *
  • 송영애(영화평론가)
  • 승인 2022.10.17 10: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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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에 공개된 이용주 감독의 <서복>은 같은 해 공개된 조성희 감독의 <승리호>가 가족에 대한 바람을 담고 있는 것과는 다르게, 가족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그 이야기를 하고 싶다.

 

<서복> 포스터

- 낯익듯 낯선 어머니, 창조자의 등장

사실 SF영화에서는 어머니보다는 아버지가 등장하는 경향이 있다. 전통적인 출산의 과정을 생략한 인간 탄생 등이 설정되곤 하다 보니, 모성애가 강조되는 어머니는 생략되기 쉽다. <승리호>에서도 혈연과 인간과 기계라는 경계를 극복한 확대된 개념의 가족이 등장했지만, 어머니는 나오지 않는다.

그런데 <서복>에서는 어머니가 등장한다. 의사 세은(장영남)은 경윤과 서복(박보검)의 어머니다. 세은은 사고로 아들 경윤과 남편을 잃은 후, 경윤의 유전자로 복제인간 서복을 만드는 데 참여했다. 그런 세은을 서복은 ‘엄마’라고 부른다. 호명을 통해 더 명확해진 모자 관계는 이전 영화에서 종종 보아온 전형적인 어머니의 모습과 새로운 모습이 뒤섞여 재현된다.

세은은 서복을 ‘수컷 실험체’로 칭할 만큼 차갑지만, 무기력하기도 하다. 세은은 서복을 이용하려는 세력에 맞서다 죽지만, 서복을 위한 모성애 가득한 투사는 아니다. 오히려 죽은 (진짜) 아들에게 강하게 집착하는 (다른 영화에서도) 낯익은 어머니에 가깝다. 그렇다고 남편이나 아들의 도움이 필요한 무능하고 나약한 어머니는 아니다.

세은은 서복의 생물학적 과학적 창조자이지만, 기존 영화에서의 창조자와는 좀 다른 모습이다. 예를 들어, <블레이드 러너>(리들리 스콧, 1982)에서 인조인간을 만들어낸 타이렐 회장은 스스로 인조인간의 아버지라 인식한다. 더 나아가 그들을 창조한 신처럼 행동한다.

반면 세은은 서복의 생물학적 과학적 창조자로서 오만한 모습보다는 혼란스러운 모습을 보인다. 기헌(공유)이 실험 실패에 관해 묻자, “죽겠죠? 죽기밖에 더 하겠어요? 사람들 참 겁 많죠? 욕심도 많고?”라 차갑게 말한다. 창조자로서의 자부심은 찾아볼 수 없다. 본인을 서복의 어머니 혹은 창조자로 인식하는 것 같지도 않다. 낯익지만 낯설기도 한 어머니의 모습이다.

 

<서복>에서 세은과 서복

- 가족의 기준은 무엇인가?

과연 세은과 서복을 모자 관계로 볼 수 있을까? 두 사람의 모호한 관계는 세은과 서복의 내면적 혼란과 고통의 배경이기도 하다. 덕분에 이 영화가 서복을 통해 던지는 질문이 얼마나 까다로운 질문인지 실감 나게 한다. 인간 복제라는 거창한 문제를, 죽은 아들을 보고 싶고, 살리고 싶은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로 풀어, 이성적으로만 판단하기 어렵게 장치한다.

<서복>에서 세은과 서복도 소위 말하는 정상 가족은 아니다. 두 사람은 생물학적 모자 관계이기는 하지만 개발자와 실험체 관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가장 대표적인 가족의 기준인 혈연에 의한 관계로 설정되었으나, 실험실에서 거주하고 있는 서복과 가운을 입은 채 서복에게 약물을 투약하는 세은을 보면서, 과연 이들을 가족으로 봐야 할지 고민하게 된다.

죽은 아들과 유전자는 같지만, 죽은 아들이 되살아난 것은 아니다. 또 한집에서 가족의 형태로 함께 살고 있지도 않다. 세은은 서복에게 엄마라고 불리지만, 그들의 관계를 무엇으로 정의해야 할지 모호하다. 혈연으로 시작되긴 했으니 가족으로 볼 수 있는 것인지 의심하게 된다.

 

- 가족 더 나아가 인간에 대한 고민

바로 영화 내내 서복이 세은과 기헌에게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다. 과연 복제인간 서복을 누구 혹은 무엇이라 해야 할까? 서복은 세은의 아들인가? 그리고 인간인가? 서복이 만들어가는 인간관계를 어떻게 봐야 할까? 서복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가족 관계를 통해서도 던지고 있다.

인간과 복제인간의 관계를 과학자와 실험체, 생물학적 엄마와 아들이라는 이중 관계로 설정해, 관련된 윤리적 문제의 복잡성을 드러낸 셈이다. 서복은 세은에게 “엄마는 의사가 되고 싶어서 의사가 됐잖아. 그럼 난? 나는 뭐가 될 수 있어? 나도 뭐가 되고 싶어도 돼?”라고 묻는다.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없는데, 독립적인 인간이라 할 수 있을까?

서복은 세은의 죽은 아들 즉 자기 유전자 제공자이자 자신이기도 한 경윤의 납골당을 찾아가, 사진 속에서는 죽을 당시 어린아이의 모습인 경윤에게 이렇게 말한다. “나에요, 형. 그리고 아빠. 꼭 한번 와서 직접 보고 싶었어요. 내가 만들어진 이유니까. 교통사고로 아빠와 내가 죽고, 엄마가 너무 슬퍼서 나를 만든 거래요. 그러지 말지. 그렇다고 내가 경윤이가 되는 것도 아닌데...”

서복은 자신이 태어난 혹은 개발된 목적이 인간의 질병 치유, 생명 연장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이는 모르고 있는 것만큼이나 매우 폭력적인 설정이다. 개발 목적을 수행하기 위해 서복은 고통스러운 골수 채취 과정을 쉬지 않고 겪어야 한다. 영화는 그 과정을 어둡고 푸른 화면을 통해 잔인하게 묘사해, 복제인간의 정체성 이슈에 이어 폭력성 이슈까지 윤리적인 의문을 더욱더 강하게 제기한다. 

 

<서복>에서 실험실 내 서복

복제인간을 노예나 기계처럼 설정한 영화들도 그들의 모호한 정체성, 인간의 폭력성 등을 잘 드러내 왔지만, 아들로 설정해 노예나 기계처럼 대하는 <서복>의 설정은 더더욱 인간성에 대한 고민을 촉구한다. 많은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글·송영애
영화평론가. 서일대학교 영화방송공연예술학과 교수. 한국영화 역사와 문화 관련 연구를 지속해왔다.

* 송영애, ‘한국 SF영화 <승리호>와 <서복>에서 발견한 가족’, 김경욱, 서곡숙 외, 『영화와 가족: 그렇게 가족이 된다』, 르몽드, 2022, 70~81쪽 내용을 바탕으로 보완, 재구성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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