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4월호 구매하기
‘간사이학파’ 젊은 학자들이 본 ‘북한 외교의 다양성’ 『북조선의 대외관계』
‘간사이학파’ 젊은 학자들이 본 ‘북한 외교의 다양성’ 『북조선의 대외관계』
  • 오태규 l 서울대 일본연구소 객원연구원
  • 승인 2023.05.31 21:4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국내외 가리지 않고 북한과 관련한 화제는 주로 핵과 미사일 등 안보 문제에 집중돼 있다. 인권 문제, 식량 문제, 탈북자 문제 등도 간간이 관심사로 등장하지만, 안보 문제의 부속물이거나 곁다리인 경우가 많다.

일본 오사카에 있는 세츠난대학의 교수로 있는 모리 도모오미씨가 최근에 우편으로 『북조선의 대외정책』(고요서방, 나카토 사치오·모리 도모오미 편, 2022년 12월)이란 책을 보내왔다. 이 책은, 그가 리츠메이칸대학에 재직할 때 이 대학의 동아시아평화협력센터의 장을 맡고 있는 나카토 사치오 국제관계학부 교수와 함께 기획한 것이다.

모리 교수는 이미 내가 서평을 통해 소개한 바 있는 『한국저널리즘과 언론민주화운동-‘한겨레신문’을 둘러싼 역사사회학』(일본평론사, 2019)의 저자다. 내가 오사카총영사로 재직할 때 자주 교류했던 사이다. 그는 교토 리츠메이칸대 객원연구교수로 있다가 내가 귀국하던 2021년 봄부터 세츠난대학 국제학부 준교수로 옮겼다. 그와 같이 이 책을 편저한 나카토 교수도 나와 잘 아는 사이다. 총영사를 마치고 귀국한 지가 2년 반이나 지났는데도 인연을 잊지 않고 책을 보내주는 성의가 고맙다.

이 책을 보니, 부제목을 ‘다각적인 시점과 그 접근 방법’이라고 달았다. 그리고 책을 소개하는 띠지에 “대미외교, 대외 안전보장에 더해 스포츠외교, 대일예술외교, 해외파견 노동자 등, 이제까지 연구되지 않았던 북한의 모습을 신진 기예의 한일 젊은 연구자가 밝힌다. 북한을 새로운 시점에서 다층적으로 살펴본다”라고 적혀 있다. 책을 열어보기도 전에 흥미가 돋았다.

이 책을 만드는 데 편저자 2명을 포함해 모두 10명이 참가했다. 일본 학자가 4명, 한국 학자가 6명이다. 저자 소개에 따르면, 그 중에서 리츠메이칸대와 인연이 있는 사람이 절반이다.  

오사카총 영사관이 담당하는 오사카, 교토 지역에는 한국연구센터가 있는 대학이 세 곳이 있다. 교토의 도시샤대학과 리츠메이칸대학, 오사카공립대(2022년 4월 오사카부립대와 시립대가 합병해 생긴 대학). 교토의 두 대학은 오래 전부터 한국학연구센터가 있었고, 오사카공립대는 내가 총영사로 재직할 때인 2020년에 오사카시립대에 새로 만들어졌다. 도시샤대가 역사와 문화 연구에 강하다면 리츠메이칸은 정치, 외교 쪽의 연구가 성하다. 갓 출범한 오사카공립대 센터는 재일동포와 관련한 문제에 강점이 있다.

오사카, 교토를 포함한 간사이 지역은 도쿄 중심의 간토 지역과 학풍과 관심이 많이 다르다. 쉽게 말하면, 간토가 ‘관 중심’이라면 간사이는 ‘민 중심’이다. 관심 분야도 간토가 주로 외교, 안보 등 딱딱한 주제에 집중돼 있다면, 간사이는 재일동포도 많이 살고 있어서인지 생활, 문화, 예술 등 연구 주제가 다양하다. 그래서 이런 차이를 가진 간사이 지역의 한국 연구자들을, 내 나름대로 ‘간사이학파’로 이름지어 부르고 있다.

이 책은 관심 분야가 다양한 간사이학파이기 때문에 쓰게 됐을 것이다. 이 책은 모두 2부 9장으로 구성돼 있다. 1부에는 ‘대외정책과 국제인식’이란 제목 아래 5편의 논문이 실려 있다. 2부 ‘문화외교·소프트파워’에는 4개의 논문이 게재돼 있다. 제목에서 볼 수 있듯이 간사이의 특징이 잘 드러나고 있는 부분은 2부다.

2부의 논문 제목과 필자를 차례로 보면, 「미디어를 활용한 북중관계 연구」(허재철 한국 대외경제연구원 중국지역전략팀 부연구위원), 「북한 체제 유지를 위한 스포츠 활용의 특징에 대하여」(송기영 리츠메이칸대 문학부 수업담당 교원), 「김일성 유일지배체제기의 학술 정기간행물과 ‘1965년 체제’ 비판」(나가사와 유코 도쿄대대학원 종합문화연구과 특임 준교수), 「만수대 예술단의 대일 문화외교」(모리 도모오미 세츠난대 준교수) 등 이다. 띠지의 광고 문구대로, 이제까지 북한 연구에서 볼 수 없었던 주제다.

나는 이 중에서도 동북아 정세와 남북관계가 유동적인 시기인 1973년 8월부터 9월까지 일본 전역에서 59회 공연을 하며 18만 명의 관객을 동원한 만수대 예술단 예술단의 문화외교를 다룬 모리 교수의 글을 매우 흥미롭게 읽었다. 모리 교수는 예술단을 초청한 <아사히신문>과 총련계의 <조선신보> 기사, 그리고 일본 예술가의 반응을 다각적으로 전하면서 만수대 예술단의 방일 공연이 남북의 체제 경쟁 차원에서 이뤄진 것이지만 예술을 통해 일본 사람의 호감을 사는 데 성공했다고 말했다. 

앞으로도 상황의 변화에 따라 충분히 벌어질 수 있는 북한의 소프트 외교의 하나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북한이 체제 유지 차원에서 스포츠 외교를 어떻게 전개하고 있는가를 다룬 글과 북한의 학술지를 통해 북한이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를 어떻게 평가했는지를 연구한 글도 신선했다.

1부에서도 기존의 연구에서 볼 수 없는 논문이 있는데, 「북한과 대만의 관계」(미야츠카 스미코 국학원대학 도츠키단기대학 겸임교수)가 대표적이다. 「국제사회의 인권 압력에 대한 북한의 외교」(이경화 한국전략문화연구센터 객원연구원)도 그런 논문이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은 중국의 유일한 ‘전통적인 우호협력관계’에 있는 나라인데, 중국이 나라로 인정하지 않는 대만과 어떻게 관계를 맺고 있는가 하는 의문부터 생기는 건 당연하다. 그러나 논문을 보면, 북한과 대만은 1992년 한중수교에 반발해 93년부터 서로 상대국에 무역대표부를 설치하고 어업권 판매, 인력 수출, 밀무역 등을 하고 있다. 공식적인 무역은 북한의 탄도 미사일과 핵실험에 따른 2017년 유엔 제재에 따라, 대만이 중단을 선언했지만 비공식적인 무역과 인적 교류는 계속하고 있다고 한다. 

이를 보면, 외교는 이념이 아니라 실리에 따라 이뤄지는 것이며 상대에 대한 지렛대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는 걸 알 수 있다. 이념과 진영만 앞세운 채 미국과 일본에만 매달리는 윤석열 정부가 배워야 할 대목이다.

이 책은 우리가 이제까지 다루지 않았거나 소홀하게 취급해왔던 북한 외교의 다양한 분야를 한국과 일본의 소장 학자들이 관심을 갖고 연구한 내용을 담았다는 점에서, 북한 연구의 지평을 넓혔다는 평가를 받을 만하다. 

 

 

글·오태규 
<한겨레> 논설위원실장, 관훈클럽 총무, 한일 일본군위안부 문제 합의 검토 태스크포스 위원장, 오사카총영사를 역임함. 2021년 9월부터 서울대 일본연구소 객원연구원.

  • 정기구독을 하시면, 유료 독자님에게만 서비스되는 월간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잡지를 받아보실 수 있고, 모든 온라인 기사들을 보실 수 있습니다. 온라인 전용 유료독자님에게는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의 모든 온라인 기사들이 제공됩니다.
이 기사를 후원 합니다.
※ 후원 전 필독사항

비공개기사에 대해 후원(결제)하시더라도 기사 전체를 읽으실 수 없다는 점 양해 바랍니다.
구독 신청을 하시면 기사를 열람하실 수 있습니다.^^

* 5000원 이상 기사 후원 후 1:1 문의하기를 작성해주시면 1회에 한해 과월호를 발송해드립니다.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