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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성희의 시네마 크리티크] <미성년>
[서성희의 시네마 크리티크] <미성년>
  • 서성희(영화평론가)
  • 승인 2019.06.11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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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석’을 말하다

<천하장사 마돈나>에서 가부장적인 아버지, <범죄의 재구성>에서 형사로 특징적인 연기를 했지만, 역시 김윤석이라는 배우를 세상에 널리 알린 건 <타짜>의 아귀였다. 이후 <추격자>에서 범인을 집요하게 쫓는 추격자로 존재감을 알린 후 <거북이 달린다>, <암수살인>에서도 범인을 집요하게 추격하는 캐릭터에서 <완득이>의 동주 선생님이나 <남쪽으로 튀어>의 최해갑처럼 푸근하면서 인간적인 연기를 능청스럽게 잘하는 배우로 색다른 스펙트럼의 연기력을 선보이기도 한다. 그러면서 <황해>의 면정학, <도둑들>의 마카오 박, <1987>의 박 처장처럼 한국 최고의 악역 캐릭터를 거쳐 <남한산성>의 김상헌 역을 소화하면서 한국의 독보적인 배우로 인정받는다.

이처럼 배우로서 탄탄한 입지를 가진 김윤석의 감독 데뷔는 많은 주목을 받기엔 충분했지만 크게 기대하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그의 객관적인 감독의 역량에 대한 기대치가 아니라 배우를 하다가 감독을 하는 사람이 많은데, 모두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될 수는 없다는 우려 때문일 것이다. 대체로 신인 감독에다 배우 출신이면 욕심이 들어가기 마련이다. 자칫하면 과잉 메시지에 과잉연출을 할 우려가 있는데, 결론부터 말하면 김윤석 감독은 배우로서도 그랬지만, 그의 감독 데뷔작 <미성년>은 감독으로서도 절제와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차분히 해나가는 연출력으로 기대할만한 신인 감독의 등장이라는 평가를 받기에 충분했다.

 

김윤석이 그동안 해왔던 배역들이 다소 마초 이미지가 있었다. 출연했던 영화만 봐도 범죄나 폭력 같은 강한 소재가 많았다. 그러나 그의 데뷔작인 <미성년>은 일련의 한국영화가 보여주는 살인, 마약 등 자극적인 소재를 빌린 스릴러 범죄영화의 주류에 휩쓸리지 않았다. 오히려 주류 영화의 정점에 서 있던 배우 김윤석은 그 흐름에서 벗어나 아주 성숙한 시선으로 여성의 심리를 단단하고 예민하게 포착해내는 의외의 작품을 첫 연출작으로 내놓는다. 사실 범죄나 폭력만큼 자극적인 소재가 불륜인데, <미성년>의 내용을 그냥 일차원적으로 설명하면 불륜이야기다. 그런데 이 소재를 풀어내는 독특한 서사 방식을 구사한다. 익숙하다 못해 흔한 소재를 어른과 아이의 위치를 바꿈으로써 전혀 다른 시각으로 그려내고 있다.

영화의 서사 구조와 함께 먼저 두드러지는 점은 배우들 모두 살아있는 캐릭터로 연기한다는 것이다. 배우 출신 감독이 배우를 캐스팅해서 더 눈여겨보게 된다. 먼저 김윤석 감독이 사건의 중심인물인 대원으로 나오지만 이름에서도 드러나듯 ‘집단의 일원’이라는 뜻의 ‘대원(隊員)’은 지금의 중년을 상징하며 “방파제에 앉아 있다가 할머니한테 자릿세를 갈취당하기도 하고 서울로 올라가는 길에선 어린 불량배들한테 린치까지 당하는 등 윗세대와 아랫세대에 끼어서 우왕좌왕하는 중년 세대”를 그리고자 했던 감독의 의도대로 이야기의 중심에 서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연기라기보다는 그저 회피하려고 우왕좌왕하는 캐릭터로서 서사를 견인하고 있다.

 

그리고 그의 아내 엄정아, 내연녀 김소진, 또 500대 2의 경쟁률을 뚫고 대원의 딸 주리와 내연녀의 딸 윤아로 발탁된 김혜준과 박세진의 연기 모두 좋다. 여기에 카메오로 출연한 김희원과 이희준까지 각각의 연기가 다 좋은데, 그중에서도 내연녀로 나온 김소진의 연기가 눈에 띈다. 이름이 낯설다고 할 분들이 있을 수 있지만, 얼굴을 보면 ‘아, 이 배우’ 할 만큼 독특한 연기를 하고 있는 배우이다. 특히 영화 <더 킹>에서 정의로운 여검사, <마약왕>의 부인 역으로 작품마다 강한 이미지를 각인시켰다.

 

어른은 나이가 아니라 마음의 크기

김윤석 감독의 <미성년>은 가족의 핵심인 부부 관계를 돌아보게 되고, 더불어 나이만 먹는다고 절로 어른이 되는 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하는 영화다. 김윤석이 영화 <추격자>에서 추격하는 장면을 기억하는 관객이 많을 텐데, <미성년>에서 김윤석의 또 다른 추격 장면을 볼 수 있다. 아마 이 장면은 한국영화사에 가장 민망한 추격전으로 꼽히지 않을까 싶을 만큼 못난 어른의 모습을 보여준다. 미희가 조산하게 되면서 갑작스레 입원하는데, 연락을 받은 대원이 병원엘 찾아간다. 거기서 딸 주리와 미희의 딸 윤아와 맞닥뜨리는데, 주리도 아빠에게 물어볼 게 많다. 그래서 ‘아빠’를 부르면서 다가가는데, 대원은 줄행랑을 친다. 애가 엄마한테 혼날까 봐, 잡힐 거 뻔히 알면서도 일단 도망가고 보자는 것처럼 너무 어이가 없는 장면인데, 아무것도 책임지지 않으려는 모습이 보는 사람까지 민망하게 한다.

 

딸 주리의 질문에 그 어떤 대답을 해줄 수 없다고 해도 딸을 피해서는 안 되는 거다. 딸이 자신을 비난하고 원망하더라도 그걸 받아내고 견디고, 용서를 구하는 게 어른의 용기일 텐데, 대원은 끝까지 비겁했다. 그러다 대원이 도피처로 찾아간 친구의 펜션에 친구는 없고, 미성년자들로 보이는 남자아이들에게 강도를 당하게 된다. 아마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아무도 대원에게 벌을 내리지 않기 때문에 그런 설정이 들어가지 않았을까.

대원의 내연녀 미희도 철없기는 마찬가지다. 열여덟 살 때 딸 윤아를 낳고 혼자 식당을 하며 살아가는데, 이런 조건이면 어딘가 모르게 강하다거나 억척스럽다거나 하는 면이 있다. 그런데 이 엄마는 딸보다 더 어리게 보인다. 가정이 있는 남자와 불륜으로 임신까지 했는데, 정작 본인은 별생각이 없다. 딸은 그 남자가 자기 엄마를 택할 것 같지 않으니까 엄청 걱정한다. 그런 딸에게 남들 눈이 무슨 상관이냐, 내 인생이다 하면서 사춘기 딸이 반항할 때 쓸 법한 말들을 냅다 던지고는 애처럼 엉엉 울기까지 한다.

 

<미성년>이라는 제목은 역설적이면서도, 이 영화를 잘 설명해 주는 말이다. 이 영화에서 가장 성숙한 사람은 다름 아닌 미성년자 주리와 윤아다. 이 영화에서 정작 미성년이자 성숙해야 할 사람은 일은 저질러 놓고 대책을 세울 줄 모르는 미희와 대원이다. 또 어쩌면 가장 큰 피해자이기도 할 대원의 아내 영주 역시 고해성사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정작 성인들은 다가오는 상황에 당황하고 어쩔 줄 모르고 손 놓고 있을 따름이다. 재미있는 건 어른들인 영주, 미희, 대원은 못난이와 마주하지 않는다. 영화는 못난이와 대면하고 그 생명 앞에서 겸허해질 기회를 미성숙한 성년들에게는 주지 않는다. 오직 아이들만 생명을 보고 생명 앞에서 다짐할 수 있을 따름이다.

영화는 어른 같은 미성년과 어른답지 못한 성년들을 교차시키며 ‘어른다움’이 무엇인지를 묻는다. 성장해야 하는 건 미성년만이 아니다. 대원은 일단 일을 저질러 놓고, 이 비밀이 들통 나지 않을 거라는 순진한 생각을 한다. 미희도 아이를 낳으면 어떻게 될 건지, 그 남자가 어떤 결정을 할지 내일에 대한 생각이 없다. 그리고 대원의 아내 영주도 남편의 불륜을 알게 됐지만, 여고생 딸이 흔들릴까 봐 감정을 제대로 드러내지 못한다.

 

부부에게 비밀이란 가정을 파괴시키는 시한폭탄과 같다. 여러 부부가 있겠지만 내 비밀은 끝까지 비밀로 남을 거라 믿으며 신뢰를 저버리는 무모한 배우자, 또 여러 부모가 있겠지만 자식의 나이도 모르는 철없고 나밖에 모르는 부모가 얼마나 최악일 수 있는지 영화 <미성년>은 보여주고 있다. 영화를 보고 난 후 스스로 물어보면 좋을 것 같다. “나는 진정한 어른입니까?” 그리고 아마 이 질문에 당당할 수 있도록 부단히 노력하는 게 또 어른의 길이기도 하다.

 

 

글‧서성희
영화평론가, 대구경북영화영상 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독립영화전용관 오오극장 대표, 대구단편영화제 집행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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