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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식의 시네마 크리티크] 우리 사회 욕망의 사다리는 안녕한가-<기생충>
[임정식의 시네마 크리티크] 우리 사회 욕망의 사다리는 안녕한가-<기생충>
  • 임정식(영화평론가)
  • 승인 2019.06.24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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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 김현에 의하면, 소설 속에는 세 개의 욕망이 들끓고 있다. 소설가의 욕망, 주인공들의 욕망, 독자의 욕망이다. 소설가의 욕망은 세계를 변형시키려는 욕망이다. 소설가는 자기 욕망의 소리에 따라 세계를 자기 식으로 변모시키려고 애를 쓴다. 주인공들은 소설가의 욕망에 따라, 혹은 그 욕망에 반대하여 세계를 변형하려 한다. 인물들의 욕망은 서로 부딪쳐 다채로운 모습을 드러낸다. 독자의 욕망은 인물과 소설가의 욕망을 느끼고, 그 욕망들과 부딪친다. 그 과정에서 무의식 속에 숨어 있던 독자의 욕망이 모습을 드러내고, 자기가 세계를 어떻게 변형시키려 하는가를 깨닫게 한다.

김현의 욕망 이론은 <기생충>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 <기생충>에도 감독의 욕망, 인물의 욕망, 관객의 욕망이 작동한다. 그리고 인물, 감독, 관객의 욕망은 서로 부딪치고 갈등한다. 그 욕망들은 밀접하게 상호 관련돼 있으며, 개인적이기도 하고 사회적이기도 하다. 특히 관습적으로는 갈등이 당연시되는 두 인물군의 충돌 양상이 이례적이다. 이 글은 <기생충>에 나타난 욕망에 초점을 맞추고, 인물 사이의 욕망의 충돌과 변이 양상을 가볍게 살펴보려 한다.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에 의하면, <기생충>은 6월 23일 오전에 900만 관객을 돌파했다. <기생충>의 제작비를 고려하더라도, 이 정도 관객이면 충분히 흥행에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다. 고개를 젓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1000만 관객을 당연시했던 입장에서는 이 숫자가 다소 부족하게 느껴질 것이다. 영화의 화제성에 비해 흥행 뒷심이 강력하지 않기 때문이다. 봉준호라는 브랜드, 송강호의 티켓 파워, 한국영화 100년 역사상 최초의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이라는 후광이 예상보다 약했다고 보는 것이다.

대중성과 별개로, 영화를 본 관객들 가운데 찜찜하다, 불편하다, 혹은 무섭다고 말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불편함을 느낀 까닭의 하나는, <기생충>이 한국사회의 계급과 경제적 불평등 문제를 직설적으로 언급하기 때문일 것이다. <기생충>의 이러한 특징은 계급의 역사 요약본 같았던 <설국열차>와 비교하면 선명하게 드러난다. <기생충>은 지하, 반지하, 지상이라는 공간의 대비를 통해 우리 사회의 계급 사다리를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이때 지하와 반지하에 거주하는, 혹은 서식하는 인물들끼리의 생존 경쟁은 동물적일 정도로 적나라해서 차라리 가슴 아프다.

그런데 영화를 본 후 찜찜함이 남아 있는 이유는 뭘까. <괴물>이나 <설국열차>와 달리, 대중영화로서는 이례적으로, <기생충>은 결말에서 관객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제공하지 않는다. 선악이분법에 기반을 두고 악당을 처벌하지도 않는다. <괴물>에서 한강의 돌연변이 괴생명체는 불에 타 죽고, <설국열차>의 독재자는 파괴된 열차와 함께 죽음을 맞이한다. 그리고 나이 어린 인물들이 빈자리를 채운다. <기생충>에서는 인물 혹은 관객의 욕망이 만족할 만큼 충족되지 않는다. 대리만족의 쾌감을 주지도 않는다. 기택은 오히려 반지하에서 어두컴컴한 지하 세계로 이동한다. 봉준호가 예전보다 비관적인 되었거나 아니면 깊어진 것인지도 모른다.

 

바로 이 지점이 감독의 욕망, <기생충>의 문제의식일 수 있다. 현실세계에서 기택의 가족 혹은 근세 부부와 같은 서민층, 하층민, 아웃사이더의 욕망이 남김없이 충족된 적이 있었던가? 관객들은 이 가족희비극을 보면서 키득키득 웃다가 결국에는 씁쓸하고 쌉싸름한 감정의 찌꺼기를 곱씹으며 극장 문을 나선다. <기생충>은 현실세계의 부조리를 해소시켜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냉혹한 현실을 재확인시켜주기 때문이다. 감독은 현실을 직시하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기생충>은 브레히트의 서사극 이론을 연상시킨다. 일례로 <기생충>은 관객들이 감정이입할 인물을 설정하지 않는다. 그리고 관객들의 욕망을 충족시켜주기는커녕 냉철한 판단과 이성적 성찰을 요구한다. 이처럼 불편한 영화를 900만 명이 보았다는 것은 기적일 수 있다.

봉준호 감독은 <기생충>에서 관객에게 쾌락 혹은 쾌감을 주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냉정하게 성찰하도록 만든다. 그 현실이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주는 것도 아니다. 영화의 결말에서 박 사장네 대저택에는 또 다른 누군가(독일인)가 입주한다. 그리고 기택은 근세가 거주하던 지하실로 옮겨간다. 최고 상류층이든 하층민이든, 누군가는 그 자리를 채운다. 상류층의 자리는 상류층이, 하층민의 자리는 (반)하층민이 차지한다. 세계는 그렇게 반복되고 순환한다. <기생충>이 불편한 진짜 이유이다.

<기생충>의 관객인 우리들 대부분은 반지하와 대저택의 어디쯤, 실질적으로는 반지하에 가까운 쪽의 영토에 거주한다. 그러한 맥락에서, 돈 벌어서 대저택을 사겠다는 기우의 내레이션은 낭만적이다. 비현실적이거나 성취 가능성이 거의 없어 보이는 희망이다. 머리를 다친 사람만의 특권일 수도 있다. 어찌 됐든, 기우는 아버지에게 꿈을 이야기한다. 이때 기우의 욕망은 수직적이다.

 

<기생충>에서 인물의 욕망은 수직과 수평으로 구분할 수 있다. 전원 백수인 기택 가족의 욕망은 수직적이다. 4수생인 기우는 대학생 친구를 대신해 박 사장 딸 다혜의 영어 과외교사가 된다. 기우로 인해 기택, 기정, 충숙이 차례로 박 사장의 운전기사, 미술치료사, 요리사로 취업한다. 이 과정은 르네 지라르의 욕망의 삼각형 이론으로 설명 가능하다. 기우(주체)는 대학생 친구(중개자)를 매개로 박 사장 가족(대상)의 일원이 되고자 한다. 기우는 돈키호테, 대학생 친구는 아마디스, 박 사장은 이상적인 방랑기사인 셈이다. 이어서 기택, 기우, 충숙은 기우를 중개자로 삼아 잠시나마 상류층의 구성원이 된다. 박 사장 가족이 여행을 떠난 사이, 기택 가족이 대저택을 자기 집처럼 휘젓고 다니는 장면은 상징적이다. 하지만 결말에서 이 욕망의 삼각형은 허물어지고 만다.

박 사장의 욕망은 수평적이다. 그에게는 상승 욕망이 없다. 그는 현재의 시스템이 그대로 유지되기를 바란다. 박 사장이 유난히 ‘선’을 강조하는 이유이다. 박 사장은 기택과 같은 하층민이 선을 넘지만 않으면, 그가 청년이든 중년이든 상관하지 않는다. 그 선은 기택의 냄새에 의해 무너진다. 그런데 외형상 평온해 보이는 박 사장 가족은 내적으로는 균열을 보인다. 다혜는 기우를 욕망한다. 부모는 딸의 은밀한 욕망을 알지 못한다. 박 사장과 연교는 그림에 나타난 다송의 비밀도 눈치 채지 못한다. 박 사장 가족의 비극은 여기에서 시작된다.

 

대부분의 시나리오 서적에서 갈등은 서사의 핵심으로 제시된다. 로버트 맥기의 시나리오 이론을 굳이 자세하게 설명할 필요조차 없다. 이때 갈등은 대부분 인물의 욕망과 관련돼 있다. 욕망과 욕망이 충돌하면서 갈등이 발생한다. 그런데 <기생충>에서는 기택 가족과 박 사장 가족의 갈등이 표면에 드러나지 않는다. 그들의 갈등이 각각 수직적, 수평적이어서 접점이 매우 작다. 반면 지하에서 지상으로 상승하는 근세와 기택의 욕망은 모두 수직적이다. 그래서 기택과 근세는 목숨을 걸고 충돌한다. <기생충>에 나타난 계급 갈등의 특징이다.

<기생충>에서는 주요 인물 간 욕망의 충돌이 간접적이다. 기택과 근세는 표면상 적대적이지만, 결국 기택은 근세의 대체제가 된다. 그렇다고 <기생충>이 사회문제를 비껴가는 것은 아니다. 앞에서 잠시 언급했듯이, <기생충>은 우리 사회의 계급 문제, 경제적 불평등 문제를 적나라하게 형상화한다. 그런데 욕망의 측면에서, <기생충>은 매우 특이한 지점에 위치한다. 인물의 욕망이 충족되는 것도, 욕망 충족이 불발되는 것도 아닌 상태가 된다. 다만 그 욕망이 반복될 뿐이다. 그래서 <기생충>은 재미있으면서도 불편하고, 메시지가 강렬하면서도 미진한 감정이 남는 작품이 된다.

 

<기생충>은 봉준호 영화의 한 매듭이 될 수 있는 영화이다. 주제와 스토리텔링의 측면에서 과거 작품들의 핵심적인 특징이 집약돼 있다. 봉준호는 자신의 필모그래피를 중간 결산한 셈이다. 특히 <괴물>과 <설국열차>의 요소들이 다수 포함돼 있다. 장르적 쾌감과 스토리텔링은 <괴물>, 주제의식은 <설국열차>를 바탕에 깔고 있다. 그렇다면 봉준호 영화의 차기작은 어떠한 변화를 보여줄까. 아마도 지금까지와는 다른 색깔의 작품이 되지 않을까 짐작해본다. 그의 다음 행보가 궁금하다.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글·임정식

영화평론가. 영화를 신화의 관점에서 분석하는 작업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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