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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연주의 문화톡톡] 우리가 진짜를 원할 때 - <극한직업>, <기생충>, <엑시트>
[송연주의 문화톡톡] 우리가 진짜를 원할 때 - <극한직업>, <기생충>, <엑시트>
  • 송연주(문화평론가)
  • 승인 2019.12.16 11: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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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과 개연성을 찾은 관객들

요즘 관객들의 영화 리뷰를 보면, ‘개연성이 있다, 없다’를 많이 따진다. 주로 인물에 공감이 안 되거나, 공감했더라도 극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인물들이 하는 선택에 동의가 되지 않는 경우에 개연성이 없다는 평을 내린다. 그리고 개봉 직후 관객들의 악평이 쏟아지게 되면 영화는 극장에서 ‘광탈’하게 되었다.

밀레니얼 세대들이나 Z세대들은 영화평에 특히 민감하다. 볼거리 가득함으로 가성비를 충족시키고, 공감과 개연성, 재미를 갖춰 가심비까지 충족시켜줄 영화가 아니라면, MZ세대들은 두 시간 동안 휴대폰 사용이 불편할 영화관을 굳이 자기 돈 내고 찾아갈 이유가 없다. 혹여라도 실망스러운 영화를 만나게 되면 그 영화를 절대 극장 가서 보아서는 안 된다고 영화 리뷰를 통해 설득까지 하기도 한다. 반대로 어떤 영화를 극장에서 보는 것이 자부심이 된다면 내 돈 내고, 두 시간 휴대폰 사용 못 하는 불편을 감수하고라도 극장으로 달려간다. 그리고 영화평을 남긴다. 자신은 영화를 어떻게 보았노라고. 영화를 보는 것뿐만 아니라 후기를 남기는 것까지 소확행이 된다.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2019년 박스 오피스를 보면(12월 16일 현재 기준 관객 수) 한국 영화 흥행 순위 1위는 이병헌 감독의 <극한직업>(16,265,618명), 2위는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10,084,655명), 3위는 이상근 감독의 <엑시트>(9,425,495명)다. 세 영화는 장르나 결에 차이가 있지만, 모두 코미디가 섞여 있다. 앞서 말한 요즘 관객들은 개연성을 따지고, 가성비, 가심비 다 따지는데, 흥행에 성공한 영화들에 코미디?라는 것을 두고 많은 해석들이 쏟아졌다. 세 영화 모두 우리의 현실을 잘 녹였고, 특히 2019년 어렵고 부조리한 현실 속에서 관객들은 웃음을 원했기에 코미디가 성공하였다는 평가가 많다. 여기서 세 영화가 홍보용으로 내놓은 시놉시스를 들여다보았다. (표현은 원문 그대로를 살려 옮긴다.)

 

<극한직업> 시놉시스 (출처 : 영화진흥위원회 DB)

낮에는 치킨장사! 밤에는 잠복근무!

지금까지 이런 수사는 없었다!

불철주야 달리고 구르지만 실적은 바닥, 급기야 해체 위기를 맞는 마약반!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팀의 맏형 고반장은 국제 범죄조직의 국내 마약 밀반입 정황을 포착하고 장형사, 마형사, 영호, 재훈까지 4명의 팀원들과 함께 잠복 수사에 나선다.

마약반은 24시간 감시를 위해 범죄조직의 아지트 앞 치킨집을 인수해 위장 창업을 하게 되고, 뜻밖의 절대미각을 지닌 마형사의 숨은 재능으로 치킨집은 일약 맛집으로 입소문이 나기 시작한다.

수사는 뒷전, 치킨장사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진 마약반에게 어느 날 절호의 기회가 찾아오는데…

범인을 잡을 것인가, 닭을 잡을 것인가!

2019년 새해, 출동!

 

<기생충> 시놉시스 (출처 : 영화진흥위원회 DB)

“폐 끼치고 싶진 않았어요”

전원백수로 살 길 막막하지만 사이는 좋은 기택(송강호) 가족.

장남 기우(최우식)에게 명문대생 친구가 연결시켜 준 고액 과외 자리는

모처럼 싹튼 고정수입의 희망이다.

온 가족의 도움과 기대 속에 박사장(이선균) 집으로 향하는 기우.

글로벌 IT기업 CEO인 박사장의 저택에 도착하자

젊고 아름다운 사모님 연교(조여정)가 기우를 맞이한다.

그러나 이렇게 시작된 두 가족의 만남 뒤로, 걷잡을 수 없는 사건이 기다리고 있었으니…

 

<엑시트> 시놉시스 (출처 : 영화진흥위원회 DB)

짠내 폭발 청년백수, 전대미문의 진짜 재난을 만나다!

대학교 산악 동아리 에이스 출신이지만

졸업 후 몇 년째 취업 실패로 눈칫밥만 먹는 용남은

온 가족이 참석한 어머니의 칠순 잔치에서

연회장 직원으로 취업한 동아리 후배 의주를 만난다

어색한 재회도 잠시, 칠순 잔치가 무르익던 중

의문의 연기가 빌딩에서 피어 오르며

피할 새도 없이 순식간에 도심 전체는 유독가스로 뒤덮여 일대혼란에 휩싸이게 된다.

용남과 의주는 산악 동아리 시절 쌓아 뒀던 모든 체력과 스킬을 동원해

탈출을 향한 기지를 발휘하기 시작하는데…

 

멋짐 빼고 어설픔 살리고

내용상 로그 라인이 명확한 훅(Hook)을 가지고 관객에게 영화 내용을 쉽게 이해시키고 관객의 감정을 쉽게 낚는 것을 하이 콘셉트 영화라고 하는데, 시놉시스로 보면, 세 영화는 하이 콘셉트의 영화다. <극한직업>은 국제범죄조직 검거, <엑시트>는 재난 탈출로 중심 사건을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고, 시놉에서 도발적인 대사로 훅을 던진 <기생충>의 경우에도 가족 간 대립이 이어질 것임을 명확히 하고 있다. 혹자는 <기생충>은 봉준호 감독과 송강호 배우의 만남 자체가 하이 콘셉트라고 할 수도 있겠다.

할리우드 히어로물들이 대체로 하이 콘셉트 영화라는 것을 생각해볼 때, 이 영화들을 끌어가는 인물들은 멋진 영웅이 아니라 주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친근한 인물들로 짠하고 어설프다. <극한직업>은 해체 위기의 경찰 마약반, <기생충>은 전원 백수인 가족, <엑시트>는 청년 백수. 모두 직업적인 문제 상황과 경제적인 문제를 겪고 있으며, 캐릭터 표현의 느낌이 아주 어리숙한 인물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실제로 영화를 보면 확실히 어설픈 캐릭터들이 친근하게 등장한다. 그리고 세 영화의 인물들은 영화 내내 뭔가를 아주 열심히, 그것도 본인의 능력치를 훨씬 뛰어넘어야 할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어설픈 인물들의 진지한 연대

기존 흥행한 코미디 영화에서는 주로 어설픈 인물들 속에 능력 있는 인물이 있거나, 혹은 상황을 전지적으로 파악하고 리드하는 인물이 존재했었다. 그러나 세 영화는 그러한 인물 없이 대등한 관계로서 어설픈 인물들을 배치했다. <극한직업>, <기생충>, <엑시트>에서 주도하는 인물들은 권력형 리더가 아니라, 상황을 정리하고 다음 상황으로 이어가는 정도의 리더이며 상대들의 반응을 살피고 의견들을 모아 일을 진행하는 포용의 리더쉽을 발휘한다. 이는 위기 상황에서 서로가 연대하는 데에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하고 그로 인한 웃음도 인간적이다. 특히 <엑시트>는 피지컬 때문에 남성 캐릭터가 주도하는 시퀀스가 존재하지만, 상황에 따라 여성 캐릭터가 문제를 해결하는 모습도 많이 보여준다.

이들의 연대는 감정 다툼보다는 진지함을 향해있다. 어설픈 캐릭터들은 상황을 극복해가는 데에 서로의 의견을 진지하고 솔직하게 교환한다. 그래서 더 웃음이 유발된다. 자신의 제안이 옳은지 그른지 자기 검열도 없고, 말도 안 되는 의견도 서로 진지하게 받아들이며 일을 꾸미기도 하고, 또 나쁜 평가에는 담백하게 ‘그렇군.’ 하고 넘어가면 그만이다. 그 내면에 쪽팔림은 존재하지 않는다. 쪽팔림은 관객의 몫이고, 관객이 이들에게 우위의 위치에 서면서 웃음을 줄 수 있게 되고 코미디는 살아난다. 이들의 대사에서 올드함은 찾아볼 수 없다. 요즘 세대들의 대사와 담백한 사고를 닮아있다.

 

‘어설픔’과 ‘위장’, 코미디를 넘어선 스릴

거짓말과 위장에서 우러나는 아이러니는 코미디를 형성하는 주요 요소이다. 세 영화의 인물들은 현재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모두 위장의 과정을 거친다. <극한직업>은 마약반이 치킨집 운영자로 위장했고, <기생충>은 기택 가족 모두가 박사장의 집에서 기생하기 위해 신분을 위장한다. <엑시트>에서는 잠깐이지만 용남이가 의주에게 직장인인 것처럼 위장한다. 그러나 이 영화들이 위장을 이용하는 데는 차이가 있다.

세 영화 중에서 가장 먼저 거짓말이 들통나는 것은 <엑시트>다. <엑시트>는 용남의 거짓말을 오래 끌고 가지 않는다. 의주는 용남이 백수라는 것을 쉽게 알아냈고, 용남에게 쿨하게 거짓말이라는 것을 안다고 해버린다. 감정을 질질 끌고 가지 않는다.

<극한직업>에서의 위장은 아이러니하게 돌아온다. 국제 범죄조직을 검거하기 위해 위장한 치킨집이 본업처럼 되어버린 것이다. 위장을 감추기 위해 이어지는 거짓말들은 또 다른 여파를 만들고, 여기에서 코미디가 우러나오고 이들의 노력은 결국 국제 범죄조직을 잡는 것으로 맺어진다.

<기생충>에서의 위장은 세 영화 중 가장 길게, 영화 끝까지 이어진다. 영화 전반부 재치있게 이어지는 가족들의 위장과 그에 속아 넘어가는 박사장 가족들의 반응으로 웃음을 주지만, 종국에는 인물들을 파국으로 몰고 간다. “폐 끼치고 싶진 않았어요”라는 시놉시스의 첫 대사처럼, 기택 가족은 그저 생존을 바랐을 뿐인데 말이다.

문제는 이 위장을 하는 캐릭터들이 살짝 어설프다는 점이고 그로 인해 관객들은 코미디를 넘어서 일종의 스릴감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들키면 안 되는 상황, 그런데 그 상황을 책임질 사람이 어설프다면 얼마나 조마조마하겠는가. 영화는 이런 감정을 잘 활용하고 있다.

 

가장 위험한 것은 현실, 그러나 가볍고, 담백하게

세 영화에서 공통점은 또 있다. 적대자마저도 어설프거나, 적대자 설정이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다. <극한직업>의 국제 범죄조직들은 어딘지 어설프고, <기생충>에서는 과연 적대자가 누구인가 하는 생각을 깊이 하게 만들고, <엑시트>는 재난 그 자체가 적대자로 설정되지만, 기존 재난 영화들에서 그랬던 것처럼 재난 이외에 이들을 방해하거나 이들의 탈출을 지연시키는 훼방꾼이 특정 중심인물로 설정되지는 않는다.

세 영화에서 인물들을 위험에 빠트리고 힘들게 만드는 요소는 바로 현실이다. 부조리한 현실, 인물들을 믿어주지 않는 주변의 시선, 가난, 실업, 재해, 재난 등이 그러하다. 그런데 현실을 다루는 방식은 진지하되 인물의 마지막 대처는 가볍고 담백하다. 신파를 없앤 것이다. 예전 흥행 영화들의 성공 공식이 실컷 웃긴 뒤, 눈물을 빼는 식이었다면, <극한직업>, <기생충>, <엑시트>는 담담히 그들이 앞으로 잘 살아가기를 응원하는 감정 정도로 막을 내린다.

 

진짜 찐!이 된 영화

세 영화는 어설픈 인물들과 그들의 연대로 세상을 진지하게 그렸다. 이는 웃음과 풍자를 만들어내기에 유리했다. 이들이 접한 현실이 사실적이면서, 이들의 대응이 진정성 있고, 최선의 노력을 다했기에, 그리고 무엇보다 인물들의 감정을 담백하게 마무리했기에 진짜 찐!이 될 수 있었다. 가벼운 웃음으로 영화를 출발시키고, 처음에는 낮춰보는 웃음이 섞인 채 인물을 관망하게 하다가 이들의 현실이 우리가 접하는 사실과 유사할 때, 인물을 응원하게 되는 관객의 감정을 자극했다. 예상치 못한 이들만의 재치로 최선을 다해 한 땀 한 땀 상황을 돌파해 갈 때, 그리고 예상치 못한 전개로 놀라움을 줄 때, 우리는 가성비, 가심비, 개연성, 공감 모두를 만족할 수 있었다.

 

출처 : <극한직업>, <기생충>, <엑시트> 시놉시스 - 영화진흥위원회 DB

글: 송연주
세종대학교 영상예술전공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영화를 연구하며,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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