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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화 할 수 없는 전쟁, 다시는 무기를 들어선 안 된다! -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3월호 리뷰
정당화 할 수 없는 전쟁, 다시는 무기를 들어선 안 된다! -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3월호 리뷰
  • 김유라 기자, 정은아 인턴
  • 승인 2022.03.03 10: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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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유럽의 요충지 우크라이나가 비극적인 전쟁에 휘말리자, 전 세계가 러시아의 명분없는 전쟁을 규탄하고 나섰다. 우크라이나 대통령 볼로디미르 젤렌스키는 코미디언 출신임이 알려지며 ‘역량 부족’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지만, 수도 키이우에 남아 항전하는 모습을 보여 현재는 세계시민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한편, 국내에선 혼돈의 대선 정국이 펼쳐졌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3월호는 숨 쉴 틈 없이 몰아친 최근의 사건들을 넓은 시야로 분석했다.

 

우크라이나, 비극의 씨앗과 분주한 열강들

 

<트레이서>, 1964 - 로버트 라우센버그

젤렌스키 대통령은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힘을 보태줄 ‘EU 가입’을 추진하고 있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와의 전쟁에 내몰리는 동안, 푸틴을 저지할 지위를 가진 서구열강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세계 리더’를 자칭해온 그들의 리더쉽은 어떤 결과를 낳았는가? 작가 다비드 퇴르트리는 ‘우크라이나 사태, 유럽은 여전히 구경꾼 신세?’ 기사에서, 서구 국가들은 냉전 종식 이후에도 끊임없는 압박을 통해 러시아를 자극해왔다고 지적했다.

압박의 실효성조차 의심받는 상황이다. 기자 엘렌 리샤르와 안세실 로베르가 전한 ‘제재와 전쟁 사이의 우크라이나 혼란’ 기사에 따르면 EU와 러시아의 관계는 악순환에 빠졌다. EU의 제재에 반발한 러시아는 서구 질서에 더욱 저항했으며, 그 저항은 또 다른 제재를 낳았다는 것이다. 전쟁 직전까지, 이미 경색된 국제 분위기는 더욱 악화되고 있었다.

 

<모두스>, 2019 - 바시야 드미트릭

한편, 냉혹한 국제질서 무대 위 미국은 이미 ‘전쟁 이후’를 생각한다. 마이클 클레어 교수는 ‘미국이 군사 우위를 다지는 기회가 될 우크라이나 사태’ 기사에서 미국의 경쟁우위가 위태롭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위협을 가하는 상황이 미국에게는 기회로 작용할 수 있다며 은밀하게 반색하기도 했다. 러시아가 국제 사회의 '불량아'로 찍히는 사이, 미국은 강대국의 힘을 과시할 수 있다는 것이다.

복잡한 이해관계 속에서, 러시아는 ‘나치즘’을 명분으로 내세워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기자 피에르 랭배르는 '우크라이나 사태의 불편한 진실'(나치즘을 신봉하는 우크라이나 지도자들) 글에서 그간 나치의 피해국인 유럽국가들이 우크라이나 내부의 나치 세력을 애써 무시해온 것이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더욱 무시해선 안 될 주지의 믿음이 있다. 바로 어떤 명분도 전쟁을 정당화할 수 없다는 믿음이다.

 

 

다시는 무기를 들어선 안 된다! ‘평화를 위한 상상력’

 

마틴 키마니 케냐 대사는 최근 유엔안보리 회의에서 평화의 가치를 강조했다. 그는 “케냐와 대부분의 아프리카 국가들의 국경은 식민지 시절, 고대 국경을 고려하지 않은 채 그어졌지만 우리는 이를 그대로 받아들였다”면서 “우리의 국경에 만족해서가 아니라, 평화 구축이라는 더 위대한 것을 원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탐맘 아잠의  <콜라주>시리즈(2018)에 나온 이미지

 

어떤 명분도 전쟁을 정당화할 수 없다. 전술과 무기의 고도화로, 현대의 전쟁에서는 대량살상이 불가피하다. 무엇보다 민간인 피해가 가혹하다. 세계대전에서의 참상과 최근의 역사가 이를 증명한다. 다미앵 르포코니에 기자는 ‘이라크, 시리아 폭격의 가장 큰 희생자는 민간인’ 글에서 2010년 이후 벌어진 공습의 피해를 재조명했다. 그간 집계된 군인의 피해는 말할 것도 없으며, 수십만의 민간인이 허무하게 희생당했다. 특히 민간인의 죽음은 그 누구도 책임지려 하지 않기에 그들의 존엄이 지켜질 길은 모호하다.

냉전의 유물은 세계를 과거에 옭아매고 분쟁의 씨앗이 되고 있다. 지금은 평화를 위한 상상력이 필요한 때가 아닐까? 피에르 돔 특파원은 ‘공산당과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전례 없는 평화적 동맹’ 기사에서 그동안 생각지도 못한 평화의 모습을 전한다.

 

 

2022 대선은 무엇을 남길까

 

@뉴스1

대한민국 제 20대 대선은 여러모로 이례적이다. 인문학자 안치용 박사의 기사 ‘새 정치는 가능할까’ 에 따르면, 이번 대선에선 유력 후보들의 지역주의 색채가 옅어졌다. 심지어 대표적인 두 후보는 당의 주류 조차 아니다. 지역주의에 기반한 산업화/민주화 진영이라는 구분법이 사라지고, 정치세력은 오로지 승리를 위해 이합집산하는, 특정 인물을 내세운 ‘무리’들로 대체됐다.

성일권 발행인의 칼럼 ‘2022 대선이 남긴 것' 기사는 이런 현상이 정당정치의 근간을 흔들 것이라고 진단했다.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스스로 철새를 자처하는 정치인들의 행태는, 로또복권보다 더 심한 사행성을 보이는 듯하다. 고대 아테네에서 공직 선출의 수단이었던 제비뽑기가 지금보다는 더 민주적일 것 같다는 풍자에는 ‘정글민주주의’에 대한 우려가 담겨있다.

이때 ‘정치’가 기존의 양당체제에서 지켜지던 오래된 관습 문화를 의미한다면, 정치의 종말은 어쩌면 ‘새로운 정치’의 시작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어차피 지금의 2030세대에게 낡은 진영 논리는 더 이상 와 닿지 않기 때문이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3월호는 이밖에도 다양한 문화 기사를 실어 다가오는 봄을 알렸다. 독자 여러분의 애독을 부탁드린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3월호 목차

 

 

·김유라 기자, 정은아 인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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