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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형의 시네마 크리티크] 질투심을 벗어나기: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 <우나기>(1997)
[정재형의 시네마 크리티크] 질투심을 벗어나기: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 <우나기>(1997)
  • 정재형(영화평론가)
  • 승인 2020.04.20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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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투심은 인간의 본성

이 영화는 인간의 질투심에 관한 것이다. 질투심은 지위고하, 지식의 정도를 떠나 인간의 보편적 심성이다. 인간은 질투심 때문에 스스로의 감옥을 만든다. 질투심은 석가가 경계한 인간의 세 가지 독성 중 하나다. 인간이 마음을 평온하게 하기 위해 주의해야 할 세 가지 독은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다. 세 가지 맹독 가운데 탐욕이 으뜸으로 가장 조심해야할 독이다. 탐욕은 만족하지 않고 더 갖고 싶어하는 마음이다.

질투는 탐욕의 한 종류라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질투는 자기가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발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질투는 자기가 남보다 더 많이 갖고 싶어하는 마음이다. 우월감이기도 하다. 우월감은 내가 남보다 더 낫다는 인식이다. 인간은 이런 본성을 갖고 있다. 내가 남보다 우월해야 하고 더 나아야 한다. 대체 인간은 왜 그런 마음을 소유한 것일까?

이 영화는 질투심의 본질을 추구한 것은 아니다. 대신 인간이 질투심의 존재고, 질투가 얼마나 부질 없는 것인가를 깨닫게 해준다. 질투심의 근원은 무엇일까? 영화의 초반부에 주인공은 지하철에서 벽에 붙은 벽보를 본다. 그 내용은 한국에서 올림픽을 한다는 것이고, 일본은 경제적으로 어렵다는 것이다. 이 한 장의 벽보는 많은 이야기를 한다. 그 골자는 질투다. 일본은 경제적으로 어렵고 한국은 잘 나간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근원이 무엇인지는 분명치 않다. 한국이 잘 나가는데 이웃 일본이 왜 배 아파 할까? 그 답은 아무도 정확히 알 수는 없다. 속담에도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고 했다. 인간의 본성에 그런 것이 있다. 자기 우월감인가? 신과 동격이라고 믿고 싶은 과대망상이 조금씩 사람들에겐 있다. 사촌이 땅을 사는데 왜 내 배가 아파야 하는지, 이상한 심성임엔 틀림 없다. 어쨌든 이 장면은 영화의 주제인 질투심을 암시한 대목일 것이다.

 

아무 이유도 없음의 자각, 괴로움

주인공 야마시타는 아내와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는 중산층 소시민이다. 아내가 외도한다는 익명의 편지를 받은 이후 그의 마음은 공허하고 슬픔이 가득 차왔다. 그는 아내를 살해하고 자수한다. 그는 칼로 아내를 죽였노라 자백하고 감옥에 들어간다. 의문이 든다. 아내를 반드시 죽여야만 했을까? 그는 이 상황에 대해선 할 말이 없다.

아내는 외도 때문에 죽은 것이 아니다. 외도한 아내들이 다 남편의 칼에 죽는 것도 아니다. 그는 질투심 때문에 아내를 죽인 것이다. 그는 아내와 행복한 생활을 하지 못했다. 그는 아이만을 원했다. 아내는 아이 말고 다른 어떤 것을 원했다. 그는 섹스에 대한 열등감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아내가 외갓 남자를 끌어들여 섹스를 했다는 것은 아내의 섹스에 대한 열망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그는 아이를 원했다. 그는 아내와 만족한 성생활을 유지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아내가 남편한테 죽임을 당할 이유는 없다. 아내는 남편의 질투심 때문에 부당하게 살해당한 것이다.

남편 야마시타는 그 이유를 즉각적으로 알지 못했다. 그는 아내의 외도 그 자체가 참을수 없었다. 그는 자신에게도 책임이 있었지만 무조건 아내의 외도가 싫었다. 그렇다고 그것이 아내를 살해할 이유는 아니다. 그는 아내를 죽임으로써 자신의 책임을 전가한 뜻도 있다. 아내는 자신과 만족할 만한 성생활을 하지 못했고, 그 책임을 지지 않고 아내의 외도로만 모든 책임을 전가시킨 것이다.

그는 아내의 죽음과 더불어 자신도 죽었다고 생각했다. 그는 아내를 사랑했고 겉으로 아내에게 친절한 남편이었다. 그는 사랑하는 아내를 제 손으로 죽이고 난 후 삶의 희망을 잃어버렸다.

8년의 복역이후, 모범수에게 주어지는 가석방을 맞이한다. 2년간 근신해야 한다. 그는 이발소를 운영하며 조용히 산다. 게이코라는 여자가 그에게 다가온다. 게이코는 자살을 하려다 야마시타에게 발견되어 목숨을 건진다. 그녀는 그의 이발소에서 일하게 된다. 야마시타는 가석방기간동안 그녀와 연루되기를 원치 않는다. 또한 그는 아내의 죽음과 더불어 같이 죽었으므로 새로운 삶에 대한 희망도 없다.

그는 감옥소에서부터 기르던 장어와 대화를 한다. 장어는 그런 점에서 이 영화의 제목이다. 장어는 그의 분신이며 내면이다. 그에 의하면 장어는 남의 얘기를 잘 들어준다”. 그는 장어를 제외한 그 누구에게도 자신의 내면을 털어놓을 수 없는 대인기피증 환자가 되어간다. 아내를 죽이고 난 후 그는 그런 증상에 휩싸이게 된다. 그는 자신의 내면에만 집중하는 사람이 되고 만다.

 

또 다른 자신과의 만남

 

그는 자기가 왜 아내를 죽였는지 고민한다. 그 편지를 의문시 한다. 그는 장어와 대화 하면서 어항속에서 편지를 떠올린다. 그는 어항속의 우나기를 바라본다. 원래 편지는 없었다. 과연 편지는 실제로 있기나 한 것일까. 그는 의심한다. 편지를 전해준 여자는 누구일까. 그 여자가 있기나 한 것일까. 그는 아내를 죽인 절망속에서 자신 안에 또 다른 자신이 숨어 있다는 의심을 하게 된다.

마을에서 감방시절 동료를 마주친다. 그는 동료를 보면서 불길해 한다. 자신의 그간 쌓아올린 행보를 그 친구가 방해하지나 않을까 걱정스럽다. 친구는 어느 날 그를 비난하는 벽보를 이발소 유리창에 붙인다. 그것은 그의 협박이고 질투다. 하지만 그 동료가 실제로 있기나 한 걸까? 자신의 불안한 강박관념이 친구를 만들어내 상상속에서 싸운 것은 아닐까? 친구는 그의 질투심의 표상이다.

아내를 죽인 이후 그는 여자기피증이 생겼다. 하지만 자살을 기도하는 여자를 나몰라라 할 수 는 없었다. 자전거를 타고 그녀를 태운채 병원에 데려다 준다. 그의 안에 있는 또 다른 여성 이미지가 작동한 것이다. 아내의 죽음 이후 커다란 동굴이 되어버린 가슴 속 구멍속에 다른 여자가 들어와 앉게 된다. 그는 그 여자를 피하기가 어렵다.

그녀에게 남자의 존재는 생명의 은인 이상이었다. 운명의 남자였다. 악질스런 전 남편으로부터 도피할 수 있는 유일한 오아시스였다. 그에게 도시락을 갖다주는 일부터 시작한다. 하지만 그는 그녀가 도시락을 갖다주는 게 괴롭다. 여자에게 정착하는 일이 더 이상 일어나선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는 그녀로부터 일정 거리를 유지하고 싶어한다.

이제 그의 새로운 고민이 시작된다. 인생은 알 수 없다. 아내를 죽인 것도, 새로운 여자를 만난 것도. 다 그의 마음속 작용이다. 친구라는 대상도. 다 질투심의 화신인 것 같다. 마음이 호수처럼 평온해지면 다 사라질 것 같다. 아내를 의심하는 편지도, 자신을 비난하는 친구도. 다 열등감에 젖은 마음이 빚어낸 허상이라고 생각한다. 영화는 수 천 갈레 마음에 관한 질문을 한다.

 

글: 정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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