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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애의 시네마 크리티크] <블레이드 러너> 속 미래가 담고 있는 것들
[송영애의 시네마 크리티크] <블레이드 러너> 속 미래가 담고 있는 것들
  • 송영애(영화평론가)
  • 승인 2020.07.20 10: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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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실, 공포, 그리고 다양한 욕망
'블레이드 러너'(리들리 스콧, 1982) 포스터
'블레이드 러너'(리들리 스콧, 1982) 파이널 컷 포스터

미래는 누구에게나 미지의 세계다. 나름의 근거로 예측하고 상상해보지만, 어떤 일이 벌어질지 다 알 수는 없다. 그래서 미래를 다루는 SF영화에 끌리는 거 같다. 극영화가 굳이 미래를 예언해낼 필요는 없지만, 과연 어떤 미래를 창조해냈을까? 스토리와 캐릭터에 몰입이 가능할까? 과연 얼마나 그럴듯할까?

그동안 수많은 영화가 미래를 담아냈다. 인간이 이룩해낸 것들에 설레는 경우도 있었고, 두려운 경우도 있었다. 유토피아든 디스토피아든 영화가 담아내는 미래는 현재 즉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현재에 기반을 둔 세계관과 가치관 위에 세워지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리들리 스콧의 1982년 영화 <블레이드 러너>는 지금 기준으로는 과거지만, 당시로서는 미래인 2019년을 배경으로 한다. 멀리서 보는 야경은 멋져보이지만, LA라고 하지만 태양은 보이지도 않고, 컴컴하고, 비만 내린다. 도심 골목은 지저분하다. 아무래도 지구 환경은 파괴된 것 같다.

 

'블레이드 러너'(리들리 스콧, 1982) 스틸
'블레이드 러너'(리들리 스콧, 1982) 스틸

2019년 인간은 인간이 창조해낸 복제인간에게 위협을 받고 있다. 1968년 스탠리 큐브릭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1979년 리들리 스콧의 <에일리언>에서 인간은 각각 기계와 외계 생물체로부터 공격을 받았으니 낯선 설정은 아니다.

그런데 뭔가 다르다. <블레이드 러너>에서 복제인간이 인간에게 반기를 들었다는 지극히 미래적인 설정은 그리 미래적이지 않은 모습으로 시각화된다. 아시아 어느 나라의 야시장 같은 거리에 위치한 초고층 빌딩은 피라미드 같고, 내부로 들어가면 어두운 동굴 같은 느낌이다.

복제인간을 추격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블레이드 러너 데커드는 날아다니는 경찰차를 타기는 하지만, 차량 내부는 낡은 중장비를 연상시킨다. 게다가 광선총 같은 미래적인 무기는 보이지도 않는다. 대신 권총을 들고, 그나마도 맨주먹으로 난투극을 벌인다. SF영화가 아니라 1940~50년대 필름 느와르 영화를 보는 것 같은 착각도 든다.

 

'블레이드 러너'(리들리 스콧, 1982) 스틸
'블레이드 러너'(리들리 스콧, 1982) 스틸

<블레이드 러너>에서 미래와 과거는 뒤섞인 모양새다. 사실 명확하게 정체를 파악하거나 상황을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모든 것이 애매모호하고, 불길하다. 여기가 정말 LA인지도 믿기지 않는다. 아시아 사람들이 많아도 너무 많고, 경제는 일본 자본의 지배를 받는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 누가 인간이고 복제인간인지도 모르겠다. 말 그대로 혼돈 그 자체다. (이러한 특성은 포스트모더니즘 양상으로 분석되기도 한다.)

<블레이드 러너>가 담아낸 혼돈의 디스토피아는 1980년대 미국의 현실, 특히 공포와 욕망과 맞닿는다. 공포는 욕망의 또 다른 측면으로, 강하게 바라다보면 두려워지고 공포에 빠지게 된다. 영화 속에서 드러난 공포 상황은 1980년대에 존재하던 공포 상황과 관련이 있다.

필립 K. 딕의 원작 소설 <안드로이드는 전기 양의 꿈을 꾸는가?>는 1968년에 출간된 소설이지만, 1980년대식 해석으로 영상화가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특히 과학기술, 인종, 일본, 환경 등과 관련된 두려움이 영화에 고스란히 담겼다.

1970년대부터 DNA, 유전공학은 서서히 대중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과연 인간을 행복하게만 해줄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었다. 인간은 이미 여러 차례 과학 기술 발전의 역설, 후폭풍을 경험했다. 대량 살상 무기로 인해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고, 기계화 덕분에 일자리도 잃었다.

또한 1980년대 일본 경제는 최대 호황을 누렸다. 세계 2위 경제 대국이 된 일본의 자본이 미국의 대표 회사들을 인수하기 시작하면서, 미국 내에는 일본 문화에 익숙해져 가는 정서와 더불어 거부감도 커져 갔다고 한다.

1980년대 미국 내에 존재하던 ‘테크노포비아’와 ‘반일본 정서’ 등은 <블레이드 러너> 속 2019년에 투영됐다. 인간은 복제인간 덕분에 편리함도 누리고 있지만, 그들에 대한 통제에 어려움도 겪고 있다. 기모노를 입은 일본 여성의 광고 영상을 보여주는 전광판은 영화 내내 스크린을 가득 채운다. 데커드는 길거리 일본 국숫집에서 자막처리도 되지 않은 일본어 대사와 함께 등장했다. <블레이드 러너> 속 미국은 꽤 일본화 된 것으로 보인다.

 

'블레이드 러너'(리들리 스콧, 1982) 스틸
'블레이드 러너'(리들리 스콧, 1982) 스틸
'블레이드 러너'(리들리 스콧, 1982) 스틸
'블레이드 러너'(리들리 스콧, 1982) 스틸

그런데 <블레이드 러너>는 1982년 개봉 버전과 수정된 1992년 감독판 버전, 그리고 일종의 디지털 리마스터링 버전인 2007년 파이널 컷 버전으로 존재한다.

1982년 버전은 개봉 직전 모니터링 과정을 거쳐 막판에 급조된 (친절한 데커드의 내레이션이 녹음되고, 엔딩이 바뀐) 버전으로, 인간 데커드는 반역을 저지른 복제인간들을 모두 제압하고, 자신을 도운 복제인간 레이첼과는 과는 사랑에 빠져, 무사히 도피까지 한다.

사랑이 모든 것을 해결해줄 거라는 판타지가 갑자기 등장한 것인데, 영화가 담아내고 있는 혼돈의 디스토피아와는 어울리지 않는 마무리였다. 1982년 버전에는 모니터링 과정을 통해 관객들이 이해하지 못할 거라는, 그래서 흥행에 실패할 거라는 제작, 투자자의 두려움 즉 영화 밖 욕망도 작동했다 할 수 있다.

반면 1992년 감독판 버전에서는 영화 전체에 흐르던 데커드의 내레이션이 빠지고, 삭제된 쇼트가 추가된다. 그리고 엔딩도 바뀌어 해피엔딩의 러브스토리가 아니다. 덕분에 기존 버전에 담겼던 공포와 두려움이 더 드러난다.

1992년 감독판 버전에는 이 영화를 온전하게 복원하고 싶다는 또 다른 영화 밖 욕망이 작동했다. 비디오 시대를 거치며 반복 감상, 분석한 마니아들의 바람이 투영된 셈이다. 특히 데커드도 복제인간일 수 있다는 점도 부각되어, 인간과 복제인간의 대결이 아니라 복제인간끼리의 내부 갈등으로 보인다. 복제인간에 대한 연민이 더 강하게 느껴지고, 인간에 대한 회의감도 커진다. 인간이 뭐 그리 대단한 존재인가?

 

'블레이드 러너'(리들리 스콧, 1982) 감독 판 신문 광고
(1993년 5월 8일 동아일보 22면)

한편 국내에서 1982년 버전은 개봉되지 않았다. 비디오도 출시된 적이 없다. 1993년 5월에 감독판 버전이 처음으로 개봉되었는데, 이미 감독판 비디오가 출시된 이후의 개봉이라서, 관객들에게는 일종의 ‘성지 순례’ 같은 관람이었다.

‘저주받은 걸작’이라고도 칭해지던 전설의 영화를 드디어 보게 된 순간으로,  '내가 이 영화를 드디어 영화관에서 보는구나!' 라는 또 다른 영화 밖 욕망이 <블레이드 러너>와 만나는 순간이었다.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글·송영애

영화평론가. 서일대학교 영화방송공연예술학과 교수. 한국영화 역사와 문화 관련 연구를 지속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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