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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14주년 연중기획 (14) - 예술의 사각지대에 놓인 종합예술, 오페라
창간 14주년 연중기획 (14) - 예술의 사각지대에 놓인 종합예술, 오페라
  • 이소영 | 솔오페라단 단장
  • 승인 2023.02.28 20: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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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14주년 연중기획 14] 포스트코로나 시대의 K-문화콘텐츠는 어디로?

 

총론 - 전찬일 한국문화콘텐츠비평협회 회장, 영화평론가
팝 : 임진모 음악평론가 
영화(애니메이션 포함) : 김중기 영화평론가, 영화공간 ‘필름통’ 대표
드라마 : 김민정 중앙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 
웹콘텐츠(웹툰, 웹소설, 웹드라마 등) : 신정아 한국문화콘텐츠비평협회 기획위원장, 방송작가 
문학 : 유성호 한양대학교 교수, 문학평론가, 월간 <쿨투라> 편집주간 
출판 : 김성신 출판평론가, 한국문화콘텐츠비평협회 출판위원장 
게임 : 남기덕 동양대학교 게임학부 교수 
미술 : 김원숙 미학박사, 예술 비평가 
연극 : 이은경 연극평론가 
무용 : 정옥희 성균관대학교 겸임교수, 무용 연구자 
뮤지컬 : 최여정 문화평론가.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포스트코로나 콘텐츠기획단 팀장 
전통공연예술 : 한덕택 서울남산국악당 상임 예술위원 
클래식 : 조희창 음악평론가  
오페라 : 이소영 솔오페라단 단장 
제언 - 
임대근 한국외국어대학교 융합인재학부 교수

 

방송마다 트롯 열풍이다. <내일은 미스트롯>부터 <미스터트롯>, <불타는 트롯맨>, <보이스트롯>, <트롯파이터>, <내일은 국민가수>, <미스터트롯 2-새로운 전설의 시작>, <트로트의 민족>, <트롯 전국체전>, <트롯신이 떴다> 등 다양한 제목의 오디션 프로그램을 방송사마다 앞다퉈 방영했고 또 방영 중이다. 채널마다 트롯, 온통 트롯의 나라가 됐다. 작년엔 트롯오디션 프로가 탄생시킨 가수 K가 플라시도 도밍고와 함께 한 성악공연이 오픈 2분 만에 6,500석 전석 매진됐다고 한다. 

 

제19회 대구국제오페라축제 <투란도트> 한 장면 2022.9.22(출처: <뉴스1>)

오페라 가수 K씨는 왜 트롯으로 떴을까?

당일 공연장 주변은 지역에서 온 버스들과 멀리서 K씨를 보려고 찾아온 인파들로 인산인해(人山人海)가 됐다고 한다. 성악도 출신인 가수 K씨는 오페라가 아닌 트롯으로 ‘뜬’ 셈이다. 국제무대에서도 활약하며 오페라 가수로서 나름 이름을 날리던 성악가들 중 또 다른 오디션 프로그램인 팬텀 싱어에 출전하며 크로스 오버 연주자로 전향한 이들도 제법 있다. 이런 현실은 현재 오페라가 직면한 문제점들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세계적인 콩쿠르를 한국 성악도들이 석권하고, 세계 공연장에 한국 성악가들이 없으면 공연이 안 될 정도라 한다. 그러나 정작 우리의 현실은 오르기 너무나 힘든 나무만 올려다보느니, 차라리 전향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는 성악인들이 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대학을 졸업하고 몇 년씩 유학을 다녀와도 성악 부문에서는 안정적인 일자리를 찾을 수 없다. 운이 좋아 대학 강사 자리를 몇 개 얻는다 한들 영원한 일자리가 될 리 없다. 유럽 오페라 강국들에 비해 턱없이 적은 무대는 진입조차 힘들다.

국내에 오페라가 유입된 지도 70년이 훌쩍 넘었다. 1948년 1월 16일, 서울 명동의 예술 극장인 시공관(현재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된 오페라 <춘희(La Traviata)>가 국내 오페라의 효시다. 1948년은 우리나라가 최초로 동·하계 올림픽에 출전한 해이기도 했다. 스위스 생모리츠에서 열린 동계올림픽에는 3명의 선수가 출전했다. 지난 평창 올림픽에 218명의 선수가 참여한 것과 비교할 때,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한국 최초의 오페라 춘희를 제작한 이는 테너 성악가이자 의사였던 이인선(1906~1960)이다. 그는 자신이 운영하던 병원 수익금을 오페라 춘희를 위해 쏟아부었다. 부족한 예산 때문에 집에 있던 피아노까지 팔고 직접 대본 번역과 제작, 주연 역할까지 1인 3역을 소화해내야 했다. 이런 개인의 헌신을 통해 우리나라의 오페라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400년이 넘는 유럽의 오페라 역사에 비하면 참으로 일천하지만, 그 짧은 세월에 한국은 오페라에서 세계가 괄목할 성장을 이뤄냈다. 많은 성악가들이 유럽과 북미의 극장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민간 오페라단도 130개가 넘는다. 하지만 모든 분야가 그렇듯, 압축 성장에는 해결해야 할 문제들도 발생하기 마련이다.

 

오페라 시장을 초토화시킨 팬데믹, 그리고…

지난 3년간 불어 닥친 코로나의 광풍은 오페라 시장을 초토화시켰다. 사스, 메르스 등 앞서 겪은 감염병 사태처럼 ‘이 또한 지나가리라’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코로나 팬데믹은 쉽게 지나가지 않았다. 그리고 예술계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에 혹독한 시련과 과제를 던졌다. 그렇지 않아도 재정 상황이 어려운 예술인들은 비대면, 사회적 거리두기 속에 줄줄이 취소, 연기되는 공연들과 수시로 폐쇄와 좌석 띄어 앉기를 반복하는 극장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젊은 예술가들은 택배기사, 대리운전 등 일을 찾아 거리로 나서야 했다.

이 예측불허의 재난은 물론, 정책적 과오 또한 지난 몇 년간 예술계를 흔들어 놓았다. 2015년 3월 27일 공포돼 2016년 9월 28일부터 시행된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일명 ‘김영란법’은 공연계에 치명상을 입혔다. 공직사회 기강 확립을 위해 발의된 ‘김영란법’의 불똥이 엉뚱하게도 공연계로 튄 것이다. “이 법은 전반적으로 관람료를 낮추는데 기여해, 다수의 국민들이 공연을 즐기게 될 것”이라던 정부의 예상은 빗나갔다. 특히 많은 예산이 드는 오페라 공연계의 피해는 엄청났다. 협찬사를 유치하지 못한 대형공연들이 취소됐고, 절반도 채우지 못한 객석을 바라보는 제작자들의 한숨 소리만 커져갔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든든한 지원이 따르는 유럽이나 기업의 지원을 유도할 법적·제도적 장치가 마련된 미국과는 달리, 한국의 오페라는 시작부터 민간인이 사재를 털어서 운영됐다. 오늘날도 여전히 정부의 지원 없이 홀로서기를 하고 있는 민간 오페라단들에게 기업의 협찬과 티켓 구매는 그나마 오페라단이 유지되고 공연의 질을 유지할 동아줄이었다. 문화·예술 현장에 대한 무지로 시행된 법은 예술 현장의 위축과 질적 저하라는 결과를 낳았다. ‘즉석 제조실’격인 공연장 역시 생산비에 따라 가격이 결정된다. 즉 티켓 가격은 공연 제작비에 따라 형성되는 것이다. 한사람이 하는 독창회와 300~400명의 인력이 투입되는 대형공연 즉 오페라에 드는 제작비용은 전혀 다르다. 예술가들이 받는 보수도 천차만별이다. 이런 현실인데, 어떻게 모든 공연의 관람료를 같이 낮출 수 있는가. 사전에 현장에 대한 충분한 숙지(熟知)로 대책과 방편을 만들고 법을 시행했어야 했다.

 

뮤지컬보다 오페라가 더 힘든 이유

뮤지컬도 발레도 비용이 많이 드는 대규모 공연인데, 오페라만 특별하냐고 할지 모른다. 하지만 공연의 구조를 살펴보면 충분히 이해가 될 것이다. 아이돌, 스타를 내세워 티켓 파워를 만드는 뮤지컬은 장기공연이 가능하다. 하지만, 오페라는 장기 공연이 어렵다. 3옥타브의 음역과 마이크 없이 육성으로 극장 안을 채워야 하는 발성적 테크닉을 요구하는 오페라를 아무리 스타성 있는 가수라 할지라도 해낼 수 없다는 점이다. 게다가 기술 스태프 이외에도 주조역 성악가, 오케스트라와 합창단, 연기자, 무용수 등 무대에 오르는 예술 인력만 하더라도 200여 명에 육박한다. 

이런 오페라와는 달리, 뮤지컬은 주역과 코러스로만 있으면 된다. 10~20명대로 구성되는 코러스는 노래와 연기 춤까지 모두 소화해낸다. 또한, 오페라에게 오케스트라가 필수인 것과 달리, 뮤지컬은 대부분 MR로 제작된 반주를 쓴다. 가끔 오케스트라를 쓰기도 하지만 대형 편성이 아닌 소규모 그룹이고 이미 제작된 MR과 함께 연주한다. 이렇게, 오페라와 뮤지컬은 출연진에서부터 제작비 차이가 엄청나다. 공연 기간이 길어질수록 오페라는 비용이 계속 불어나는 반면, 뮤지컬은 수익이 불어난다.

출연진 이외에도 무대 세트와 대소도구, 의상, 분장, 조명, 영상 무대 크루, 연출팀 등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무대디자인과 제작 기간부터 투입되는 100명 이상의 인력들을 생각해보면 독주회나, 콘서트, 실내악, 오케스트라나 합창단의 개별 공연들과 어찌 비교할 수 있으랴. 그러나 여전히 공모를 통해 이뤄지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들의 공공 지원금은 별 차이가 없다.

‘오페라는 부유층 문화’라는 인식이 아직도 크다. 오페라 제작에 드는 시간과 비용이 너무 많이 들고 대중적인 뮤지컬이나 연극에 비해 수익성도 크게 떨어진다. 한 공연예술 실태조사에 따르면, 오페라 관람객의 수는 같은 기간 뮤지컬 관람객 수의 약 3%에 그쳤다. 공연 건수는 말할 필요도 없다. 오페라 전용극장도 전국에 단 2개다. 합창단, 발레단, 오케스트라가 소속된 극장을 가지고 있는 유럽의 제작 환경이 부러울 따름이다. 대부분 1~2명의 직원으로 운영되는 민간 오페라단은 단장이 직접 기획과 출연진과 예술단 섭외, 협찬을 구하고 티켓 판매를 위한 홍보와 마케팅까지 총괄해야 한다. 이렇게 몇 달에 걸쳐 피땀 어린 노력과 막대한 제작비를 쏟아도, 오페라 공연은 적자를 내기 십상이다. 그럼에도 장사꾼 취급을 받는 것이 한국 오페라의 현실이다. 재정적 지원과 투자가 절실함에도, 투자자들의 관심은 수익성이 있는 뮤지컬로 쏠린다.

 

민간 투자자와 다르지 않은 정부와 지자체

민간 투자자들뿐만이 아니다. 정부와 지자체 등의 공공 투자도 대중적 인기를 따른다. 문화체육관광부는 2021년 모태펀드 문화계정, 즉 문화 산업 투자금으로 1440억 원을 출자해 총 2150억 원 규모의 투자금을 조성했다고 밝혔다. 문화계정은 모험 콘텐츠 자금, 방송·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영상 콘텐츠 자금, 콘텐츠 기업 재기지원 자금, 콘텐츠 가치평가 연계 자금 총 4개 분야로 조성됐다.

그 어느 곳에서도 오페라 부문 투자금은 찾아볼 수 없다. 2022년도에도 문체부는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조성을 위해 관련 문화산업 및 투자진흥지구 개발 사업 등에 투자하는 펀드, 한국 영화에 투자하는 펀드(영화진흥위원회 영화발전기금 출자), 관광기업 육성을 지원하는 펀드에 출자하는 등 문화 콘텐츠·관광 관련 펀드를 1,562억 원 규모로 조성했다. 이 중 대부분은 영화, 게임, 드라마, 관광 등의 콘텐츠 제작에 사용됐다. 

오페라는 모든 예술 장르가 결합된 종합예술이자, 상업적·대중적 예술 활동의 기반이 되는 기초예술이다. 대중성과 상업성이 부족해도 공공부문의 지원이 필요한 이유다. 하지만 정부와 지자체 등 공공의 관심은 K-POP 등 한류와 드라마, 게임 영화, 뮤지컬과 같은 상업적이고 대중적인 문화에 집중돼 있다. 기초가 단단하지 않은 예술은 오래 갈 수 없다. 정부는 우리의 문화적 기초 체력을 키우고 육성시켜야 한다. 안타깝게도 한국 오페라계의 구조와 현실은 제작자와 출연자, 스태프에 이르기까지 종사자 모두에게 불안정하고 고통스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페라 종사자들은 자구(自求)의 노력과 희생으로 지금껏 한국 오페라를 끌어오고 있다. 120억에 달하는 예산으로 제작하고 있는 국립오페라단의 공연과 공공연히 비교 당하면서도, 이들은 열정을 잃지 않고 꿋꿋하게 오페라 제작에 온 힘을 쏟고 있다. 앞으로 넘어야 할 과제들도 산재해 있다. 요즘 창작오페라 제작이 활발하게 이어지고 있지만 정작 지속적으로 공연되는 작품이 없다는 것이 큰 문제다. 제대로 된 아카이브도 없고 창고가 없어 2~3회 공연을 위해 1억 이상을 들여서 제작한 무대 세트를 폐기해야만 하는 슬픈 현실도 해결해 나가야 할 과제들 중 하나다. 

정부는 올해 설 명절 직전 “공정하고 사각지대 없는 예술인 지원체계 확립”과 “문화 예술의 독창성과 대담한 파격, 혁신을 구현하는 창작환경을 만들겠다”라는 포부를 밝혔다. 정부가 진정성을 가지고 각종 예술의 제작현장을 살피고, 어려운 예술계에서도 사각지대로 밀려나 있는 오페라계의 현실을 꼭 살펴보기를 바란다. 

 

 

글·이소영
이탈리아 베로나 국립음악원에서 피아노와 성악과를 졸업한 뒤 2005년 솔오페라단을 창단해 부산은 물론, 서울까지 진출해 활발한 오페라 활동을 하고 있다. 현재 대한민국오페라단연합회 명예이사장과 유엔해비타트 한국위원회 이사, 산마리노공화국 명예총영사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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