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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욱의 시네마 크리티크] <기생충>과 <버닝>의 부르주아들은 왜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것일까?
[김경욱의 시네마 크리티크] <기생충>과 <버닝>의 부르주아들은 왜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것일까?
  • 김경욱(영화평론가)
  • 승인 2020.01.28 09: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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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만일 <기생충>의 주인공이 글로벌 IT기업 CEO인 박동익(이선균)이었다면, 이야기는 어떻게 전개되었을까? 부르주아의 집 또는 별장(때로는 요트)에 낯선 이들이 방문하는 설정은 주로 공포 장르에서 볼 수 있다. 낯선 이들의 정체가 악당으로 드러나고, 부르주아 가족은 악전고투 끝에 위기에서 벗어나게 된다. 박 사장이 기택(송강호) 가족의 정체를 알게 되거나, 애초에 기택 가족의 목표가 취업 이상이었다면, 영화의 마지막에 박 사장은 기택 가족을 제압하고 가까스로 살아남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몇몇 인물들과 함께 박 사장도 죽게 된다. 왜 그렇게 된 것일까?

 

2.

기택(가족)을 주인공으로 설정한 <기생충>은 공포 장르와는 거리가 먼 ‘가족 코미디’로 전개된다. 모두 백수였던 기택 가족이 사기와 음모를 통해 박 사장의 집에 전원 취업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상영시간의 절반을 지나면서 영화는 갑자기 공포 장르처럼 바뀐다. 박 사장 가족이 캠핑을 떠난 날, 기택 가족은 박 사장의 저택에 모두 모여 거실에서 술 파티를 벌인다. 분위기가 한창 고조되는 순간, 한밤중에 초인종 소리가 들릴 때 기택 가족은 공포에 사로잡힌다. 이전에 일하던 가정부 문광(이정은)이 당당했던 모습과는 완전 딴판으로 정신 나간 여자처럼 나타나 문을 열어달라고 호소한다. 그녀는 두고 간 물건을 찾으러 왔다면서 기묘한 웃음을 흘리며 주방을 지나 지하실 아래의 비밀 벙커로 내려간다. 이 장면의 미장센과 음향효과는 공포 영화의 컨벤션이다. 지하실로 통하는 문을 가운데 두고 양쪽으로 배치된 장식장은 스탠리 큐브릭의 공포영화 <샤이닝>(1980)에서 반복되는 대칭 구도의 화면을 생각나게 한다. 벙커에 이르는 좁고 구불구불한 통로는 불길한 초록빛이 감돌고 공포를 자아내는 음향효과가 더해진다. 그러므로 관객 앞에는 공포영화의 괴물이나 살인마 또는 무시무시한 광경이 등장해야 한다. 하지만 뜻밖에도 사채업자를 피해 숨어 살고 있는 문광의 남편 근세가 나타난다. 그는 굶주림에 지친 초라한 몰골로 분유병을 빨고 있기 때문에 변태 같은 느낌은 있어도 위험해 보이지는 않는다.

여기서 문광이 등장하기 직전의 장면으로 돌아가 보자. 기택의 아들 기우(최우식)가 앞으로 박 사장의 딸과 사귀겠다는 계획을 발표하자, 가족들은 박 사장과 사돈이 되는 희망에 부푼다. 박 사장은 ‘선을 넘으면 안 된다’고 경고했지만, 그들은 현상유지가 아니라 계급상승을 꿈꾸며 ‘선’을 넘어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순간 초인종이 울리고 문광 부부가 등장하면서 기택 가족의 판타지는 산산조각 나게 된다. 그들은 불가능한 계급상승과 가능한 현실에 직면해야 한다.

 

자영업(이를테면 대만 카스텔라)의 실패로 인해 중산층에서 몰락한 기택 가족과 문광 부부 사이에는 ‘차이’가 거의 없어 보이지만, 기택 가족에게 문광 부부처럼 되는 건 ‘중산층’의 허위의식을 포기하는 무시무시한 공포이다. 장르의 변형을 통해 (특히 서구의 비평가들과 관객들에게) 각광을 받아온 봉준호는 기택 가족이 박 사장 가족이 아니라 문광 부부와 대면하게 함으로써, 공포장르를 ‘사회적인 공포영화’로 신박하게 비튼다. 기택 가족이 상류계급의 박 사장 가족이 아니라 하층계급인 문광 부부와 사투를 벌이게 되는 건 그것이 한국사회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택 가족이 문광 부부를 제거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마무리 될 수도 있었을 텐데, 왜 그들의 사투는 박 사장의 죽음으로 귀결되는 것일까?

 

3.

박 사장 가족이 돌아오기 직전에 기택 가족은 문광 부부를 제압하고, 그 저택을 빠져나온다. 그들이 박 사장 저택의 거실에서 계속 하강해 도착한 벙커에는 근세가 있었는데, 박 사장 저택에서 계단을 따라 계속 아래로 내려갔더니 폭우로 물에 잠긴 집이 기다리고 있다. 이 때 기택은 비로소 자신의 가족이 처한 절망적인 현실을 인정하게 된다. 언제나 ‘다 계획이 있다’고 호언했던 그는 비슷한 처지의 수재민들을 가리키며 ‘계획 따위는 없다’고 말한다. 계획은 더 나은 미래를 기대할 때 가능한 것인데, 신자유주의 시스템의 하층계급에게는 무의미한 것이다. 그들의 상태는 비밀 벙커에서 미래 없이 생존해 가는 근세와 비슷하다. 그 시스템에서는 하늘에서 내리는 비가 박 사장의 저택에서는 풍경이 되는 반면, 기택의 반지하집에서는 재난이 된다. 다음 장면에서 박 사장 가족의 럭셔리한 현실과 기택 가족의 비참한 현실이 대비되면서, 그들 사이의 계급의 격차는 더욱 강조된다.

그럼에도 기우는 기택과 달리 계획을 세운다. 친구 민혁이 ‘재물운과 합격운을 몰고 온다’면서 건네주었던 수석으로 근세를 제거하고 가족이 처한 곤경을 해결하려고 한다. 그러나 박 사장 아들의 생일축하 파티가 순식간에 일상적인 이벤트처럼 열리는 광경을 보면서, 기우는 계급 상승이 불가능한 계획이라는 걸 깨닫는다. 그는 첼로를 연주하고 클래식을 노래하며 우아하고 쿨한 파티를 즐기는 그 부르주아들과 결코 어울릴 수 없을 것이다. 이 장면은 기택 가족과 문광 부부가 난투극을 벌이던 장면과 선명하게 대비된다. 전의를 상실한 기우는 결정적인 순간에 수석을 떨어뜨리는 실수를 저지르고 근세의 손에 들어간 그 수석에 머리를 맞게 된다.

영화의 클라이맥스에서, 벙커에서 지상으로 올라온 근세는 살인마처럼 기택의 딸 기정에게 칼을 휘두르다가 충숙의 손에 죽게 된다. 비극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박 사장이 눈앞에서 죽어가는 근세에게서 풍기는 악취에 불쾌한 표정으로 얼굴을 돌리기 때문이다. 이 때 기택은 박 사장 같은 부르주아들에게 근세와 자신 같은 이들은 동등한 인간이 아니라 기생충 같은 혐오의 대상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것이 박 사장이 강조했던 ‘선의 경계’인 것이다. 죽어가는 딸과 머리를 다친 아들, 미래의 전망을 완전히 상실한 기택의 분노는 박 사장을 향하게 된다. 기택은 박 사장의 가슴에 칼을 박는다. 박 사장은 이 모든 비극을 초래한 신자유주의 시스템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4.

<기생충>의 결말을 보면서 이창동의 <버닝>(2018)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버닝>은 상영시간의 절반까지, 삼각관계에 얽힌 멜로드라마로 전개된다. 종수(유아인)는 택배 아르바이트를 하다 어릴 때 이웃에서 살던 해미(전종서)와 우연히 만나게 된다. 두 사람이 가까워질 무렵, 해미는 아프리카로 여행을 떠난다. 그리고 벤1)(스티븐 연)과 함께 돌아온다. 해미가 벤과 어울리는 모습을 지켜보던 종수는 해미가 아니라 벤에게 ‘해미를 사랑하고 있다’고 고백한다. 르네 지라르의 ‘욕망의 삼각형’ 같았던 영화는 해미가 신기루처럼 사라지면서 미스터리 장르로 바뀐다.

 

5.

종수는 대학을 졸업하고 소설가를 꿈꾸는 가난한 청년이다. 그의 아버지는 강남의 아파트를 사라는 동창의 권유를 무시하고 고향에서 축산업을 하다가 중동에서 고생하며 번 돈을 다 말아먹었다. 그의 어머니는 오래 전에 가출했고 누나는 결혼을 했다. 그는 파주에 있는 아버지의 퇴락한 집에 머물고 있다. 종수가 아버지의 낡은 트럭을 몰고 다닐 때, 벤은 포르쉐를 타고 서래마을의 럭셔리한 빌라에서 살아간다. 종수가 처한 현실이 구체적으로 묘사되는데 비해, 가족관계도 직업도 알 수 없는 벤은 추상적인 느낌을 준다. 항상 미묘한 웃음을 머금고 있다가 간혹 지루한 표정을 짓는 벤은 ‘사람이 눈물 흘리는 게 신기하다’면서 ‘울어 본 기억이 없다’고 말한다. 종수는 아버지의 강요로 집 나간 엄마의 옷을 태웠던 사건에 트라우마를 갖고 있지만, 벤은 희열을 느끼기 위해 종종 버려진 비닐하우스를 태운다. 종수가 직업을 물을 때 ‘그냥 노는 거’라고 답하는 벤에게 삶은 즐거움의 연속이어야 하고 지루한 순간은 소멸되어야 한다.

종수는 해미의 소재를 파악하기 위해 벤을 계속 미행한다. 벤은 헬스를 다니고 성당에 나가고 가족들과 식사를 한다. 이때 미장센은 이 영화에서 반복되는 빈부격차의 이미지를 한 화면에 담아낸다. 화면 후경의 미술관에는 2009년의 ‘용산참사’를 소재로 한 사진전이 열리고 있고, 전경의 레스토랑에는 벤 가족의 우아한 식사가 한창이다. 두 공간 사이에 위치한 종수는 사진을 감상한 다음 벤 가족의 식사를 지켜보게 된다. 이 장면은 기우가 박 사장 아들의 생일파티를 창문을 통해 구경했던 장면과 같은 맥락이다.

해미의 실종에 벤이 연관되었다고 판단할 정보는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종수는 법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안개 속을 헤매는 종수의 모습처럼, 해미의 운명을 확증할 만한 정보는 찾아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 해미는 이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어 했을 뿐만 아니라 카드 빚 등으로 가족에게도 외면당하는 처지다. 그녀의 실종에 여러 가지 가능성이 제기되기 때문에 범행과 연관되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게다가 벤은 종잡기 어려운 미스터리한 인물이자 원할 때는 언제나 비닐하우스를 태우고 대마초를 피울 수 있는 치외법권적인 존재 같은 인상을 준다.

 

6.

법망을 비웃는 벤과는 달리, 종수의 아버지는 폭행과 재물손괴 등의 죄목으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는다. 종수는 변호사의 권유대로 이웃들에게 탄원서를 받으러 다니기도 했지만, 별로 도움이 안 된 것 같다. 해미를 잃고 아버지를 감옥에 보내고 키우던 소마저 팔아치운 종수는 깊은 무력감과 분노를 느낀다. 미스터리 장르는 미스터리가 해결되면서 끝나게 되지만, 이 영화에서 미스터리는 끝내 해결되지 않는다. 대신 종수는 해미와 처음 재회했을 때 그녀가 귤을 먹는 판토마임을 하며 했던 말을 이해하게 된다. “나는 먹고 싶을 때 항상 귤을 먹을 수 있어. 귤이 있다고 생각하지 말고 여기에 귤이 없다는 걸 잊어먹으면 돼.” 종수는 해미의 원룸 침대에서 해미가 없다는 걸 잊어버림으로써 그녀와 섹스를 할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이제 벤을 처리할 차례이다. 종수는 아버지의 공간인 파주로 벤을 불러낸 다음 아버지의 칼로 그를 찔러 죽인다.2) 벤을 향한 칼날은 신자유주의의 파고 속에서 패배한 종수 아버지의 분노이자 법정에서 침묵으로 일관하던 그의 응답이기도 하다. 종수는 벤과 포르쉐와 자신이 입고 있던 옷을 다 불태워버린다. 그렇게 신자유주의 양극화의 산물인 벤과 자신의 과거를 모두 소멸시켜 버린 다음, 종수는 트럭을 타고 아버지의 공간을 떠나간다.3) 하나의 매듭이 지어졌으니 이제 다시 시작해야 한다.

반면에 여전히 반 지하 집에서 살고 있는 기우는 돈을 왕창 벌어서 박 사장의 저택을 구매해 벙커에 숨어 살고 있는 아버지를 구해낼 야무진(?) 계획을 세운다. <기생충>과 <버닝>은 비슷한 관점을 공유하면서도 다른 마침표를 찍는다. 봉준호와 이창동의 흥미진진한 차이? “종수씨는 너무 진지한 것 같아, 진지하면 재미없어.” 벤의 말이다.

 

 

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글: 김경욱

영화평론가. 세종대에서 영화 관련 강의를 하면서 영화에 대한 글을 쓰고 있다.


1) 벤이 미국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영어 이름을 갖게 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한국 사회에서 잘 나가간다는 인상을 주려면 영어이름이 필요하다. <기생충>의 기우와 기정은 박 사장 아이들의 과외교사로서 자격이 있는 것처럼 꾸미기 위해 케빈과 제시카라는 이름을 사용한다. 박 사장 아들의 생일파티에서 (다소 뜬금없이) 인디언처럼 꾸민 (아시아 사람) 박 사장과 기택의 모습은 미국관객들에게 매우 흥미로웠을 것 같다.
2) <버닝>의 앞부분에서 종수가 틀어놓은 텔레비전의 뉴스에서는 트럼프가 ‘미국국민들에게는 최고의 복리를, 노동자들에게는 최고의 대우를 받게 할 것’이라는 비전을 제시한다.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만든 미국사회의 악몽을 그린 토드 필립스의 <조커>(2019)에서, 조커는 모든 것을 잃은 다음 상징적인 아버지로서 그토록 선망하던 베테랑 코미디언 머레이 프랭클린을 총으로 쏴 죽인다. 
3) 종수가 해미의 원룸에서 글을 쓰기 시작하는 장면 다음에 클라이맥스가 연결되기 때문에 이 결말을 종수가 쓴 소설의 한 장면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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