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4월호 구매하기
학생의 내일은 총장의 오늘보다 크다
학생의 내일은 총장의 오늘보다 크다
  • 홍성욱
  • 승인 2011.05.09 15:35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논란의 중심에 있는 서남표 카이스트(KAIST) 총장이, 언제 처음으로 움직이는 항구 ‘모바일 하버’(Mobile Harbor)와 배터리 없이 주행하면서 충전하는 온라인 전기자동차 기술을 생각했는지 분명치 않다. 2008년 봄, 서 총장이 기자들에게 “이제는 뒤쫓지 말고 남들이 하지 않는 새로운 연구를 통해 앞서가야만 세계 최고 대학이 될 수 있다”면서 모바일 하버 개념을 사례로 제시한 것이 언론을 통해 보도됐다. 서 총장은 그해 여름에도 자신이 단장을 맡은 지식경제부의 신성장동력기획 사업에서 모바일 하버와 그린카 기술을 추진하면서, “모바일 하버가 우리나라 미래의 성장을 가능케 할 것”이라고 장담했다. 서 총장이 추진한 사업은 신성장동력의 후보 사업에는 선정됐지만, 22개 최종 사업을 선정하는 단계에서 탈락했다. 간단히 말해 다른 기술과의 경쟁에서 패배한 것이다.

신성장동력 사업에서 탈락했지만 모바일 하버와 온라인 전기자동차 사업이 죽은 것은 아니었다. 2009년 3월 교육과학기술부는 250억 원씩 총 500억 원의 추가경정예산을 배정해 두 사업을 지원하기로 했다. 흥미롭게도 이 결정이 있기 직전인 2009년 2월 27일 카이스트 졸업식에서 모바일 전기자동차 모델 개발의 성공을 축하하는 시연회와 시승식이 있었다. 이날 이명박 대통령이 참석해 모바일 전기자동차 조수석에 탑승해 500여m를 시승한 뒤 ‘각별한 관심’을 보였다. MB의 각별한 관심이 500억 원의 추가경정예산 배정과 어떤 관련이 있었는지 알 수 없지만, 어떤 기준으로 봐도 상당한 연구비가 할당된 것이다. 특히 이렇게 큰 연구개발(R&D) 기금이 추가경정예산에 배정된 것은 거의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간신히 살아난 모바일 하버와 온라인 전기자동차 사업은 잘 진행되는 듯했다. 카이스트는 2009년 여름 “세계 첫 모바일 하버에 대한 계약을 푸에르토리코 폰세항과 곧 체결할 것”이라고 공표했다. 그렇지만 이로부터 불과 몇 개월이 지나지 않아 이 사업은 심각한 비판에 직면했다. 2009년 10월 교육과학기술부 국정감사에서 박영아 의원(한나라당)은 전문가들의 의견을 근거로 “모바일 사업이 경제성은 물론 기술적 타당성이 없다”고 했다. 또 “전기자동차 사업은 선진국이 진행하다 포기한 사업이고, 핵심 부품 역시 모두 독일과 일본에 소유권이 있다”고 지적했다. 박 의원은 “500억 원이 정부 출연금 형태로 지급되었기 때문에 사업이 지지부진해도 돈을 회수할 방법이 없는 상황”이라고 질타했다. 이 비판은 이 사업에 관여하는 카이스트 교수들을 제외한 많은 과학기술자들의 평가에 바탕한 것이다.

서남표 프로젝트, 전례없는 파격 지원

▲ <푸가>, 2003-루이즈 부르주아

두 프로젝트의 타당성 조사는 2009년 여름에 시작되었고, 그 결과는 이듬해에 나왔다. 박 의원은 2010년 9월 이 결과를 인용하면서 카이스트와 서 총장을 또다시 질타했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의 성과 평가에 따르면, 온라인 전기자동차 사업의 평가 점수는 100점 만점에 52.1점, 모바일 하버 사업은 58.5점으로 모두 낙제점이었다. 한국과학기술평가원의 예비 타당성 조사에 따르면 온라인 전기자동차 사업은 1점 만점에 0.194점, 모바일 하버 사업은 0.293점을 받았다. 이 조사에서는 보통 0.5점 이하일 경우 사업 타당성이 낮다는 것을 의미했다. 박 의원은 “온라인 대공원에서 운행 중인 전기자동차가 실제로 주행 중에 충전이 되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이며, 모바일 하버의 경우 핵심기술을 확보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완성이 되어도 경제성이 낮아서 실용화되기 힘들다”고 날을 세웠다. 박 의원은 감사원 감사를 해서라도 500억 원의 세금을 낭비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강조했는데, 이 무렵 서남표 총장에게는 ‘제2의 황우석’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살아남기 힘들 것이라고 간주되던 서 총장의 프로젝트는 다시 뜻하지 않은 지원군을 만났다. 지난해 11월, 미국의 주간지 <타임>은 온라인 전기자동차를 2010년 세계 50대 발명 중 하나로 꼽았다. 서 총장의 프로젝트는 또다시 언론의 조명을 받았고, 일부 언론은 다보스 포럼에서 이 프로젝트가 소개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지난 1월, ‘로봇 영재’로 불리던 카이스트 학생이 자살한 직후 이루어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서 총장은 이 기술과 관련해서 신청한 180여 개 국제 특허 때문에 온라인 전기자동차에 대한 디테일을 공개하지 못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같은 인터뷰에서 서 총장은 공부에 힘들어하는 학생들을 위한 상담을 강화해서 학내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했는데, 이 말이 나온 뒤 다시 목숨을 끊는 학생이 3명이나 더 나왔고 교수 1명도 자살했다.

‘제2 황우석’이라 불리고도 기사회생
불거진 ‘카이스트 사태’로 온 나라가 술렁이던 지난 4월 말, 카이스트는 모바일 하버의 원천기술을 개발했으며 이를 성공적으로 시연했다고 공표했다. 인터넷에서는 이를 두고 카이스트와 서 총장이 ‘승부수를 던졌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였다. 카이스트에 대한 비판이 최고조를 이루는 시점에서 논란의 초점이던 모바일 하버가 허구가 아님을 보임으로써, 카이스트 갈등의 책임에 대한 비판을 정면으로 돌파하는 동시에 모바일 하버 프로젝트에 대한 추가 지원을 확보한다는 공세적 전략이라는 의미였다. 비슷한 시기에 오랜만에 입을 연 서 총장은 “서울대공원에 온라인 전기자동차 3대가 성공적으로 운행되고 있으며, 보스턴공항 같은 곳에서도 이 차를 설치하자는 얘기가 오간다”는 점을 강조했다. 외국에서는 성공으로 보는 프로젝트를 국내 전문가들이 좁은 식견으로 ‘경제성이 없다’, ‘원천기술이 없다’, ‘실효성이 없다’고 비판하는 데 대한 강한 불만이었다.

서 총장과 카이스트가 추진하는 두 프로젝트는 이른바 ‘카이스트 개혁’과 공통점이 많다. 서 총장은 이것들이 충분히 가능할 뿐만 아니라 미래를 위해 꼭 필요한 것이라고 본다. 외국에서 이미 개발한 기술을 개량하는 일만 해서는 미래의 성장이 보장되지 않기 때문에, 발상의 전환에 근거한 모바일 하버 같은 기술을 개발하는 도전이 필요하듯이, 카이스트 개혁도 미래의 카이스트가 세계 최고 대학이 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도전이라는 뜻이다. 반대 세력이 많고, 기득권에 만족하는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한다고 보는 점도 비슷하다. 서 총장의 개혁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온갖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가 추진하는 혁신 기술 프로젝트가 그를 다른 과학기술자와 차별화하는 좋은 사례라고 본다. 반대로 서 총장의 개혁이 이름만 요란하지 교육적이지 못하다고 비판하는 사람들은 그의 기술 프로젝트도 근거 없는 사기극이라고 비판한다.

나는 이와는 조금 다른 얘기를 해보려 한다. 기술에 대해 분석하다 보면 기술의 성공과 실패를 구분하는 게 쉽지 않은 경우를 많이 보게 된다. 엔지니어에게 성공적으로 평가받는 기술이 경영자에게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고, 회사로 봐서는 성공적이라고 평가한 기술이 사용자들에게는 냉대를 받은 경우도 많다. 성공적으로 사용되던 기술이 환경이 바뀌면서 갑자기 실패한 기술로 사라져버리는 경우도 자주 있고, 거꾸로 한 번 실패한 기술이 수십 년 뒤 갑자기 새롭게 조명받는 경우도 그만큼 흔하다.

실패와 성공, 엇갈리는 평가
서 총장의 프로젝트도 성공과 실패에 대한 평가는 엇갈릴 수 있다. 신성장동력 사업에서 탈락해 실패했다고 볼 수 있지만, 남들이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정부 지원을 받아냈기 때문에 성공이라고 볼 수도 있다. 투입된 예산 수백억 원에 비해 결과가 보잘것없다고 실패한 프로젝트라고 평가할 수도 있지만, 처음에 요구한 수천억 원 예산의 극히 일부만 받은 상태에서 작동하는 시연 모델을 만들었다고 항변하는 입장에서 보면 성공이라고 평가할 수도 있다. 타당성 예비 평가 같은 평가 결과를 보면 실패지만, <타임>이 2010년 세계 50대 발명 중 하나로 꼽은 것을 보면 성공이라 볼 수도 있다.

자신의 기술을 변호하면서 서 총장은 아마 이런 항변을 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프로젝트를 평가할 때 제발 더 개방적이고 미래지향적인 태도로, 기술 프로젝트들이 가진 서로 다른 특성을 고려하면서 기존에 정해진 잣대, 특히 선진국의 잣대로만 평가하지 말고, 남들이 다 안 된다고 하는 프로젝트도 아이디어와 가능성을 보고 지원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항변 말이다. 그리고 진정한 혁신은 남들이 다 안 된다고 하는 데서 나온다는 진실 말이다. 이런 철학이 지금 논란의 대상이 되는 카이스트 교육에 그대로 적용될 수 있지 않을까? 조금 더 개방적이고 미래지향적인 태도로, 서로 다른 학생들의 다양한 재능과 관심을 고려하면서, 기존에 정해진 시험과 학점이라는 잣대만으로 학생들을 평가하지 말고, 오히려 다른 사람들이 다 낮게 평가하는 학생 속에서도 일말의 가능성을 보고 학생을 끌어주는 교육을 실험하는 것 말이다. 이런 실험이 이 순간에 진정으로 필요하고, 의미 있는 개혁이 아닐까.

1949년에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학부 교육의 비전을 재검토한 루이스 위원회는, 대학원과 연구가 강조되는 시점에서 학부 차원의 의미 있는 교육은 학부 학생 개개인이 끌리거나 재능을 보이는 전공 분야로 학생을 방향 전환시켜야 한다고 보았다. 또 많은 지식보다는 근본적 원리를 터득시키고, 전문가의 태도와 언어를 심어주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고 결론지었다. 위원회는 이 정책의 전환을 위해 6가지 프로그램을 제안했다. △인문학과 사회과학 교육의 강화 △세부 디테일보다 근본 원리의 교육 강조 △학생들의 개성과 관심의 개인 차이를 더 많이 허용하는 교육 △학생들에게 과부하를 지우지 않는 교육 등이다.

기계적일 뿐 기술적이지 않은 교육
카이스트 사태를 보면서 안타까운 점은 고등학교를 조기졸업하고 어린 나이에 대학에 들어온 ‘사춘기’ 학생들을 상대적으로 성숙한 대학원 연구자들에게나 통하는 방식으로 몰아세우는 것이다. 이들이 똑똑하지만 아직 유약한 심성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이들의 장점과 관심의 차이를 조금 더 인정해주어야 한다. 징벌적 등록금 등을 통해 과부하를 지우는 것을 조금만 완화했어도 올해 일어난 4건의 자살 중 절반은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학교와 총장은 ‘실패를 극복해야 한다’, ‘좌절하고 다시 일어나야 한다’는 원칙만 강조할 것이 아니라, 학부 학점이 나빴지만 학문으로 성공한 사례, 공부가 아닌 다른 영역에서 성공한 사례, 과학기술이 아니라 다른 전공으로 방향을 전환해서 성공한 사례 등을 적극적으로 보여줘야 하지 않을까? 인생의 바람직한 궤적이 학부에서 학점을 잘 따는 것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다는 점을 학생들에게 좀더 적극적으로 납득시켜야 하지 않을까?

차이와 다양성 인정해야 미래 기대
학생 개개인이 지닌 가능성은 가늠하기 힘들다. 카이스트의 영어강의를 못 따라가서 힘들어하는 학생 중에 미래에 세계를 놀라게 할 발명을 하는 엔지니어, 노벨상을 타는 과학자, 한국 산업계를 이끌고 나갈 지도자가 나오지 말라는 법이 어디 있는가? 학생들을 그저 기계적인 경쟁으로 내모는 것이 아니라, 이들의 다양한 가능성과 재주를 잘 살려주는 방식의 교육 분위기를 만들 수는 없을까? 이런 교육이 단지 유토피아에 불과하다고 항변할지는 모르겠지만, 카이스트 사태를 겪으면서 우리에게 분명해진 것은 카이스트 학생 하나하나가 가진 잠재적 가능성이 아무리 적어도 그것이 서남표 총장의 모바일 하버나 온라인 전기자동차의 잠재적 가능성보다는 더 크리라는 사실이다.

글 · 홍성욱
캐나다 토론토대학 교수를 거쳐 2003년부터 서울대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에서 연구와 강의를 하고 있다. 최근 저서로는 <인간의 얼굴을 한 과학> <홍성욱의 과학 에세이> 등이 있다.

  • 정기구독을 하시면, 유료 독자님에게만 서비스되는 월간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잡지를 받아보실 수 있고, 모든 온라인 기사들을 보실 수 있습니다. 온라인 전용 유료독자님에게는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의 모든 온라인 기사들이 제공됩니다.
이 기사를 후원 합니다.
※ 후원 전 필독사항

비공개기사에 대해 후원(결제)하시더라도 기사 전체를 읽으실 수 없다는 점 양해 바랍니다.
구독 신청을 하시면 기사를 열람하실 수 있습니다.^^

* 5000원 이상 기사 후원 후 1:1 문의하기를 작성해주시면 1회에 한해 과월호를 발송해드립니다.

홍성욱
홍성욱 info@ilemonde.com