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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정권의 미·일 동맹, 제2 태프트-가츠라 밀약의 망령이 보인다
윤 정권의 미·일 동맹, 제2 태프트-가츠라 밀약의 망령이 보인다
  • 이부영 l 자유언론실천재단 명예이사장
  • 승인 2023.08.31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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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평화에 대한 인기 없는 생각

2018년 남과 북의 정상이 9·19 공동성명을 체결한 지 올해로 5주년, 한반도에 평화는 아직도 요원하고 갈등과 대립의 골만 깊어지고 있다. 북한의 비핵화를 놓고 첨예하게 형성된 신냉전 질서 아래 한·미·일 3각 안보협력체는 북·중·러와 팽팽히 맞서 있다. 
본지는 <동아일보> 출신으로 국회의원 3선을 역임한 원로정치인 이부영(자유언론실천재단 명예이사장)씨가 민족자주의 관점에서 현재 한반도 사태의 본질과 그 해법에 관해 쓴 원고를 게재한다. 필자가 해방-광복 100주년이 되는 2045년까지 남북 간 평화공존과 교류협력의 통합 청사진을 제시하면서, 특히 윤석열 정부의 미·일 동맹에 대해 한국이 피해를 보는 ‘제2의 태프트-가츠라 밀약’이라고 한 것은 특히 주목할 만한 경고다.(-편집자 주) 

 

윤석열 대통령,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한미일 안보 협력에 관한 공동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3.08.18. (출처=대통령실) 

몽양 여운형 선생 76주기에 생각한다

지난 7월 19일은 몽양 여운형(1886~1947) 선생 서거 76주기였다. 여운형 선생은 해방정국에서 가장 예리하게 내외정세를 분석하시고 자주정부와 통일정부 수립에 심혈을 기울인 지도자였다. 몽양 선생은 미·소 군정을 움직여 미·소 공위를 지속하도록 노력했다. 미·소 공위가 열려야 좌우합작 통일정부 수립이 가능했기에 노력했다. 여운형 선생은 당시 반탁세력이 득세하던 남한 정국에서 찬탁 세력의 주도자로 보였다. 남북협력, 좌우합작에 몽양 선생이 나서자 미 군정은 방북하려는 몽양 선생을 만류했다. 몽양 선생은 이렇게 대꾸했다. “집주인이 안방에 가든 건너방에 가든 손님이 이래라 저래라 하는 법은 없는 일이다.” 

분단과 증오가 판치는 오늘처럼 몽양의 자주·자립정신이 요청되는 때도 없다. 당시 냉전이 격화되고 일본의 전략적 가치가 높아지면서 맥아더 미 극동사령부는 점차 한국 전초기지론으로 기울었다. 미국의 한반도 분단론에 일본 보수세력의 입김이 반영된 것일까. 그들로서는 몽양의 제거가 불가피했을 것이다.

 

근현대사의 망국-분단을 극복하려던 내부동력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시작된 실학운동은 이미 생명을 다한 성리학 이데올로기를 극복하려는 체제 내의 개혁운동(정약용 등)이었지만 정조의 사망으로 실패하고 말았다. 그들의 폐정개혁운동이 조정의 일부 정책에 개혁 기운을 불러왔지만 일반 대중과는 연계 없이 진행됐으므로 군주의 사망으로 막을 내렸다. 그 뒤 부패한 관료집단의 가렴주구로 무능했던 조선왕조는 다가오는 외세를 무방비인 상태로 맞아야 했다. 

경상도 경주에서 창시된 동학운동은 전봉준을 중심으로 정읍과 전주에서 척양척왜(斥洋斥倭), 보국안민(輔國安民), 제폭구민(除暴救民)의 시대정신을 내걸고 농민을 비롯한 도탄에 빠진 백성을 일으켜 세웠다. 그 거대한 민족 내부 에너지는 죽창에 의지해 일제 군대의 현대무기인 기관총에 맞섰다. 헤아릴 길 없는 귀한 농민군들이 떼죽음을 당했다. 구미 제국주의 세력으로부터 근대 과학기술과 국가조직론을 일찍이 학습한 일제는 미국과 영국 등으로부터 제정 러시아의 남하를 저지하고 자신들의 식민지 필리핀,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등 동남, 서남아시아를 넘보지 않는다는 협약 제의를 받음으로써, 한반도 침탈의 기회를 얻었다. 

이 같은 침략에 대한 내재적 저항세력의 구심이 바로 동학농민전쟁의 농민이었다. 비록 무수한 희생이 따른 패배를 겪었지만 그것은 구국의 내재적 동력이 살아있다는 증거였다. 그들의 일부 부대가 망국 전후의 의병부대의 모태가 됐다. 그들 의병부대는 원주의 유인석 의병부대를 거쳐 백두대간을 타고 올라가 만주 독립군의 원조가 됐다. 우리는 몽양 여운형의 가계와, 백범 김구가 동학운동에 참여했다는 것이 그들의 독립운동에 정신적 자양분이 된 것을 알 수 있다. 국내에서 동학 3대 교주 의암 손병희를 중심으로 계획하고 준비한 3.1 독립만세운동은 상해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일으켜 세운다.

상해임시정부의 수립은, 각지에 흩어진 독립운동세력들로 하여금 반제·반식민주의 운동의 근거지 중국의 구국운동에 깊이 참여하게끔 했다. 소련혁명에 따른 사회주의 운동, 미국·영국의 민주주의 정치체제와 유럽의 사회민주주의 운동을 접촉하게끔 했다. 상해임시정부의 헌법이 민주공화제와 삼민주의에 근거한 사실은, 독립될 미래의 한국의 원형을 담은 것이라 하겠다. 

동학농민전쟁으로부터, 조선왕조가 망국을 맞아 상해임시정부로 수립되는 과정은 우리가 우리의 내부동력을 통해 근대국가로 전환하는 기간이었다. 전 근대국가가 무너지고 국토와 민족이 식민지로, 피압박대중으로 전락하는 참극을 맞이했지만 그를 극복하려는 민족 내부동력이 떨쳐 일어나는 집단적 경험을 했고 그것은 무장독립전쟁을 비롯한 각종 독립운동의 원체험이 됐다. 

 

윤석열 정권, 개도국들이 싫어하는 식민지 패권주의에 밀착

한국은 식민지배를 받은 개발도상국으로부터 선진국에 진입한 유일한 국가다. 탈냉전 시대 동안에는 민주화와 산업화 뿐 아니라 문화국가로서 개발도상국들의 선망의 대상이 됐다. 개발도상국들에게 많은 조언과 경험을 나눠줄 조건을 갖추고 있는 한국은 선진국들의 방해와 차별을 자신의 재능과 인내로 극복하고 선진국으로 진입한 국가다. 개발도상국들은 한국으로부터 선진국으로 진입한 노하우를 전수받고 싶어 한다. 한국이 보유한 차상위(次上位) 기술, 선진국에 이르는 경로를 배우고 싶어 한다.

그런데 한국의 윤석열 정권은 대다수 개발도상국들이 가장 싫어하는 식민지 패권주의 국가들에게 밀착하려고 온갖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낡아빠진 식민본국의 ‘가치동맹’에 매달리고 있다. 자신을 가혹하게 학대하고 착취한 나라 일본에게 비굴하게 매달리고 있다. 국제회의에서 만난 외국의 지식인들조차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한다. 한반도에서 전쟁을 일으키지 못해 초조해하는 모습이라는 평가도 있었다. 윤석열 정권은 가지 말아야 할 길을 걷고 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나는 북측이 우리를 대한민국으로 호칭했는데, 우리도 북측을 조선으로 호칭하는 것이 평화공존의 원칙에서 이 글의 취지에 맞다고 생각해, 이하 ‘조선’으로 표기한다)은 미국의 제재와 봉쇄에 고통을 겪고 있다. 조선은 소련이 해체되고 바르샤바 동맹이 무너지자 당황했을 것이다. 소련과 바르샤바 동맹은 조선의 이념과 과학기술을 제공한 우방이자 배경이었다. 

한국전쟁 기간에 지원병을 파견하는 등 가장 강력한 혈맹이었던 중국은 역사적으로나 지리적으로도 종주국 행세하는 큰 나라로 인식돼 조선의 건국 이래 경원하는 사이였다. 중국의 이른바 ‘개혁개방’, 즉 자본주의를 향해 뛰어가자(走資)는 주자파 노선을, 조선은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중국, 조선, 베트남은 동유럽과는 달리 20세기 이후 일본과 구미 제국주의 세력의 침략-식민지배를 겪고 민족해방운동을 통해 민족적 자주성을 지켰다. 1990년대, 이른바 탈냉전 시대를 맞아 조선은 한국과 함께 유엔에 동시 가입했고 남북기본합의서에 근거해 화해교류협력에 합의했다.

이후 한국은 중국, 러시아와 수교했으나 조선은 미국, 일본의 거부로 수교하지 못했다. 조선은 미국과 일본의 수교 거부를 동유럽 국가들의 경우처럼 조선 체제를 무너뜨리겠다는 의도로 해석했다. 그래서 조선은 핵무기개발에 매달렸다. 핵개발 30여 년 만에 핵무기 고도화와 정밀화에 성공했고 대륙간탄도미사일과 잠수함발사미사일까지 성공시켜 미국본토까지 사정거리를 넓혔다. 

1990년대 초 미국과 일본의 수교 거부가 이렇게 가공할 결과를 가져오리라고는 두 나라의 전략가들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조선을 가두고 굶기고 학대한 결과가 미국과 일본을 정조준하는 핵미사일로 돌아왔다는 사실은, 아무리 작고 하찮아 보이는 나라와도 대화하고 국제사회에 참여하도록 하는 것이 책임 있고 지도력 있는 나라가 취할 도리라는 것을 가르쳐주고 있다. 한국이 앞장서 미국과 일본이 조선과 수교하도록 주선했어야 했다. 

 

통합의 청사진, 광복 100주년 되는 2045년까지는 평화공존 성취해야

우리는 외세에 의해 분열된 한반도의 운명에 분노하고 바로 통일을 달성하지 못하는 것에 비통해한다. 갈라진 한국과 조선이 극단적으로 대립 갈등하는 것에 통탄한다.

한국과 조선이 갈라져 싸우는 것에 분노하고 통탄하고만 있어서야 되겠는가. 조건이 성숙하도록 끈질긴 노력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우선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이고 북으로는 철조망으로 가로막힌, 그리고 세계최강의 미군 몇만 명이 주둔하는 한국에서 그 가혹한 군사독재 아래서도 통일운동, 평화운동, 민주화운동이 멈춰본 적이 있었는가. 오랜 역사와 문화의 전통을 이어온 한국 사회는 외세의 압제 아래서도 굴한 적이 없었다. 더욱이 민주화, 산업화, 문화국가로 우뚝 서서 개발도상국을 넘어 선진국으로 올라선 한국은 여유 있게 미래로 나아갈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다.

조선도 민족해방의 전통으로 나라를 세우고 통일을 이뤄야 한다는 일념으로 지난 70여 년 세월을 보냈다. 소련의 해체와 사회주의권의 체제전환을 맞으면서, 더욱이 미국과 일본의 체제 붕괴 위협에 직면해 핵무장에 착수하면서도 자력갱생과 자주국방을 견지해왔다. 봉쇄와 제재로 경제발전에 제약을 겪어왔지만 나름대로 능력 있고 신속한 발전 가능성을 갖추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남북관계를 풀 수 있는 열쇠는 한국의 민주주의 신장에 있다. 첫째, 한반도의 평화, 민주주의, 복지시장경제를 주요 정책으로 가진 민주-진보 연합세력이 집권해야만 한반도의 평화공존과 교류협력 정책을 지속시킬 수 있다. 남북대화, 교류협력 자체를 거부하는 극우세력과 남남대화를 계속해 상호불신을 극복하고 상호 존재 인정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둘째, 민주-진보 연합세력은 상당한 기간에 걸쳐 미국과의 협상을 통해 전시작전통제권을 환수하되 미군 주둔 조건에 대해서도 협상해야 할 것이다. 다극화되는 국제환경이 우리를 돕고 있다. 셋째, 광복해방 100주년이 되는 2045년까지는 남북이 평화협정을 맺어 평화공존, 교류협력을 성취하고 좀 더 장기적인 통합의 청사진을 논의해야 한다.

조선도 첫째, 한국을 남조선혁명 대상으로, 공존 부정 대상으로 규정해온 대남정책을 수정한다는 의사를 밝혀야 한다. 둘째, 조선이 자국의 안보를 위해 보유하고 있다는 핵무력을 한국에 사용할 수 있다고 천명한 대남 핵공격 발표를 취소해야 조선을 반대하는 한국 국민들의 의사를 진정시킬 수 있을 것이다. 셋째, 2024년 미국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미국 민주-공화 양당 후보들의 대북정책에 반영될 수 있도록 조선이 미국과 대화하겠다는 의사를 밝혀야 한다. 넷째, 한국이 평화공존과 교류협력 정책을 표명할 경우, 조선은 즉각 화답해야 할 것이다.

 

미국 전쟁부 장관이었던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
 
일본 내각총리대신이었던 가츠라 다로.

미국 세계전략에 무모한 동조는 곤란, 우려되는 제2의 태프트-가츠라 밀약 

본격적으로 작동하는 미·일·한 군사동맹 시대는 동아시아와 한반도에 전쟁의 먹구름을 드리우게 할 것이다. 2023년 8월 18일 미국 캠프 데이비드 대통령 별장에서 열린 미국-일본-한국 3국 정상회담은 동아시아-한반도에 신냉전 대결시대를 구조화하겠다는 선언이 됐다. 한국을 미국-일본 군사동맹의 하부구조에 묶어놓은 채 중국-러시아-북한에 대한 대결 구도를 격화시키려는 이번 3국 정상회담에 우리는 동의할 수 없다. 

이번 정상회담은 1905년 미국과 일본의 태프트-가츠라 밀약(1905년 7월 29일 미국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 전쟁부 장관과 일본 가츠라 다로 내각총리대신이 맺은 밀약. 미국의 필리핀 지배권과 일본의 조선 지배권을 상호 승인하는 것이 핵심내용-편주)의 재판(再版)이 될 것이라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윤석열 대통령은 한국의 안보를 일본에게 의존케 만드는 미국의 세계전략에 무모하게 동조함으로써 다시 나라를 위기에 몰아넣게 될 것임을 강력하게 경고한다. 더욱이 국민의 지지와 결속을 얻지 못하고 있는 윤석열 정권은 긴장 조성과 대결로 정권을 지키려는 것이 아닐까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한반도와 전 세계에 살고 있는 우리 민족은 망국도, 식민지배도, 전쟁도, 타향살이도, 동족 간 분열도, 허망한 이념대결도 겪을 만큼 겪었다. 한국은 외세의 간섭과 군사독재의 탄압 속에서 후진국, 개발도상국을 거쳐 선진국에 접어들었다. 조선은 민족해방운동의 기치를 들고 봉쇄와 제재를 뚫고 핵보유국이 됐다. 그러나 자주를 지키겠다며 세계 최강의 미국에 맞선 대가는 처절했다. 기아와 퇴행을 강요당했고 끊임없이 체제 붕괴의 위기와 공포에 시달려야 했다.

비록 분단을 극복하지는 못했지만, 그렇다고 극한국과 조선 양측이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뤄놓은 성과를 스스로 과소평가할 일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대견하고 뿌듯하게 여겨 마땅하다. 좌절은 얼마나 모질었으며 공들여 쌓은 탑들이 얼마나 헤아릴 수 없이 무너졌던가. 다시는 좌절도 파괴도 용서하지 않겠다는 다짐만이 있을 뿐이다. 현 시기는 한국과 조선 양측에게 시련과 인내의 시간이며 집단적 지혜를 찾아 나서는 민족적 각성의 시간이기도 하다. 남북한이 지금까지 축적한 역량을 함께 모아 서로를 인정하고 먼 미래를 바라보면서 해방-광복 100주년을 맞이해야 하겠다. 우리는 망국 전후 떨쳐나섰던 동학농민전쟁의 선열들께서 보여주신 우리 민족 내부의 주체적 역량이 지금까지 이어져 우리를 이끌고 있음을 온몸으로 느낀다. 이 내재적 주체역량이 한국과 조선의 민족적 각성을 통해 우리를 막아서는 마지막 장애 사슬을 마침내 끊어낼 것이다.

해방-광복 100주년 되는 2045년까지 남북한이 평화협정을 통해 평화공존, 교류협력을 평화적으로 성취해내기를 염원한다.

 

 

글·이부영
자유언론실천재단 명예이사장. 1974년 동아일보 기자 시절 10월 유신에 맞서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대변인으로 활동했다. 해직 이후 재야에서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 사무처장을 지냈으며, 정계에 입문해 14~16대 국회의원으로 활동했다. 몽양 여운형 기념사업회 회장, 장준하 선생 기념사업회 명예회장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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