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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긴 터널과 희미한 빛의 외교 下
전쟁의 긴 터널과 희미한 빛의 외교 下
  • 강태호 l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편집위원장, 전 한겨레 평화연구소장
  • 승인 2022.08.01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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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존 윌리엄스(Michael John Williams) 시라큐스대 교수(국제관계학과)는 <뉴욕타임스>(6월 11일 자)의 “반 러시아연대를 확장하려는 미국의 노력이 저항에 직면했다”라는 기사에서 “미국은 이 전쟁에서 서방세계의 승리를 믿는다. 그러나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동부와 남부에서의 승리를 믿는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우크라이나는 돈바스 전투에서 패배하고 있다. 

 

전쟁의 임계점을 향하는 돈바스 전투 

<가디언>의 국방안보 에디터로서, 크이우 현장 상황을 전하고 있는 댄 사바그(Dan Sabbagh)는 “우크라이나에서는 일 평균 600~1,000명의 사상자가 나온다. 돈바스 전투는 전쟁의 임계점이 될 것”(<가디언> 6월 10일자)이라며,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대통령 고문, 올렉시 아레스토비치(Oleksiy Arestovych)는 6월 초 매일 150명의 사망자와 800명의 부상자가 나온다고 전했다. 또 다른 대통령 고문, 미하일로 포돌랴크(Mykhailo Podolyak)는 <BBC>에 매일 100~200명의 우크라이나 군이 전사한다고 말했다.” 

더 심각한 것은 무기의 고갈이다. 우크라이나 군사정보부 부국장, 바딤 스키비츠키(Vadym Skibitsky)는 “우크라이나는 소비에트 표준 152mm 포탄을 거의 소진했으며, 현재 나토 표준 155mm 곡사포에 의존하고 있다”라고 전했다. 미군 관계자도 <AFP>통신(6월 10일 자)에서, 우크라이나는 이제 무기를 동맹국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스웨덴의 국제전략연구소(International Institute for Strategic Studies)에 의하면 우크라이나 군대는 정규군 12만 5,000명, 국가 및 국경 경비대 10만 2,000명으로 구성돼 있다. <뉴욕타임즈>도 지적했듯, 서방 언론의 우크라이나 전황 브리핑은 러시아 군의 실패나 만행 등을 강조하는 데 치우쳐 있다. 사바그는 서방의 한 관리가 러시아 침공군 15만 명 중 2만 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했으며, 우크라이나군 사망자 추정치는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고 전했다. 사바그는 전시 동원을 감안하면 전쟁 이후 우크라이나가 가용할 수 있는 군대를 최대 50만 명으로 추정하면서 “크이우 군대가 붕괴하고 있는 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러시아가 신나치주의 무장세력으로 보는) 우크라이나 최정예군 아조프 부대는 도네츠크의 마리우폴 함락에서 이미 궤멸했다. 또한, 루간시크 주의 주도인 세베르도네츠크의 주력군도 러시아군에 포위된 상태다. 12만 5,000명의 정규군 중 우크라이나의 핵심 전투 수행 능력을 갖춘 야전부대는 전쟁 전부터 대부분 돈바스 지역에 주둔 중이었다. 자체 무기는 고갈됐고, 거의 운용해보지 않은 나토의 기갑 장거리포, 다연장포 등 중무기만 남은 상황에서 기존 부대는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현재 우크라이나는 부대를 재편성해야 하는 상황이다. 전투경험이 있는 예비군을 나토가 제공할 무기에 맞춰 훈련시켜야 한다.

군사 전문가들은 서방의 지원에 힘입어 우크라이나가 공세를 강화한다면, 러시아는 원래 목표였던 돈바스 지역으로 만족하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그럴 경우, 러시아는 남부 흑해의 핵심 항구 오데사와 북동부의 제2 도시 하르키우를 위협할 것으로 전망한다. 러시아는 과거 오데사를 점령해 몰도바 내의 친러시아 분리주의 세력 지역인 트란스니스트리아와 연결하려는 의지를 보인 적이 있다.

<타스> 통신 등에 따르면 4월 22일, 루스탐 민네카예프 러시아군 중부군관구 부사령관은 “특별 군사작전 2단계(돈바스 공방전)에서 러시아군의 과제는 우크라이나 돈바스 지역과 남부 지역을 완전히 통제하는 것”이며 “우크라이나 남부 통제는 러시아어를 쓰는 주민들이 억압받는 트란스니스트리아로 진출할 방법”이라고 말했다. 러시아가 트란스니스트리아로 진출하려면, 마리우폴에서 오데사까지 흑해와 맞닿은 우크라이나 남부 지역을 제압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우크라이나는 밀 등을 수출할 항구를 모두 잃은 채 내륙 국가로 쪼그라든다.

 

“승리의 환상에서 벗어나자”라는 미 언론들

전쟁의 풍향과 함께 미 언론의 논조도 변화하고 있다. 5월 19일, <뉴욕타임스>는 “우크라이나 전쟁은 점점 복잡해지고 미국은 준비돼 있지 않다(The War in Ukraine Is Getting Complicated, and America Isn’t Ready)”라는 제목의 사설을 게재했다. 이 사설은 처음으로 “러시아에 대한 우크라이나의 군사적 승리는 비현실적”이라는 관점을 밝혔다. 그리고 “멀리 떨어져 있는 나라(우크라이나)에 대한 (미 국민들의) 지지에는 한계가 있고, 인플레이션은 우크라이나 전쟁보다 (11월 선거에서) 미국 유권자에게 훨씬 중요하며, (전쟁이 길어진다면) 전 세계적 식량 및 에너지 시장의 혼란이 심화될 것”이라고 근거를 들었다. 그리고는 “정부는 미국과 나토 지원의 한계를 (크이우 측에) 분명히 하고, ‘승리의 환상’에서 벗어나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이는 3월에 쓴 사설과 크게 대비된다. 3월 사설에서는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우크라이나는 자유로울 것”이며, “미국은 푸틴에게 나토가 그의 야망에 저항할 의지와 힘이 있음을 보여줘야 한다”라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다만 이 사설은 “(우크라이나의 손에 의해) 이 전쟁이 끝난 뒤, 새로운 세계질서에서 우크라이나가 어떤 위치를 점할 것인지는 미국이 결정할 문제”라고 덧붙였다. 

그 뒤 <뉴욕타임스>에는 우크라이나와 우크라이나의 전쟁 상황에 대해 보다 비판적인 기사들이 실리기 시작했다. 일례로 “미국은 우크라이나의 전쟁 전략에 대한 정확한 그림이 없다(U.S. Lacks a Clear Picture of Ukraine’s War Strategy, Officials Say)”라는 6월 8일 자 기사는 “미 정보기관은 우크라이나가 입은 손실에 대해 충분한 자료를 가지고 있지 않다”라고 지적했다. 미국 정보기관이 우크라이나 군의 상황에 대해 크이우로부터 충분한 정보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반면, 미 전·현직 관리들은 러시아군에 대해서는 훨씬 더 상세한 정보를 가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2019년 4월부터 2021년 3월까지 정보 임무 통합을 위한 국가 정보국(DNI) 부국장을 거쳐 지금은 하버드대 벨퍼 과학 및 국제문제 센터의 선임 연구원으로 있는 베스 새너(Beth Sanner)는 이 기사에서 우크라이나의 상황에 대해 의문을 표하며 “우크라이나가 얼마나 많은 군대와 장비를 잃었는지 자신 있게 말할 사람이 미 정부 내에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뉴욕타임스>는 애브릴 헤인즈(Avril Haines) 미 국가정보국 국장이 5월 미 상원 청문회에서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얼마나 추가 지원을 해야 하는지 말하기 어렵다. 사실 우리는 우크라이나보다 러시아에 대해 더 많이 파악하고 있다”라고 말한 내용을 전했다. 

새너는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 빼앗긴 영토를 수복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유럽국가들에 비해, 미 정보기관은 덜 비관적”이라고 지적했다. 우크라이나는 마리우폴의 항복을 ‘전투 종료’로 표현하며 ‘러시아에 맞선 영웅’의 이미지를 유지해왔다. 우크라이나군의 ‘승리’를 주장하면서도, 상당한 ‘희생’을 했다며 오락가락했다. 미국과 서방의 무기 지원을 받으려면 ‘승리’와 ‘희생’, 둘 다 필요하다. 스테븐 비들(Stephen Biddle) 컬럼비아대 교수는 “우크라이나 측은 그들의 손실을 공개하는 게 미국이나 우크라이나에 유리하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러시아의 전투상황은 잘 알고 있는 미국이, 러시아에 맞서 싸우는 우크라이나의 상황은 모른다는 <뉴욕타임스> 기사를 그대로 믿을 수 있을까? 이 기사의 속뜻은 ‘우크라이나 정부의 말을 그대로 신뢰할 수 없다’라는 것이며, 미국이 젤렌스키 정부와 ‘거리 두기’를 시작한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워싱턴 포스트> 역시 ‘승리의 환상’에서 벗어난 현실 인식의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다른 선택지가 없는 미국과 서방은 장기전에 대비하고 있다(With scant options in Ukraine, U.S. and allies prepare for long war)”라는 6월 17일자 기사는 전쟁의 ‘교착상태’를 최선으로 전망한다. 그리고는 한국전쟁의 경우처럼 대치 및 영토의 분할 가능성을 언급하는 전문가들의 견해를 들고 있다. 나토 주재 대사를 역임한 아이보 달더(Ivo Daalder) 시카고 세계문제 협의회 회장은 이 기사에서 미국이 직면한 상황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교착 상태는 미국에 엄혹한 양자택일을 요구할 것이다. 지원을 통해 우크라이나가 계속 피를 흘리게 하거나, 지원을 끊고 러시아의 승리를 감내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원 중단은 우크라이나를 적에게 던져주는 셈이므로, 아무도 그럴 준비가 돼 있지 않다.”

 

바이든, 기고문에서 정책 변화 시사

바이든은 <뉴욕타임스> 5월 31일 자에 “미국이 우크라이나에서 할 것과 하지 않을 것(President Biden: What America Will and Will Not Do in Ukraine)”이라는 기고문을 게재했다. 그는 이 글에서 “추가 침략을 억제하고 방어할 수단을 갖춘 민주적이고 독립적이며 자주적이고 번영하는 우크라이나”를 미국의 목표로 들었다. 또한, 바이든은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말을 인용하며 “이 전쟁은 외교를 통해서만 끝날 것’이라고 말했다. 젤렌스키는 5월 21일 마리우폴에서 우크라이나군이 투항하기로 한 날 TV 연설에서 “우크라이나군이 전쟁에서 승리하고 있다”라면서도, “전쟁의 종결은 협상 테이블에서만 가능하다”라고 강조했다. 

3월 하순 바이든의 발언(푸틴을 전범, 도살자, 학살자 등으로 표현하며 권좌에서 물러나야 한다고 했던) 및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이 밝힌 미국의 목표(러시아의 약화)를 생각해보면, 정책의 기조를 바꾼 셈이다. 

나아가 바이든은, 우크라이나에 대규모 무기지원을 하는 목적도 ‘(우크라이나가) 유리한 위치에서 전쟁을 끝내게’ 하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우크라이나가 국경을 넘어 러시아를 공격할 정도로 지원하지 않을 것이며, 러시아에 고통을 주려는 목적으로 전쟁을 연장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나아가 “나토와 러시아의 전쟁을 추구하지 않으며 푸틴을 모스크바에서 축출하려고 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바이든이 그동안 내놓았던 발언들 중 러시아에 가장 긍정적인 언급이다. “정부는 ‘승리의 환상’에서 벗어나야 한다”라던 <뉴욕타임스>의 5월 19일 자 사설에, 바이든이 이렇게 화답한 셈이다. 

바이든의 말은 이후 달라졌다. 그는 6월 3일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 방안을 묻는 질문에 “어느 시점에는 합의, 타결이 필요해 보인다”라고 말했다. 이어, 6월 10일 로스앤젤레스(LA)의 한 모금행사장에서 취재진에게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국경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젤렌스키는 이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고 다른 많은 이도 마찬가지였다”라고 잘못된 판단을 시사했다.

 

마크롱, “유럽은 러시아와 대륙을 공유하고 있다”

일찍이 종전 협상 중재를 위해 푸틴 대통령을 설득해 온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6월 4일, 외교적 해결을 언급했다. 그는 “푸틴은 역사적이고 근본적인 오류를 저질렀다”라면서도, “종전을 위한 외교적 해결책을 찾으려면 러시아를 모욕하면 안 된다”라고 덧붙였다. 이에, 우크라이나는 즉각 반발했다. 드미트로 쿨레바 외무장관은 트위터를 통해 “러시아는 스스로를 모욕하고 있다. 이런 주장이야말로 프랑스와 다른 국가들을 모욕하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마크롱의 발언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외교적 해결은 비판에 직면했다. 컨설팅회사 유라시아그룹(Eurasia Group) 대표로 세계 질서 재편에 대해 식견을 보여온 이안 브레머(Ian Bremmer)는 마크롱의 발언이 서방의 단결을 약화시키는 ‘균열음’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독일 정부는 신속한 종전에 중점을 둔다는 점에서 프랑스 정부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이는 우크라이나인들에게 2월 24일 이전에 확보한 것 이상의 추가 영토를 포기하도록 압력을 가하는 것이며, 사실상 대리전을 치르고 있는 미국 영국, 폴란드 발트해 3국 등과의 분열을 초래할 것이라고 주장했다.(1) 

왜 마크롱은, 우크라이나의 지위를 ​​훼손하고 서방의 단결을 약화하며, 푸틴을 돕는 셈일 수 있는 발언을 했을까? 브레머는 이를 마크롱의 ‘권력 정치(Power poitics)’로 규정했다. 미국과 러시아 사이,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유럽을 대변하는 리더로서 프랑스의 위상을 강화하려는 의도가 숨어있다는 것이다. 브레머는 이렇게 덧붙였다. “중국 등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타격이 큰 중립국들은 이제 러시아의 침략에 맞서기 위한 엄청난 희생과 세계 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주는 전쟁 대신 평화를 요구하게 될 것이다. 푸틴은 ‘시간은 러시아 편’이라 생각할 것이다. 마크롱의 발언은 이런 상황을 앞당길 것이다.

그럼에도 마크롱은 멈추지 않았다. 마크롱은 6월 15일 루마니아와 몰도바를 방문하면서 또다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을 위해 어느 시점에서는 양국이 회담해야 한다”라고 밝혔다. 물론 그는 이번에는 ‘어느 시점에서는’이라며 모호하게 말하고 “우크라이나를 돕고 협상을 계속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어서 “우리(유럽인)가 영웅적으로 저항하고 있는 우크라이나와 그 국민들에게 명확한 ‘정치적 신호’를 보낼 시점”이라고 했다. 또 푸틴을 모욕하지 말아야 한다는 표현 대신, “우리는 대륙을 공유하고 있으며 대륙의 끝에는 러시아가 있다. 오늘도 그곳에 있고, 내일도 그곳에 있을 것”이라며 간접적으로 공존을 강조했다.

 

“우크라이나의 미래는 우크라이나 국민에 달려있다”

중요한 것은 미국의 반응이다. 마크롱의 발언은 바이든의 <뉴욕타임스> 기고문과 어긋난 것이 아니었다. 하루 전인 6월 14일, 콜린 칼(Colin Kahl) 미 국방부 정책차관은 워싱턴에서 열린 신미국안보센터(CNAS) 회의에 참석해 “우크라이나에 협상의 방법과 대상, 시점에 대해 말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스스로 결정할 문제”라고 강조했다. 토니 블링큰 국무장관도 같은 날 미 공영 <PBS 방송>에 출연, 우크라이나가 동부 지역 일부를 양보할 필요성이 있는지를 묻는 말에 “우크라이나의 미래는 우크라이나 국민에 달려 있다”라고 답했다. 협상을 기정사실로 보면서, 미국이 나서지 않겠다는 것이다.

앞서 이안 브래머 유라시아 그룹 대표는 현실의 흐름을 읽지 못했던 듯하다. <CNN>방송(6월 3일 자)이 이미 “우크라이나 전쟁이 100일을 맞이해 서방 동맹이 정전의 잠재적 틀 마련을 위해 정례적으로 회담 중이다”라고 밝혔기 때문이다. 이 회담에 정통한 소식통들에 의하면, <CNN>에 몇 주 동안 미국 관리들이 영국 및 유럽 국가들과 정기적으로 만나 휴전을 위한 잠재적 틀과 협상에 의한 합의를 바탕으로 전쟁 종식을 논의했다고 한다. 이 중에는 5월 하순 이탈리아가 제안한 ‘4개 항의 평화협상 로드맵(프레임 워크)도 포함돼 있다는 것이다.(2) 

이탈리아 <안사(ANSA)> 통신(5월 23일 자)은 이탈리아 외교부가 5월 중순 우크라이나 전쟁종식 및 평화정착을 위한 ‘4단계 ‘우크라이나 평화 로드맵’을 수립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등에 전달했다고 보도했다. <안사통신>에 의하면 이탈리아 외교부는 이 평화 로드맵을 유엔, 유럽연합(EU), 주요 7개국(G7) 등에도 전달했다. 또한 로드맵이 △우크라이나 중립국화 지위 협상 △돈바스·크름반도 등 영토 문제에 대한 양자 협상, △유럽 평화·안보에 대한 다자간 협정 등 단계별 프로세스를 담고 있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러시아는 공식적인 반응을 보였다. 러시아의 <스푸트니크 통신>은 안드레이 루덴코(Andrei Rudenko) 러시아 외교부 차관이 5월 23일 “최근 관련 제안을 받았으며 이를 살펴보고 있다”라며, 검토 후 입장을 밝힐 것이라고 전했다. 또한 호세프 보렐 유럽연합 외교·안보 정책 고위 대표도 이탈리아의 종전 중재 노력을 지지한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이 협상안은 큰 관심을 끌지 못했다. 러시아와 유럽연합의 반응은 의례적인 것일 수 있고, 미국도 프랑스도 아닌 이탈리아가 제안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CNN>이 보도하듯, 이 제안을 비롯해 휴전(종전)을 위한 협상을 미국, 영국, 유럽연합 국가들이 정례적으로 논의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다르다. 게다가 린다 토마스 그린필드 유엔 주재 미 대사가 5월 말 기자들에게 이탈리아의 제안이 “우크라이나 국민에 대한 이 끔찍한 전쟁과 공격에 결론을 내리기를 바라는 계획 중 하나”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CNN>은 이 두 명의 미국 관리는 “미국이 실제로 이탈리아의 제안을 지지하는 않는다”라고 말했다고 덧붙였다.

우크라이나의 반발은 예상대로였다. 쿨레바 외무장관은 6월 8일 “서방(유럽) 일각에서 우크라이나가 전쟁에서 얼마나 버틸지, 언제까지 지원할지에 대한 논의(휴전 혹은 평화협상)를 시작하려는 움직임을 포착했다”라며 “우크라이나의 등 뒤에서 하는 일에는 동의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CNN>은 ‘미국 관리들의 언어와 메시지의 미묘한 변화’를 강조했다. 또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이 6월 2일 기자들에게 “전쟁은 예측할 수 없다”면서 “확실한 건 대부분의 전쟁은 협상 테이블의 특정 단계에서 끝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스톨텐베르그는 그동안 매파의 강경론을 대변해왔다. 흥미로운 점은 미 관리들이 <CNN>에 우크라이나에 압력을 가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강조하며 “푸틴이 전쟁을 끝내기 위해 선의로 협상할 의향이 보이지 않는다”라는 점을 부각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승리할 가망이 없는 전쟁을 끝낼 협상’이 필요한데, 미국은 나설 수 없으니 유럽과 러시아에 넘기고 있는 것이다. 6월 16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 마리오 드라기 이탈리아 총리 등 세 정상이 한꺼번에 우크라이나 수도를 방문한 것은 이런 흐름 속에서 나온 것이다.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등은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회담한 후 기자회견에서 “4개국 정상(별도로 합류한 루마니아 대통령 포함) 모두 우크라이나에 유럽연합 후보국 지위를 즉시 부여한다는 생각을 지지한다”고 말했다. 마크롱과 숄츠는 또한 자주포 및 대공포 등 무기 지원도 약속했다. 그에 앞서 마크롱은 크이우에 도착하면서 <AP통신> 등에 “유럽의 단결과 관련한 메시지를 전달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공식발표 내용만 보면 프랑스, 독일이 우크라이나와의 불편했던 관계를 개선하고 단결을 다짐하는 방문으로 보인다. 하지만 독일 유력지 <디벨트((Die Welt)>는 숄츠 마크롱 드라기등 ‘빅3’가 ‘밀폐된 문 뒤에서’ 비공개적으로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러시아와 협상을 설득했다고 전했다.(3)

 

EU 후보국이 된 우크라이나, 외교의 시간은 올 것인가?

6월 23일, 우크라이나가 유럽연합 후보국의 지위를 얻었다. <AP> 통신의 보도에 의하면, 보도유럽연합 27개 회원국은 이날 벨기에 브뤼셀에서 정상회의를 열어 우크라이나와 몰도바, 두 국가에 후보국 지위를 부여하기로 만장일치로 결정했다. 우크라이나는 개전 4일 후인 2월 28일, 유럽연합 가입을 신청했으나 프랑스, 덴마크 등 일부 국가들의 반대로 거부됐었다. 그로부터 4개월 만에 유럽연합은 만장일치로 우크라이나에 후보국 지위를 부여한 것이다.

외교의 시간이 올 것인가? 현재로서는 모든 게 불투명하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영토 문제를 둘러싼 간극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파이낸셜타임스> 기자 출신에 유라시아 그룹의 러시아 분석가인 알렉스 클리멘트(Alex Kliment)는 바이든이 NYT 기고문과 10억 달러 상당의 대규모 무기 지원을 발표하면서 밝힌, 우크라이나를 ‘협상 테이블에서 가장 강력한 위치’에 두는 외교적 해결을 위한 조건을 만든다는 목표라는 게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가? 라고 질문하고 있다.(4) 그에 따르면 미국 내에는 세 가지 목표에 대한 논의가 있다. 

첫 번째는 2022년 2월 전쟁 이전의 국경으로의 복귀다. 전쟁 연구소(ISW, Institute for the Study of War) 측은 “러시아가 현재 얻고 있는 이익을 저지하고 되돌릴 기회는 아직 있다”라고 한다. 미국의 첨단 무기를 우크라이나에 지원하면 된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러시아가 크름반도를 합병한 2014년 2월 이전으로의 복귀다. 젤렌스키도 이렇게 주장했다. 그러나 첫 번째 목표의 지지자들은 이 목표는 실행이 어려울 것으로 미국이 러시아 영토 중심까지 타격할 무기는 제공하지 않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세 번째는 러시아가 가까운 미래에 다른 나라를 공격할 수 없을 만큼 확실하게 굴복시키겠다는, 다소 추상적이고 극단적인 목표다. 이는 나토와 러시아 간의 전쟁으로 확대될 위험을 안고 있기에, 유럽도 미국도 원치 않는 것이다.

현재로서는 그나마 현실적인 첫 번째 목표도 달성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클리멘트에 따르면 우크라이나인의 80%는 2014년 이후 잃어버린 영토를 포함해 영토를 양보할 생각이 없다. 두 번째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다보스 포럼에서 미 외교가의 거물이자 원로인 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이 밝힌 평화협상 제안을, 1938년 영국 프랑스 등이 히틀러와 합의했던 기만적인 뮌헨 협정으로 비하했다. 

다른 결정적 문제가 또 있다. 러시아가 현재의 공세를 유지하면서 잠재적으로 더 많은 이익(영토)을 얻을 수 있다고 판단할 경우다. 그럴 경우, 우크라이나와 서방은 실현 가능한 지점을 재설정해야 한다. 물론 이에 맞서 그레엄 엘리슨(Graham Ellison) 하버드대 교수(정치학) 등 여러 전문가들이 지적했듯, 미국 서방이 취한 대러 제재의 해제 및 완화를 협상카드로 쓴다면 우크라이나의 힘과 위치를 강화할 수 있을 것이다.

 

 

 

글‧강태호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편집위원장, 전 한겨레 평화연구소장


(1) Ian Bremmer, ‘Macron’s speech weakens the West’s unity against Putin 마크롱의 발언은 푸틴에 대한 서방의 단결을 약화시킨다’ <GZERO>, 2022년 6월 6일. 
(2) ‘Western allies meeting regularly to game out potential framework for Ukraine ceasefire as war hits 100th day 우크라이나 전쟁이 100을 맞이하면서 서방 동맹은 정전을 위한 잠재적 틀을 마련하기 위해 정례적으로 회담’, <CNN>, 2022년 6월 3일.
(3) 이진희, ‘키예프 방문, 유럽 빅 3, 밀폐된 문 뒤에서 러시아와 협상 압력 - 독 디벨트 보도’ , <바이러시아21>, 2022년 6월 17일.
(4) Alex Kliment, ‘What’s Ukraine’s “strongest position” 100 days into the war?(100일째 들어선 전쟁에서 우크라이나의 강력한 지위란 뭘 말하는가?’ <GZERO Media>, 2022년 6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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