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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치용의 시네마 크리티크] 더는 인간이 인간답지 않아도 여전히 인간인 미래 세상
[안치용의 시네마 크리티크] 더는 인간이 인간답지 않아도 여전히 인간인 미래 세상
  • 안치용(영화평론가)
  • 승인 2023.10.03 00: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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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영화리뷰) <팟 제너레이션>

 

여성해방의 역사는 아무리 좋게 평가한다고 하여도 현재진행형이다. 즉 여전히 해방하는, 혹은 해방되는 중이다. 본격적인 해방의 역사가 100년 남짓하다고 보아 과장은 아니다. 버지니아 울프가 <자기만의 방>에서 여성해방의 가장 기초적인 물적 조건으로 공간과 경제력을 제시한 적이 있는데, 관점에 따라선 피임과 낙태의 권리가 더 본질적인 물적 조건일 수 있다. 낙태권보다는 당연히 피임권이 우선이다. 두 가지 권리 없이 여성해방을 논하는 건 공염불이다. ‘원하지 않는임신과 출산은, 거룩한 모성의 이름으로 포장된 여성의 무덤이었다. 젖먹이 동물로서 인간의 양성 중에서 여성만이 번식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을 책임지며 생긴 구조적인 문제이기도 했다. 만일 여성이 자신의 몸을 통한 번식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이 상상의 뿌리는 깊다. <데카메론>에도 남성이 임신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인류가 등장한 이래 비로소 상상을 현실로 구현할 수 있는 시기가 이제 막 도래하고 있다. 흔히 영화 같은 대중예술에서 그 선취가 목격된다.

 

포유류의 숙원

 

SF 코미디 <팟 제너레이션>은 인류의 이러한 오랜 고민에 영화적 답변을 모색한 작품이다. <왕좌의 게임>으로 널리 알려진 에밀리아 클라크와 <노예 12>의 추이텔 에지오포가 주연을 맡아 체외임신으로 출산하는 부부를 연기한다.

 

너무 멀게 느껴지지는 않는 미래에 인공 자궁인 을 통해 임신하고 아이를 낳는 부부의 첨단 부모 되기여정을 그렸다. 영화가 코미디이긴 하지만 포유류 궁극의 문제를 다루는 만큼 진지하다. 더불어 요즘 영화치고는 매우 잔잔한 편이다. 진지하고 잔잔하게 이야기를 풀면서 곳곳에 웃음가미하여 철학적 주제를 다룬 <팟 제너레이션> 같은 영화가 좋은 평가를 받으려면 섬세한 연출이 필수적이다. 소피 바르트 감독의 연출이 성공적이었다고 여겨지는 게 나는 <팟 제너레이션>을 흥미롭게 관람하며 단서를 달아야 하지만 아무튼 공감할 수 있었다.

제목 ‘The Pod Generation’‘pod’은 콩이 들어 있는 꼬투리를 뜻한다. 콩 대신 인간 아이를 키우는 인공 자궁이 이다.

레이철과 앨비 부부에겐 아직 자녀가 없다. 거대 테크회사 임원인 아내 레이철은 승진하면서 인공자궁센터에서 2세를 임신하고 출산할 기회를 얻는다. 극중에서는 많은 사람이 부러워하는 것으로 설정된다. 재래의 자연 출산과 팟 출산이 공존하는 가운데 영화에서 팟 출산이 더 선호된다. 인공 자궁인 팟은 알 모양의 도구로 수정에서 출산까지 생물학적 번식의 전과정을 책임진다. AI가 일상에 깊숙이 들어온 세상에서도 흙과 자연을 사랑하는 식물학자인 남편 앨비는 자연스럽지못한 방식에 반대하지만, 임신ㆍ출산 때문에 자신의 일에 지장이 생기는 걸 원하지 않는 레이첼의 마음을 헤아려 팟 출산에 동의한다. 알 모양의 기계장치로, 핸드폰을 충전하듯 외부 전력을 통해 재현된 인간의 자궁 상태가 지속되고, 무선전화기처럼 때로 휴대가 가능한 인공 자궁 팟을 통한 팟 제너레이션의 임신과 출산이 영화적으로 상상된다.

미래 체외 인공 자궁의 모습이 종국에 영화에서 그린 형태로 자리를 잡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인공자궁은 언제든 가능하다

 

현재 인류 문명의 기술 수준을 감안할 때 인공자궁은 언제든 현실화할 수 있다. 한국에서는 조선대학교 병원의 송창훈 교수가 2003년에 인공 자궁ㆍ태반에 관한 연구를 진행했다. 염소 태아를 키우는 체외순환 회로를 구축하여 연구를 진행한 결과, 실험에 사용된 염소 태아 35마리 중 15마리가 23시간 이상 인공자궁 태반의 시스템에서 생존하였고, 8마리가 48시간 이상 생존하였다. 앞서 미국에서 엠마뉴엘 그린버그는 1954년에 조산아에게 충분한 영양분을 주고 자궁과 비슷한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인공 자궁에 관한 특허를 냈다.

미국 필라델피아 아동 병원에서는 2017년에 어느 정도 성장한 양 태아 8마리를 인공 자궁에서 키워 출산하는 데 성공했다. 인공 자궁에서 성장하여 출생한 양들이 일반적인 출생 과정을 거친 양들처럼 살아가는 것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확인한 데에 이 실험의 의의가 있다.

알려진 의학 실험은 대체로 조산아를 위한 인공 자궁 개발에 관한 것이 많았고, 인간의 출산을 본격적으로 염두에 두지 않았다.

1932년 출간한 올더스 헉슬리의 소설 <멋진 신세계>에는 인공부화, 조건반사 양육소가 나온다. 인공부화기가 개발되고 체외임신 및 출산이 가능해진 600년 후(지금으론 500년 후)를 그린 <멋진 신세계>는 미래소설 중 디스토피아를 그린 대표작으로 꼽힌다. 지금까지 인공 자궁을 통한 체외임신과 출산에 대해서는 <멋진 신세계>가 대표하듯 부정적인 인식이 강하다.

생명윤리의 문제를 비롯, 법과 제도의 보완 등 인공 자궁 도입을 위해선 넘어야 할 산이 너무 많아 아마 가까운 장래에 현실에 등장하기는 어려울 법하다. 이 문제에 존재하는 장벽은 거의 비기술적인 것들이다.

<팟 제너레이션>은 팟 출산에 부정적이진 않다. 이 영화가 그린 세상은 <멋진 신세계>와 같은 디스토피아도 아니다. 모든 토론이 끝나 인공 자궁이 합법화한 이후 세상의 팟 감성을 논했다. 영화는 의제가 아니라 감성을 묘사한다. 팟 임신 기간을 거치며 일어나는 부모의 변화는 기계문명을 비판한다기보다는 기계문명과 조화할 가능성을 제시하는 듯하다.

 

배아의 지위, 임신의 법률적 규정, 친생자 추정에 관한 민법상 문제 등 수다한 논란을 뒤로 한 채 부모되기의 한 방식으로 인공 자궁을 선택한 부부의 감성에 초점을 맞추었다. 한 마디로 영화다.

따지고 들면 많은 토론 거리가 있다. 어쩌면 한국 사회를 괴롭히는 저출산 문제의 해법을 이 영화에서 발견할 수도 있다. 한 마디로 영화이긴 하지만, 영화로만 보기 힘든 영화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극장 문을 나서는 관객들이 주고받을 이야깃거리가 많을 것이다. 그런 영화가 좋은 영화일까. 아니면 그 자체로 좋은 영화가 좋은 영화일까. 보통 적잖은 영화에서 두 가지가 구분될 수 있지만, 이 영화에선 뒤섞여 있어 구분이 쉽지 않다. 대체로 구분이란 것이 특별한 의미를 지니지도 못한다. 우문에 현답은 관객이 내어놓지 않을까 싶다.

 

글 안치용, 사진 왓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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