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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라의 문화톡톡] 로맨스 패러디 시대와 자기 효능감
[이주라의 문화톡톡] 로맨스 패러디 시대와 자기 효능감
  • 이주라(문화평론가)
  • 승인 2020.03.09 09: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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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로맨스는 사회 악

문화적 전환기에는 이전 시대의 주류 장르에 대한 패러디가 성행한다. 패러디 작품들은 이전 시대의 문법이 현재의 관점에서 얼마나 우스꽝스러운지를 보여주면서, 시대적 전환을 선언한다.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도 중세 시대의 기사도 문학에 대한 패러디를 통해 중세를 넘어선 근대적 소설로의 전환을 보여주었고, 플로베르의 『마담 보바리』도 낭만적 사랑에 대한 풍자적 비판을 통해 사실주의 소설의 문법을 구축하였다.

낭만주의 시대를 벗어나 사실주의 리얼리즘에 바탕한 소설들이 주도권을 잡기 시작했던 시기의 프랑스, 사실주의 소설의 선봉작이었던 귀스타브 플로베르의 대표작 『마담 보바리』는 한편으로는 낭만적 소설 매니아의 몰락기라고 할 수 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책 읽는 여자들에 대한 경계는 중세를 넘어 근대에 이르기까지 영향력을 발휘했다. 그 중에서도 여성들이 낭만적 소설, 연애 소설을 읽고 낭만적인 사랑에 대한 환상에 빠지는 것을 특히 비판적인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마담 보바리』의 서술자는 엠마가 기숙학교 시절 낭만적이고 비극적인 소설을 얼마나 탐독했는가를 보여준다. 그리고 낭만이라고는 일도 없는 남편 샤를 보바리와의 결혼 생활 속에서, 남편에 대한 지루함과 현실에 대한 탈출 욕망이, 낭만적 소설 속 환상을 통해 강하게 추동되고 있었음을 드러낸다. 『마담 보바리』는 낭만주의 시대에 형성되었던 연애 소설의 문법이 현실의 결혼 생활과 얼마나 맞지 않는지, 소설 속 낭만적 세계관이 현실의 질서 속에서 어떻게 무너지고 몰락하는지를 보여주는 소설이다.

이런 비판적 시선의 저변에는 이러한 내용이 깔려 있다. 낭만적 연애와 결혼에 대한 환상은 모두 거짓이라고. 현실을 직시하라고. 구질구질한 현실을 살고 있는 신데렐라가 멋진 왕자님을 만나 결혼하여 행복한 결말을 맞는 이야기는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소녀들의 환상일 뿐이다. 세상의 모든 로맨스는 소녀들을 이러한 환상의 세계에 사로잡아 둠으로써 현실 적응을 방해한다. 그래서일까? 근대 초기 로맨스에 대한 메타비평적 작품들은 모두 로맨스의 애독자였던 여성의 전락과 몰락을 그렸다. 엠마의 비극적 죽음처럼.

최근 들어 각 장르별 패러디물이 다수 등장하고 있다. 장르문화가 대중문화 속에서 저변을 확대하면서, 기존 장르 문법을 벗어나 새로운 변화를 맞이하는 시기라서 이러한 패러디물이 나타나는 것 같다. 판타지물의 인기작 <전지적 독자 시점>과 같이 기존 판타지 소설을 읽은 독자가 판타지 장르의 전형적 상황 속에서 판타지의 문법을 적절히 활용해 살아남는 웹소설이라든지, 한국 드라마의 전형을 패러디하며 만들어진 <드라마월드>와 같은 드라마라든지, 순정만화의 전형적 설정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는 주인공의 모습을 그린 <어쩌다 발견한 하루>와 같은 웹툰 원작의 드라마라든지, 모든 장르에서의 전형적 문법과 클리셰를 패러디하는 작품들이 인기를 얻고 있다.

로맨스 장르 중에서도 웹툰과 영화 그리고 드라마 쪽에서, 로맨스 매니아 층의 취향이 두드러진 웹소설보다, 이러한 패러디물이 자주 나오고 있다. 최근 로맨스 장르 문법에 대한 메타비평적인 관점은 근대 초기와 달리 로맨스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지 않는다. 대중문화 속 로맨스 물이라는 것이 패러디의 형식을 취하더라도 기본적으로 로맨스 취향의 향유자에게 다가간다는 점 때문이기도 하지만, 여성의 욕망과 삶에 대해 주체적인 시각이 많이 확보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여성을 무조건 허황되다고 판단하지도 않고, 여성의 욕망이 여성을 타락시키고 파멸시킨다고 생각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최근 로맨스 패러디물에서는 로맨스의 문법을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는가.

 

2. 설정값을 벗어나 나를 사랑하라

어쩌다 발견한 하루 (출처: MBC)
어쩌다 발견한 하루 (출처: MBC)

최근 로맨스 패러디물에서는 로맨스의 클리셰를 개인의 자유를 구속하는 외부적 억압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는 사실 다른 장르의 패러디물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나는 현상이기는 하다. 그래도 여기에서는 로맨스에 집중하여 살펴보기로 하자. 2019년 후반기에 MBC에서 방영된 <어쩌다 발견한 하루>는 <어쩌다 발견한 7월>이라는 다음 연재 웹툰을 원작으로 만들어진 드라마다. 이 웹툰과 드라마는 순정만화 세상 속 조연 역할을 담당하는 은단오(김혜윤 분)가 자신에게 주어진 설정값을 벗어나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그 과정에서 만난 하루와 사랑을 키워나가는 이야기다.

<어쩌다 발견한 하루>는 우리가 기존에 알고 있던 순정만화의 문법을 그대로 노출시킨다. 순정만화 여주인공 여주다(나은 분)는 청순한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지만 가난하여 부유층이 다니는 사립학교에서 왕따를 당하고 있으며, 남주인공 오남주(김영대 분)는 몇 번의 우연이 겹치면서 여주다를 발견한 이후 여주다를 좋아하게 되어 일방적인 애정 공세를 퍼붓는다. <꽃보다 남자>의 설정이다. 마찬가지로 남주인공의 옆에는 F4에 버금가는 A3가 있으며, 이들은 각각 착하고 부드러운 남자 캐릭터(이도화: 정건주 분)와 차갑고 나쁜 남자 캐릭터(백경: 이재욱 분)를 담당한다. 그리고 여주인공 옆에는 자기 인생 없이, 오로지 여주인공을 도와주기 위해 존재하는 친구, 은단오가 존재한다.

이 작품은 여기에서 여주인공의 입장에서 벗어나, 원래는 자신의 삶이 없어야 하는 여주인공의 친구 은단오의 입장으로 들어간다. 그러는 순간 남녀 주인공을 중심으로 한 순정만화의 전형적 문법은 그 안에 내재한 매우 잔인한 속성을 드러낸다. 오직 주인공만을 위해 희생해야 하는 조연의 고달픔과 서러움이 보여지는 것이다. 은단오는 오남주가 여주다를 발견할 수 있도록 도와준 것과 나쁜 남자 백경이 아버지와 겪는 불화를 강화시키기 위해 백경의 약혼녀로 기능하는 것 외에는 다른 할 일이 없다. 자신의 삶을 타인에게 이용만 당하고 정작 자신은 심장병에 걸려 죽는 날짜만 기다리고 있어야 한다. 주인공의 사랑을 위해 모두가 헌신하고 희생하는 삶의 문법이 로맨스의 잔혹한 본성이다.

그래서 은단오는 이러한 순정만화의 문법을 벗어나기 위해 노력한다. 자신의 자아를 획득한 은단오는 자신에게 주어진 설정값에서 벗어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이러한 은단오의 노력은 외부에 존재하지만 그 실체를 정확하게 알 수 없는, 이 만화의 세계를 창조하고 이끌어가고 있는 만화 작가와의 전면 대결이다. 은단오의 노력은 언제나 만화 작가가 장면을 전환시키면, 그래서 원치 않는 스테이지가 시작되어서, 페이지가 넘어가면, 언제나 수포로 돌아가지만, 은단오는 설정값을 벗어나기 위한 노력을 포기하지 않는다.

은단오에게 주어진 설정값은 사회의 거대한 시스템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과 겹친다. 한 사회의 주체가 그 사회 속에서 주체적으로 살 수 없게 만드는, 보이지 않는 거대 시스템의 존재가 만화 작가의 모습으로 은유되고 있다. 이렇게 보면 최근 장르물에서 나타나는 패러디물의 유행이 단지 장르 문법의 전환만을 보여주지는 않는 것 같다. 장르의 클리셰는 기존 권력사회의 클리셰와 같은 역할을 담당하며, 장르물 속 주인공들은 그 구습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로맨스의 클리셰 또한 한 개인의 주체성을 제약하고, 제대로 된 관계를 맺지 못하게 만드는 악역을 담당한다.

 

어쩌다 로맨스 (출처: NETFLIX)
어쩌다 로맨스 (출처: NETFLIX)

그렇다면 로맨스 패러디물에서 주인공은 그 클리셰에 맞서 무엇을 하는가. 장르 패러디물의 허무한 점은 결국 장르 문법을 패러디하면서, 그 해결책 또한 장르 문법 내에서 찾고 있다는 점이다. 로맨스 패러디물에서 주인공이 클리셰와 싸워 이기기 위해서는 로맨스 장르의 전형적 해피엔딩을 맞아야 한다. <어쩌다 발견한 하루>는 하루와의 사랑을 통해 설정값을 바꾸고, 또 다른 만화의 세계에서 하루와 만나 새로운 시작을 한다. 또 다른 로맨스 패러디물인 <어쩌다 로맨스(Isn’t It Romantic)>(2019)는 로맨스 영화가 모두 거짓이라고 불신했던 여주인공이 결국 일과 사랑을 동시에 쟁취하며 행복한 결말을 맞는다.

<어쩌다 로맨스>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작품이다. 어려서부터 로맨스 영화를 믿지 않았던 여주인공 나탈리(레벨 윌슨 분)가 갑작스러운 사고로 로맨틱 코미디의 세계에 들어가게 되고, 그 세계 속 주인공이 되어 멋쟁이 재력가와 연애를 시작하지만, 자신의 직장 동료이자 오랜 친구인 조쉬(애덤 드바인 분)가 결혼을 하게 되자, 자신이 조쉬를 사랑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조쉬에게 고백한다. 이 순간 나탈리는 다시 현실 세계로 돌아오게 되고, 현실 속에서 자신감을 얻고 업무에 임하고, 조쉬에게도 사랑을 고백하여 연애를 시작한다.

이 영화는 로맨틱 코미디 영화의 클리셰를 조롱하며 시작한다. 나탈리는, 로맨틱 코미디 속에서 여주인공은 왜 모든 사람의 사랑을 받고, 특히 남자들의 사랑을 집중적으로 받는데, 여자 동료에게는 항상 견제를 받아야 하는지, 그리고 왜 늘 게이 친구가 자신의 삶을 희생한 채 여주인공을 도와주는지, 왜 여주인공은 말도 안 되는 우연과 우연이 계속되어 남주인공을 만나는지, 남주인공이 왜 보잘 것 없는 여주인공을 갑작스럽게 사랑하게 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로맨틱 코미디 속 세계에서 오글거림을 참지 못한다. 게다가 가끔 열 받는 상황마저 있다. 자신을 사랑한다는 멋진 남자와 열정적인 키스를 나누며 남자의 셔츠를 벗기는 순간, 곧바로 아침이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로맨스의 세계가 나탈리의 성장에 결정적인 역할을 함을 보여주려고 한다. 현실 속 나탈리는 스스로 위축되어 있었다. 자신처럼 뚱뚱하고 사람들이 관심도 안 가지는 사람은 사랑을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로맨스의 세계가 가짜라고 믿었다. 하지만 나탈리가 실제 경험한 로맨스의 세계는 주변 모두가 나탈리에게 아름답다고, 사랑스럽다고, 괜찮다고 웃어주는 세계였다. 물론 이런 과잉 긍정의 세계가 가진 오글거림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럼에도 이 절대 긍정의 세계 속에서 나탈리는 자신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게 되며, 그로 인해 자신의 진짜 마음을 알게 된다. 자신도 조쉬를 소중하게 여기지만, 지금껏 상처 받기 두려워서 조쉬의 마음을 피해왔었다는 사실을.

로맨스의 문법을 패러디하면서, 다시 로맨스로 회귀하는, 로맨스 패러디물은 로맨스 감상이 행하는 두 가지 역할을 보여준다. 하나는 로맨스 문법에 대한 비판이며, 다른 하나는 로맨스의 가능성에 대한 제시이다. 장르 문법에 대한 비판은 단지 장르 클리셰라는 기능적인 측면에 대한 비판에 국한되지 않고, 당대 사회의 부정적인 측면에 대한 은유적 비판이라는 사회적 비판까지 담지한다. 이러한 비판적 시선 속에서도 장르 문법은 그 장르의 갱신을 통해 이 사회가 원하는 판타지를 충족시키려 한다. 로맨스의 환상은 언제나 인간 사이의 친밀한 관계이다. 그런데 최근 로맨스는 이러한 친밀한 관계의 시작이 언제나 나의 자존감 회복으로부터 시작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3. 좀비 아닌 로맨스

최근 대중문화에서 유행하고 있는 좀비물, 장르의 문법이라는 제약 속에서 고군분투하는 장르 패러디물, 그리고 주어진 기능적 역할만을 담당해야 하는 초현실적 존재나 영웅처럼 일상적 고단함을 간직한 캐릭터들의 모습에서는 공통적으로 외부적 상상력이 차단된 자본주의적 질서 그리고 구습으로 형성된 거대한 권력의 세계 속에서 자율성과 주체성을 잃어버린 채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이 반영되고 있다. 이러한 현대 주체의 무력함을 가장 잘 그려내고 있는 장르가 좀비물일 것이다. 공포물은 현 시대의 불안을 증폭시켜 보여주는 장르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공포물과 짝패를 이루는 장르가 있다면 의외로 그것은 로맨스 장르다. 1960년대 후반 <미워도 다시 한 번>과 최루성 멜로드라마 속에서 가부장제 사회 속에서 헌신하다가 희생당하는 여성들의 눈물이 절절하게 그려졌다면, 동일한 시기 <월하의 공동묘지>와 같은 공포물에서는 그렇게 희생당해 죽은 여성의 원귀가 현실로 귀환하여 여성의 한을 풀어내었다. 한 사회의 결핍을 보여주는 공포물과 그 결핍을 환상으로 봉합하는 로맨스는 좋은 파트너다.

《오마이뉴스》 인터뷰 기사인 <20대가 신천지에 빠지는 4가지 이유>에서 전 CBS 기자이자 현 YTN 앵커인 변상욱은 20대가 신천지에 빠지는 이유로 ‘자기 효능감’을 들었다. 사회 속에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절망감에 빠진 사람들에게, “당신도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할 때, 무력한 주체는 자기비하에서 벗어나 행동할 수 있게 된다. 최근 대두된 신천지 문제는 이미 대중문화 속에 녹아든 현재 우리 사회의 주체들이 안고 있는 문제와 해결책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공포물 중에서도 좀비물이 실감나게 다가오는 이유, 그리고 장르적 설정값 안에 갇힌 주인공들을 보여주는 이유, 빠져나갈 수 없는 장르 클리셰의 제약 속에서 자아를 발견하여 장르 문법의 제약을 새롭게 갱신하는 주체가 등장하는 이유, 이 모든 것이 현재 우리 사회의 주체가 겪고 있는 무기력증과 그 무기력증을 벗어날 수 있는 능력과 자율성에 대한 환상을 반영하고 있다. 장르 클리셰를 벗어나고자 하는 로맨스의 주인공 또한 자기비하에서 벗어나 자존감을 회복하고, 친밀한 인간관계를 형성하며, 사회적 공동체의 인정을 받는 판타지를 보여줌으로써 현재 우리 사회 주체들의 결핍과 욕망을 형상화하였다.

 

글: 이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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