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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감과 무력감, 벼랑 끝 중산층
위기감과 무력감, 벼랑 끝 중산층
  • 장세훈/동아대 교수·사회학
  • 승인 2010.10.08 17:16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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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rée 특집] 계급의 불안함


▲ <구슬놀이>, 2008-이은정
중산층이 또다시 불안감에 떨고 있다. 10여 년 전 외환위기 광풍으로 이미 한 차례 몸살을 앓은 중산층이 최근 새로운 위기의식에 사로잡혔다. 중산층의 비중이 줄어들고 있을 뿐 아니라, 중산층 귀속의식도 크게 낮아진 사실이 위기감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통계청에서 발표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 중산층의 변화 추이를 살펴보면, 1992년 75.2%까지 치솟던 중산층의 비중이 외환위기 와중인 1998년 65%로 격감했다. 그 뒤 경기회복에 힘입어 2003년 70.1%까지 증가했지만, 2009년 다시 66.7%로 외환위기 직후 수준 가까이 떨어졌다.(1) 중산층 귀속의식에 관한 국민의식 조사 결과를 보더라도, 자신을 중산층으로 여기는 응답자 비중이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에도 34.6%였는데,(2) 2006년에는 그보다 크게 낮은 20.1%를 가리키고 있다.(3)

다시 닥쳐온 중산층 위기

이런 위기감을 반영해서 중산층에 대한 판단 기준도 크게 달라지고 있다. 중산층에 관한 명확한 개념 정의가 없지만, 중산층이 ‘사회·경제적으로 안정된 계층’이라는 데 대한 일정한 합의가 있고, 일반인의 중산층 개념도 이에 근접해 있다. 이런 인식에 기초해서 1990년대까지만 해도 중간 정도의 소득을 보장받는 중간 소득 계층이나 ‘마이 홈’과 ‘마이 카’를 장만하고 자녀를 대학에 진학시킬 정도의 경제력을 가진 중소 자산 계층을 중산층으로 여겼다. 그런데 2006년 국민의식 조사에서는 월평균 500만원 이상의 소득을 얻거나 10억원 이상의 자산을 보유해야 비로소 중산층에 진입한 것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는 급변하는 사회에서 사회·경제적 지위의 안정적 재생산을 위해서는 중간층이 아닌, 중상층 이상의 계층적 지위가 필요하다는 국민적 판단이 깔려 있다. 중산층 판별 기준의 상향 조정은 최근 중산층 내부에서 계층 분해가 일어나고 있으며, 중산층의 다수를 구성하는 중간층의 불안감과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중산층은 흔히 ‘사회의 허리’로 부른다. 이들이 경제활동의 중심 세력이자 사회 통합의 주축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산층이 얼마나 두껍게 형성됐느냐, 또 얼마나 안정되게 유지되느냐가 한 사회의 발전 가능성의 바로미터가 된다. 그런데 중산층이 줄어들고 이들의 불안감이 커진다면, 이는 한국 사회가 ‘불안 사회’로 진입하고 있다는 징표다. 그렇다면 그 불안감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중산층은 태생적으로 불안정한 사회계층이다. 물론 사회구조적 차원에서는 상·하 계층 사이에 끼여 있으면서, 양자의 갈등을 완충하고 계층 간 사회이동을 용이하게 하는 안정 희구 세력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행위 차원에서 보면, ‘낀 계층’이라는 사회적 위상 탓에 그 구성원은 하류층으로의 추락을 걱정하는 한편 상류층으로의 상승을 꿈꾸게 된다. 이같은 계층적 지위 하락의 두려움과 지위 상승의 강렬한 열망으로 중산층 구성원은 위기의식과 불안감을 일상적으로 체감하게 된다.

그러나 중산층의 원초적 불안정성만으로는 최근의 현실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 특히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경제성장과 정치발전의 견인차이자 사회 통합의 주역으로 활동하던 중산층의 활기찬 모습을 떠올린다면 더욱 그러하다. 1980~90년대 중산층 활력의 원천을 찾아 현재 중산층의 처지를 되짚어보면, 최근의 위기의식과 불안감의 뿌리가 더 선명해질 것이다.

태생적으로 불안한 ‘낀 계층’

우리 사회에서는 이미 1970년대에 정치·사회적 통합과 안정을 꾀하려는 군부정권의 정치적 의도에서 중산층의 육성을 시도한 바 있다. 그러나 경제적 토대가 미흡한 상태에서 이런 시도는 공염불에 그쳤고, 경제성장이 어느 정도 결실을 맺은 1980년대 ‘3저 호황’을 계기로 중산층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우선 지속적인 고도성장이 일자리의 안정적 공급과 ‘평생직장’을 보장했고, 고용 안정은 제도권 금융에 대한 신용 보증으로 이어져, 무주택 서민층에게 내 집 장만의 기회를 제공했다. 여기에 더해 주택 부족 해소와 자가 소유 중산층 확대라는 두 마리 토끼를 쫓던 정부가 아파트 분양가 규제를 통해 ‘마이 홈’의 꿈을 앞당겨 실현시켰다.

고용과 주거의 안정은 중산층의 계층 하락을 저지하는 차단막인 동시에 계층 상승을 담보하는 디딤돌로 작용했다. 일자리의 안정적 보장은 삶의 질을 윤택하게 했을 뿐 아니라 2세 교육을 통한 계층적 지위의 세습과 상승 이동을 뒷받침했다. 또 집값이 고공행진을 계속하자, 자가 소유는 자산가치 보전이나 안락한 사생활 보장 기능을 넘어서 ‘주택 갈아타기’ 등을 통한 자산 증식 도구로 자리잡았다. 결국 고용 및 주거 안정이 중산층의 계층 상승 열망에 불을 지르며 이들의 성취 욕구를 한껏 부추겼다.

그러나 외환위기를 계기로 압축적 고도성장 노선이 걸림돌에 부딪히고 신자유주의적 경제질서가 새롭게 자리잡아 가면서, 버팀목들이 차례로 무너졌다.

우선 기업이 노동자의 고용 및 해고를 더 자유롭게 할 수 있는 노동시장의 유연화가 빠른 속도로 전개되면서, 실업자가 양산되고 비정규직 종사자가 급증했다. 블루칼라와 화이트칼라를 가리지 않고 정규직은 해고 위협에 일상적으로 노출되고, 비정규직으로 전락한 경우 불안정한 일자리에 더해 저임금의 압박에 시달려야 했다. 구조조정으로 일자리를 잃은 상당수는 음식점, 동네 슈퍼 등 자영업 분야에서 활로를 찾으려 했다. 그러나 자영업 부문이 이미 포화상태인데다 대형 유통업체까지 잇따라 진출하면서, 신규 영세 자영업자가 들어설 여지는 거의 없었다. 결국 자영업 시장의 경쟁에서 밀려나 퇴직금과 집마저 잃고 하류층으로 전락하는 사례가 빈발했다.

외환위기 이후 불어닥친 고용 불안이 중산층의 불안의식을 키운 1차 위기 요인이라면, 최근의 집값 하락으로 불거진 주거 불안은 그 불안감을 증폭시킨 2차 위기 요인이다. 집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아 내 집 마련의 기회를 영영 잃을까 우려한 무주택 서민은 무리하게 빚을 내서 자가 소유 계층에 합류했다. 무주택 서민층의 내 집 마련은 항시 가계에 큰 경제적 부담이었다.(4) 그래도 예전 같으면 전세 자금으로 초기 자금을 조달하고, 꾸준한 소득 상승에 힘입어 이자 부담을 덜어가면서, 집값 상승을 발판으로 자산 규모를 키워가는 전략으로 대처할 수 있었다. 그러나 2008년부터 시작된 주택시장의 냉각과 집값 하락은 이 전략을 무력화했다. 주택의 자산 가치 하락과 대출 이자 상환의 이중 부담을 고스란히 짊어지면서, 이들은 유복한 중산층에 진입한 것이 아니라 주택에 코가 꿴 ‘채무 노예’, ‘집 가진 가난뱅이’(이른바 ‘하우스 푸어’), 또는 ‘무늬만 중산층’ 신세로 전락하고 있다. 더 나아가 향후 주택의 자산가치가 추가 하락하고 경제 사정이 더 악화된다면,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에서 보았듯이 집까지 빼앗기는 최악의 사태를 맞이할 수도 있다.

해고, 자영업, 파산, 대출 이자…

외환위기 이후 빈곤층을 대상으로 빈약하나마 사회복지 체계가 서서히 구축되고 있지만, 중산층은 여전히 사회적 안전망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어 빈곤층으로의 추락에 무방비 상태다. 특히 중·장년층의 일자리마저 일찌감치 빼앗아 집안에 들어앉히는 ‘사회적 조로화’ 추세 속에서 은퇴 뒤의 생계 보장은 모든 중산층의 근심거리가 아닐 수 없다. 이에 중산층 가구는 노후 대비용 자구적 복지 방안으로 주택 보유를 통한 자산 증식에 매달렸다. 이런 움직임은 고용 불안과 노령화가 가속도를 내기 시작한 2000년대 이후 특히 두드러졌다. 그런데 최근 부동산 시장의 침체와 집값 하락으로 이 자구책마저 무용지물이 되면서, 중산층의 불안감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더 나아가 우리 사회의 불평등 구조가 고착되면서, 중산층의 계층 상승 기회가 크게 줄어 이들의 성취욕과 열망을 소진시키고 있다. 격동의 20세기를 통과하면서, 우리 사회는 전통적인 신분질서가 무너지고 새로운 계층질서가 형성되는 와중에 계층 간 사회이동이 비교적 용이한 쌍방향의 열린 계층구조가 형성될 수 있었다. 대도시에서 안정된 일자리와 내 집을 장만한 중산층은 최대 수혜자였고, 이에 고무된 이들은 교육 투자를 통한 자녀의 계층 상승 열망에 들떠 있었다. 그러나 2천년대를 전후해 우리 사회의 불평등 구조가 공고해지면서, 계층 상승의 통로가 급격히 좁아졌다. 게다가 상류층을 중심으로 중산층의 진입을 막고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갖가지 방책이 쏟아져나왔다. ‘돈이 곧 점수’로 연결되는 사교육 열풍이나 최근의 특권층 자녀 특채 사례 등이 대표적이다. 중산층 자녀가 정상적인 계층 이동의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비집고 들어갈 만한 ‘빈자리’를 찾기 어렵게 되었다. 또 상류층을 흉내내기는 하지만, 소수를 제외하고는 계층 상승에 필요한 고비용 구조를 감내할 역량을 못 갖추고 있다. 이제 대다수 중산층에게는 자신들끼리의 경쟁에서 살아남아 중산층 지위를 간신히 유지하거나 그 경쟁에서 밀려나 하류층으로 떨어지는 하향적 계층 이동 경로만이 주어질 뿐이다. 그 결과 성취 지향적 사회의 충실한 역군이던 중산층이 지위 상승의 열망을 상실한 채 지위 하락을 우려하는 절망과 좌절에 빠져들고 있다.

바늘구멍이 된 상류층 상승의 문

최근 중산층이 체감하는 위기의식과 불안감은 급격한 사회변동이 일어나는 시대적 전환의 산물로 볼 수 있다. 즉 고도성장의 시대가 종언을 고하면서 신자유주의적 경제질서가 자리잡아가고, 느슨했던 사회 불평등 구조가 고착화해 계층 간 이동이 차단되면서 나타난 결과다. 그 과정에서 중상층에 속하는 소수의 중산층은 여전히 안정된 중산층적 지위를 누리면서 계층 상승의 열망을 불태우지만, 중간층에 위치한 대다수 중산층은 계층적 지위의 추락을 걱정하는 불안정한 처지에 놓였다. 즉, 중산층의 전반적인 하강 이동이 아니라 중산층의 계층 분해가 벌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중산층의 불안감은 중산층 전체가 아니라 하류층으로의 추락을 염려하는 주변적 중산층을 중심으로 확산된다.

글•장세훈 
<한국의 도시화와 도시문제>(공저), <주택 소유의 관점에 입각한 중산층의 재해석>(논문) 등을 썼다.

<각주>
(1) OECD 기준의 중산층 비중은 중위소득의 50~150%에 해당하는 소득을 얻는 ‘중간소득 계층’ 가구의 비중을 가리킨다. 그런데 이를 기준으로 삼은 통계청의 중산층 비중은 2명 이상의 도시 가구를 대상으로 한다. 따라서 여기서 제외한 1인 가구와 농어촌 가구까지 포함하면 중산층 비중은 더욱 낮아질 것이다.
(2) 한상진·김병조·은기수·정철희·조동기, <한국 사회의 가치관과 문화변동 비교 연구>, 2006.
(3) 한국사회학회(편), <기로에 선 중산층: 현실 진단과 복원의 과제>, 인간사랑, 2008.
(4) 2000~2009년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의 증가폭은 56.8%포인트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빚은 미국의 27.5%포인트보다 두 배 이상 높다. 그 비율 또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은 주택담보대출이 가계부채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상황에서 내 집 마련에 따른 가계의 과중한 부담을 여실히 보여준다(한국은행, <통화신용정책 보고서>,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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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성이 2010-11-11 16:57:50
자본에 의한 통제가 가능하다고 믿는 것일까?
새로운 담론이 기대됨!

이미라 2010-11-08 11:22:34
저소득은 친서민정책으로 숨통이 트이지만 중산층은 각종 책임과 의무로 부담만 크진다.어디가서 얘기할 데도 없다.저소득은 관공서에 가면 혜택을 볼 수 있지만 중산층은 위기가 와도 하소연 할 곳이 없고 관공서에 가면 세금은 제대로 내고도 외면 받고 웃음거리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