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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치용의 Numbers (6) - 육각형이 ‘다윗의 별’에서 홀로코스트의 상징이 되기까지
안치용의 Numbers (6) - 육각형이 ‘다윗의 별’에서 홀로코스트의 상징이 되기까지
  • 안치용 l ESG 연구소장
  • 승인 2023.05.31 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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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로 읽는 인문학]

육각형 하면 ‘다윗의 별’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삼각형을 두 개 겹쳐놓은 이 별은 아마 인류 역사를 통틀어 가장 수치스럽고 야만스러운 사건인 홀로코스트의 상징이자, 그 연장선상에 위치하면서 이스라엘의 상징이 돼 중동분쟁의 씨앗이 됐다. 유럽의 피해자가 팔레스타인에서 가해자가 되는 현대사의 역설이 이 별에 존재한다.

 

<목욕하는 밧세바> - 렘브란트

‘다윗의 별’은 ‘다윗 왕의 방패’라는 뜻을 가진 히브리어에서 유래했으며, 일반적으로 유대인과 유대교를 상징하는 표식이다. 다윗 왕의 아들 솔로몬 왕이 ‘다윗의 별’을 자신의 인장에 새겨 넣고 사용했다고 전해진다. 현대 이스라엘 국기에 이 문양이 들어가 있다.

‘다윗의 별’이 다윗과 솔로몬 시대에 실재했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일각에서는 다윗 왕의 실존 자체에 의문을 제기하는 상황이니, 그 방패는 전설에 가깝다 하겠다. 구약성서(또는 히브리성서)에 다윗과 솔로몬이 중요 인물로 거론된 상황은 이 인물들이 유다 지파인 것과 관련이 있을 수 있다. 이른바 12지파 가운데 유다 지파가 바빌로니아 포로기 이후 ‘남 유다, 북 이스라엘’의 전체를 대표하게 되면서 다윗과 솔로몬 중심의 역사 전승이 주류로 살아남았을 가능성이 있다. 다윗이 실재했다면 실제로 그렇게 대단한 인물이 아니었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구약성서 기록에 의거해도 다윗은 결함이 많은 인물이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므로(살아남은 유대인은 모두 유대인이 됐다. 12지파 중 한 지파인 유다가 전체를 대표하게 된 것이다) 다윗에 대한 미화가 있었을 터인데도, 다윗이 자신을 발탁한 사울 왕에 반역을 꾀한 인물임이 암암리에 드러난다. 사울 왕이 12지파 가운데 유다 지파와 함께, 북쪽이 아닌 남쪽 계보인 벤야민 지파의 인물이었던 상황 또한 사울에 부정적인 기술의 근거가 됐을 수 있다. 사울과 다윗은 같은 남쪽 계보에 속하지만 속한 지파는 달랐다. 이 사실은, 구약성서의 기록이 다윗보다 사울에 더 적대적일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진보의 적은 보수가 아니라 진보라는 말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가 간다. 구약시대 이스라엘 전승과 기록은 아마 유다 지파의 관점에서 기술됐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다윗은 자기 민족과 적대 관계인 블레셋 민족에 투항해 그곳에서 녹을 받으며 장수로 지냈다. 왕이 된 다음에는 충신 우리아의 아내를 빼앗았으며, 밧세바가 밴 자신의 아이를 우리아의 아이로 만들려던 계략이 실패하자 우리아를 사지로 보내 죽게 했다. 렘브란트가 남긴 유명한 그림 ‘목욕하는 밧세바’의 밧세바가 우리아의 아내였다가 다윗의 아내가 돼 솔로몬을 낳은 그 여인이다. 아들 압살롬의 반역 또한 다윗의 치욕으로 남았다. 아들에게 왕좌를 빼앗기고 도망했다가 아들을 죽이고 어렵사리 복위하지만 영광은 이미 사라진 뒤였다. 성군과는 거리가 먼 다윗이지만, 유대교의 관점에서는 야웨가 사랑한 인물이었기에 다른 관점의 평가가 가능한 듯하다.

 

시오니즘

 

<랍비 제이콥 애스코위드가 보스턴 유대인 조직을 위해 만든 ‘유다의 깃발(flag of Judah)’.  이 깃발 속 ‘다윗의 별’ 가운데는 히브리어 ‘마카베오’란 글자가 적혀 있다>

‘다윗의 별’은 일종의 전설처럼 전해지다가 중세에 신비주의와 결합하며 주목받게 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별이 공식적으로 역사에 등장한 것은 1891년 미국 보스턴에서다. 리투아니아 이민자인 랍비 제이콥 애스코위드가 보스턴 유대인 조직을 위해 만든 ‘유다의 깃발(Flag of Judah)’에 ‘다윗의 별’이 들어갔다. 이 깃발 속 ‘다윗의 별’ 가운데는 히브리어 ‘마카베오’란 글자가 적혀 있었다. 이 ‘마카베오’는 외세와 싸워 팔레스타인에서 독립국가를 세우는 계기가 된 마카베오 항쟁(B.C 167~142년)과 관련 있다. ‘다윗의 별’ 가운데 ‘마카베오’는 시오니즘의 선명한 천명이라고 봐야 한다. 

1년 뒤 ‘유다의 깃발’은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도착 400주년을 기념하는 거리행진에 등장했고, 이때 별 가운데 글자가 실제로 ‘마카베오’에서 ‘시온’으로 바뀐다. 시오니스트 운동 내에서 사자와 별이 들어간 다른 깃발이 제안됐지만 미국 유대인 사이에서는 이미 애스코위드의 ‘유다의 깃발’이 인기를 끌었다. 1904년 미국 세인트루이스 세계박람회에서 다른 나라들의 국기와 함께 ‘통일된 유대 민족의 상징’으로서 ‘유다의 깃발’이 펄럭이며 ‘다윗의 별’은 세계 속에서 유대인을 상징하게 된다. ‘다윗의 별’은 1948년 팔레스타인에서 유대인의 독립국가 이스라엘의 국기에 들어가며 완전하게 본래의 취지대로 자리를 잡지만, 같은 ‘다윗의 별’이 2차 세계대전 시기에는 유대인 학살과 관련한 비극의 표식으로 끔찍한 기억이 된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인 셈이다.

 

6부자의 전쟁 

 

<1904년 미국 세인트루이스 세계박람회에서 다른 나라들의 국기와 함께 ‘통일된 유대 민족의 상징’으로서 펄럭이는 ‘유다의 깃발’>

애스코위드가 만든 ‘유다의 깃발(Flag of Judah)’ 속 ‘다윗의 별’ 한가운데 ‘마카베오’는 B.C 167년~142년 팔레스타인에서 벌어진 유대인과 셀레우코스 왕조 간의 전쟁 시기에 등장한 구호를 뜻한다. B.C 586년 나라를 잃은 후 오랫동안 외세의 지배를 받은 유대인들은 이 전쟁에서 승리한 결과로, 잠시였지만 독립국인 하스몬 왕조를 성립했다.

‘마카베오’란 말은 전쟁 시기 유대인 반란군의 영웅 유다의 별명으로, 유다가 전투를 시작할 때 늘 외쳤던 ‘미 크모카 벨림 야웨’(어느 신이 당신과 같겠습니까 야웨여, 출애굽기 15장 11절)의 앞글자를 땄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제국을 만들고 젊은 나이에 사망하자 제국이 나뉘고, 팔레스타인은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를 거쳐 셀레우코스 왕조의 지배하에 놓인다. 셀레우코스 왕조의 안티오코스 4세는 독자적인 전통과 종교를 유지한 유대인을 대상으로 강력한 그리스화 정책을 펼쳤다. 자신을 제우스 신의 현현으로 주장하며 ‘안티오코스 에피파네스(에피파네스는 신의 현신이란 뜻)’로 칭하고 숭배하게 했으며, 예루살렘에 제우스 신전을 세우는 한편 강제로 돼지고기를 먹게 했고 할례와 안식일 준수를 금지했다. 유대인은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다. 돼지는 기피동물이기도 하다.

헬레니즘에 동화한 유대인은 이런 조치를 크게 문제 삼지 않았으나 유대교 전통에 충실한 유대인에게는 날벼락 같은 재앙이었고, 결국 마카베오 전쟁이 발발하게 된다. 

유대인을 상대로 헬레니즘화가 나날이 강해지는 가운데 B.C 168년에 이집트 원정에 실패하고 돌아온 안티오코스 4세는 예루살렘에서 더 강경한 헬레니즘 정책을 발표했다. 유대교의 토라(모세 5경)을 모두 압수해 불태우고 예루살렘 성전에 제우스 상을 세웠으며 성전에 돼지를 들고 가서 그 피를 벽에 발라 더럽히고 성전의 금고와 기물을 약탈했다. 

B.C 167년 팔레스타인 모디인에 안티오코스 4세의 사자가 도착해 유대인들에게 그리스 신에게 제사를 드리라고 명령했다. 제사장인 마타디아는 제사를 거부하고 왕의 사자를 죽여버렸다. 이후 마타디아는 자신의 다섯 아들과 함께 광야로 나가 반란군을 조직하고 외세와 외세에 굴종한 헬레니즘화한 유대인들에게 맞서 싸운다. 전쟁의 발발이다.

이듬해 마타디아가 전사하고 반란군은 그의 셋째 아들 유다가 이끈다. ‘미 크모카 벨림 야웨’를 외치며 전투를 시작한 그 ‘유다 마카베오’다. ‘망치’로도 알려진 유다는 군사적 재능이 뛰어나 전세를 유리하게 이끌었다. 반란군은 셀레우코스 왕조를 몰아내면서 동시에 헬레니즘파 유대인을 척결했다. 마카베오 전쟁이 독립전쟁과 내전의 성격을 함께 지녔다는 뜻이다.

반란군의 통수권은 마타디아의 다른 아들 시몬에게 넘어갔고, 시몬은 우여곡절 끝에 사실상 유대의 독립을 쟁취하게 된다. B.C 142년 시몬은 유대인의 대제사장 겸 왕이 돼 그의 자손이 하스몬 왕조를 79년 이어갔다. 

수백 년 만에 이스라엘 민족의 염원인 독립을 이루긴 했으나, 하스몬 왕조는 애초 출발점과 많이 달라져 있었다. 마타디아는 경건한 유대교 전통을 지키기 위해서 반란을 일으켰다. 그러나 셀레우코스 왕조와 동맹을 맺는 등 유대의 독립을 얻는 과정에서 하스몬 왕조는 그들이 척결하고자 한 헬레니즘파 유대인과 크게 다른 바 없는 행태로 보이게 된다. 유대인 내부의 분열과 갈등은 이어졌고 로마에 다시 나라를 잃어 외세의 지배가 재현된 상황에서 예수가 태어났고, 예수를 추종하는 종교는 예수 사후 수백 년 뒤에 로마의 종교가 됐다. 기독교와 유대교는 뿌리가 같지만, 두 종교는 판이한 길을 걸었다. 기독교 세계인 서구에서 유대교와 유대인을 향한 핍박은 지속했고, 홀로코스트에 이르러 상상을 불허한 수준으로 분출하게 된다. 

여담으로 하스몬 왕조 시기에 주변의 에돔, 모압, 암몬 민족을 폭력을 동원해 강제로 유대교로 개종시킨 사건은, 히틀러의 ‘인종 청소’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1948년 팔레스타인에 이스라엘을 수립한 이후 이스라엘의 호전성과 겹쳐져 모종의 쓸쓸함을 느끼게 한다. ‘다윗의 별’의 현상이라고 할까. 3000년 전 인물인 다윗이 짐작이나 했을까 싶다만, 다윗이 실존 인물인지 확실치 않으니 부질없는 궁금증일 수도 있겠다. 꼭 그렇지 않은 게, 과거 ‘역사’적 인물에 관해 궁금해하고 행로를 상상하는 건 현재 역사를 숙고하고 성찰하려고 하는 진지한 현대인에게 지혜의 열망이 된다.

 

두 번째 독재자

다윗처럼 대한민국이란 국가의 실질적으로 두 번째 통치자이자, 독재자인 박정희에서 개인적으로 다윗을 연상시키는 지점은 다윗이, 적국 블레셋의 가드 지역 군주 아기스에게 투항해 국경 지대에 위치한 시글락이라는 성읍을 받아 그곳에서 잠시 자기 민족을 배신한 삶을 산 장면이다. 청년 박정희가 만주군 장교로 일제에 복무한 모습이 다윗의 시글락 생활과 같은 문맥에 위치하지는 않지만 그 모습에서 어느 정도 비슷한 감상이 드는 게 과하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박정희는 1963년 12월부터 1979년 10월까지, 5~9대 대통령을 지냈다. 대통령만 다섯 번을 지냈지만, 1962년 3월 24일부터 1963년 12월 16일까지 629일이나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재임했으니 실제로는 국가수반을 여섯 번 지낸 셈이다. 대통령 권한대행으로는 허정 최규하 황교안 등이 있지만 박정희는 2년 가까운 오랜 기간을 재임했고, 또 쿠데타 지도자로 실질적인 권력을 행사했기에 다른 권한대행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어떤 한국인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윗을 떠받들 듯 박정희를 추앙한다. 수천 년 전 인물과 수십 년 전 인물을 동일하게 비교할 수 없지만, 두 사람을 추앙하는 각각 무리의 심리에 깔린 지향은 부득이하게 현재를 향한다. 지향의 강도가 다르다. 다윗이 실존 여부가 확실하지 않은 사실상 신화나 다름없는 수준의 인물인 데다 우리 역사와 무관하지만, 박정희는 다르다. 

박정희를 긍정적으로 부정적으로 상반되게 평가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공과를 분리해야 봐야 한다는 다소 중립적인 견해가 있다. 나도 공과를 분리해서 봐야 한다는 생각이지만, 개인적으로 그에게서 공을 찾기 힘든 게 문제다. 경제발전? 박정희의 경제발전계획은 그의 독창적인 구상이 아니었을뿐더러 그 결과물이 그다지 좋지 못하다. 관점에 따라 달라질 이야기이기에 이 논의를 길게 할 필요는 없겠다. 박정희에게 밧세바가 있었는지는 큰 관심사가 아니지만, 적어도 그에게 우리아는 없었던 것 같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어쩌면 우리 역사에서 박정희가 불가피한 인물이었을지 모르지만 ‘다윗의 별’처럼 박정희의 그늘이 제법 짙은 게 문제다. 우리아가 확인되지 않는 건 다행이고, 밧세바는 눈 감고 지나갈 수 있지만, 그때 그 사람 박정희의 시대가 한국 현대사에 남긴 흔적은 현존하고 앞으로도 오랫동안 이어질 듯하다.

 

탄소

탄소 또한 ‘다윗의 별’처럼 이중성을 지닌다. 탄소는 생명세계를 만드는 데 가장 핵심적인 원소다. 생물체에 필요한 단백질이나 탄수화물 등은 모두 탄소화합물이다. 인간 또한 탄소화합물이다. 과장하면 인간은 탄소덩어리다.

흔히 탄소를 포함하는 화합물을 총칭해 유기화합물이라고 부르는 상황을 떠올려보면 우리 세계에서 탄소의 지위를 단적으로 엿볼 수 있다. 탄소를 포함하지 않는 화합물은 일반적으로 무기화합물이라고 불리나 약간의 예외가 있다.

원자번호 6번인 탄소의 활용 범위가 넓은 이유는 탄소가 결합을 최대 4개까지 안정한 형태로 형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탄소의 원자가가 4이기에 탄소끼리 공유결합을 만들며, 수소 원자나 산소 원자와 결합하는 것으로 여러 가지 다른 성질의 분자를 만들어낸다. 온실가스의 대표자 이산화탄소는 탄소 하나와 산소 둘의 결합물이다. 

탄소는 마법의 재료다. 녹색식물은 뿌리로 흡수한 물과 잎의 기공에서 빨아들인 이산화탄소를 재료로 하고 빛을 더해 포도당과 전분을 만든다. 동물은 식물이 생성하고 저장한 포도당과 전분 같은 양분을 먹고 소화ㆍ흡수해 몸을 구성하고 에너지원으로 쓴다. 육식동물은 식물을 먹은 동물을 먹어서 살아간다. 죽은 동물은 여러 가지 미생물의 작용으로 분해돼 땅으로 돌아가 양분이 되거나 화석연료가 되고, 또한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로 되돌아간다. 이른바 탄소의 순환이다.

가장 사랑받는 탄소는 다이아몬드다. 탄소 원자끼리 결합력이 강한 공유결합으로 묶여 있는 데다 동일한 간격, 동일한 각도의 구조를 이뤄 아주 단단하다. 알다시피 아주 비싸다. 본질이 석탄이나 흑연과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알지만, 모르는 사람이 훨씬 많지 싶다.

온실효과로 지구에 기후변화를 일으키는 온실가스 중 가장 유명하고 가장 강력한 게 이산화탄소다. 탄소마일리지 등으로 통상 이산화탄소를 탄소와 동일시하지만 탄소는 지구온난화에 관여하지 않는다. 관행적 용법과 달리 탄소가 아니라 이산화탄소가 문제다. 온실효과를 일으키는 6대 온실기체는 이산화탄소(CO₂), 메탄(CH₄), 아산화질소(N₂O), 수소불화탄소(HFCs), 과불화탄소(PFCs), 육불화황(SF₆)이다. 교토의정서에서 6개로 정했고 현재는 삼불화질소(NF3)가 추가돼 공식적으로 7대 온실기체란 말을 쓴다.

지구온난화 자체는 사실 긍정적이다. 온실효과가 없었다면 인간을 포함한 생명체들은 지구상에서 번성할 수 없었다. 화성과 금성에 아직까지 눈에 띄는 생명체가 없는 건 흔히 골디락스 행성으로 운위되는 금성ㆍ지구ㆍ화성 중에서 생명이 번식하고 번성할 만한 수준의 온실효과가 유지되는 곳이 지구뿐이기 때문이다. 화성의 온실효과는 대기가 희박해 미미한 반면 금성은 온실효과가 너무 강력해 고온으로 생명체가 녹아버렸다.

초기 지구에 온실효과를 주도한 기체가 이산화탄소였음은 지구과학의 정설이다. 인간 같은 포유류가 산소를 마시고 이산화탄소를 내뿜는 반면 식물이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산소를 내뿜으며 지구 차원에서 형성된 균형을 인간이 일방적으로 깨고 있는 현상은, 체감도가 달라서 그렇지 사실 홀로코스트를 능가하는 만행이다.

흥미롭게 농작물, 식물을 키우는 온실에서는 이산화탄소가 모자란다고 한다. 온실이어서 난방을 하다 보니 밀폐해야 해서 식물이 광합성하며 이산화탄소를 써버리는 게 이유다. 그래서 온실에는 오히려 이산화탄소를 공급해줘야 한다.

이산화탄소 과잉에 따른 온실효과로 지구가 병들어가는 반면 온실에는 이산화탄소가 부족한 상황이 무의미한 하나의 소극 같다. 지구라는 큰 온실에 인간이 만든 온실이 애초에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일까. 

 

 

글·안치용 
인문학자 겸 영화평론가로 문학·정치·영화·춤·신학 등에 관한 글을 쓴다. ESG연구소장으로 지속가능성과 사회책임을 주제로 활동하며 사회와 소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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