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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욱의 시네마 크리티크] <탑건>과 <탑건: 매버릭>의 레트로 혹은 뉴트로
[김경욱의 시네마 크리티크] <탑건>과 <탑건: 매버릭>의 레트로 혹은 뉴트로
  • 김경욱(영화평론가)
  • 승인 2022.12.30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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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외국영화 최고흥행작은 <탑건: 매버릭>이다. 1980년대 할리우드 액션 영화의 대명사 <탑건>은 1986년에 개봉해 그해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박스오피스에서 최고흥행작에 등극했다. 36년 만에 돌아온 후속작 <탑건: 매버릭>은 한국에서 8백만 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했고, 세계적으로도 흥행에 성공했다.

 

1980년대 할리우드는 <인디아나 존스>, <다이 하드>, <터미네이터>, <람보> 같은 영화들이 인기를 끌면서 시리즈로 제작되는 가운데, 액션-어드벤처 장르가 대세를 형성했다. 그러나 <탑건>의 흥행 성공은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다. 액션 영화 가운데 베트남전을 소재로 한 <람보>가 끼어있기는 하지만, 1975년, 베트남전에서 미국이 패배한 이후, 할리우드에서 ‘군대’를 소재로 한 블록버스터는 제작되기 어려운 분위기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1981년에 집권한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팍스 아메리카나’를 외치며 강력한 미국의 복원을 약속했고, 그 여파로 <탑건>의 제작이 실현되었다. 미 국방부는 시나리오 단계부터 영화 제작사와 긴밀하게 협력했고, 미 해군은 전폭적인 지원을 했다. 실제 항공모함과 전투기 그리고 현역 엘리트 조종사들과 미군 장병들이 촬영에 동원되었다. 그 결과 CG나 특수촬영이 아닌 실제 F-14 전투기들이 공중에서 스펙터클 액션을 펼치면서 대중의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특히 이 영화의 도입부에서 F-14가 항공모함 위에서 이륙 준비를 하는 장면은 빼어난 영상미를 자랑하는 토니 스콧의 연출력이 집약된 압권으로 유명하다.

<탑건: 매버릭>의 경우, <탑건>의 대대적인 흥행 성공을 통해 속편에 대한 기대가 계속 있었으나 2019년에 가서야 제작될 수 있었다.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이미지를 시각화할 수 있는 디지털 시대에 조셉 코신스키 감독은 미 해군의 전폭적 지원에 힘입어 CG와 특수촬영을 최대한 배제한 채 전투기들의 액션 장면을 더욱 사실적이고 실감 나게 연출해냈다. 원래 2020년에 개봉할 계획이었던 이 영화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무려 23개월 동안 개봉을 연기하게 되었다. 팬데믹 동안 많은 관객이 OTT로 영화를 보는 게 익숙해지기는 했지만, 한편으로는 극장의 큰 화면(아이맥스 등)으로 영화를 보고 싶은 마음이 들기 시작한 시기에 딱 맞게 개봉하게 됨으로써, 결과적으로는 흥행 성공에 큰 도움이 되었다.

<탑건>과 <탑건: 매버릭>은 모두 “1969년 3월 3일, 미합중국 해군은 최상위 1%의 전투기 조종사들을 위한 엘리트 교육시설을 설립하였다….”는 자막으로 시작한다. 두 편의 중심 이야기는 단순하다. 전투기 조종사들이 최정예 전투기 조종사 ‘탑건’을 양성하는 훈련학교에서 비행 훈련을 하는 에피소드를 엮어가다 영화의 클라이맥스에서 전투기들의 공중전을 최대한 스펙터클 하게 장식할 미션이 제시된다. <탑건>의 조종사들은 소련의 지원을 받는 인도양의 모 국가 전투기들을 물리쳐야 하고, <탑건: 매버릭>의 조종사들은 적국의 험준한 깊은 협곡 속에 위치한 우라늄 농축 시설을 순식간에 파괴해야 한다.

그러므로 두 편의 영화를 비교할 때 더욱 흥미로운 지점은 서브플롯인데, <탑건>의 경우는 로맨스이다. 젊은 조종사 매버릭 대위(톰 크루즈)는 훈련학교에서 생도 교육 담당 항공물리학 전문가 찰리를 만나게 된다. 두 사람이 사랑에 빠지기까지 밀당하는 과정은 로맨틱코미디 영화 같은 재미를 선사한다. 이 로맨스를 통해 매버릭은 책임감 있는 어른 남자로, 영웅으로 성장하게 된다.

<탑건: 매버릭>에서, 반골 기질에 사고뭉치인 매버릭 대령은 여전히 현역 조종사로 활약 중이다. <탑건>에서 라이벌이었던 아이스맨(발 킬머)의 요청으로 매버릭이 탑건 훈련학교의 교관으로 전출되면서, 두 사람을 만나게 된다. 하나는 옛 애인 페니이고, 다른 하나는 전편에서 매버릭의 파트너였다가 불의의 사고로 사망한 구스의 아들 루스터이다. 페니와의 로맨스가 영화의 재미를 위한 양념이라면, 유사 부자 관계를 형성하는 매버릭과 루스터의 이야기가 서브플롯의 중심을 차지한다. 루스터가 자신의 아버지의 죽음에 매버릭의 책임이 있다고 원망하면서, 두 사람의 갈등은 점점 커진다. 그러나 미션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매버릭과 루스터는 서로 도우며 위기에서 벗어난다. 그 결과 매버릭은 헌신적인 아버지로서, 루스터는 성숙한 어른 남자로서 성장하게 된다. 서브플롯의 중심이 전편의 로맨스에서 후편의 가족 멜로드라마로 이동한 것은 매버릭이 중년의 나이가 되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2000년대 영화 전반에서 로맨스가 퇴조하는 경향의 영향도 있다고 할 수 있다. 아울러 아이스맨과 구스 아들의 등장은 전편을 기억하는 관객들에게 향수를 선사하는 영리한 선택이었다.

 

<탑건>과 <탑건: 매버릭> 사이, 톰 크루즈는 24살의 새내기 청년 배우에서 60살의 원숙한 중년의 세계적인 스타가 되었다. 1980년대 할리우드의 액션-어드벤처 영화가 대중적인 인기를 끌 때, 이 장르에서 주연을 맡았던 배우들은 모두 스타덤에 올랐다. 그들은 액션에 어울리는 강인한 이미지의 근육질 스타로, 아놀드 슈왈제네거, 실베스터 스탤론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므로 <탑건>의 흥행을 장담하기 어려웠던 이유로는 주연을 맡은 톰 크루즈가 근육질 배우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먼 데다 ‘브랫 팩’이라 불리던 1980년대 청춘스타들 가운데 하나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영화의 액션은 주인공이 몸으로 싸우는 게 아니라 공중에서 전투기들이 싸우는 장면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근육질 배우의 활약이 크게 요구되지 않는다. 따라서 톰 크루즈는 근육질 대신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꽃미남 외모에 오토바이를 타고 질주하는 터프한 모습, 그리고 찰리와의 로맨스를 통한 낭만적인 연인의 이미지로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이 영화의 흥행을 견인하면서, 톰 크루즈는 할리우드 최고 스타로 발돋움하게 되었다.

 

톰 크루즈의 액션 캐릭터가 매버릭을 통해 형성되었기 때문에 그의 화려한 필모그래피에서도 이 영화는 여전히 대표작으로 손꼽힌다. 36년의 오랜 세월 후에 제작된 후속작이라면 주연이 바뀌는 게 일반적이지만, 톰 크루즈가 여전히 세계적인 톱스타의 자리를 유지하고 있는 데다 <탑건>은 곧 톰 크루즈를 연상하게 되는 상황에서 그가 등장하지 않는 후속작은 기획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 결과, 액션 블록버스터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50대 이상의 중⸱노년층 관객들은 추억과 향수를 안고 후속작을 환영했다. 톰 크루즈를 좋아하는 젊은 관객들은 기대를 안고 전설을 확인하려고 극장을 찾았다. 그러므로 ‘레트로(retro)‘와 ’뉴트로'(new-tro)‘가 유행하는 시대의 감수성에 딱 맞게 도착한 영화로서, 모든 연령층에서 열렬한 지지를 받으며 또다시 ’신화‘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사진출처: 네이버

 

 

글•김경욱

영화평론가. 세종대에서 영화 관련 강의를 하면서 영화에 대한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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