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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근애의 문화톡톡] 결혼의 미래, 이혼의 과거
[양근애의 문화톡톡] 결혼의 미래, 이혼의 과거
  • 양근애(문화평론가)
  • 승인 2020.04.27 11: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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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mebody make me...

 

이혼율의 증가와 결혼율의 감소는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지만, 이혼이나 결혼이라는 말의 무게가 가벼워진 것은 아니다. 결혼이 사랑의 완성이나 확인이 아니라 가족을 유지시키기 위한 법적인 제도일 뿐이라는 사실은, 결혼이 그저 선택할 수 있는 삶의 한 형식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결혼을 포기하거나 거부하는 비혼은 결혼이라는 제도에 진입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역설적으로 드러낸다. 결혼이라는 세계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두 사람의 마음만 있어서는 안 된다. 배우자 될 사람이 얼마나 결혼 생활에 성실할지, 원가족의 구성원에 문제는 없는지, 함께 살 집은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 경제적 부담은 어떻게 할 것인지, 자녀 계획은 어떻게 세울지 등에 대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기 때문이다.

사랑에 빠지고 그 사람과 평생을 함께 살겠다고 약속하는 일은 무모하지만 아름답고, 아름답지만 무모하다. 무사히 결혼을 이루기까지 겪는 어려움과 이혼을 해내기까지 겪는 괴로움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결혼이라는 관습이자 상징적 문화가 생긴 이래로 결혼과 이혼에 대한 무수히 많은 문학작품과 영화, 드라마 등이 나왔지만 어떤 이야기로 정리되지 않는 둘만의 천국과 지옥은 말 그대로 형언할 수 없는세계에 잠복해 있다.

 

결혼이야기    출처: 네이버
영화 '결혼 이야기'        출처: 네이버

노아 바움백감독의 <결혼 이야기>는 니콜과 찰리의 이혼 과정을 다룬 영화이다. 이혼을 다룬 영화의 제목을 굳이 결혼 이야기로 지은 까닭을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이혼은 결혼이 없다면 경험할 리 없는, 결혼의 잔여이기 때문이다. 법은 결혼처럼 이혼을 증명해주기 위해 존재하고 있다. 문제는 혼인 관계를 증명하는 일에 비하면 이혼에 이르는 법적 과정이 너무 지난하고 복잡하다는 것이다. 누구에게 더 많은 책임이 있는지, 재산을 어떻게 나눠가질 것인지, 게다가 아이가 있다면 아이의 양육은 어떻게 감당할 것인지 등 따져야할 객관적 사실이 너무 많다. 그 과정에서 두 사람은 결혼을 전반적으로 돌이켜보게 된다. 이혼이 없다면 이토록 치밀하게 결혼을 복기하는 일도 없을 테니, 이혼의 과정은 결혼 이야기 바깥에 존재할 수 없다.

<결혼 이야기>는 이혼 과정을 통해 결혼 생활이 두 사람에게 무엇을 가져갔는지 스스로 되짚게 만든다. 다르게 살 수 있었던, 아마도 꽤 찬란했을 미래 말고도 많은 것들이 바로 이 사람과의 결혼을 통해 사라졌다는 것. 아이를 낳고 미래를 준비하고 결혼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가족이라는 울타리는 내 개인의 삶을 위해 존재하지는 않았다는 것. 그렇지만 아이를 비롯해 결혼 생활로 인해 얻게 된 많은 기쁨과 슬픔들이 삶 자체를 지탱하게 해준 것이 사실이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 찰리가 부르는 노래는 뮤지컬 <company>의 넘버로 잘 알려진 ‘Being alive’이다. 날 너무 꽉 껴안고 나를 너무 깊이 상처주고 나에게 너무 많은 걸 요구하고 나에 대해 너무 많이 알고 있는 사람, 그 사람이 나를 혼란스럽게 하고 나를 살아가게 한다는 노래 가사는 사랑과 그 비슷한 감정으로 이루어진 관계에 대한 비밀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가슴께를 저릿하게 한다. 그러나 뒤늦은 깨달음이 이미 벌어진 틈을 좁혀주지는 못한다. 영화의 결말이 그랬듯, 결혼 후에는 결혼 이후의 삶이 오고 이혼 후에는 이혼 이후의 삶이 올 뿐이다.

 

깨진 거울(破鏡)의 상흔, 비대칭적 과거

<결혼 이야기>는 두 사람이 왜 이혼을 결심하게 됐는지를 친절하게 보여주는 대신, 이혼 결심 후 결국 재판에 가게 된 니콜과 찰리의 모습을 세심하게 살핀다. LA를 근거지로 삼아 영화배우로 활동하던 니콜은 뉴욕에서 연극 연출가인 찰리를 만나 2초 만에 사랑에 빠졌다. 뉴욕에서 결혼을 하고, 찰리의 극단에서 연극배우 생활을 하고, 아들을 낳고, 니콜은 자기 삶이 작아지는 줄도 모르고 자신의 삶을 찰리의 영토 속에 편입 시켜왔다. 그 사실을 자명하게 깨닫는 장면이 변호사인 노라를 만난 이후라는 점이 의미심장하다. 마누카꿀로 만든 차와 맛있는 쿠키가 마련된 사무실, 노라의 노련한 다정함 앞에서 니콜은 눈물 콧물을 쏟으며 자기 이야기를 터놓는다. 연출가에게 연기 지적을 당하듯 늘 남편의 판단으로 살아오던 니콜이 스스로 마음을 판단하는 일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깨진 거울에 생긴 금들이 비추는 상의 왜곡. 이혼은 둘의 세계에서 빠져나와 각자의 삶을 반추하게 한다. 기억은 얼룩덜룩해지고 나쁜 일들을 견딜만하게 해준 좋은 일들은 나쁜 결과를 향해 가는 부질없는 일들로 재해석된다. 첫눈에 반한 상황을 설명하며 웃음 짓던 니콜이 시작부터 문제가 있었다고 말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그것은 시간이 알려준 진실이기도 하다. 그 진실을 위해 결혼의 미래는 이혼의 과거로 재배치된다.

 

부부의 세계       출처: JTBC
드라마 '부부의 세계' (출처: JTBC)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텔레비전 드라마 <부부의 세계>BBC 드라마 <닥터 포스터>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 배우자의 외도와 그로 인한 파국 그리고 이혼 후에도 계속될 수밖에 없는 가족의 삶 등을 부부 중심으로 보여준다. 가정의학과 전문의인 지선우는 남편이 자신을 속이고 2년 동안 다른 여자와 만나왔고 친구와 이웃들이 다 같이 자기를 속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엄청난 배신감을 느낀다. 첫 회 방영 후, ‘불륜소재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을 토대로 해서 드라마에 대한 다양한 평이 쏟아지고 이야기가 점점 더 자극적인 상황으로 치달으면서 시청률이 고공행진하고 있다.

<결혼 이야기>가 변호사를 사이에 두고 대립하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보여준다면 <부부의 세계>는 남편 모르게 이혼을 준비하는 지선우의 행위에 집중하고 있다. 부원장으로 병원일을 챙기느라 바쁜 지선우는 아내와 엄마의 역할에다, 배우자의 배신을 확인할 만한 증거들을 모으느라 더 바빠진다. 드라마는 병원에서 골치 아픈 환자들을 상대하고 아들의 상태를 체크하고 설거지와 집안일을 하는 고단함은 아랑곳하지 않고 지선우를 사지로 내몬다. 남편의 가슴을 가위로 찌르는 지선우의 행동은 상상이지만, 법적으로 이혼이 결정되기까지 아니 이혼 후에도 물리적인 폭력은 늘 지선우를 위태롭게 한다. 특히 이혼 후 2년이 지난 뒤에 고산으로 다시 돌아온 전남편 이태오가 청부 폭력을 벌인 장면은 마치 게임을 방불케 하는 연출로 시청자들의 원성을 샀다.

열여섯 살에 부모를 교통사고로 잃은 지선우는 자신의 트라우마를 돌볼 겨를 없이 약해보이지 않기 위해 지나치게 애를 쓰며 살아왔다. 열심히 노력한 만큼 주위 사람들에게 인정받는다고 생각했지만 사람들은 지선우의 불행을 보면서 은밀한 기쁨을 느낀다. 드라마는 지선우의 고통과 불행을 보며 샤덴프로이데(Schadenfreude)’를 느끼는 사람들을 주변에 배치해 그의 외로움을 더욱 부각시킨다. 그럴수록 지선우는 더욱 치밀해지고 꼿꼿해진다. 병원의 부원장으로 엄마로 아내로 살아가는 지선우라는 캐릭터는 거의 완벽에 가깝다. 언젠가부터 드라마에 나오는 여주인공은 자신의 일을 사랑하면서 아내와 엄마와 딸과 그 밖의 모든 사회적 역할들에서 완벽하기를 요구받았다. 남주인공이 허세나 오만, 무지와 부주의 등의 결점을 매력으로 삼아 여주인공의 애정을 받았던 것과는 사뭇 다르다. 여주인공은 자신의 결여와 상실을 특유의 낙천성과 의지로 극복해야만 남주인공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다. 완벽한 지선우에게 없는 것이 있다면, 자신의 능력을 감출 줄 아는 겸손과 순종적인 태도이다.

지선우는 슈퍼 우먼 콤플렉스를 겪는 많은 워킹맘들을 떠올리게 만든다. 워킹맘들은 직장에서는 집안일이나 육아를 핑계 삼지 않는 전문성을 보이고, 집에서는 좋은 엄마의 역할에 충실하라는 이중고에 시달린다. <부부의 세계>의 원작인 <닥터 포스터>에서도 상황이 비슷한 걸 보면, 한국 사회에만 있는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임신, 출산과 육아로 인한 경력 단절이 두렵고 가정의 화목함이 무너질까봐 두려운 워킹맘들의 고충이 드라마 곳곳에서 뿜어져 나온다. 바깥에서 괴로운 하루를 보내고 들어와 남편과 아들이 식탁에 그대로 둔 그릇을 치우는 지선우의 모습을 보며 자잘한 분노를 느낀 시청자들의 소감은 과장이 아니다. 이혼 후에도 마찬가지다. 아빠 역할까지 해야 하기 때문에 일을 줄일 수도 없고 그렇다고 비뚤어지는 아들을 그냥 두고 볼 수도 없는 괴로움 속에서, 병원장이 아들 문제를 거론하며 그래서 아들에게는 아빠가 있어야 된다.”라고 말하는 데는 대꾸할 힘조차 나지 않는다.

<결혼 이야기>에는 양육권 분쟁을 두고 엄마와 아빠가 각자 아들을 어떻게 돌보고 있는지 가정방문을 하는 상황이 나온다. 질문에 대한 답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니콜이 너무 솔직하게 대답하는 걸 들은 노라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세상은 과음하고 자식에게 호통 치며 욕하는 엄마는 용납 못해요. 나도 그러니까 이해는 해요. 아빠는 부족해도 그러려니 하죠. 솔직히 좋은 아빠라는 개념도 고작 30년 전에 나왔어요. 그전까지 아빠들은 말도 안 하고 자식한테 무심한 못 미덥고 이기적인 존재였죠. 아빠들이 변하길 바란다지만 기본적인 수준에서 그냥 받아들여요. 아빠는 실수투성이라 사랑하죠. 하지만 엄마가 그런다면 사람들 다 들고 일어나요. 심적으로도 구조적으로도 받아들이지 않죠. 우리의 유대교와 기독교 뿌리가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라는 완벽한 사람이었으니까요. 마리아는 동정녀로 아이를 잉태했고 꿋꿋하게 자식을 부양했으며 죽을 때는 시체도 끌어안고 있었죠. 근데 아빠는 없었어요. 심지어 섹스도 안 했죠. 하나님은 천국에 있고 하나님이 아버지고 나타나지 않았죠. 그러니까 당신은 완벽해야 하고 찰리는 망치든 말든 상관없어요. 항상 당신을 평가하는 기준이 훨씬 까다롭죠. 짜증나지만 현실이 그래요.” 이 후련하고도 입이 쓴 대사를 맛깔나게 말하는 로라 던의 연기는 정말 오래 기억에 남을 만하다.

<부부의 세계>는 이제 반환점을 돌아 외도 상대와 결혼을 하고 딸을 낳은 이태오가 돌아온 2년 후를 그려내고 있다. 이혼 후 2년의 시간이 흐른 후에도 지선우의 수난사는 계속된다. 모멸감을 안기는 주변 사람들과 자신을 이해해주지 않는 아들, 그리고 스토킹과 폭력을 일삼고 병원에서 쫓아내려는 남편까지. 폭력을 사주 받은 박인규가 일갈하듯 이태오는 새로 찾은 가족에게 행복을 느끼기는커녕, 지선우가 자신에게 굴복하기를 바라면서 그녀 곁을 맴돈다. 이태오는 잘난 여자를 짓밟아 그 성취를 전유하고 권력을 행사하고 싶은, 못난 남자의 전형이다. 이태오가 돌아오면서 이혼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부부의 세계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 확인되고 있다. 분노와 복수로 점철된 이 무자비한 치킨게임을 끝내려면 두 사람이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세계로 분리되어야 한다. 이태오는 왜 고산으로 돌아온 것일까. 아니 왜 지선우는 고산을 떠날 수 없을까.

 

내 삶의 영토가 곧 나의 세계

<결혼 이야기>의 공간적 배경은 뉴욕과 LA이다. LA에서 막 이름을 떨친 배우였던 니콜은 뉴욕에서 찰리를 만나고 거기서 찰리와 함께 살게 되었다. 가족들과 떨어져, 찰리에게 가족과도 같은 극단 식구들과 함께 지내면서 아들은 8살이 되었고 어느덧 뉴욕은 니콜에게도 삶의 터전이 되었다. 그러나 남편이 연출하는 연극에 출연하고 남편의 뮤즈가 되는 것에 만족할 수 없었던 니콜은 영화 제안이 들어오자 LA로 갈 결심을 하게 된다. 8년 동안 LA에 갈 기회가 있었지만 남편이 받아들이지 않았고 니콜은 남편의 결정에 따라 자신들이 뉴욕 패밀리라는 것을 승인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자신이 영화에 출연하는 것을 응원하기는커녕, 영화 촬영으로 번 돈을 극단에 쓰자는 남편의 말을 듣자 니콜은 이 기울어진 관계의 민낯을 보게 되고 이혼을 결심한다. 이혼 조정 과정에서 LA로 가서 살자는 니콜의 말을 지키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건 그냥 집안에 쓸 가구를 정하는 일과 같은 상의였을 뿐이라는 찰리에게 노라는 그러니까 당신이 원하면 약속이고 니콜이 원하면 상의예요?”라고 말한다.

 

'결혼 이야기' 포스터     출처: 네이버
영화 '결혼 이야기' 포스터         출처: 네이버

뉴욕이 집이고 극단이 가족인 찰리에게 뉴욕을 떠나 산다는 건 어려운 일이었겠지만 LA를 떠나와 살고 있는 니콜이 자신과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 건 아무래도 오판이다. 결국 이혼 재판은 니콜이 아들 헨리와 함께 LA에서 사는 것으로 결정이 되고 두 사람은 헨리를 함께 양육하는 조건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영화의 포스터는 LA와 뉴욕만큼이나 다른 두 사람의 모습을 함께 보여주면서 삶을 영위하는 조건 중에 누구와 함께 사는가 하는 문제 못지않게 어디서 사는지의 문제도 중요하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이제 둘은 떨어져 살게 되었지만 니콜은 영화감독으로 에미상 후보에 오르면서 찰리의 마음을 조금은 알게 되고 찰리는 UCLA에 전임으로 오게 되면서 LA에서의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LA에서 새롭게 시작된 각자의 생활은 두 사람을 어떤 세계로 인도하게 될까.

<부부의 세계>는 보통 서울을 공간적 배경으로 상정하는 드라마와는 달리 고산이라는 도시를 배경으로 삼는다. 원작과 마찬가지로, 런던이나 서울 같은 대도시와 달리 고산은 지역 유지의 권력이 크고 소문이 금방 퍼지며 타인의 삶을 들여다보고 또 의식하기 쉬운 크기의 도시이다. 극 중에서 이태오는 이 도시에서 나고 자랐으며 어린 시절부터 아는 지인들이 많다. 반면 지선우는 이태오와의 결혼으로 고산에 정착하게 된 것으로 설정되어 있다. 외도와 폭력 사건 이후 지역 유지의 딸인 여다경과 함께 서울로 떠났던 이태오는 천 만 영화의 제작자가 되어 금의환향한다. 쫓기듯 떠났던 고산에 돌아와 성대한 파티를 연 두 사람에 대한 뒷말을 쑥덕거리던 사람들은 지선우의 눈치를 보는 척하면서 파티에 참석해 이 새로운 힘 있는 자들을 구경한다. 아빠에 대한 그리움과 원망을 함께 품고 있던 아들 못지않게 지선우도 이태오의 등장에 몹시 흔들린다.

다시 돌아와 지선우를 괴롭히기 시작하는 이태오의 마음이 어떤지는 별로 궁금하지 않다. 다만 이태오가 지선우에게 고산을 떠나라는 말을 반복한다는 것이 마음에 걸린다. 지금 이태오는 고산을 자신의 영토로 삼아 지선우를 쫓아내려고 한다. 고산은 이태오의 고향이지만, 지선우가 14년 동안 살면서 커리어를 쌓고 명성을 얻은 곳이기도 하다. 이태오는 지선우의 경제력과 후광을 이용해서 불투명한 사업을 유지시키고 그마저도 불가능해진 상태에서 외도를 저질렀으면서 이제 지선우의 근거지까지 빼앗으려 한다. 연고지 없는 고산에 결혼 때문에 와서 아이를 낳고 기르고 병원 일을 시작하고 결국 정착한 지선우의 이야기는 드라마가 전사로 펼쳐주지 않아도 얼마나 힘들고 어려웠을지 짐작이 된다. 그러니 이태오가 빼앗고 싶은 것은 지선우의 마음만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하다. 한 사람의 삶을 구성하는 요소 중에 그 사람이 사는 곳이 얼마나 중요하고 왜 중요한지는 영화나 드라마를 거론하지 않아도 충분히 얘기 될 수 있다. 결혼은 자신의 영토를 상대 쪽으로 옮기는 일이며, 이혼은 자신의 영토를 벗어나 자신의 영토를 지키는 일이기 때문이다.

결혼의 끝이 배우자의 죽음이 아니라 이혼일 수도 있고 결혼 생활이라는 과거 때문에 이혼이 발생한 것도 틀리지 않지만, 결혼의 미래는 이혼이 아니고 이혼의 과거는 결혼이 아니다. 결혼과 이혼이라는 제도가 다 말해주지 않는 둘 만 아는 세계, 각자가 지켜야할 삶이, 결혼과 이혼이라는 제도를 더 인간답게 만들어주길 바랄 뿐이다. 그 전까지는 법과 제도를 허울로 이용하고 조롱하는 영화나 드라마를 많이 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 양근애(문화평론가)

서울대 기초교육원 강의교수. 평론과 드라마터지, 극작을 병행하고 있다. 2016년 방송평론상 수상. 역사, 기억,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읽고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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