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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욱의 시네마 크리티크] 외롭고 착한 청년 영호의 <인트로덕션>
[김경욱의 시네마 크리티크] 외롭고 착한 청년 영호의 <인트로덕션>
  • 김경욱(영화평론가)
  • 승인 2022.12.30 10: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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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에 뒤 시네마』 12월호에 실린 ‘2022년 영화 10편’에 홍상수의 <인트로덕션>(2021)이 8위에 올라있다. 이 영화는 지난해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은곰상(각본상)을 받기도 했다.

 

<인트로덕션>은 3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 장은 ‘소개, 입문, 서문, (새것의) 도입 등의 뜻’을 가진 제목(‘Introduction’은 홍상수 영화 가운데 유일하게 영어 제목이다)처럼 흘러간다. 1장은 한의사인 동현이 절실하게 기도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저는 모든 걸 다 하겠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하고 또 찬양하겠습니다. 제 전 재산의 반을 바치겠습니다. 가난한 고아원에 꼭 맡기겠습니다. 정말 약속드립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다시 한번 기회를 주신다면 꼭 그렇게 살겠습니다.” 동현이 왜 이런 기도를 했는지 알 수 없지만, ‘다시 한번 기회를 주신다면’이라는 말에서 시한부 판정 같은 절박한 상황을 짐작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인지 동현은 오랫동안 만나지 않은 아들 영호(신석호)에게 만나자는 연락을 한다. 그러나 막상 영호가 한의원으로 찾아오자, 동현은 아들과의 대면을 망설인다. 그 이유는 알 수 없으며, 부자가 만나서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도 알 수 없다. 또한 동현을 찾아온 유명 배우가 왜 한의원으로 바로 들어가지 않고 입구에서 담배를 피우며 시간을 지체하는지, 동현에게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지도 알 수 없다.

 

오랜만에 만난 아버지와 아들은 어색하게 인사를 나눈다
오랜만에 만난 아버지와 아들은 어색하게 인사를 나눈다

이러한 의문은 2장에서도 계속된다. 영호의 애인 주원(박미소)이 패션디자인 공부를 위해 독일에 온다. 주원의 엄마는 지인에게 딸의 거처를 부탁한다. 엄마를 어려워하며 주눅 든 것 같은 주원의 태도를 보면, 두 사람은 오랜만에 만났으며 소원한 사이 같다. 주원은 영호가 그녀를 따라 독일로 왔다는 문자를 받는다. 영호의 출현을 기뻐하는 것 같았던 주원은 그를 만나러 가는 길에 멈춰서서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다. 역시 이유는 알 수 없다. 영호는 주원에게 “나도 독일에서 공부하고 싶다”면서, “돈 욕심이 많기는 하지만 경제적 여유가 있는 아버지에게 유학비용을 부탁하면 가능할 것”이라고 말한다. 이때 관객은 “전 재산의 반을 고아원에 바치겠다”는 동현의 기도를 떠올리게 된다. <탑>에 대해 썼던 글에서, 홍상수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특정 공간과의 만남과 시간의 흐름이라고 했는데, 여기에 하나를 더하면 ‘언어/말/대사’이다.

 

영호는 주원을 만나러 독일까지 간다
영호는 주원을 만나러 독일까지 간다

2장은 여기서 끝나고. 3장이 시작된다. 영호가 정수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해변에 도착한다. 1장과 2장 사이 그리고 2장과 3장 사이에 시간이 많이 흐른 것 같은데, 얼마의 시간이 흘렀는지는 명확하게 가늠하기 어렵다. 1장과 2장 사이, 주원은 독일로 유학을 떠나게 됐고, 2장과 3장 사이, 영호는 아버지가 유학 비용을 대 주지 않았는지 유명 배우의 권유에 따라 배우가 되려고 했다. 그러나 영호는 애인을 두고 다른 여자와 키스하는 가짜 연기를 할 수 없어서 배우의 꿈을 접었다. 엄마는 영호가 유명 배우를 다시 만나면 마음을 돌릴까 싶어 동해안의 횟집에서 두 사람을 만나게 한다. 영호는 그 자리가 부담스러웠는지 친구 정수를 데리고 온다. 영호는 정수에게 “할 얘기가 있다”고 하지만, 무슨 내용인지는 끝까지 알 수가 없다. 그리고 영호의 꿈에 주원이 등장한다. 주원은 독일 남자와의 결혼에 실패하고 눈에 병이 생겨 유학도 실패한 상태이다. 주원은 “내가 병을 고쳐줄 테니 걱정하지 말라”며 주원을 다독인다. 꿈이기 때문에 주원이 진짜 어떻게 됐는지는 알 수 없지만, 영호와 헤어진 건 맞는 것 같다.

1장에서 영호는 예전에 친하게 지냈던 한의원의 간호사를 포옹하고, 2장에서는 주원과 포옹한다. 그러나 영호가 아버지 또는 어머니와 포옹하는 장면은 없다. 3장까지의 영호를 돌아보면, 따뜻하고 친절하고 예의 바르고 진실한 청년이지만, 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부모 또는 연인과의 관계에서 실패했다. 유학과 배우의 꿈도 좌절되었다. 그러므로 영호는 <강변 호텔>(2018)에서 시인이 낭독하는 시에 등장하는, 두 여인이 ‘이카’에 데리고 온 아름다운 어린 소년을 생각나게 만든다. 두 여인은 다른 사람을 만족시키는 소년을 그곳에 놔두고 떠나버리고, 소년은 어둡고 슬픈 모습으로 자라나(영호 역의 신석호 배우가 연기했다) 외롭고 황량한 곳에서 살아간다.

 

영호는 마음의 고통을 잊으려는듯 차가운 겨울 바다에 뛰어든다
영호는 마음의 고통을 잊으려는듯 차가운 겨울 바다에 뛰어든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영호는 겨울 바다에 뛰어든다. 그가 “너무 춥다”고 하면서도 왜 그렇게 차가운 물 속에 머물러 있는지는 알 수 없다. 그의 표정은 여전히 밝고 천진난만해서 죽음/자살과 연결하기는 어렵지만, 그럼에도 3장까지의 그의 상황을 보았으므로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그는 마음의 고통을 뼈가 시린 몸의 고통을 통해 잊으려고 한 것일까? 영호가 물에서 나왔을 때, 친구가 추워하는 그를 감싸 안는다. 그렇게 세 번의 포옹이 반복된다. 영호는 겉옷을 걸치지도 않은 채 추위를 잊은 것처럼 바다를 바라본다. 만일 친구가 옆에 없었다면, 그는 어떻게 되었을까? 다시 바다로 뛰어들었을까? ‘인트로덕션’이므로 이 외롭고 착한 청년의 모든 이야기 또는 다음 이야기는 이제 관객의 몫이다.

 

사진출처: 네이버

 

 

글•김경욱
영화평론가. 세종대에서 영화 관련 강의를 하면서 영화에 대한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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